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연휴에 우리민족의 영산이고 젖줄인 백두산을 다녀왔다.
5박6일이라는 짧지않은 기간동안 낯선 사람들과 같이 자고 같이 부대끼고 많은 것을 보고왔다. 여행은 '보는 것'이라고 한다. 세상을 돌아다니면서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이야기들을 귀로 들어보고, 맛있는 음식들도 맛보고, 좋은 향기도 맡아보고, 세상사람들과 부댓끼면서 인간사는 세상을 느껴보는 것이다. 나는 여행을 떠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시도'라는 테마를 가지고 출발하였다.
인천을 떠나며 (2004년9월25일-26일)
대인호를 타고 오후6시30분에 인천을 출발하였다. 2등칸 단체룸이었다. 카리스마가 넘치는 작약님이 부침개와 송편, 그리고 소주를 몇병 내놓어셨다. 어젯밤 과음으로 속이 얼얼한 가운데 해장술을 몇잔 들이키니 조금 안정이 되었다. 저녁식사 후 서로 간단하게 인사를 하였다. 한잔생각이 들었으나 술독이 덜빠져서인지 자리에 눕자 그대로 잠이 들었다. 여행의 첫날밤은 이렇게 흘러갔다.
장장16시간에 걸쳐 대련항에 도착하였다.
원래 단동항이었으나 추석연휴 관계로 대련항으로 변경되어 당초일정보다 변경되어 일정이 매우 촉박하게 되어 앞날에 고생이 훤함을 느꼈다.
대련에서 단동까지 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잘닦인 도로를 타고 가는데도 시간이 이렇게 걸리는데 앞으로 비포장도로를 가는데 얼마나 걸릴지...허렴한 중국식당에서 점심으로 배를 채웠는데 평소 중국음식을 잘먹는 나는 맛있게 먹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중국백주와의 첫만남이었다. 50도이상의 알콜성분이 사정없이 목을 때린다. 버스안에서 식당에서 가지고 온 백주와 안주로 간단하게(?) 술한잔을 하면서 서로의 안면을 익혔다. 이번 여행에 오신 분들은 술을 안드시는 분들이 많으셨는데 자연스럽게 술꾼들이 파악된 시점이었다. 나중에도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대단한 술꾼을 만난다. 청주에서 오신 혜동님이시다. 역시 요즘 이 시대의 진정한 술꾼들은 여자라고 하더니만, 역시 혜동님도 여자분이시다.
동항시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단동으로 버스는 계속 달린다.
저녁5시가 넘어서 단동의 압록강변에 도착하였다. 압록강 유람선을 타고 지척의 북한땅을 보니 만상이 교차한다. 평소 통일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분단의 고착화는 민족의 비극임을 뼈저리게 느꼈다. 기념으로 북한돈 셋트를 흥정끝에 20원에 샀다. 누군가가 옆에서 그 돈 가짜일거라고 말한다. 가짜면 어떠랴? 어차피 사용하기 위해서 산 돈이 아닌걸...하루속히 민족의 통일이 되기를 염원하였다.
컴컴한 비포장도로를 35인승 중고버스는 한숨을 내쉬며 달린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버스였었다. 원래 이 버스는 15인정도가 적당한 것인데 28명이라는 많은 인원을 1대에 다 타고 운행하다 보니 장거리 여행에, 더구나 차량에서 1박도 해야 되는데 많은 어려움이 발생하였다. 연로하신 분들도 계시고, 숏다리인 나보다 롱다리(?)분들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중엔 통로에 신문지를 깔고 몇분은 누워서 가셨다. 인간은 환경의 동물이라는 말이 딱 많다. 적응력이 놀랍다.
만리장성의 시점인 호산장성에 도착하니 칠흑같은 어두움이 우리를 기다렸다.
사람들이 또 다시 화장실로 우르르 몰려간다. 정말 백두산 여행은 화장실이 큰 문제였다. 중국의 화장실 시설은 다 들 잘알지 않는가? 남자들은 모든 곳이 화장실이지만 여자분들의 고충은 대단하였으리라. 북한의 의주와 맞닿아 있는 호산에 내려 어둠에 쌓인 북한을 보았다. 국경은 강폭을 따라 불과 5미터 남짓하였다. 낮에는 북한주민들이 여기까지 와서 농사를 짓고 한다고 한다. 북한군 병사들도 모습을 볼수있다고 하였는데 볼수없어서 약간 섭섭하였다.
압록강을 따라 비포장길을 덜컹거리며 계속 달려 수풍댐을 보지는 못하고 압록강변의 조그만 음식점 “새마을 밥점”에서 때늦은 저녁식사를 10시가 넘어 먹었다. 식당 이름이 우습다.우리 나라의 새마을 운동이 중국에까지 영향을 미쳤으리라. 압록강에서 잡은 메기로 끓인 탕과 새우튀김이 먹을만 하였다. 한국김치 모양을 낸 고춧가루가 드문드문 들어간 김치도 먹을만하였다. 같이 식사하신 어르신은 연신 국물맛이 좋다고 하신다. 압록강변에 내려가 간단하게 세수를 하였다. 물이 그렇게 차갑지도 않고 연한 수박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흙먼지에 더러워진 얼굴이 매끈매끈한 감촉을 느꼈다.
백두산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누가 말했던가? 북경관광은 발관광이요 서안관광은 귀관광이요 계림 장가계는 눈관광이요 백두산관광은 엉덩이관광이라고. 맞는 말이다.
모두들 잠이들었다 깼다 한다. 피곤도 하겠지만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리라.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압록강 위에 비치는 보름달과 밤하늘에 떠있는 보름달을 보며 잠시 상념에 젖는다. 그런데 집안일, 회사일등이 자꾸 떠오른다. 그 업무를 마무리짓지 못하여서 어쩌나? 아! 여기까지 와서 일상사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니. 그래 여행기간 만큼은 잊자.
아! 백두산이여 (2004년9월27일)
백두산!!
백두산하면 우리에겐 무엇인지 모르게 가슴을 끓어 오르게하는 민족의 영산(靈山)이다. 백두산은 한반도의 등줄기 백두대간의 출발점이자 압록강, 두만강의 발원이 되는 천지를 품은 민족의 성산(聖山)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은 60년대에 백두산 일대를 보호구역을 지정하고 80년대에 들어 외부에 공개하고 현재 천지와 백두산은 특별 행정기관인 ■장백산 보호구■에서 관리하고 있다. 백두산입장료가 60원, 그리고 천지와 장백폭포입장료가 40원이다. 중국돈으로 대단한 액수다. 우리 땅을 보는데 중국놈들 배만 채워주고 있다. 서글픈 현실이다.
드디어 백두산에 도착했다. 오전 10시 30분이다. 단동에서 6시넘어서 출발했으니 버스로 17시간이 걸린 셈이다. 아마 버스로 이렇게 장거리로 타 볼기회는 앞으로 없으리라.
백두산입구에서 회사 동료와 친구들에게 줄 선물로 백두산기념 손수건을 10장샀다. 품질은 조악했지만 산을 다니면서 땀을 훔칠때마다 백두산을 생각하리라.
점심을 먹고 버스를 타고 온천지구까지 올라갔다. 가깝게 백두산이 보였다. 찦차를 타고 가는 조와 산행을 하는 조로 나누어서 올라갔다. 산행시간은 왕복2시간이 걸린단다. 햇빛산악회에서 여행안내문에 날씨가 추우니 두터운 옷과 눈에 대비해서 아이젠을 준비하라고 해서 많은 회원들이 두터운 옷과 아이젠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쓸모가 없다. 날이 너무나 청명하다. 그러나 백두산의 날씨는 워낙 변화무쌍하므로 방풍자켓은 가지고 가기로 했다. 드디어 산행시작이다. 버스옆자리에 같이 앉아온 로비스님 등 몇분과 선두로 먼저 올라갔다. 누구보다 먼저 천지를 보고 싶었다. 10여분 정도 올라가니 68미터의 장백폭포가 대단한 위용을 드러내었다.
사진은 하산길에 찍기로 하고 서둘렀다. 장백폭포에서 천지에 이르는 길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낙석이 심해서 통행의 제한이 많았었는데 새로 터널공사를 해서 안전을 많이 도모했다. 옥벽을 따라 건설된 이 터널은 인간의 능력이 무한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기계장치가 들어올 수 없는 이 곳에 아마 사람 손으로 날라서 이 공사를 마쳤다고 생각하니 그 노고가 짐작되었다. 지금도 보수공사를 계속하고 있었다. 계단의 경사가 장난이 아니었다. 30여분정도를 힘들게 올라 드디어 천지에 도착했다. 아! 가슴이 확트인다. 일년에 며칠동안 볼 수 없다는 너무나 좋은 날씨다. 몇 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볼 수있다는 날씨다. 단군님이 외로운 싱글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로비스님이 이야기 한다. 천지물에 발을 담그고 한입 마셔 보았다. 그맛은 뭐라고 형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생수병에 한병 담아왔다. 회원들이 이제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었다. 모두들 사진찍느라 여념이 없다. 천지비석을 배경으로 사진찍으면 1인당2원을 달라고 나이 어린 관리원이 이야기 한다. 안줄려고 하다가 우리 돈으로 2,000원을 주니 매우 좋아하며 우리 회원들은 서비스로 그냥 다 찍어란다. 돈을 받고 웃는 모습이 천진스러운 모습이다. 식당에서 사가지고 간 산머루주와 고량주로 정상주를 한잔하였다. 여자분들이 산머루주를 좋아한다. 1병 더 사올걸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맛을 어찌 잊을쏘냐?
- 백 두 산 -
민족도, 국토도, 분단된
슬픈 역사 속에
통일의 그날을 기다려
하마 하마 사십 년
세월의 기만(欺瞞)에
분노는 열화처럼
이역(異域)길 돌아 돌아
아득한 신비의 빛을 따라
신들린 걸음으로
민족의 성지(聖地), 국로의 시원(始原)
백두산을 찾아
장강(長江)을 넘고 황하(黃河)를 건너
잃어버린 우리의 땅
만주(滿洲)벌 수만리 (하략).
(진태하(陣泰夏)는 1984년 7월, 국토분단 이후 한국 국적으로서는 최초로 민족의 성역 백두산을 등정한 감격을 '백두산'이라는 시로써 토로함)
이번 여행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한 방수형님과 하산길을 일찍 내려왔다. 일찍 내려가서 온천을 하기 위함이다. 천원에 3개짜리 유황온천 계란도 사먹고, 장뇌삼도 한뿌리 먹었다. 15년근은 됨직하였는데 한뿌리에 1만원 주었다. 방수형님과 나누어 먹었다. 몸에 뜨거운 기운(?)이 막 넘치는 것 같았다. 온천욕으로 피로를 풀었다. 물이 좋았었다. 피부가 매끈한 것이.... 한국에 와서도 피부가 왜 그리 좋아졌냐고 다 들그런다. 장뇌삼과 온천욕의 효과이리라.
오후6시 백두산에서 집안으로 출발했다. 집안가는 도중에서 1박을 하기로 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저녁11시경에 숙박지인 길림성 무송현에 도착했는데 호텔과 식당을 예약이 안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지 조선족 가이드인 허사장은 전문가이드가 아니라 무역상으로써 햇빛산악회 회장님과 친분으로 이번 가이드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여행중 가이드는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회원들은 예약이 당연히 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예약도 안된상태에서 숙소를 찾느라고 밤늦은 시간까지 사전에 아무런 양해도 없이 이리저리 끌고 다닌점에 대하여 불만이 터졌다. 하여튼 이사건을 계기로 가이드는 단단히 정신을 차리고 지나치게 책임감이 붙었다.
너무 늦은 저녁식사를 꼬치구이와 만두로써 허기를 달랬다.
이날 밤 정말 많은 술을 마셨다. 호텔에 돌아와 마시다가 술이 떨어져서 포장마차에가서 또 마셨다. 나와 혜동누나, 그리고 장길산, 이렇게 셋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억도 없다. 마지막 남은 힘까지도 술마시는데 소진한 것 같다.
고구려의 역사 (2004년9월28일)
아침에 방수형이 깨운다. 어제밤에 내 코고는 소리에 잠을 설쳤단다. 미안 할따름이다. 무송시내를 삼륜택시를 타고 한바퀴 돌았다. 기본요금이 5원이었다. 그리고 재래시장을 구경하였다. 시장은 어느곳이나 삶의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오늘은 광개토대왕비가 있는 집안으로 간다. 그런데 버스를 타자 계속 목이 아프다. 편도선이 부은 것이다. 편도선이 평소에 안좋은데 너무 무리를 한탓이리라. 부부로 오신분 중 한분이 약을 주신다. 본인도 목이 안좋아서 약을 준비해왔다면서 주셨다. 고마움을 다시 한번 말씀 드리고 싶다.
백산시, 통화를 거쳐 12시경에 집안에 도착하였다. 집안은 요즘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역사의 고장이다. 광개토대왕비, 태왕릉, 장군총등의 우리의 유물이 있는 곳이다. 광개토대왕비는 근래에 사방을 유리로 설치하는 등 유물관리에 힘을 쏟고있는 흔적이 역력히 보였다. 이것은 중국이 우리의 역사가 아닌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중국과의 경제문제, 외교 문제등이 있지만 우리의 역사는 양보해서는 안된다.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다.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몸이 안좋아서 인지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근처가게에서 하드를 하나 사먹었다. 설탕맛이 나는 우리 옛날 하드다. 목이 좀시원해졌다. 오후 2시경 단동으로 출발했다. 약기운인지 계속 잠만잤다. 비몽사몽이다. 버스안에서 민선생님이 장뇌삼 한뿌리를 주시고 수지침도 놓아주신다. 그리고 딸과 같이 오신 노부부님 중 사모님이 영양제를 한알 주셨다. 정말 생각해주시는 마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몸은 편도선은 좀 호전되었는데 감기가 다시 걸린 것 같다. 담배를 다시 끊어야지. 또 다시 잠에 곯아 떨어졌다.
어느덧 버스는 저녁9시경에 단동시 근처 동항시에 도착하였다. 북한식당 “평양고려원“에서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단동의 압록강에서 북한을 보면서 느꼈지만 북한식당에서 민족분단의 가슴아픈 현실을 다시 한번 뼈져리게 느꼈다. 북한식당은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만은 아닐것이다.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갈라져 서로 미워하며 불신만을 키워왔는지... 식당주변에서 중국사람들이 추석을 맞이하여 푹죽을 터트린다.
저녁10시30분경에 명주반점에 투숙하였다. 1인당 30원을 주고 맛사지를 받았다. 조금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방수형님과 미리 문화체험(?)을 하기로 이야기가 돼 있었다. 술과 음악이 함께 있는 술집에 가서 술 한잔하기로 했었는데, 찾느라고 엄청 고생했다. 호텔에 다시 들어가서 여직원과 필담을 통하여 겨우 찾았는데, 이런 맛자지를 받은 그곳 근처가 아닌가! 노래방이라고 한글로 큼직하게 간판이 걸려있었다. 하여튼 미모의 중국여성과 건전한(?) 음주시간을 가졌다. 정말로 건전한 유흥업소였다. 중국에서의 추석은 이렇게 흘러갔다.
대련을 떠나며 (2004년9월29일-30일)
새벽4시에 일어나서 5시에 호텔에서 대련으로 출발했다. 중국에서는 아침을 집에서 대부분 해먹지 않는다고 한다. 도중에 중국식 아침식사를 했다. 시내 중심가 도로변에 임시 천막을 치고 아침시간대에만 장사를 하는 곳이다. 순두부, 옥수수죽, 수수죽, 호떡등을 팔았다. 입안이 까끌했다. 순두부 몇숟가락으로 요기를 채웠다. 오전10시에 대련에 도착했다. 오늘이 중국에서의 마지막날이다. 이른 점심을 북한식당 “평양고려원”에서 먹었다. 해물탕국물이 시원했다. 여접대원과 사진한장찍고 북한에서도 귀하다는 칠보산송이버섯주를 한잔에 거금28원을 주고 마셨다. 송이의 특유한 향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술이 너무 좋아 260원을 주고 작은 생수병에 담아 사왔다.
대련역 근처에서 쇼핑을 하였다. 중국술과 중국약을 사기위해 여기저기 다니면서 웃지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주류점을 찾지못해 호텔에 가서 알았는데 가서 보니 한병에 몇백만원하는 정말 중국명주를 전문으로 파는 곳이었다. 사지는 못하고 그냥 눈요기만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대련항부근에 보신탕집이라는 한글간판을 반갑게 찾았다. 조선족청년이 친절하게 우리를 약국까지 따라와서 통역을 해주었다. 어머니드릴 약과 내가 먹을 감기약을 구입하고 보니 집결시간이 벌써 10분이 넘었다. 헐레벌떡 뛰어가니 우리가 제일 마지막이었다. 단체행동에서 약속이 중요한데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어긴 것 같다. 대련시내는 정말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중국의 중화사상이 막강한 경제력을 발판으로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의 역할과 운명이 걱정스럽다. 장미빛 미래만은 아닌 것 같다.
오후1시 대련항에 도착하였다. 15시가 출발시간이나 17시로 2시간이 지연되었다. 가이드 아는 사람이 가지고 온 참기름, 고춧가루, 죽엽청주등을 회원들이 산다. 나도 죽엽청주를 한병에 30원씩 2병 샀다. 1병은 오늘밤 선상에서 회원들과 마시고 한병은 회사 산행동료들과 마시리라. 17시에 승선완료 했으나 21시에 출항을 하였다. 10월1일 중국의 국경절 연휴를 맞이하여 화물을 미리 보내다보니 물량이 엄청 많아서 선적작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이다.
백두산 여행의 마지막 밤을 그냥 보내기는 허전하므로 젊은 회원들끼리 배 갑판위에서 술 한잔하면서 지금까지의 소회와 친교의 시간을 가졌다. 난 컨디션이 워낙 좋지 않아 십전대보주 몇잔 입에 대고 자리를 떴다. 일찍 자리를 뜬다고 인석님이 서운해 하신다. 그러나 술좋아하는 본인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자리에 눕자마자 약기운에 술기운에 기절이다.
오후 2시 30분 인천항에 도착했다. 출발지연 때문에 저녁과 아침을 무료로 선사에서 제공했다. 도착지연에 따른 보상문제가 승객들 사이에서 아침부터 논의되기 시작했다. 시간이 급한 회원들은 도착과 함께 먼저 하선하였다. 그러나 선사에서의 응답은 시원찮다. 인천방송을 부르고 선사담당자의 실언으로 합의가 이루어졌다. 결국 요금100% 환불로 결정됐다.지금까지 선사에서 이 배를 이용하는 승객에 대한 무시 등이 감정 밑바닥에 깔려있는 것 같았다. 원래는 오후에 회사에 출근할려고 했었는데 포기했다. 배삯을 돌려받아 공짜 여행을 한것같다.마지막날 생각지도 않는 이런 일이 생기니 하여튼 이번 백두산 여행은 참으로 기억이 많이 남는 여행이다. 드디어 오후 6시 30분에 하선하였다. 장장 25시간30분만에 땅을 밟는것이었다. 이 일 때문에 입국심사와 통관도 무사통과였다. 회원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고 방수형님과 등산맨 형님등 회원몇분과 콜밴을 타고 구로역에 도착하였다. 나와 방수형님, 미란님과 함께 저녁을 먹고 이번 백두산 일정을 마감하였다. 이번 여행동안 회원들을 위하여 애쓰신 회장님, 부회장 등산맨님이하 여러분들께 감사 드리며, 다시 한번 저에게 약과 호의를 베풀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표한다.
또 나는 이번 여행을 통하여 아무 불상사 없이 여행을 마친 우리 회원간의 단합과 넘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앞으로 이번 백두산 여행은 일생을 살면서 정말 두고 두고 기억되는 여행이 될 것이다.
백두산은 아름다웠지만 우리를 감싸고 있는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그리고 중국이 제아무리 동북공정이니 뭐니해도 만주벌판은 우리의 역사이고 우리의 땅이라는 것을 가슴깊이 새기고 왔다.
내 가슴속에 찍힌 백두산과 이번 여행에서 만난 님들이 영원히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첫댓글 글을 잃다 보니 그날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군요 정말 잊지 못할 백두산이엇읍니다..좋은추억으로 오래 간직하고 싶읍니다.
아우님 나두 평생잊지 못할꺼요 아우님도 가슴깊이 담어두시길~~~~
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멋진 후기 잘 읽었어요..^^
주마등처럼 스쳐가는구나 함께한시간들 잊지못할거야 지리산잘갔다왔고 오늘까지 휴가라 쉬고있어 내일출장갔다 이번주에 함만나 이스리한번 품어야지 ...건강하게 한주시작하렴 (방수란인물 저야요..ㅋㅋㅋ)
출장 잘 다녀오시고, 전 언제라도 좋습니다^^
후기글 읽으니 그날의 감동이 생생하네요, 평생잊지못할 추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