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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통신 74/200130]후배님의 시집 <기울지 않는 길>
대문앞 우체통이 비어 있는 것은 어쩐지 슬픈 일이다. 세상과의 교류가 뚜욱 끊긴 기분이 든다. 요즘에야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거의 없지만, 우체통을 바라보면 늘 누군가의 편지가 있겠거니, 은근히 기대를 하곤 한다.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데, 우편물이 들어있다. 화들짝 반가워 후다닥 꺼내보니, 고교 후배이자 신문사후배가 펴낸 시집詩集이 아닌가. 하하, 반갑다. 5부로 구성된 시 61편을 순식간에 읽어제켰다. 시는 이렇게 읽는 게 아니건만.
그런데 이상하다. 시집 제목 <기울지 않는 길>이 무슨 뜻인지 와닿지 않고, 이 제목의 시가 보이지 않는다. 보통 시인이 내세우고 싶은 시를 시집 제목으로 삼는데, 이건 아니다. 비스듬히 낮거나 비뚤어지지 않은 길? 평평한 길이란 뜻일까? 고개를 가우뚱하며 펼치는데, ‘존경하고 사랑하는 사백詞伯님께’라고 쓰여 있다. 아니, 사백이라니? 사백은 시문詩文에 뛰어난 사람을 높여 부르는 말이 아니던가. 어찌 이런 존칭을 내가 들을 수 있단 말인가, 완전 깜놀이고 심히 부끄러웠다.
머리말처럼 쓴 군더더기 없는 ‘시인의 말’이 참으로 겸손해 마음에 들었다. “시집을 펼친 당신/진심으로 존경합니다./이 시대에 시를 읽다니.//여기 담은 공존의 꿈,/시간 들여 살펴준다면/가문의 영광이겠습니다.//세상을 먼저 떠나가면/제 어머니와 아버지가/유산으로 준 것들입니다.” 시인詩人은 원래 자존심自尊心 하나로 사는 존재들이 아니던가. 어디에서도 이런 겸사謙辭를 읽은 적이 없다. 자신의 시를 읽어주는 독자를 존경하고, 가문의 영광이라고 하다니? 2년 전인가, 광화문 교보문고 한 구석에서 열린 이 친구의 출판기념회를 간 적이 있다. 기자생활을 하면서 숱하게 만난 예술인과 연예인들의 실명實名을 제목으로 한 시집 <시詩로 만난 별들>(약칭 시별). 발상이 참신하고 좋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썼던 졸문을 아래에 부기付記한다.
1부 13편은 ‘시별’의 후속편으로, 내가 좋아하는 최불암과 장사익에 대해 쓴 것도 있어 반가웠다. 2부는 부모에 대한 사모곡, 자녀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느낀 감상이다. 서른아홉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기분 나쁘게 듣지 마라/가까이 보면 모두가 극락이다>고 말씀하셔 <그게 무슨 말씀이냐?>고 물었지만 대답없이 그냥 가셨다며 그리워한다. 시인은 어머니에게 <자기 생애의 마지막 날도/가까이 보면 극락일까?>를 묻는다. 세상은 정말 시인의 어머니 말처럼 ‘가까이 보면 싹 다 극락일까’ 잘 모르겠다.
특히 아버지를 회억하는 시 구절이 마음에 와닿는다. <세월이 나를 밀고 와/아버지라는 이름을 얻고 보니/세월이 밀고 간 아버지의 길이/조금 보인다>. 시인이 지천명知天命을 훌쩍 넘고보니 ‘아버지의 길’이 보였나보다. ‘아이에게’란 시는 완전히 절창絶唱이다. <내 품속에서/숨을 쌔근쌔근 쉬고 있는 아이야//네 숨결 덕에/마침내/봄이 왔구나//너는 어디서 왔기에/온 세상의 떨림을/내 품속에 다 모을 수 있느냐>. 이 느낌은 충분히 감정이입感情移入이 되고도 남는다. 아가들을 보면(남의 아가도 마찬가지다) 천사, 요정이 따로 없지 않던가. 그 느낌. 새 아가들이 봅을 가져오는 존재이다.
3부는 해외취재를 하면서 얻는 시 몇 편이 반짝인다. 특히 ‘사마르칸트 음악제’에서 한 구절은 ‘시인의 말’처럼 ‘공존共存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처음 만난 갈색머리의 당신이/동쪽의 노래인지 서쪽의 춤인지 묻지 않고/내 손을 이끌어/어깨동무의 한 마당으로 나아간다/어느 언어가 이처럼/만국의 경계를 허물어트릴 수가 있을까/세상의 모든 말들과 말 사이의 불통을 잊고/우리는 여기서/노래하고 춤추자>. 멋지다. 이국여성과 음악제에서 함께 춤을 춘 모양이다. 아시겠지만, 우즈베키스탄 여성들의 예쁘기는 북조선 여성들의 뺨을 친다. 황홀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의 결론은 공존이다. 공존이 무엇인가? ‘같이 살기’가 아닌가? 최불암 선생이 쓴 ”장시인과 평소 대화할 때마다 공감하던 주제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를 시 작품으로 은근하면서도 절실하게 담고 있다”는 짧은 헌사獻辭를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시인의 시 모두를 더 소개하고 싶지만, 너무 장황한 것같아 ‘걸레를 위하여’하는 시 한 편만 소개하자. <걸레와 함께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다 보면/서서히 땀이 나며/무릎을 꿇은 겸허가 만족스러워집니다/어느 누구와도 함께 하지 못했던 평화를/누립니다//그런 친구와 잠시 헤어질 때의 예의는/깨끗이 빨아놓는 것입니다/걸레가 바닥에 놓여 있을 때/다른 식구가/손이 아닌 발로 집는 것을 막기 위해서죠//(후략)>. 결코 어렵지 않다. 걸레를 친구라 부르며 무릎을 꿇는 겸허가 만족스럽게 느껴진다고 고백한다. 이 느낌 모두 아시리라. 걸레라고, 다 탄 연탄재라고 우습게 보거나 함부로 할 일이 아닌 것을, 사람들은 왜 모를까? 걸레는 닦은 후 꼭 빨아놓을 일이다. 어찌 신성한 물건을 더럽다고 불경스럽게 발로 집는단 말인가? 반성하자. 어쩌면 시인은 이런 감성感性을 꼬오옥 간직하여 순우리말 두레박으로 길어내는 것일까? 시인이야말로 갓 낳은 신생아가 아닐까? 아, 나도 시인이 되고 싶다. 내 맘에 쏙 드는 시 한 편만 쓰고 죽어도 원이 없겠다. 고향 김제 성덕을 추억하는 몇 편의 시 중심에 흐르는 따뜻한 인간미人間味, 즉 시인의 가슴 속에는 휴머니즘이 언제나 잔잔히 숨쉬고 있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 문제는 휴머니즘이다. 귀하고 좋은 시집을 보내준 후배님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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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너더리통신 51/171106]'시로 만난 별들'의 이야기
최근 한 후배의 출판기념회를 다녀왔다. 시인이자 신문사 문화부장이기도 한 그가 ‘유별난’ 시집을 펴냈다. 제목인즉 <시詩로 만난 별들>. 진행자는 요즘 줄여 말하는 게 트렌드라면서 <시별>로 불러달란다. 자칫 발음을 잘못하면 욕이 되기 쉽다. 어떤 내용일지 짐작이 가시는가? 전혀 알아맞히지 못하겠는가? 이른바 ‘별들’을 시로 만났다는 거다. 별은 star인데, 오늘날 star는 누구를 말함인가? 말할 것도 없이 방송인, 연예인, 가수, 배우, 탤런트 등을 뜻하지 않는가. 정치인이나 대기업 CEO는 절대로 ‘별’이 될 수가 없다. 그는 직업상 반짝반짝 잘 나가는 별들을 십수년 동안 골고루 인터뷰를 하여 종이신문 등에 소개를 했다. 그런데, 이 시집은 정말 유별나다. 조용필, 안성기, 최불암, 신구, 차인표, 송강호 등(심지어 할머니탤런트 황정순와 배우 최은희도 있다) 40명 개인개인 키포인트를 짚어 ‘딱 잘라’ 시 한 편이나 두 편으로 소개하고, 별다른 기사를 쓰지도 않은 채 필모그라피를 ‘프로필 에세이’라는 이름으로 나열하고 있다. 그러니 자신이 작성하여 활자화한 기사 모음집이 아닌 것이다. 1인 4쪽을 넘어가는 게 없으니 신선하다. 그야말로 심플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시어(詩語)들로 제법 감칠맛이 난다. 40명이니 현재 활동하는 어지간한 스타들은 다 ‘헤쳐 모여’한 셈이다.
경향신문 오늘자에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 참가한 월레 소잉카(83)과 고은(84)의 대담이 축약돼 실렸다. 소잉카는 나이지리아 작가로 1986년 아프리카 흑인으로는 첫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반정부행위로 수감되는 등 여러 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했다. 최근에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미국영주권을 포기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익히 잘 알고 있을 고은 시인이 시(詩)에 대한 정의(定義)가 눈에 띄었다. “시인의 세속적 위상은 밑바닥이지만, 시는 항구적으로 별처럼 존재한다. 사랑하는 임, 사랑하다 떠난 임, 물, 술, 술잔, 희로애락이 있는 한 시는 없어질 리가 없다”며 “시의 소재는 모든 사물”이라고 설파했는데, 마치 이 후배의 <시별>을 두고 한 얘기같다. 하기야 시인 자신의 <만인보萬人譜>를 봐도 알 수 있다. 5천여명을 실명(實名, 때로는 광주항쟁 무명의 열사도 있다)으로 불러내 서사적이나 서정적인 시로 “적확하게” 형상화하지 않았던가. 놀라운 일이다. 그 정열, 그 시심(詩心).
교보문고 배움홀의 출판기념회장은 자리가 너무 비좁아 들어가지도 못한 사람이 족히 50명은 되었다. 그 와중에 식을 진행하는데, 불암산의 명예산주이자 ‘한국인의 밥상’ 최불암씨(선생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가 구수한 목소리로 자신의 실명시를 낭송, 분위기를 후꾼 달아오르게 했다. ‘그놈의’ 국민프로그램 ‘밥상’ 때문에 ‘꽃보다 할배’에 끼지도 못했다고 한다. 칠십대에 스스로 시인이 된 그는 시인기자에게 ‘세월은 그리움을 만들긴 하지만 만남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문자도 보낼 줄 아는 멋쟁이이다. 노년에 이루고 싶은 꿈은 공동체를 좋은 쪽으로 바꾸는데 자신의 재능을 쓰고 싶다는 것. 늙으려면 이렇게 늙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의 찬조 출연자는 ‘영원한 천재 영화감독’이자 작가 최인호의 친구 이장호씨다. <시별>의 저자는 영화 제목만으로 한 편의 시를 완성했다. ‘바람 불어 좋은 날’ ‘길에서 쉬지 않는 나그네’…. 멋지다. 이왕이면 ‘별들의 고향’이나 ‘어제 내린 비’ ‘바보선언’도 시어로 구현했으면 좋으련만. 기분이 동했던지, 청바지 차림으로 색소폰으로 두 곡을 연주한다. 40명의 한 명인 배우 김지미씨의 일화를 참석자들을 ‘아재 개그’로 웃긴다. 자신보다 한 살 어린 나훈아가 중학시절 반했던 선망의 배우 김지미씨와 한 집에서 산다고 생각하니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한다. 김지미씨가 나훈아씨 발을 들며 ‘누구발?’이라 하자 ‘훈아발’이라고 했다는데, 자신의 발을 들어올리며 ‘이건 누구발?’이라고 묻자 나훈아씨가 ‘지미 씨발’이라고 했다던가. ‘길없는 길’을 쓴 최인호 작가는 세상을 떴지만, 그의 친구는 이런 아재개그도 날리고 있다. 배우 김주혁이 졸지에 가는 슬픔에도 송준기와 송혜교는 결혼식을 알려 브라운관에 소식이 넘쳐나는 것과 같은 듯. 이어 저자의 특권으로 자신이 시 3편을, 효녀가수 현숙이와 출판사 대표가 시를 낭송하고, 가수 최성수가 인사를 하고, 또 누구는 안성기의 필모그라피를 낭송하는 등, 비좁은 자리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편편의 시들을 훑어보면서 ‘참, 별들은 별들이다. 청천하늘에 별들도 많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별들은 또 무릇 기하이던가. 또한 순간 반짝하다 이름없이 스쳐간 별들은 또 무릇 기하일 것인가. 만약에 이들이 없었다면, 우리 문화나 살림살이는 얼마나 팍팍했을까? 국민배우가, 국민가수가, 국민여동생이, 국민할매와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우리는 한층 더 우울하게 20세기와 21세기를 살고 있지 않을까? 누가 이분들을 ‘광대’라 부르는가? 이분들보다 몇 배 더 웃기고 형편없는 ‘많이 배우고, 많이 출세한’ ‘웃픈’ 광대들이 이 시대에 길가의 돌맹이들처럼 널려 있지 않은가? 정치모리배, 정상배들이 바로 그들이다. 후안무치, 후흑학의 대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아직도 광화문의 ‘촛불’이 무엇을 뜻하지도 모른다. 정태춘도, 전인권도, 윤도현도 알고 김제동, 김미화도 아는 데 말이다. 이분들은 그저 솔직하고, 일관되게,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우리의 감성을 부드럽게 자극하며 숱한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고마운 분들이 아니던가. 면면 중에는 이미 불귀의 객이 된 ‘비람에 시달려도 둥글게 살아가자’던 ‘조약돌’ 박상규씨도 있다. 그 너털웃음이 그리운 계절이다.
저자는 배우 황정순의 빙의가 되어 시로써 말한다. “당부하나니/지금 옆사람에게 잘하세요/그렇게 살아야/후회하지 않아요”라고. 배우 최은희는 영원한 파트너였던 유일한 남자 신상옥을 “당신과 더불어 지낸 시간들은/아직도 내게 있어요/당신과 함께 만든 첫 영화 ‘꿈’/그 꿈 속에 살아 있다”며 그리워한다. 또한 신구씨는 ‘게맛도 모르는’ 장삼이사들에게 “나는 그래도 한 마디 할 자격은 된다”며 “니들이 인생을 아느냐?”고 시로써 반문하고 있다. 패티김을 보아라. “별은 빛나는 자리를 스스로 지켜야 하니까” 누가 자기더러 사치스럽고, 오만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김지미를 누가 리즈 테일러와 비교하는가? “나는 나다”며 ‘환한 빛 속에’도 당당했다. ‘수사반장’과 ‘양촌리 회장’으로 진작부터 늙어버린 최불암은 늙수그레한 몸짓으로 댓돌 위의 신발을 느릿느릿 정리하고 있었다. 평생 자유로운 영혼을 꿈꾸었던 조영남은 “마음대로 하고 싶어/마음대로 하였으나/마음대론 못 산다는 걸/세상 천지에 알렸다”. 조용필을 보아라. “이 나라의 가왕으로 살아온/세월의 뒤편에서 노을을 벗한 적막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숙은 실제로 ‘효녀가수’라는 말이 감옥처럼 옥죄일 것이다. 그래서 훨훨 날아다니며 새처럼 노래를 부른다. 차인표는 말한다. “어둠은 빛을 가릴 수 없고/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며 “남편은 결코 아내를 이길 수 없다”는 너스레까지 떠는, 아내 신애라와 함께 참으로 선(善)한 광대이다. 마지막으로, 시인 정호승은 이 쌈박하고 참신한 책을 읽으며 “우리가 이 시대의 문화를 더불어 호흡하고 있다는 공감을 행복하게 나누기 바라며, 내 옆에서 누군가 반짝일 때, 내 일상도 환해진다는 것을 느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똑떨어지게 맞는 말이다. 시인의 상찬(賞讚)을 받을만한 작품집이다.
<시별> 40인의 이름을 일일히 불러보면서, 출판기념회 소식을 전한다.
<시별>의 저자는 전북의 명문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하다.
배우: 황정순 최은희 신구 김지미 최불암 안성기 강석우 송강호 김윤진 김정은 하지원
수애 전지현 손예진 하석진 문채원 박하선 김옥빈
감독: 임권택 이장호
가수: 패티김 조용필 최백호 현숙 최성수 윤두준 걸그룹소녀시대
가수 겸 배우: 엄정화 성유리
배우 겸 작가: 차인표
가수 겸 방송진행자: 박상규
화가 겸 배우 강예원
화수(畵手): 조영남(참 별난 인간이다. 화투짝을 그려 돈을 많이 챙겼다던가. 흐흐)
<시별>에 아쉬운 게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 이 책에 수록된 40명 뿐이랴. 일일이 거명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청천의 별만큼 많은 명멸한 별들이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가능하면 언제까지고 <시별> 시리즈가 계속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