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를 보는 믿음
한 해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감사하게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견디기 어렵던 순간들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음을 생각해 보며 조용히 한 해의 장을 접어 봅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한 해 동안 일어난 모든 일이 결국 나를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운 섭리와 배려였음이 가슴 깊이 느껴지면서, 왜 그때는 하나님의 그 자비로운 섭리를 꿰뚫어볼 수 있는 지혜가 부족했을까 슬며시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한 해를 보내는 이 마감의 계절에 선 우리에게는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일 너머 그 이상의 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계시의 눈, 계시를 보는 믿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계시는 보는 것입니다. 계시를 보는 믿음이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떤 것을 보는 믿음입니다. 암담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 소망과 희망을 보는 것이며, 고난과 시련 속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맛보는 것이며, 실망스럽고 의심스러운 인간관계에서 사랑과 신뢰로 회복된 아름다운 관계를 보는 믿음입니다. 현재는 없지만, 미래에 이루어질 일들을 보고 기뻐하는 것이 계시를 보는 믿음입니다.
에스겔의 계시
성경에 기록된 계시들은 대부분 가장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들입니다. 가장 암담할 때야말로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계시가 필요하고, 가장 어두울 때야말로 그 너머를 볼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선지자 에스겔이 계시를 본 때도, 그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고생하고 있던 암담한 때였습니다.
하루는 에스겔이 슬픔과 절망에 싸여 그발 강가에 나와 있었습니다. 포로로 끌려와 비참하게 사는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을 보며 그는 낙심에 싸여 하나님께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빛나고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보좌가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 위에 하나님께서 좌정해 계셨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번쩍이는 구름 가운데 네 생물이 있고 그 곁에 바퀴가 있는데,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았고,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는 것이었습니다(겔 1:16,19).
바퀴 안의 바퀴
에스겔이 본 계시 속의 바퀴는 영적으로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요? 우리의 삶은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같이 복잡하고 엉망으로 뒤엉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나에게는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절망적이고 어려운 일들이 일어나고, 우리 자신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머리를 들고 일어납니다.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닥칠 때, 우리는 그 암담한 시기를 지나면서 의심에 빠지게 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도하고 계시는 걸까?
에스겔의 계시에서 하나님께서는 바퀴 속에 그분의 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유한한 인간의 눈에는 매우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님의 손은 완전한 질서 속에 모든 것을 운행하고 계십니다. 만일 우리의 눈이 열릴 수만 있다면, 인간의 영향력보다 더 높은 힘이 역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바퀴 안에 바퀴가 일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손이 바퀴들 위에 놓여져 있고, 생은 완전한 조화 가운데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는 믿음, 곧 우리의 생애를 인도하는 손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뿐 아니라, 최선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믿는 믿음이 계시를 보는 믿음입니다.
마른 뼈의 환상
한번은 또 다른 계시 가운데서 에스겔 선지자가 어떤 큰 계곡 속에 있게 되었는데, 그 골짜기는 온통 죽은 사람의 마른 뼈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당황해 하는 그의 귓가에 들려오는 음성은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라는 여호와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겔 37:5,6) 에스겔이 이 계시를 보았을 때, 그는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에 몹시 낙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른 뼈와 같이 도무지 희망이 없어 보였지요. 하나님의 훈련 도구인 바벨론에게 잡혀와서도 계속 하나님께 반역하는 형편없는 그들의 영적 모습을 보고 에스겔은 깊은 낙담에 빠지려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선지자는 그 뼈들에 생명이 생길 가능성을 전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기 시작하였고, 그러자 흩어진 뼈들이 움직이며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서로 연락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이렇게 해서 생긴 몸에 여호와께서 생기를 불어 넣으시자 그들은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마른 뼈에 생기를
이 마른 뼈들은 우리 자신들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자신을 볼 때 우리는 마른 뼈처럼 보잘것없습니다. 머리로 알기는 알아도 영적으로 행할 힘과 능력이 없는, 즉 영적 근육과 힘줄이 없는 마른 뼈와 같습니다.
그뿐이 아니지요. 주위 형제들의 모습을 바라볼 때, 어쩌면 우리는 골짜기의 마른 뼈처럼 형편없는 모습만을 볼지 모릅니다. 서로에게 실망하고, 서로 상처를 주는 그런 어그러진 관계들만 볼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우리는 에스겔처럼 불신 섞인 대답을 하지요! 하나님, 부족한 저를 보세요! 그리고 자꾸 쓰러져서 실망을 안겨 주는 저 형제를 보세요! 믿음 없이 실망에 잠겨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정신이 번쩍 나는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너희에게 생기를 주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계시를 보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비록 보잘것없고 부족한 나 자신이지만, 현재는 문제를 일으키고 상처를 주는 행동과 말만 하는 것 같은 형제들로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생기로 역사하실 때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은 얼마나 인간을 변화시키기에 넉넉한지 믿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계시를 보아야 합니다. 마른 뼈처럼만 보이는 내 모습에서, 형제들의 모습에서, 영적인 힘줄이 붙고 근육과 가죽이 붙은 모습, 그리고 영적인 생기가 철철 넘치는 변화된 미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계시를 보는 사람들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이제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일들이 보이고,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이해되고, 깨달을 수 없었던 일들이 깨달아지며, 이렇게 훌쩍 우리는 세모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야, 비로소 우리의 삶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를 깨닫는 자신을 어김없이 발견합니다. 계시를 보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계시를 보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보이지 않아도 보는 것처럼, 지금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이루어진 것처럼, 계시를 보듯이 미리 꿰뚫어 보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뛰어넘어 미래에 이루어질 기적에 대한 계시를 볼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이 계시를 보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새로 시작되는 해에는 그렇게 어려워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미리 계시의 눈을 빌려 미래에 기적을 이루실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었으면 합니다.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것 같은 우리의 삶의 바퀴를 능력 있는 손에 맡기며 기쁘게 살아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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