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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지 목사
유명한 부흥사 김익두(金益斗) 목사님에게 이런 잘 알려진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황해도 일대를 주름잡던 불량배였다가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김 목사님이 어느 더운 여름날, 전도를 다니다가 고개 마루턱에 앉아서 땀을 들이고 있는데 지나가던 조무래기 불량배 하나가 공연히 시비를 걸더니 무작정 두들겨 패기 시작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이 직접 하신 표현을 빌면 '복날 개 패듯이' 팼다고 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대항하지 않고 그 매를 고스란히 다 맞고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님 다 때리셨소?"
"그래, 다 때렸다. 왜 더 맞고 싶으냐?"
"그런데 형님 내가 누구인줄 아시오?"
"네가 누군지 내가 알게 무어냐?"
"형님, 내가 김익두요!"
조무래기 불량배는 그만 얼굴이 흙빛이 되어 사시나무 떨 듯이 떨면서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고 합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그 조무래기 불량배를 일으키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님, 예수는 내가 믿고 구원은 형님이 받았소!"
김익두 목사님이 예수를 믿지 않았더라면 그 조무래기 불량배는 그날 정말 무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내가 믿고 구원은 당신이 받았다.' 하는 말은 맞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감리교 창설자인 요한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에 대해 생각할 때 지금 소개해 드린 김익두 목사님이 한 말을 이야기를 이렇게 변형할 수 있습니다.
'회심은 웨슬리 목사님이 하고 구원은 영국 사회가 받았다!'
무슨 뜻인가 하면 18세기 영국 사회가 대단히 타락했습니다. 그 당시 영국 사회의 모습을 여섯 글자로 표현할 수 있었는데 '무질서와 혼란' 이것입니다. 뒤죽박죽이었고 썩는 냄새가 진동했으며 부글부글 끓었습니다. 무엇인가 터지기 직전의 상태였습니다. 역사가들은 이 때웨슬리 목사님의 감리교 운동이 없었다면 영국에서는 틀림없이 유혈폭동이 일어났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회심은 웨슬리 목사님이 하고 구원은 영국 사회가 받았다.'고 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은 두 개의 큰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는 감리교회라는 열매입니다. 여기에는 구세군과 성결교를 비롯하여 감리교에서 파생된 몇 몇 교파들이 포함됩니다.
참으로 큰 열매이고 알찬 열매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이 열매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는 세계 방방곡곡에서 이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 저희 교회에서 열리는 용인서지방 요한 웨슬리 회심기념 집회에서는 이 열매에 대해 집중적으로 살피게 될 것입니다. 연합집회의의 설교 제목이 '감리교인의 마음'이지요.
또 하나는 영국 사회의 변화라는 열매입니다.
소망이 없어 보였던 영국 사회가 웨슬리 목사님이 일으킨 감리교 운동을 통해 변화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사회변화에 대한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특별히 경제정의를 강조했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벌어라.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일에 많이 써라.' 웨슬리 목사님의 이 말은 경제정의의 대 원칙입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설교와 함께 실제적인 구제 활동을 많이 하였습니다. 사회복지 기관도 많이 설립했습니다.
프랑스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는 "18세기 요한 웨슬리에 의해 일어난 감리교회가 영국을 변화시키고 개혁시켰으므로 불란서와 같은 유혈혁명이 영국에서는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영국사회와 국가를 구원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칼라일의 이 말에서 중간 부분을 빼면 '감리교회가 영국 사회와 국가를 구원했다.' 이렇게 됩니다.
바울의 회심, 어거스틴의 회심, 루터의 회심, 그리고 웨슬리의 회심을 인류 역사를 변화시킨 4대 회심이라고 합니다.
이 네 회심은 각기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그런 아름다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회심은 초대교회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어거스틴의 회심은 「참회록」을 비롯하여 기독교의 기초를 이루는 많은 저작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루터의 회심은 개신교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리고 웨슬리의 회심은 조금 전에 말씀 드린 것과 같이 감리교라는 열매와 영국 사회의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회심이라고 하면 신앙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데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회심을 하고 이 자리에 나온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던 분이 예수를 믿게 된 것, 회심입니다.
예수를 믿다가 실망을 하고 교회를 떠났는데 이기고 다시 돌아온 것, 회심입니다.
뜨뜻미지근한 믿음을 가졌다가 뜨거운 믿음을 갖게 된 것, 회심입니다.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오다가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확신하게 된 것, 회심입니다.
교회를 위해 더 많이 봉사해야겠다, 결심한 것, 회심입니다.
내 일생을 예수님께 바쳐야하겠다 결심한 것, 회심입니다.
회심의 바른 뜻을 생각하면 이 자리에 회심을 하지 않은 분들은 한 분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회심이 얼마나 분명한 것이냐, 얼마나 강렬한 것이냐, 얼마나 뜨거운 것이냐, '나는 회심을 했다.'는 의식이 얼마나 깊이 새겨져 있느냐, 회심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다르냐, 그 회심이 얼마나 사후관리(양육)가 잘 되고 있느냐, 이것이 차이가 나지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회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회심이 분명한 회심, 강렬한 회심, 뜨거운 회심, 의식화된 회심, 회심 이전과 이후가 다른 회심, 사후관리가 잘 되고 있는 회심이 되기 바랍니다.
회심은 열매를 맺어야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하지요. '종은 울려야 종이고, 노래는 입밖으로 나와야 노래이고 사랑은 실천되어야 사랑이다.' 여기에 하나를 덧붙이면 '회심은 열매를 맺어야 회신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의 회심은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작아도 좋습니다. 열매가 있어야합니다.
찬송가 378장의 가사 끝 절을 기억하지지요?
내 하는 일들이 하도 적어 큰 열매 눈 앞에 안 뵈어도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면 생명의 면류관 얻으리라
하나님께서는 회심의 열매가 크냐 작으냐 하는 것도 안 살피시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살피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열매가 있느냐 없느냐, 열매를 맺기 위해 얼마나 충성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길 가의 무화과나무가 작더라도 열매가 있었으면 예수님의 저주를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의 삶의 변화라는 열매, 가정의 변화라는 열매, 내가 속해 있는 직장의 변화라는 열매, 주변의 변화라는 열매, 전도의 열매, 회심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는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이 맺은 두 번째 열매, 사회의 변화와 구원, 국가의 변화와 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원하십니다. 아니 명하십니다.
이 사회가 그것을 원합니다. 간절히 원합니다.
아까 웨슬리 목사님 당시 영국사회는 무질서와 혼란으로 요약된다고 했는데 이것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대표적인 것들이 음란, 음주, 도박입니다. 사회 전체가 취해 비틀거리고 있었고 국가가 하나의 거대한 도박장이었습니다. 특별히 정부가 복권 제도를 장려해서 사행심이 국민들 사이에 만연되었습니다. 건강하게 땀 흘려서 돈벌려 하지 않고 손쉽게, 일시에 돈 벌려 하는 사회는 골병든 사회인데 골병이 들대로 들었습니다.
무슨 강연처럼 될까봐 많이 말씀 드리지 않겠지만 오늘의 한국 사회가 이와 얼마나 비슷합니까?
지난 5월 13일자 「중앙일보」보도에 따르면 작년 1년 동안 만 20세 이상 성인 한 사람이 맥주는 119병, 소주는 79병씩 마셨다고 합니다. 소주와 위스키 같은 독한 술 소비는 러시아와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합니다. 이 기사의 제목이 "술 갈수록 더 마신다"입니다. 내년에는 더 많이 마셨다는 통계가 발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원도 어디엔가 만들어진 카지노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을 우리가 매스컴에서 종종 대합니다. 그것뿐만이 아니고 대낮에 큰 규모의 도박판을 벌이다가 경찰에 단속되는 장면이 그치지 않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 당시에는 마약 문제가 어떻하였는지 찾지 못했습니다. 오늘 날, 마약 문제, 얼마나 심각합니까?
웨슬리 목사님은 이런 것들에 도전하여 하나 하나 극복하고 변화시켜 나갑니다.
영국을 방문한 여행자 한 사람이 술을 사러 상점에 들렸더니 "여기는 'Dry Town'이어서 술을 팔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Dry Town'이 무엇인가 했더니 웨슬리 목사님이 전도 여행을 다닌 곳에서는 그 영향으로 지금도 술을 팔지 않는데 그런 마을들을 이렇게 부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양교회가 있어서 수지가 Dry Town이 되었다.'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1907년에 우리 나라에서 유명한 대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나라를 일본에 거의 빼앗기고, 흉년이 계속되어 살기 어렵고, 견딜 수 없이 답답하고, 교회 안에서는 우리 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20년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초기 단계의 흥분을 지나 갈등이 생기기 시작하고, 이런 때 평양에서 있었던 한 부흥사경회가 계기가 되어 폭발적인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부흥운동은 두 가지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는 교회의 성장이라는 열매입니다. 이 때 교인과 교회들이 급격하게 늘어났습니다. 1년 사이에 두 배, 또는 두 배 반이 늘어났습니다.
제가 월요일마다 새벽에 극동방송을 통해 북한 각 지역을 하나 하나 순방하면서 '이 지역에는 과거에 어떤 교회들이 있었고 그 교회는 몇 년에 세워졌고 어떤 목사님이 담임했었습니다' 하는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추려서 주보 4쪽 제일 밑에 싣고 있는데 여러분 그것을 보면서 그 지역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통일과 북한복음화를 위한 우리의 기도는 추상적인 데서 조금 구체적인 것으로 진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업을 하다보면 1907년과 1908년 사이에 세워진 교회들이 유난히 많은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 한국 교회에 제2의 1907년을 주옵소서. 특별히 목양교회에 제2의 1907년을 주옵소서' 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1907년 대부흥운동의 또 하나의 열매가 사회의 변화입니다. 사람들이 회개를 하고 예전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을 찾아가서 사과를 합니다. 깨어진 가정이 다시 결합됩니다. 가게 주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는데 느닷없이 웬 사람이 나타나 '나, 얼마 전에 이 가게에서 이 물건을 훔쳤습니다. 돌려 드립니다.' 하는 일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직접 찾아갈 용기가 없는 사람들은 편지로 보냈다고 합니다.
주인은 머슴에게 '내가 자네에게 품삯을 이만큼 주어야 할 것을 그 때 왜 그렇게 인색했는지 후려쳐 깎았네. 미안하네. 그 때 제대로 주지 않은 품삯일세'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1907년의 대부흥운동을 '실천적 회개가 동반된 윤리적인 부흥운동'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이라는 말을 많이 들으시지요?
한국 교회의 문제점들 가운데 제일 큰 문제가 개인구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과 사회구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들 사이에 의견이 잘 맞지 않는 것입니다. '보혁(保革)간의 갈등'이라고 하지요.
우리는 교회의 사회구원운동이라고 하면 부정을 폭로하는 것,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 정부에 대항하는 것, 데모를 하는 것, 이런 것들을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런 모습들을 많이 보았고, 보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 부정과 독재가 심해서 빚어진 현상이지 교회의 사회구원운동은 본질적으로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개인이 회심을 하고 구원 받고, 변화된 삶을 살고 그 변화된 삶이 확대되어 주변이 변화되고 나가서는 사회가 변화되는 것, 이것이 사회구원의 본질입니다.
사회구원이라고 하면 교회 안의 젊은이들이나 하는 것, 운동권이나 하는 것, 액션 그룹(Action Group)이나 하는 것,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전 교인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은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사회구원으로 연결되지 않는 개인구원은, 오늘 설교의 표현에 맞춘다면 사회구원이라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개인구원은 어딘가 잘못된 것입니다.
또 변화된 사회 속에서는 개인구원 운동이 왕성하게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그 대표적인 본보기가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과 감리교 운동입니다.
우리의 회심이 웨슬리 목사님 회심이 두 번째 열매, 사회와 국가의 변화, 그리고 구원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앙의 영양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나무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수분이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햇볕을 받아야 합니다. 신앙의 영양은 기도, 말씀, 묵상, 경건생활입니다. 이것 없이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평생 새벽 4시에 일어나 성경을 연구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신앙의 영양을 끊임없이 공급한 것입니다.
또한, 함께 있어야합니다.
집에서 과일나무 한 두 그루씩 키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열매를 잘 맺습니까?
잘 맺지 못합니다.
과일나무는 과수원에 있어야 크고 탐스러운 열매를 주렁주렁 맺습니다.
성도들은 교회라는 과수원에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간증에 힘써야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이 1738년 5월 24일 밤, 올더스게잇 거리의 작은 모임에서 회심을 하고 첫 번째로 한 것이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회심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지난 주일 주보 7쪽 목양광장에 소개한 웨슬리 목사님이 회심한 날의 일기를 기억하시지요?
감리교인이면 암송해야 하는 내용입니다.
오후 아홉 시 15분 전 그 사람(낭독자)이 그 서문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의 마음에 일으키시는 변화를 논하는 부분을 읽을 때 나는 나의 마음이 이상스럽게도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을 나의 구주로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가 내 죄, 나 자신의 죄를 가져가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내게 주셨다. 그 후에 나는 나를 모욕하고 핍박하던 자를 위해서 정성껏 기도하였다. 그 다음이 무엇입니까?
그리고 나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내가 새로이 얻은 내심의 경험을 다 말하였다.
우리는 남의 간증을 통해서 은혜 받을 생각만 하지 말고 내 간증을 통해서 남에게 은혜를 줄 생각도 해야합니다. 이름난 분들의 간증을 통해서도 은혜를 받지만 이웃 성도의 소박한 간증을 통해서 그에 못지않는 은혜를 받는 일이 많습니다.
어제 저희 교회 호산나 찬양대 지휘자 함석헌 선생이 영산 아트홀에서 귀국 독창회를 가졌는데 앙코르를 여러 번 받았습니다. 마지막 앙코르 곡을 부르기 전에 한 마디 했지요. "내가 늘 잊지 못하는 분이 둘 있는데 한 분은 예수님이고 한 분은 지도교수님입니다." 그리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불렀습니다.
이거, 짧지만 감동적인 간증입니다. 멋있는 간증입니다. '내 예술은 예수님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노래를 부릅니다.' 이런 고백이지요.
축구 선수가 슛을 성공시키고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도 간증입니다. '하나님께서 힘 주시고, 재능 주시고 기회 주셔서 득점을 했습니다.' 하는 간증이지요. 들려주는 간증이 아니라 보여주는 간증이지요. 이번 월드컵에서 이런 간증을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중들 앞에서 간증하는 분들, 저희 교회에서 여선교회가 주최하는 간증성회에서 간증하는 분들의 간증은 전도에 도움을 주고 듣는 이들에게 도전과 은혜를 주고 재훈련이라는 유익이 있습니다.
우리들이 속회나 선교회에서 모임들에서 간증을 나누는 일이 많아져야 겠는 데요, 앞으로 목양교회 속회에는 그런 순서를 고정적으로 넣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간증, 그리고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간증 성격의 내용을 말할 때는 듣는 이들에게 은혜를 주면서 간증을 하는 분에게는 '나는 이 간증대로 살겠습니다.' '나는 이 간증에 대해서 책임을 집니다.' 다짐하게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 간증을 많이 나누고 그 간증대로 사시기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주변의 변화, 사회의 변화 나가서는 사회 구원으로 연결되고 확대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낮은 곳에 있는 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회심을 한 다음에 탄광 지대를 찾아가서 광부들에게 설교하고 빈민촌을 찾아가서 설교합니다. 영국 교회에서는 이것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영국 교회는 품위를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 교회였습니다.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교구 제도를 엄격하게 지켰습니다. 이런 것을 고교회(高敎會 High Church)라고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영국 교회에 속한 목사님이었는데 영국 교회에서는 웨슬리 목사님이 그런 곳에 가서 설교하고 전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금지했습니다. 이 때 웨슬리 목사님은 "세계가 나의 교구입니다"라는 유명한 말을 합니다. 이 말은 지금은 해외선교를 강조하는 말로 쓰이고 있지만 본래의 뜻은 '나는 내 교구 안에서만 전도하는 것이 아니고 어디든지 가리지 않고 전도하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영국 교회에서 더 못마땅하게 여기고 웨슬리 목사님을 용납하지 않으니까 하는 수 없이 만든 것이 감리교회입니다. 처음부터 갈라져 나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는데 이 '땅 끝'을 오랫동안 지리적인 개념을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먼 곳, 가기 힘든 곳,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문화적인 차이를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해외선교라는 말 대신에 타문화권 선교라는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상징적인 의미를 기준으로 합니다.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이 이 시대의 땅 끝이다'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260 여 년 전부더 이 시대의 땅 끝 선교를 미리 하셨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의 회심은 참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습니다. 특별히 두 번째 영국 사회의 구원이라는 열매가 없었더라면 세계의 역사는 다시 한 번 큰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회심도 열매를 맺어야겠습니다. 특별히 한국 사회의 변화라는 열매를 하나님이 원하시고 사람들이 기대합니다.
'신앙생활은 감리교인들이 잘 하고 구원은 한국 사회가 받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영양분을 힘써 공급하고 간증에 힘쓰고 낮은 곳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관심을 갖아서 이 열매를 많이 맺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우리를 감리교인으로, 웨슬리안으로 부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