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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의 구원 3:9~13
9 그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11 그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때에 내가 네 가운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네가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라
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시온에서 부르는 기쁨의 노래 3:14~20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 그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19 그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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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온 땅이 소멸될 때, 하나님이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셔서 그들이 하나님 이름을 부르며 그분을 섬길 것입니다. 남은 자는 하나님 이름으로 보호받으며, 악을 행하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니 그들은 명성과 칭찬을 얻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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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의 구원 3:9~13
하나님은 심판으로 세상을 정화하십니다. ‘여호와의 날’ 이후 우상을 섬기던 부정한 백성의 입술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정결한 입술로 바뀔 것입니다(9절). 구스 건너편에서도 예물을 드리러 온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할 대상이 광범위함을 암시합니다(10절). 하나님은 ‘남은 자’를 두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회복하시는 그때, 교만함으로 자랑하는 자는 제거되고 하나님을 겸손히 경배하는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만 예루살렘에 남겨져 ‘여호와의 이름’으로 보호받을 것입니다(12절). ‘남은 자’(13절)는 불의를 행하지 않으며 두려움 없이 평안을 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로 정화된 예루살렘은 더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11절).
●더 깊은 묵상
‘여호와의 날’ 이후 예루살렘에 남겨질 이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오늘날 남은 자는 누구며, 그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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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에서 부르는 기쁨의 노래 3:14~20
하나님은 회복의 주권자십니다. 스바냐는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과 회복을 예언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합니다(14절).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형벌을 제거하셨고 원수를 추방하셨으며, 그분이 예루살렘 가운데 계시기 때문입니다(15절).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가 함께하시니 더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능자 하나님은 크신 권능으로 그분 백성을 도우시고 건지실 것입니다. 또한 잠잠히 사랑의 시선으로 보시면서 기뻐 외치시고 즐겁게 노래하실 것입니다(17절). 회복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다시 절기를 지키고(18절), 온 세상에서 ‘명성과 칭찬’(20절)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회복은 영원한 영광과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약속하신 것은 무엇인가요?
징계 후에 영광과 회복의 은혜를 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내가 인내할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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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을 봅니까?
1900년대 초반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총장을 지낸 벤저민 워필드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앞에 유리창이 하나 있다. 우리는 눈을 들어 유리를 볼 수 있다. 품질을 주시하고 결함을 관찰하며 성분을 추정할 수 있다. 한편 유리창 너머를 볼 수도 있다. 광활하게 펼쳐진 육지와 바다와 하늘을 볼 수 있다.” 같은 유리창을 통해, 어떤 사람은 창에 묻어 있는 것을 본다. 창의 재질, 흠집, 오점 등을 보면서 인생을 사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하나님의 신비와 놀라운 인도하심에 감격하면서 인생을 산다.
스바냐와 동시대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부르신 하나님이 제일 먼저 물으신 것이 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렘 1:11). 강대국 앗수르의 위세가 서서히 약화되면서 신흥 강대국인 바벨론이 등장하고, 이집트가 위세를 부리던 시대다. 어느 쪽으로 붙어야 내가 살고 나라가 망하지 않을 것인가? 모두가 눈을 굴리면서 계산하고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는 강대국이 잘 보이고, 힘 있는 사람들과 권력 있는 사람들과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더 잘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하나님을 대신할 것이 참 많은 시대, 하나님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이 참 많은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묻고 계신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늘 소리 땅의 소리 / 김운용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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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스바냐 3장 17절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입니다. 하나님은 그분 백성을 기뻐하십니다. 또한 잠잠히 사랑하시고 즐거이 노래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을 위해 무언가를 열심히 했기에 얻는 은혜와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 자녀라는 존재로 인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사람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요 13:1).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이 사랑의 이유와 조건입니다. 이 은혜를 아는 성도는 하나님 사랑을 끝까지 신뢰 합니다.
우리가 삶에서 만나는 모든 대적과 장애물을 주님 섭리의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그것은 삶을 북돋는 것이 된다. - 러셀 무어
오늘의 기도
하나님, 백성의 회개를 받으시고 그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슬픔을 기쁨으로, 수치를 영광으로 바꾸시는 하나님께 감사의 노래를 드리게 하소서. 끝까지 저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편에 서기를 기뻐하며 살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94 하나님은 외아들을)
성경 이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끝나고, 회복하는 때가 옵니다(9, 10절). 그날에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할 것입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예루살렘에서 거만한 자들을 없애 버리시고, 온순하고 겸손한 자들만 남게 하십니다. 그래서 더러운 도성을 거룩한 도성으로 회복하십니다(11~13절). 그러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거처로 부족함이 없습니다(14~17절). 도성으로 돌아온 하나님은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아버지처럼, 뛸듯이 기뻐하십니다. 다시 만난 백성들을 반기고, 사랑하고, 새롭게 하고, 노래하며 즐거워하십니다(17, 18절). 하나님은 그들의 왕이 되시고, 영영 그들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15, 17절). 흩어진 자들도 ‘모욕 받던 땅’에서 ‘칭송과 영예를 받는 도성’으로 이끌어 오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시고, 나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기뻐하시며, 나를 사랑으로 새롭게 해주시고, 나를 보고 노래하며 기뻐하실 수 있는 그런 모습이 되도록 열심히 나를 준비시키고, 노력하도록 하자
내 능력과 힘을 의지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이름을 의지하며,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자
늘 주님께 감사하고, 주님과 더 깊은 교제 안에 거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도록 하자
11월29일 동인천 지하상가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5~17절 우리 가운데 계셔서 구원을 베푸는 전능하신 용사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원수를 쫓아내고 징벌을 그치게 하며, 남은 백성에게 더 이상 겁먹고 힘없이 손을 늘어뜨리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바라보기만 해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부모처럼, 신부를 바라보는 신랑처럼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고 즐거이 그들을 부르실 것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징계도 받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랑받는 주의 자녀임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인해 즐거이 부르며 기뻐합시다.
18~20절 마음의 근심을 제거하시고, 외부의 위험이 사라지게 하십니다. 이방의 포로 된 자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비난의 대상이던 그들이 이제 부러움의 대상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을 통해 겸손하고 공의를 행하는 ‘남은 자’에게 칭찬과 명성이 자자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1장 1절~3장 8절을 건너뛰고 섣부른 희망을 품어도, 3장 9절 이하를 빼먹고 끝없는 절망에 빠져도 안 됩니다. 회복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우리 마지막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9,10,14~16절 하나님 사랑의 노래에 우리도 정결한 입술로 화답하게 될 것입니다. 화를 초래하는 부정한 입술이고,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함부로 내뱉던 언어에서 서로 짐을 지고 격려하는 말로 변할 것입니다. 저 땅, 남쪽 끝의 구스에서도 함께 예배에 참여할 만큼 칭찬과 명성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변화된 내 언어와 삶이 세상을 찬양의 자리로 이끄는 초대장이 될 것입니다.
12,13절 남은 자는 겸손(곤고)하고 가난합니다. 세상에 반하는 삶을 살다 보니 가난하지만 그럴 때라도 하나님 없이 살 수 없음을 절실히 느끼고 그분만을 의지하기에 겸손합니다. 그들은 남에게 악을 행하지 않습니다. 거짓으로 남의 등을 치지도 않고, 마음에 간사한 말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호 안에서 평안하고 편안합니다. 가난한 이가 하나님 나라를 차지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그들이 땅을 얻을 것입니다(마태복음 5장 3,5절). 세상에 대하여 가난하나 하나님 안에서 부요한 자, 그가 정녕 남은 자요, 복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은 심판 이후에 있을 회복에 관한 내용입니다. 따라서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열방과 유다의 회복이라는 주제로 희망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환난에서 회복으로의 극적인 반전이 있습니다. 본문의 청중은 심판을 견딘 유다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은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열방의 회복, 남은자의 구원, 시온에서 부르는 기쁨의 노래, 회복의 영광 등입니다.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 ‘백성들이 순결한 말을 하게 하여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한마음으로 그분을 섬기게 하겠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그때’는 심판 이후입니다. 또한 ‘입술을 깨끗하게 한다’라는 말은 단순히 좋은 말을 한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한다는 말입니다. 그런 마음이라야 비로소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으며, 한목소리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 ‘에티오피아 강 너머에서 나를 경배하는 사람들, 내가 흩어 버린 사람들의 딸이 내게 바칠 제물을 가져올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내게 구하는 백성들’과 ‘내가 흩은 자의 딸’은 동격으로, 유대인 중에 남은 자를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에티오피아 같은 열방으로 흩어진 유다를 지칭합니다. 따라서 이 말은 ‘이방 열국에 흩어진 유다의 남은 백성들이 돌아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경배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구스는 굳이 에티오피아라기보다는 이집트 남쪽 지역을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 ‘시온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 손에서 힘이 빠지지 않게 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손을 늘어뜨린다’라는 말은 절망이나 낙심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유다의 남은 자들은 그렇게 두려워하거나 낙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의 징계 날이 지나가면 회복되므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의 왕이 되어 보호해 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 ‘이스라엘의 절기를 지키지 못해 고민했던 자들을 여호와께서 모아 절기를 지키게 하므로, 더는 그 일이 치욕이 되지 않게 된다’라는 말입니다. 여호와의 심판을 받아 열방으로 흩어진 자들은 초막 절 같은 절기가 되어도 사실상 그 축제에 참여할 수 없기에 늘 근심하며 안타까워합니다. 그것이 짐이 되었는데, 하지만 여호와께서 인도하셔서 포로지에서 본토로 돌아오게 오니 더는 치욕 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에필로그:
스바냐서는 심판에서 시작되고 심판으로 끝나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 3장인 책이 1장서부터 끝나는 3장까지 오르지 형벌, 분노, 심판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반복됩니다. 하지만 3장 끝부분에 반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입니다. 슬픔 대신 기쁨이, 징계 대신 용서가, 심판 대신 구원이 선포되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치고 하나님의 심판을 말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스바냐는 여느 선지자들보다는 더 철저하게 심판을 예언했으니, 그래서 그 반전은 더욱더 놀랍습니다.
그는 말미에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기쁨과 축제의 날로 바꾸어 놓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즐겁게 부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로 이 책의 백미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원어 의미상 전능하신 하나님은 용사로서 전쟁을 끝내고 승리와 평화를 가져오는 영웅의 이미지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대적을 멸하시고 결국 회복시켜, 나라를 다시 세울 것이라는 선포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심판의 누락이나 보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징계를 다 겪고 포로기를 지나면서 겸손하게 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부르면서 위로와 격려를 받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그 노래는 혹독한 심판을 이겨낸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노래라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맞기 전에 말을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맞고서야 말을 듣는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도 마찬가지, 잃고서야 건강을 찬송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회복을 노래하기 전에 순종을 노래하는 자가 정말 지혜로운 자입니다.
주의 은 두려운 날이 아니요 기쁨의 날입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습3:14)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구원을 완성하시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거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습3:15)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기 원합니다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습3:16)
낙심하지 않으면 우리의 날들이 날마다 새로워질 줄 믿습니다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4:16)
우리가 낙심하지 않을 것은 우리의 믿음이 커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신7:9)
절기만큼이나 확실히 신실하십니다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습3:18)
그렇다면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한다는 것은 뭘까요?
"절기"는 "מועד"(모에드)인데, "정한 때"란 뜻입니다
그런데 "מועד"(모에드)는 "때"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한", "정해진"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올지 안올지 모르는 불확실한 때를 "מועד"(모에드)라 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오는 때를 "מועד"(모에드)라 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오는 계절, 약속하신 시기, 절기 등을 뜻합니다 또한 미리 짠 군호도 "מועד"(모에드)라 부릅니다 "큰 연기가 치솟는 것으로 군호를 삼자"(삿20:38)
특히 모세가 친 장막도 회막, 곧 "אהל מועד"(오헬 모에드)라 불렀습니다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출33:7)
만약 하나님이 임재하실지 않으실지 몰랐다면,
"מועד"(모에드)라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예배할 때 반드시 임하시기 때문에 "אהל מועד"(오헬 모에드)라 부른 것입니다 물론 정말 "מועד"(모에드)인지 아닌지 흔들려 낙심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반드시 복 주시는 "מועד"(모에드)의 하나님입니다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히6:14)
‘겸손하고 가난한 백성을 남겨 두겠다 (12절)’
그토록 기다렸던 다윗의 나라의 재건이 될 ‘여호와의 날’은 그분의 진노와 심판의 시간으로 반전되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분의 신실하신 사랑은 스바냐의 목소리를 통해 예루살렘에서 다시 선포되었고 그들에게 변치않는 그 구원과 회복의 약속이 전해지게 됩니다. 반복되는 창조와 타락, 구원의 역사는 결국 우리에게 임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심판과 영원한 나라를 향하고 있으며 결코 그분의 뜻은 쇠하지 않고 그분의 의로우심의 물줄기는 지금도 우리 앞에 계속 흐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겸손하고 그분을 의지할 가난한 자들(12절)을 남기시고 그분의 거룩이 회복되고 그 의로우심이 높여질 것입니다. 스바냐의 간절함은 악한 왕들 거쳐 태어나 8살에 왕이 된 요시아러 하여금 침몰해가는 유다의 죄악을 깨닫게 했고 우상을 제거하고 그 시대를 여호와께 올려드리는 새로운 개혁을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오늘도 주님으로 인하여 이 땅 가운데 남은 자의 축복을 누리고 그 맡겨진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며 복된 시간으로 채워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네 안에 계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새롭게 해주시고(17절)’
도저히 기뻐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 가운데 기도의 목소리도 낼 수 없는 절망으로 덮여 있을지라도 그 너머의 흔들리지 않는 언약을 붙드는 자들은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계시고 그분은 구원을 베푸시는 용사이시면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 왕으로 그의 자녀들을 한없이 기뻐하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힘을 공급하시는 분이시고 그 돌보심을 거두시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그분을 찬양하고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은 마땅한 일인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모든 죄악과 부끄러움을 덮어주시는 그 대속의 은혜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명성과 칭찬을 허락하시는 그 부활의 능력을 의지하여 기도와 찬양함으로 절망의 늪에서도 회복과 생명을 경험하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스바냐 3:14~20 해피엔딩, 하나님의 끝
진멸하고 진멸할 것이라. (습1:2~3)
멸절하며 멸절하리라.(습1:4~5)
벌할 것이며 벌하리라. (습1:8~9)라고
매우 격한 예언으로 시작한 스바냐 선지자는
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14)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찌어다.(14)
예루살렘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14)라고
권면하며 마지막을 해피엔딩으로 장식하고 있다.
왜 이렇게 노래하며, 기뻐하며, 즐거워 할 수 있는가?
몇 가지 이유를 말씀이 설명해 주신다.
1. 여호와께서 내리셨던 형벌을 면제 하셨기 때문이다.(15)
2. 네 원수를 쫓아 내셨기 때문이다.(15)
3.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15, 17)
4.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 할 것이기 때문이다. (15)
어떻게 해서 여호와께서 내리셨던 형벌이 면제 되었는가?
하나님의 심판이 우상숭배와 교만으로 가득했던 유다를 중심으로
동서남북의 열방들 즉 모압과 암몬, 블레셋, 구스,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교훈을 받지도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뢰하지도 않았던
패역한 고위관료와, 재판장과, 선지자와 제사장들에 대하여 꾸짖으셨던 하나님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8)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12) 말씀하셨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으리라. (롬10:13, 행2:21)
주의 이름을 부를 때 나의 형벌이 제하여 진다.
날 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자.
이러한 죄 사함을 받은 자는 두려워함이 없고.(16)
더 나아가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는 주님을 기뻐하며 찬양하며 즐거워 할 수가 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17)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시고 계시는 것 같다.
나도 하나님께 이런 기쁨을 드리는 존재가 되길 소원한다.
나도 주님의 기쁨이 되길 소원한다.
나를 통하여 당신의 뜻이 이루어 지고
나를 통하여 당신을 향한 참 다운 예배가 있고
날마다의 지성소 예배가 드려진다면
하나님도 나를 통하여 이렇게 기뻐하시 않으시겠냐?
하나님이 나를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게 하는 삶
하나님이 나를 통하여 즐거워 하시는 삶
하나님에게 기쁨이 되어 드리는 삶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하면 온 세상에서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19)
너로 천하 만민중에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2)
약속해 주신다.
하나님으로 부터 인정 받는 칭찬과 명성 얻고 싶다.
오늘의 말씀요약
온 땅이 소멸될 때, 여호와께서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셔서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남은 백성은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며 교만하지 않고 악을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구원을 베푸신 전능자 여호와께서 시온을 사랑하시니 이스라엘은 기뻐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남은 자(3:9~13)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목적은 정결함과 관계 회복에 있습니다. 때가 이르러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진노가 부어지면 기득권에 안주하던 위선적이고 교만한 자들이 모두 쫓겨나고,
악과 거짓이 없는 자들이 남아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할 것입니다. 정결하게 된 예루살렘에서는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 곧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깊이 깨닫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이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비록 화려한 성전과 장엄한 제사 의식은 사라지고 없지만, 남은 백성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며 새 노래로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위선적인 종교 형식에서 벗어나
상한 마음으로 드리는 눈물과 헌신의 예배를 원하십니다. 천국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의 소유입니다(마 5:3).
- 묵상 질문: 어떤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가 되나요?
- 적용 질문: 하나님만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교만하고 위선적인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구원과 회복의 은혜(3:14~20)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유다 백성은 이방에 사로잡혀 부끄러움을 당하지만,
죄의 대가를 치른 후에 그들이 받는 은혜는 이전의 모든 아픔을 상쇄하고도 남습니다. 저는 자, 쫓겨난 자,
수욕받는 자에 불과했던 남은 자들이 온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명성을 얻을 것입니다.
회복될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전이나 가나안 땅, 유대인이라는 장소와 혈통의 제약을 뛰어넘어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임재와 동행의 복을 누립니다. 전능자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이는 돌판에 새겨진 모세의 언약을 능가하는 새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왕 중의 왕이요,
구원을 베푸시는 전능자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인생이 가장 복된 인생입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은 곧 심판받을 유다 백성에게 어떤 약속을 미리 주시나요?
- 적용 질문: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가 함께하심을 믿을 때, 고난에 대한 마음가짐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오늘의 기도
제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열심을 신뢰합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고난을 통해 제 안의 불순물을 제거하시고,
겸비하고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저를 세우소서.
스바냐 성경은 '여호와의 날'이라는 심판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래서 어둡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마지막 부분은 매우 밝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는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절규'가 필요합니다. 그 절규가 있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게 되고 하나님은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지극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이 사랑이 비극으로 끝나지 않도록 우리가 그 사랑에 마음을 열기를 기도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부족하고 연약한 저희들을 기뻐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즐거움을 구하는
그 신실하신 손길 아래 오늘도 안심하고
경외함과 순종으로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그 놀라운 사랑과 은혜 가운데 주님 가신 길을 감사함으로 따라가는
거룩하고 성령 충만한 제자로 살아가도록 선하게 붙들어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며
저 북녘땅의 백성들이 전심으로 여호와를 높이고
예배하는 부흥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날마다 깊이 생각하고 변화를 받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