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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선을 벗고, 십자가 앞에 (렘2-3)
2026년 9월 22일 (화요일)
찬양 : 십자가 그 사랑
본문 : 예레미야 3:1-25절
☞ https://youtu.be/CvHYRHnw_fo?si=wcAwRlUrgeoFbtkB
어제는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여 밤늦게 들어왔다. 소중함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지만 우리에게 행복과 보람을 준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기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오늘은 사단법인 라마나욧선교회 이사회가 있다. 이제 라마나욧선교회 소속으로 행하는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늘 함께하고 지지해 주시는 이사님들에게 진심의 감사와 존경을 보내드린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기에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오늘 본문 예레미야 3장에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반복하여 말씀하고 있다. 2절에는 네가 행음하지 아니한 곳이 어디 있느냐 말씀하실 정도다. 그 죄악으로 단비가 그쳤고, 늦은 비가 없어졌으나 그 수치를 알지 못한다고 탄식하신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로 앗시리아에게 멸망당해 포로로 끌려간 사실을 하나님은 이혼증서를 주어 내쫓은 것으로 8절에는 표현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다는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아니하였다고 한다. 20절에는 너희가 확실히 나를 속였느니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11절에서 이스라엘이 나를 배신하였지만, 신실하지 못한 유다보다는 낫다고 하시면서 유다의 종교적 위선 행위를 엄중하게 선포한다.
그리고는 전혀 뜻밖의 말씀을 전하신다. 12절
‘너는 가서 북을 향하여 이 말씀을 선포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배역한 이스라엘아 돌아오라 나의 노한 얼굴을 너희에게 향하지 아니하리라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북쪽'은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그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간 앗시리아 제국이 있는 방향이다. 역사적으로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져 이미 지도상에서 지워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힌 지 100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다.
세상과 남유다의 눈에는 완전히 끝난 자들,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지만, 하나님은 포로로 끌려가 사는 북쪽에 있는 그들을 결코 잊지 않으셨다. 인간의 반역으로 언약이 깨진 것처럼 보여도,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시선은 여전히 그들을 향해 있음을 보여주는 놀라운 말씀이다.
물론 하나님은 그들의 영적 상태를 '배역(背逆)'했다고 명확히 규정하신다. 우상숭배로 남편인 하나님을 철저히 배신한 음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율법의 잣대로는 결코 다시 돌아올 자격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자격 없음을 아시면서도 무조건적으로 "내게로 돌아오라"고 명하신다.
이것이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내게 큰 울림을 준다. 전후 맥락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하나님이 이렇게 하실 이유가 하나도 없다. 율법의 논리대로라면 이스라엘과 유다는 영원히 버림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부르시는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분노는 맹렬하여 결국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지만, 그 진노는 백성을 멸망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정결케 하여 돌이키게 하려는 징계였음이 분명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는 하나님은 자신을 이렇게 드러내신다.
<나는 긍휼이 있는 자라. 노를 한없이 품지 아니하느니라>
이 고백은 하나님의 본심이 심판에 있지 않고 자비와 구원에 있음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과정이다.
오늘 묵상의 최고의 자리는 11절과 12절의 연관성이다.
당시 남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자신들에게 있고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도 있었기에, 북이스라엘과는 달리 자신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영적 정통'이라는 엄청난 교만과 우월감에 빠져 있었다.
종교개혁을 했지만, 그것은 진심이 아니었다고 하나님은 판단하신다. 10절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때 하나님은 북쪽, 즉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가 철저히 낮아지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의 대가를 경험한 자들을 향해 돌아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나 죄를 짓고도 종교적 위선으로 자신이 죄인인 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유다의 종교적 위선을 발가벗기고 그들에게 극심한 영적 수치를 안겨주어 깨어지게 하려는 목적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13절에서 종교적 위선이 아니라,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고 외친다. 그 구체적인 죄악은 여호와를 배반하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놀라운 말씀을 전하신다. 14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내가 너희를 성읍에서 하나와 족속 중에서 둘을 택하여 너희를 시온으로 데려오겠고’
<나는 너희 남편임이라>
율법의 규정으로는 이미 끝이 났음에도 하나님은 당신이 세운 언약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견고히 붙들고 계심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친히 소수의 남은 자들을 돌아오게 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가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목자를 주시겠다고 언약하신다. 15절
‘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을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주목해야 할 것은 <내 마음에 합한 목자들>이란 표현이다. 이것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신 것이며,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실한 종들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이루어 갈 것을 예언하신 것이다. 16절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
언약궤가 무엇인가? 당시 유다 백성에게 '언약궤'는 신앙의 전부이자 국가의 심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때 그들은 <언약궤가 있는 한, 우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맹신에 빠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려 다섯 번에 걸쳐 반복하면서 언약궤가 완전히 폐기될 것을 선언하신 것이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가 온전한 언약궤이시며 속죄소가 되시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는 지성소라는 작은 공간이 아니라 예루살렘 전체가 하나님의 보좌가 될 것이라고 17절은 선포한다. 더 나아가 이때에는 그들의 악한 마음의 완악한 대로 그들이 행하지 아니할 것이라 선언한다.
즉 성령을 통한 새 마음으로 율법이 하지 못했던 새로운 자유를 선포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오늘 주님은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은 긍휼이 있으신 노를 한없이 품지 않으시고 우리가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묵상하게 된다. 언약의 규정대로라면 이미 끝났지만, 하나님은 북왕국 이스라엘을 기억하셨고 돌아오라고 명하셨음이 매우 큰 울림을 준다.
아울러 진심이 담기지 않은 회개, 거짓된 종교적 위선의 행동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짐과 같은 것인지를 주님은 오늘 내게 말씀하신다.
오래도록 목사의 자리에 있으니, 늘 말씀을 대하고 전해야 하는 내게 가장 무서운 것은 종교적 위선이란 사실을 깊이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오늘 이사회를 통해 나의 은퇴를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시간, 주님은 종교적 위선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내게 말씀하심을 느낀다.
목사가 아닌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한 한 사람으로 서기를 주님은 내게 원하신다. 그리고 주님이 주인 되신 주님의 나무에 붙어있는 자로 나아가기를 소망하심을 깊이 묵상하게 된다. 주님, 나는 주 없인 살 수 없는 자입니다. 오늘도 주의 성령이 나를 감화하지 않으면 내 속에서 올라오는 죄악을 이길 수 없으며, 확실히 주님을 속인 자로 살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 주님의 긍휼과 은혜로 오늘도 살 수밖에 없는 죄인이오니 이 하루도 주님이 이 종을 긍휼로 붙잡아 주시고 인도하소서. 오직 주님을 붙잡고 주신 말씀을 기억하며 순종하는 삶으로 나아가겠습니다.
한줄 묵상 :
<모든 종교적 위선의 껍데기가 벗겨지고 내가 완전히 파산한 죄인임을 깨닫는 그곳이, 십자가의 은혜가 시작되는 진정한 지성소다.>
적용 질문 :
1. 나는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이라는 '현대판 언약궤' 뒤에 숨어, 내면의 완악함을 가리는 거짓된 위선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
2. 율법으로는 자격 없는 나를 "돌아오라" 부르시는 주님의 불가항력적 은혜 앞에, 내가 오늘 아무런 핑계 없이 정직하게 자복해야 할 죄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