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시조 74/75 – 우후요(雨後謠)
윤선도(尹善道, 1587~1671) 지음
궂은비 개단 말가 흐리던 구름 걷단 말가
앞 내의 깊은 소(沼)에 다 맑았다 하나신다
진실(眞實)로 맑지 옫 맑아시면 갓끈 씻어 오리라
궂은비 - 날씨가 어두침침하게 흐리면서 오랫동안 내리는 비.
개단 말가 – 개었다는 말인가. 개었다더냐.
걷단 말가 – 걷혔다는 말인가. 걷혔다더냐.
내 – 시내. 시냇물.
소(沼) - 깊은 웅덩이. 늪.
하나신다 – 하는 것인가. 하는가.
맑지 옫 맑아시면 – 맑디맑았으면.
종장 끝구 ‘갓끈 씻어 오리라’에 방점(傍點)을 찍습니다. 우후(雨後)라, 작은 시냇물이라도 금방 맑아지기야 하겠습니까만, 이웃들의 전하는 말로 상황이 구체화 되고 있습니다. 궂은비 멈추고, 구름이 걷히고, 앞 내와 깊은 소가 맑아지고. 아무튼 물가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습니다. 그래서 명분을 삼은 게 갓끈을 씻는다는 것입니다. 선비의 의관(衣冠)정재(正齋)의 꽃인 갓, 그 끈에는 신분을 표시하는 금관자(金貫子)도 있겠고. 손수 씻지 않을 수도 있겠건만 비 온 후 깨끗해진 풍경을 보고 싶어서 직접 씻어 오겠노라 노래했습니다.
갓끈에 대한 고전번역원 각주(脚注)를 옮겨 옵니다.
초(楚)나라 굴원(屈原)이 조정에서 쫓겨나 강호에 있을 적에 어부를 만나 대화를 나눴는데, 어부가 세상과 갈등을 빚지 말고 어울려 살라고 충고를 했는데도 굴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어부가 빙긋이 웃고는 뱃전을 두드리며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으리라.〔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 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라고 했다는 내용이 《초사(楚辭)》 〈어부사(漁父辭)〉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