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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부 실존의 의사소통 양태 중의 하나가 사랑의 투쟁이다.
영원한 인간사랑 ・ 2022. 12. 2. 0:24
28부
실존의 의사소통 양태 중의 하나가 사랑의 투쟁이다.
1. 사람들이 다 다르듯 그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만큼 사랑의 양상도 다양하다.
사람들은 각자의 관점에서 사랑을 이해하기 때문에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이 다 다르듯 그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만큼 그 양상도 다양하다.
육체적 정열을 추구하는 에로스적인 사랑
정신적인 교감을 중요시하는 플라토닉 사랑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을 베푸는 아가페적인 사랑
형제애를 뜻하는 필로스
사랑에 집착하게 되는 마니아
즐거움을 추구하는 가벼운 루두스적인 사랑
사람들이 다 다르듯 사랑하는 방법도 다르다.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한순간 불타오르는 뜨거운 감정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도 또 주고 싶은 것
그 사람을 가지고 싶은 동물의 성욕을 인간이 합리화하는 것
2. 누구를 사랑한다 함은 그 사람 속에 있는 미와 선의 진수를 알아보는 것이다.
사랑은 누구 한사람이 정의를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이 아닌 것이다.
사랑은 가치관과 감정에서 나오는 것인데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아마도 사람의 수만큼 사랑이란 정의가 내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장 간략하게 사랑의 의미를 요약하였다.
사전적 정의 :
1. 아끼고 위하는 따뜻한 인정을 베푸는 일 또는 그 마음
2. 마음에 드는 이성을 몹시 따르고 그리워하는 일 또는 그러한 마음
철학자 플라톤 :
누구를 사랑한다 함은 그 사람 속에 있는 미와 선의 진수를 알아보는 것.
카펠라누스 :
사랑이란 이성의 미를 보거나 너무 생각한 나머지 생겨나는 일종의 타고난 고통.
Bierce :
사랑은 결혼이나 이러한 병이 발병한 상황에서 그 환자를 제거함으로써 치유될 수 있는 순간적으로 미친 행동이다.
에릭 프롬 :
사랑에 대하여 정의한 것은 더 구체적이다.
첫째 사랑이란 상대방의 생활과 성장에 관한 적극적인 관심이며
둘째 상대방으로부터 표현되거나 표현되지 않은 욕구에 대한 자발적인 반응이며
셋째 사랑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며 그의 개성을 존중하는 태도이며
넷째 사랑은 마음의 교감을 통하여 상대방이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상태이다.
3. 너에게 정직할 것을 요구하는 친구들을 신뢰하지 마라.
이방인(L'Étranger)의 작사 카뮈(Camu)는 소설과 좌파적 현실 참여 활동으로 유명하다.
1957년에 카뮈는 44세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 후 3년이 채 안 되어서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알자스 태생의 궁핍한 노동자인 아버지와 스페인계 후손인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카뮈가 태어나서 돌도 되기 전에, 아버지는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벌어진 마른 전투에서 전사했다.
과부가 된 어머니는 두 아들을 데리고 알제리의 노동 계급이 모여 사는 빈민굴로 이사하여 외할머니와 불구자인 외삼촌과 함께 방이 2개뿐인 아파트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가정부로 일했다.
내 뒤에서 걷지 마라. 내가 이끌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의 앞에서 걷지 마라. 내가 뒤따라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다만 나의 옆에서 걸으면서 친구가 되어다오.(카뮈)
Don't walk behind me; I may not lead. Don't walk in front of me;
I may not follow. Just walk beside me and be my friend.
아름다움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우리를 절망에 빠지게 만든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항상 계속되기를 바라는 영원을 찰나의 순간에 보여준다.
Beauty is unbearable, drives us to despair, offering us for a minute the glimpse of an eternity that we should like to stretch out over the whole of time.(카뮈)
카뮈가 너무 아름다워서 미워했던 여인의 그림을 보시라.
아름다운 그대의 여인, 존중하는 여인, 보고 또 보고 싶은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물동이처럼 보일 것이다.(Genesis)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 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로 내려가서 물을 그 물동이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이런 관찰이 무엇 하는데 소용되는가?
카뮈의 말에 따르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너에게 정직할 것을 요구하는 친구들을 신뢰하지 마라. 그들이 사실 원하는 것은 그들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해달라는 것뿐이다.』
4. 실존의 의사소통 양태 중의 하나가 사랑의 투쟁이다.
야스퍼스는 인간이 한계상황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가운데서도 초월을 향해 마음을 열고 나아감으로써 진정한 자기 존재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스퍼스의 실존의 과제는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나)존재란 무엇인가?
인간(나)에게 왜 한계상황이 존재하는가?
인간(나)은 어떻게 한계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가?
실존은 우리(나)에게 무엇인가?
야스퍼스가 말하는 실존은 혼자서는 자기실현에 도달하지 못하고 타자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인간의 의사소통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실존의 의사소통 양태 중의 하나가 사랑의 투쟁(Liebender Kampf)이다.
나이 40에 이르면 초노인데 어떻게 인간의 한계상황을 극복하겠는가?
인간은 세계 안에서 주관일 뿐만 아니라 아울러 객관적 존재이기도 하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주관으로서의 인간은 실존으로서, 현존재로서, 의식일반으로서, 정신으로서, 또한 현존으로서의 포괄자(Umgreifende)의 양태로 존재한다.
다.
『초월은 포괄자의 포괄자로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고 부른다.』
5.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아야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면 동물들이 사람에게 의존하게 되고,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사람이나 주택, 차량 등을 공격할 수 있다.
당신은 점심을 먹으면서 공원 의자에 앉아 있다고 가정해보자.
근처에서 당신의 자녀들은 거위들에게 감자 칩을 먹여주고 있다. 아이들은 거위들이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즐거워한다. 그렇지만, 그들은 거위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아야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reasons why you should not feed wildlife.)
동물들이 사람들에게 먹이를 얻어먹는 것에 대해 의존성이 생길 수 있다.
그들은 제공하는 먹이를 얻기 위해 자동차, 주택,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야생동물들이 사람들로부터 먹이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은 종종 그것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거위들은 때로 아이들을 쫓아다니면서 공격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다람쥐들은 사람들의 바지나 다리에 기어 올라가 피부를 할퀴기도 한다.
그리고 곰들이 쉬운 먹이를 찾다가 야영 장소를 습격하거나 심지어 자동차의 유리를 깨뜨릴 수도 있다.
따라서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6. 실존의 의사소통과 적대적 투쟁을 사랑의 투쟁으로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인간에게 부여되어 있다.
야스퍼스는 한계상황에서의 좌절을 직시함으로써 『초월자의 세계』로 나가려는 태도이다.
야스퍼스는 이 세계에는 결코 합리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며 『초월자』를 강력히 요청한다.
칸트와 헤겔에 의하면 이성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더라도 이성은 진보를 통해 완전에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인간은 한계상황에서 비롯된 좌절을 통해서 비로서 이성의 진정한 한계를 자각하며, 아울러 존재 실현의 길을 열 수 있다.』
야스퍼스는 인간이 한계상황 앞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 가운데서도 초월을 향해 마음을 열고 나아감으로써 진정한 자기 존재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존의 사귐형태(의사소통)와 적대적 투쟁을 사랑의 투쟁으로 바꿀 수 있는 자유가 인간에게 부여되어 있다.
그는 실존에 대한 탐구를 사회변혁과 인간 구원의 역동적인 에너지로 승화하려 했음을 확신하게 된다.
7. 그렇게 생각해도 좋은가. 화살은 날고 있는 모든 순간에 정지해 있는 것이다.
제논은 물체가 점의 모양이라는 생각 또는 『물체가 점을 위치로 가진 단위』로 생각하면 어떤 모순이 생기는 가를 보여주고 있다.
심푸리시우스(Simplicius)가 기록한 내용을 타네리(Tannery)가 대화형식으로 재구성해서 보여주고 있다.
피타고라스 : 유한한 물체는 계속해서 나누어 가면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부분」에 도달한다.
물체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부분」의 합이다.
제논 : 물체를 계속해서 반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고 하자.
그러면 분명히 그 크기는 줄어들 것이다.
그 마지막 부분의 크기는 0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각각의 크기가 0인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는 것의 합은 역시 0이다. 따라서 물체의 크기는 없다.
피타고라스 : 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부분」은 크기를 가지면 안 되는가?
제논 : 만약 그것이 크기를 가진다면, 그 부분들은 무한히 많으므로 모두 다 합한 물체는 무한히 무거워지게 된다. 이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유한한 양은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부분』의 합이라고 간주할 수 있다.
점이 위치를 가진 단위로 파악하면 제논의 역리는 더욱 힘을 발휘하게 된다.
제논 : 공간이 이분법을 무한히 시행한 결과로 확인되듯이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부분』으로 이루어 졌다면, 그것의 개수는 무한함으로, 그것들은 유한한 시간 내에 모두 지나칠 수 없다.
피타고라스 :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했듯이, 그러한 이분법은 실제로 무한히 시행되는 것이 아니라 잠정적으로만 무한한 것이다. 따라서 유한한 시간에 통과할 수 있다.
제논 : 「아킬레스」에서는 시간 또한 공간과 마찬가지로 무한히 나누어지고 있지 않는가?
피타고라스 : 그럼, 많이 양보해서 유한의 시간으로 궁국적인(무한의) 조각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하자. 순간의 합이 없는가? 각 순간을 각각의 연속적인 위치에 대응시키 수는 없는가?
제논 : 「화살」의 경우를 생각하자. 화살은 각 순간에 한 위치에 있다. 그런데 순간에 화살은 정지되어 있다. 그러므로 화살은 날고 있는 모든 순간에 정지해 있는 것이다.
피타고라스 : 각 순간에 위치가 대응되는 것은 사실 각 순간이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이동하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다.
8. 과연 그럴까? 제논의 역설은 혼란스럽고 궤변론자들에 의해 떠돌던 과학의 폐품이다.
추상미술은 완전히 혼란스럽고 방종한 자들에 의해 팔리는 재능 없는 제품이다.(카뮈)
Abstract Art: A product of the untalented, sold by the unprincipled to the utterly bewildered.
제논의 역설은 혼란스럽고 궤변론자들에 의해 떠돌던 과학의 폐품이다.
과연 그럴까?
제논의 역설로 너무나 잘 알려진 제논 자신의 저작은 전해 내려오지 않고 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그 내용이 일부만 알려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주 간결한 형태로 제논의 운동에 관한 4가지 논의를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을 뿐이다.
Bernet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논의 운동원리에 대하여 더 자세히 풀어쓰고 있다.
1. 이분법
당신은 무한개의 점을 유한의 시간으로 나갈 수는 없다.
전체를 다 가기 전에 그것의 반을 가여하고, 또 나머지 반을 가기 위해서는 또 나머지 반을 가야다. 아무리 이 과정 계속하여도 반이 남기 때문이다.
2. 아킬레스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따라 잡을 수 없다.
거북이가 간 거리 만큼 아킬레스가 갔을 때는 이미 거북이는 앞서 가 있고, 그 만큼 따라 잡으면 거북이는 또 조금 더 나이기 있는 과정이 무수히 반복된다.
3. 화살
화살은 날아가지 않는다.
한 순간에 화살은 한 지점에 위치하는 데, 그 때 화살은 정지해 있다. 따라서 모든 점에서 정지해 있으므로 화살은 날아갈 수 없다.
9. 인간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며, 참으로 쓰라린 일이다.
이방인의 작가로서 50이전에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노벨상 수상자의 일갈이니 멋진 말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아,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은 그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 슬프도다.
Alas, after a certain age every man is responsible for his face.
프랑스 작가 카뮈는 우리들 모두에게 힘든 말을 던지고 있다.
인간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며, 참으로 쓰라린 일이다!
How hard, how bitter it is to become a man!
당연한 가르침이지만 새삼 필자의 아픈 가슴을 더 아프게 하고 있지 않은가?
마지막 심판을 기다리지 마라. 마지막 심판은 언제나 항상 일어나고 있다.
Don't wait for the last judgment - it takes place every day.
10. 한계상황은 누구나 그 앞에 섰을 때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벽 같은 것이다.
저술가이며 정신과 의사였던 칼 야스퍼스(1883-1969)는 인간에 따라다니는 「한계상황(Grenzsituation)』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독일의 철학자였다.
그는 자기 아내가 유태계 출신이라는 이유로 헤어지라는 나치정권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직을 박탈당한다.
반면 자신의 친구 하이데거는 나치에 적극 협력하며 프라이부르크대학의 총장으로까지 출세하는 것을 보아야했다.
학자의 절개 혹은 지식인의 변절이라고 쉽게 속단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상황』이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실존의 과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야스퍼스의 실존의 과제는 다음처럼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존재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왜 한계상황이 존재하는가?
인간은 어떻게 한계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가?
실존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한계상황(Grenzsituation)이란?
한계상황은 누구나 그 앞에 섰을 때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벽 같은 것이다.
우리가 매일의 생활세계에서 겪는 꿈과 젊음의 좌절, 질병, 타인으로부터의 거절 같은 것 등도 그 범주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대체적으로 이러한 벽으로부터 도피하려 하거나 현실에 눈을 감아버림으로써 자기 존재가 상실되는 길로 빠져든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이 그와 같은 한계상황 가운데서도 진지하게 그 과정을 성찰하면
『하나뿐이며 한 번 뿐인 자기 존재의 자각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