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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공후사(先公後私)
사(私)보다 공(公)을 앞세움이란 뜻으로, 사사로운 일이나 이익보다 공익을 앞세움을 이르는 말이다.
先 : 먼저 선(儿/4)
公 : 공평할 공(八/2)
後 : 뒤 후(彳/6)
私 : 사사 사(禾/2)
(유의어)
지공무사(至公無私)
공사(公事)를 먼저 하고(先公) 개인적인 일을 뒤에 한다(後私)는 당연한 이 성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고위 관료나 정치인들이다.
이 정신에 투철한 공직자들이 대부분이라 믿지만 국민들은 이것을 강조하는 사람일수록 구두선(口頭禪)이란 것을 안다.
지위고하 막론하고 수시로 튀어 나오는 부정비리, 자기들만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이익 다툼 등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쉬운 글자로 이루어진 이 성어도 유래가 깊다. 기원전 403년~221년, 전국시대(戰國時代) 말기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 시절 인상여(藺相如)라는 충신이 있었다.
서로를 위해서라면 목이 잘린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가까운 친구 문경지교(刎頸之交) 고사의 주인공이다. 인상여는 왕의 신임을 얻기 전까지는 한 대신의 식객에 지나지 않았다.
강국 진(秦)나라가 탐을 내는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온전히 지킨데다가 민지(澠池)라는 곳에서 진과 조 두 왕의 회동이 있었을 때 수치를 당할 뻔한 문왕을 지켜낸 후로 상경(上卿)이란 지위를 얻게 되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나라를 위해 피땀을 흘린 명장 염파(廉頗)는 세치 혀로 벼락출세하는 인상여가 아니꼬웠다. 그래서 염파는 만나면 치욕을 안겨 주리라 공언했고 전해들은 인상여는 피해 다녔다.
측근들이 불평을 늘어놓자 말했다. ‘내가 진왕도 맞섰는데 염장군을 두려워 하겠는가? 우리 두 사람이 있어 진이 넘보지 못한다.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以先國家之急而 後私讎也/ 이선국가지급이 후사수야)에 피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염파는 부끄러워 죄를 청하며 깊이 사죄했고 깊은 우정은 후세까지 기리게 됐다.
이렇듯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지켜 아름다운 결과를 가져온 고사에 비해 오늘날에는 더 강조하여 ‘사(私)를 죽이고 공(公)을 받든다’며 멸사봉공(滅私奉公)까지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지만 믿음을 잃어 사익을 치장하는 말이 돼 버렸다.
선공후사(先公後私)
이 성어는 사(私)보다 공(公)을 앞세움이란 뜻으로, 어떤 일을 할때 사적인 욕심이나 편리함을 생각하기보다는 공적인 일을 우선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하기 쉬운 말로 선공후사(先公後私)라 해서 여러 사람을 위하는 일을 먼저 하고 내 일은 다음으로 미루어야 한다고들 말은 하지만, 인간처럼 이기적인 사회에서 선공후사란 말이 쉽지 실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나온 과거 역사를 돌아볼 때 우리가 이만큼이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대의(大義)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인물들이 있었던 덕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에 전한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이야기다. 조(趙)나라에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환관 우두머리인 무현(繆賢)의 사인(舍人)이었다. 이때 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이 화씨벽(和氏璧)을 손에 넣었는데, 진(秦)나라 소공(昭公)이 이를 알고 진나라 성 열다섯 개와 바꾸자고 요청했다.
화씨벽을 주자니 진나라 성을 받지 못할 것 같고, 화씨벽을 주지 않자니 진나라가 쳐 들어올까 걱정이었는데 인상여가 이를 해결하였으며, 진나라 소왕(素王)과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과의 회담(會談)에서도 진(秦)나라 소왕(素王)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었다.
이에 귀국하여 혜문왕이 인상여를 상경(上卿)을 삼으니 지위가 염파(廉頗)보다 높았다.
그러자 염파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나라 장군이 되어 성의 요새나 들에서 적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인상여는 겨우 혀와 입만을 놀렸을 뿐인데 지위가 나 보다 높다. 또 인상여는 본래 미천한 출신이니, 나는 부끄워서 차마 그의 밑에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렇게 다짐했다. “내가 인상여를 만나면 반드시 모욕을 주리라.”
인상여가 그 소릴 듣고 염파 장군과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조회 때 마다 늘 병을 핑계 삼아 염파와 더불어 서열을 다투지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출하다가 염파를 바라보면 즉시 피하니 인상여의 사인들이 다 그러한 인상여를 부끄럽게 여겼다.
그리고 인상여에게 항의하며 떠나고자 한다고 하자 인상여는 그들을 말리며 말했다. “그대들은 염 장군과 진나라 왕 가운데 누가 더 무섭소?” “염 장군이 진나라 왕에 못 미칩니다.”
인상여가 말했다. “저 진나라 왕의 위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궁정에서 꾸짖고 그 신하들을 부그럽게 만들었소. 내가 아무리 어리석기로 염 장군을 겁내겠소?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강한 진나라가 감히 조나라를 치지 못하는 까닭은 나와 염파 두 사람이 있기 때문이오. 만일 지금 호랑이 두 마리가 어울려 싸우면 결국 둘 다 살지 못할 것이오. 내가 염파장군을 피하는 까닭은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사로운 원망을 뒤로하기(以先國家之急而後私讎也) 때문이오.”
염파는 이 말을 듣고 웃옷을 벗고 가시 채찍을 등에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와 사과하고 서로 화해하여 죽음을 같이 하기로 약속한 벗(刎頸之交)의 교유관계를 맺었다.
맹자(孟子)는 인의(仁義)에 바탕을 둔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경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백성들에게는 가족 봉양에 필요한 일정한 전지(田地)를 배분하고, 관리에게는 각자의 봉록에 합당한 전지를 배분한 뒤, 일정한 세금을 징수하여 국고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이때 맹자는 정전제(井田制)를 이상적 토지제도로 소개하였다. 사방 1리(里)의 토지 즉 9백묘(畝)를 우물 정(井)자로 아홉 등분하여 여덟 집에서 백묘(百畝)를 사전(私田)으로 받아서 경작하고, 가운데 땅은 공전(公田)으로 공동 경작하여 조세로 바치게 했던 제도이다.
이 때 여덟 집에서 모두 함께 공전을 가꾸어, 공전의 일을 끝마친 다음에 감히 사전의 일을 다스린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것이 바로 선공후사(先公後私)이다.
다시 공(公)을 군자라고 하고, 사(私)를 야인이라고 설명하면서, 선공후사(先公後私)는 군자와 야인을 차별하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친목계든 어떤 모임이든 나라든지 여러 사람을 이끌어 나가려면 선공후사(先公後私)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아야 한다.
공변될 공(公)은 물건을 둘로 나누는 모양의 팔(八) 밑에 물건을 팔로 감싸 안는 모양을 그린 내 것 사(厶)가 붙은 것으로서 ‘내 것을 나누다’라는 의미, 즉 타인을 위해 내 것을 나누고 희생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벼 화(禾)에 사(厶)가 붙은 사사로울 사(私)는 볏단을 팔로 감싸 안는 것 즉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을 말한다.
선공후사(先公後私)를 실천하려면 욕을 먹고 손해를 보는 것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우리가 무슨 일을 당할 때마다 누구의 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어느 쪽이 남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는 일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가짐만이 선공후사(先公後私)의 교훈이 과연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선공후사(先公後私)
공적인 일을 우선하고 사적인 일은 나중으로 돌린다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에 염파(廉頗)라는 유명한 장수가 있었다. 큰 전공(戰功)을 세워 상경(上卿)의 지위에 올라 있었다.
그때 인상여(藺相如)라는 사람이 있었다. 당시 조나라에는 화씨벽(和氏璧)이라는 천하에 제일가는 구슬이 있었는데, 강국인 진(秦)나라에서 15개의 성과 바꾸자고 제안해 왔다. 조나라 왕은 진나라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진나라가 구슬만 차지하고 성을 안 주면 구슬만 빼앗기게 되어 입장이 곤란했다.
이때 인상여가 자진해서 구슬을 가지고 진나라에 가서, 진나라왕을 말로 꺾고 구슬을 빼앗기지 않고 돌아왔다. 인상여가 돌아오자 조나라 왕은 너무나 고마워 상경의 벼슬을 주었는데 서열이 염파보다 위였다.
염파는 화가 나서 단단히 별렀다. "나는 목숨 걸고 전쟁터에서 공을 세워 상경이 되었지만 저 인상여라는 자는 말만 잘하는 것으로 나보다 높은 벼슬을 얻다니? 가문도 형편 없어. 그 자를 만나면 여러 사람들이 보는 데서 심하게 욕보여야겠다."
그 이후 인상여는 염파와 같은 자리에 서게 되는 조정회의에도 아프다고 핑계 대고 나가지 않았다. 길에서 염파가 보이면 멀리서 미리 피해 다녔다. 인상여를 모시는 측근들이 "우리는 위대한 분이라고 모시려고 왔는데 이렇게 염파를 겁내는 졸장부인 줄 몰랐습니다. 창피해서 떠나야겠습니다."
인상여는 조용히 말했다. "내가 강한 진나라 왕도 전혀 겁을 내지 않고 꾸짖어 구슬을 지켜 왔는데 염파 정도를 겁내겠느냐? 지금 강한 진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략하지 않는 것은 염 장군과 내가 있기 때문이야. 우리 둘이 서로 싸우면 한 사람은 죽어야 해. 그 틈에 진나라가 당장 쳐들어 올걸. 나라의 급한 일을 먼저 하고 개인적인 원한은 뒤로 돌리려는 거야."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가시나무로 매를 만들어 짊어지고 인상여의 집에 와서 사죄하였다. "비천한 제가 장군님의 관대함이 이 정도인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 이후 관계가 좋아져 생사를 같이할 정도가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제 어떤 장소에서 어떤 일을 하거나 공정하게 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그러나 입으로는 공정을 외치면서도, 실제 일에 부딪쳐서는 공정하기가 쉽지 않다. 평소에는 공정하게 하다가도 결정적인 일에 이르러서는 사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별 영향이 없는 사람은 그래도 좀 낫지만, 남에게 영향을 주는 지도층 인사는 공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요즈음 정치인들에게 공정함을 기대한다는 것은 너무나 물정 모르는 생각 같다. 최근 대통령 측근이고, 당선이 확실한 장제원 의원이 제일 먼저 불출마 선언을 했다. 뒤이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물러났다.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상한 시각에서 비판하는 사람이 있지만, 당을 살리려는 공적인 일을 먼저 생각하여 자기 개인의 욕심을 버리는 그 정신을 높이 쳐 주어야 하겠다.
▶️ 先(먼저 선)은 ❶회의문자로 之(지; 가다)와 어진사람인발(儿; 사람의 다리 모양)部의 합자(合字)이다. 어진사람인발(儿)部는 본디 人(인)과 같은 글자이지만 이 모양이 아래에 붙는 글자는 그 위에 쓰는 자형(字形)이 나타내는 말의 기능을 강조하여, 앞으로 나아가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先자는 ‘먼저’나 ‘미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先자는 牛(소 우)자와 儿(어진사람 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先자의 갑골문을 보면 본래는 牛자가 아닌 止(발 지)자와 儿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사람보다 발이 앞서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先자는 ‘먼저’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소전에서는 止자가 牛자로 잘 못 옮겨졌다. 소전에서의 牛자와 止자가 서로 비슷하여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先(선)은 (1)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이어 앞선 먼저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이어 돌아 간의 뜻을 나타내는 말 (3)바닥이나 장기, 고누, 윷놀이 따위에서 맨 처음에 상대편보다 먼저 두는 일, 또는 그 사람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먼저, 미리 ②옛날, 이전 ③앞, 처음, 첫째 ④돌아가신 이, 죽은 아버지 ⑤선구(先驅), 앞선 사람 ⑥조상(祖上) ⑦형수(兄嫂) ⑧앞서다, 뛰어넘다, 이끌다 ⑨나아가다, 앞으로 가다 ⑩높이다, 중(重)히 여기다, 뛰어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앞 전(前)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뒤 후(後)이다. 용례로는 할아버지 이상의 조상을 선조(先祖), 학교나 직장을 먼저 거친 사람 또는 나이나 학식 등이 자기보다 많거나 나은 사람을 선배(先輩), 남의 앞에 서서 인도함 또는 앞장서서 안내함을 선도(先導),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가 죽은 열사를 선열(先烈), 맨 앞이나 첫머리를 선두(先頭), 먼저와 나중을 선후(先後),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을 선산(先山), 다른 문제보다 먼저 해결함 또는 결정함을 선결(先決), 맨 먼저 주창함을 선창(先唱), 선수를 써서 자기에게 이롭도록 먼저 상대방의 행동을 견제함을 선제(先制), 다른 일에 앞서 행함 또는 앞서 행한 행위를 선행(先行), 어떤 임무나 직무 등을 먼저 맡음 또는 그 사람을 선임(先任), 먼저 약속함 또는 그 약속을 선약(先約), 남보다 앞서서 먼저 차지함을 선점(先占), 맨 앞장을 선봉(先鋒), 남보다 앞서 길을 떠나감을 선발(先發), 차례에서의 먼저를 선차(先次), 세상 물정에 대하여 남보다 먼저 깨달음을 선각(先覺), 무엇보다도 먼저를 우선(于先), 다른 것 보다 앞섬을 우선(優先), 남보다 앞서 함을 솔선(率先), 앞장서서 인도함을 수선(帥先), 앞서기를 다툼을 쟁선(爭先), 선조의 덕업을 받듦을 봉선(奉先),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두는 바둑을 상선(相先), 실력이 비금비금한 사람끼리 두는 바둑을 호선(互先), 남보다 앞서 일을 도모하면 능히 남을 누를 수 있다는 뜻으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남보다 앞서 하면 유리함을 이르는 말을 선즉제인(先則制人), 사보다 공을 앞세움이란 뜻으로 사사로운 일이나 이익보다 공익을 앞세움을 일컫는 말을 선공후사(先公後私), 소문을 미리 퍼뜨려 남의 기세를 꺾음 또는 먼저 큰소리를 질러 남의 기세를 꺾음을 일컫는 말을 선성탈인(先聲奪人), 근심할 일은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즐길 일은 남보다 나중에 즐긴다는 뜻으로 지사志士나 인인仁人의 마음씨를 일컫는 말을 선우후락(先憂後樂),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라는 뜻으로 장래를 미리 예측하는 날카로운 견식을 두고 이르는 말을 선견지명(先見之明), 먼저 들은 이야기에 따른 고정관념으로 새로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을 선입지어(先入之語), 먼저 예의를 배우고 나중에 학문을 배우라는 말을 선례후학(先禮後學), 먼저 의를 따르고 후에 이익을 생각한다는 말을 선의후리(先義後利), 다른 사람의 일보다 자기의 일에 우선 성실해야 한다는 말을 선기후인(先己後人), 먼저 앓아 본 사람이 의원이라는 뜻으로 경험 있는 사람이 남을 인도할 수 있다는 말을 선병자의(先病者醫), 선인의 행위를 들어 후학을 가르침을 일컫는 말을 선행후교(先行後敎), 꽃이 먼저 피고 나중에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딸을 먼저 낳은 다음에 아들을 낳음을 이르는 말을 선화후과(先花後果), 먼저 곽외郭隗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말한 사람부터 시작하라는 말을 선시어외(先始於隗) 등에 쓰인다.
▶️ 公(공평할 공)은 ❶회의문자로 마늘 모양의 사사로운, 나(我)의 뜻인 마늘 모(厶)部 일과 서로 등지고(八) 있다는 뜻이 합(合)하여 그 반대의 의미로 공변되다를 뜻한다. 公(공)의 옛 모양은 무엇인가 닫힌 것을 여는 모양인 듯하다. 옛날의 쓰임새는 신을 모시고 일족(一族)의 사람이 모이는 광장을 나타내고 그후부터 거기에 모셔지는 사람, 일족의 長(장), 높은 사람이란 뜻이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公자는 ‘공평하다’나 ‘공변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공변되다’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公자는 八(여덟 팔)자와 厶(사사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厶자는 팔을 안으로 굽힌 모습을 그린 것으로 ‘사사롭다’라는 뜻이 있지만, 갑골문에서는 八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사실 갑골문에 쓰인 口자는 ‘입’이 아니라 단순히 어떠한 사물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公자는 사물을 정확히 나눈다는 뜻이었다. 소전에서는 口자가 厶자로 바뀌게 되면서 치우침 없이 공정하게 나눈다는 뜻을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公(공)은 (1)여러 사람을 위하거나, 여러 사람에게 관계되는 국가나 사회의 일 (2)공작(公爵) (3)남자(男子)의 성이나 시호(諡號), 아호(雅號) 또는 관작(官爵) 뒤에 붙이어 경의를 나타내는 말 (4)공작(公爵)의 작위(爵位)를 받은 사람의 성이나 이름 뒤에 붙이어 부르는 말 (5)공적(公的)인의 뜻을 나타내는 말 (6)2인칭(二人稱) 남자(男子)에 대해서 당신, 그대의 뜻으로 쓰는 높임말 (7)3인칭(三人稱) 남자(男子)에 대해서 당신의 뜻으로 쓰는 높임말 (8)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공평(公平)하다 ②공변되다(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다) ③공평무사(公平無私)하다 ④숨김없이 드러내 놓다 ⑤함께하다 ⑥공적(公的)인 것 ⑦상대를 높이는 말 ⑧벼슬(관아에 나가서 나랏일을 맡아 다스리는 자리. 또는 그런 일) ⑨존칭(尊稱) ⑩귀인(貴人) ⑪제후(諸侯) ⑫관청(官廳), 관아(官衙) ⑬널리 ⑭여럿,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사사 사(私)이다. 용례로는 여러 사람에게 개방함을 공개(公開), 국가 또는 지방공공단체의 사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공무원(公務員), 여러 사람이 모여 힘을 함께 함을 공공(公共), 세상이 다 알도록 뚜렷하고 떳떳한 방식을 공식(公式), 사회의 일반 사람들이 추천함을 공천(公薦), 공중 앞에서 약속함을 공약(公約), 일반에게 널리 알림을 공포(公布), 여러 사람들의 휴양을 위하여 베풀어 놓은 큰 정원을 공원(公園), 공평하고 올바름을 공정(公正), 공직에 있는 사람을 공직자(公職者), 어느 한 쪽에 기울이지 않고 공정함을 공평(公平), 국가 기관이나 공공단체가 설립하여 경영하는 기업을 공기업(公企業), 여러 사람 앞에서 연극 등을 연출하여 공개함을 공연(公演), 마음이 공평하고 사심이 없으며 밝고 큼을 공명정대(公明正大),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아 공평하고 사사로움이 없음을 공평무사(公平無私), 공(公)은 사(私)를 이기지 못한다는 공불승사(公不勝私) 등에 쓰인다.
▶️ 後(뒤 후/임금 후)는 ❶회의문자로 后(후)는 간자(簡字)이다. 발걸음(彳; 걷다, 자축거리다)을 조금씩(문자의 오른쪽 윗부분) 내딛으며 뒤처져(夂; 머뭇거림, 뒤져 옴) 오니 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後자는 ‘뒤’나 ‘뒤떨어지다’, ‘뒤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後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幺(작을 요)자, 夂(뒤져서 올 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後자는 족쇄를 찬 노예가 길을 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後자를 보면 족쇄에 묶인 발과 彳자가 그려져 있었다. 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으니 걸음이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後자는 ‘뒤떨어지다’나 ‘뒤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後(후)는 (1)무슨 뒤, 또는 그 다음. 나중 (2)추후(追後) 등의 뜻으로 ①뒤 ②곁 ③딸림 ④아랫사람 ⑤뒤떨어지다 ⑥능력 따위가 뒤떨어지다 ⑦뒤지다 ⑧뒤서다 ⑨늦다 ⑩뒤로 미루다 ⑪뒤로 돌리다 ⑫뒤로 하다 ⑬임금 ⑭왕후(王后), 후비(后妃) ⑮신령(神靈)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먼저 선(先), 앞 전(前), 맏 곤(昆)이다. 용례로는 뒤를 이어 계속 됨을 후속(後續), 이후에 태어나는 자손들을 후손(後孫), 뒤로 물러남을 후퇴(後退), 일이 지난 뒤에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을 후회(後悔), 같은 학교를 나중에 나온 사람을 후배(後輩), 반반씩 둘로 나눈 것의 뒷부분을 후반(後半), 핏줄을 이은 먼 후손을 후예(後裔), 뒷 세상이나 뒤의 자손을 후세(後世), 뒤에서 도와줌을 후원(後援), 뒤의 시기 또는 뒤의 기간을 후기(後期), 중심의 뒤쪽 또는 전선에서 뒤로 떨어져 있는 곳을 후방(後方), 뒤지거나 뒤떨어짐 또는 그런 사람을 후진(後進), 맨 마지막을 최후(最後), 일이 끝난 뒤를 사후(事後), 일정한 때로부터 그 뒤를 이후(以後), 정오로부터 밤 열두 시까지의 동안을 오후(午後), 바로 뒤나 그 후 곧 즉후를 직후(直後), 그 뒤에 곧 잇따라 오는 때나 자리를 향후(向後), 앞과 뒤나 먼저와 나중을 전후(前後), 젊은 후학들을 두려워할 만하다는 후생가외(後生可畏), 때 늦은 한탄이라는 후시지탄(後時之嘆), 뒤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뜻으로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뛰어날 때 이르는 말을 후생각고(後生角高), 내세에서의 안락을 가장 소중히 여겨 믿는 마음으로 선행을 쌓음을 이르는 말을 후생대사(後生大事), 아무리 후회하여도 다시 어찌할 수가 없음을 후회막급(後悔莫及) 등에 쓰인다.
▶️ 私(사사 사)는 ❶형성문자로 厶(사)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벼 화(禾; 곡식)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둥글게 에워싸다, 자기 것으로서 거두어 넣다의 뜻을 가지는 글자 厶(사)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수확할 때 자기 몫으로 한 것, 나, 몰래의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私자는 ‘사사롭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여기서 ‘사사롭다’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私자는 禾(벼 화)자와 厶(사사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厶자는 팔을 안으로 굽힌 모습을 그린 것으로 ‘사사롭다’라는 뜻이 있다. 팔을 안으로 굽히는 행위가 물건을 독차지하려는 듯한 모습을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금문에서는 厶자가 사사로움을 뜻했었다. 소전에서는 여기에 禾(벼 화)자가 더해졌는데, 이것은 곡식의 소유주가 나 자신임을 뜻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지금의 私자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나 이기적임을 뜻하는 글자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私(사)는 (1)자기 한 몸이나 집안에 관한 사사로운 것 (2)일을 처리할 적에 정실(情實)에 흘러 공정치 못한 일 등의 뜻으로 ①사사(私事; 사삿일), 사삿일(私事; 개인의 사사로운 일) ②가족(家族) 3집안 4간통(姦通) 5편복(便服) 6은혜(恩惠) 7가신(家臣) 8사처(私處) 9오줌 10음부(陰部) 11총애(寵愛)하는 것 12자매의 남편 13사사롭다 14간통하다 15사랑하다 16편애하다 17오줌 누다 18홀로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공평할 공(公)이다. 용례로는 개인의 사사로운 학설을 사학(私學), 사삿 사람을 사인(私人),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않았으나 마음속으로 그 사람을 본받아서 도나 학문을 배우거나 따름을 사숙(私淑), 개인에게 관계되는 것을 사적(私的), 개인이 설립함 또는 그 시설을 사설(私設), 사사로이 만나는 자리를 사석(私席), 제 욕심을 채우려는 마음을 사심(私心), 사삿일이나 사사로운 일을 사사(私事), 개인의 소유를 사유(私有), 개인의 저택을 사저(私邸), 예전에 한문을 사사로이 가르치던 곳을 사숙(私塾), 사사로운 개인의 의견을 사의(私意), 한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을 사익(私益), 개인이 사사로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을 사재(私財), 개인이 사사로운 일로 저지른 죄를 사죄(私罪), 공공의 물건을 사사로이 씀 또는 그 물건을 사용(私用), 개인 소유의 논밭을 사전(私田), 개인의 의견을 사설(私說), 개인 소유의 집을 사택(私宅), 개인이 부담하고 지출하는 비용을 사비(私費), 사사로 하는 편지를 사신(私信), 사사로운 이익과 욕심을 사리사욕(私利私慾), 몰래 사사로이 하는 망령된 생각을 사사망념(私思妄念)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