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끝마칠때까지..
전 운동화를 신어보지 못했습니다.
늘 검정 고무신에 단발머리...
옛날 사진에 실려 나오는 꾀죄죄한 모습의
어린 여자아이 ..
그 모습이 영락없는 내 어릴 적 모습입니다.
모두가 수학여행간다고 들떠 있을때
전 일찌감치 포기하고 있었지요.
수학여행 갈 만큼 생활이 넉넉한 편도 아니었고
또한 딸이라는 이유로 보내 주실리도 만무했고요..
대신 부모님이 100원을 용돈으로 주시더라고요..
수학여행 못 보내는게 미안해서인지..
선생님이 가지않는 학생들도 등교하라시길래
평상시 모습으로 학교에 등교를 했습니다.
모두가 예쁜 새 옷에 새 운동화...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제게 오시더니 수학여행 가는 학생들과
합류 하라고 하시더군요,
부모님께는 연락이 다 되었다고 하시면서요..
엉겹결에 입던 옷 그대로 검정고무신을 신은 채로
합류를 하게 됐지요.
그 당시 제가 학급의 반장을 맡고 있었는데
선생님께서 그냥 두고 가기가 안타까워
함께 가자고 했었나 봅니다.
교무실 앞에서 내 손에 200원을 쥐어 주시면서
용돈을 하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합류를 하긴 했지만 내 마음은 편치가 않았습니다.
옷도 초라했지만 그보다는 검정 고무신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수학여행 도중 사진을 찍는데 여자들만 한 줄로 나란히 앉아서
다리를 쭉 뻗으라고 하는데
내 발만 새까매서 얼마나 부끄럽던지요..
도저히 그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해 수학여행 중간지점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주길래 어느 신발가게를 찾아 갔지요.
운동화를 한 켤레 골라 가격을 물으니 350원이래요.,
내 호주머니에는 부모님이 주신 100원과
선생님이 주신 200원..도합 300원밖에 없는데...
지금 같으면 깎아 달라는 말이라도 해 보는건데..
그 때는 너무 어려서일까요..?
깎아 달라는 말도 못하고 50원이 모자라서
그 운동화를 만지작 거리다 그냥 가게를 나왔지요.
가게앞을 나와서도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그 가게만 바라보며 서성거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올 여름... 단양에 6학년때 담임 선생님 찾아 갔을때
저녁 먹으면서 꺼냈었지요.. 웃으면서요..다 지나간 추억이니까요..
그런데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에구,,,그랬니..? 그것까진 몰랐네...나에게 이야기를 하지..."
마음 아파 하시는 걸 보니 내가 괜히 이 이야기를 꺼냈구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더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검정 고무신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내가 왜 그때는 그게 그렇게도 부끄러웠을까...싶기도 하고요.
나이들어 그 때를 회상해 보니 그것도 내게는 정말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저처럼 검정 고무신 신고 수학여행 간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을 듯 합니다.
만일 계시다면...동병상련의 아픔 같이 나눠 보자구요.......
첫댓글 그래도 초등학교는 좋은데 다녔나 봅니다? 저는 어려서 소풍은 다녔지만..수학여행은 고등학교 에서나 다녓는데요...검정 고무신 한번 안신고 큰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겨울에 양말도 못신고 다닌 아이들도 많았는데요.점심 못싸오는 아이도....그 담임 선생님은 부처가 환생 하셨나 봅니다.
1박 2일로 도일주 여행이었어요.. 루치아노님도 신어 보셨나 봐요..ㅎㅎ그 선생님이 부처가 환생하셨나보다...라는 글에 그만 웃음이....ㅎㅎㅎ 그러게요...제게는 정말 은인이시지요..
반장까지 했던 딸래미를 운동화 한켤래 안사주시고 수학여행도 안보내주시고 참말 야속하십니다..아들밖에 모르셨다는 아버님 너무하셨어요..ㅎㅎ
시골환경이 다 그런걸 어쩌겠습니까..그래서 전 딸을 우선시 하며 키웠습니다..내가 받은 설움을 대신해서...ㅎㅎ
같이 올리신 글이 사라져 버려서 깜짝 놀랐습니다. 같은 시간대에 올린 저하고 무슨 연관성이 있는건 아니시지요..? 괜히 걱정이 되어서요..
ㅎㅎ 희야님 미안해요..다시 읽어보니 너무 유치해서 내렸어요..답글을 봤으니 고맙구요, 양해 바랍니다..다시는 안그럴께요..ㅎㅎ
검정고무신은 보기만 했지요..흰고무신은 신어봤는데 낑겨 주실랍니까?..담임 선생님이 참 사려깊으신 분 같네요~~~ㅎ
글쎄요..바람둥이는 끼어 줄 수가 없는데...ㅋㅋ 그래도 흰고무신이라도 신어 보았다니까...저 구석에 가서 앉으시지요..ㅎㅎㅎ네..좋으신 선생님 맞습니다..
옛날 생각나네요... 지금 초등동기회회장인 친구.... 조회시간에 쓰러져서 (이틀 굶고) 그 뒤 얼마간 담임선생님이 도시락을 두개 사오셔서 친구에 줬지요.. 그걸 기억하는건 그 친구뿐... 3년전에 그 은사님을 찾아 부둥켜안고 울고...옛날의 은사님들은 뭔가 달랐던 느낌입니다.
그 친구분 마음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그걸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이해 되고요..얼마나 고마웠을까요..그건 겪어 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그런 고마움이니까요..각박해진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찾아보면 예전 선생님들처럼 따뜻한 마음을 가지신 선생님 분명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 보게 되네요..
그래요.. 그 친구가 얼마전 부산 xx구 해병전우회 회장을 하며 자기 어려울때를 생각하여 봉사활동도 참 많이 했던 친구입니다. 그리고 가난의 대물림을 않기 위해 큰 딸은 약사로, 둘째는 의사(인턴중)로 키웠습니다.
글을보고 있노라니 옛날 드라마 한편 보는 기분이내여.그때는 누구나 다같이 평범하며 순수함이있고 좋았는데...검정 고무신.신어보진 못했지만 ~언니의 걸음걸음이 희망이고 보물이지 않았나 싶습니다.언니에게 깊은 배려를 하신 샘께 존경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앵커님은 그래도 좋은 환경에서 자랐네요..검정 고무신을 아예 안 신어 봤다면요..시골에서도 반은 운동화 반은 검정 고무신...그랬던것 같아요. 앵커님에게 언니 소리도 들어보고..ㅎㅎ 네..고마워요..그 선생님께 존경을 표해 주셔서..지금도 중고등학생들을 집에서 가르치고 계시더이다..
검정 고무신 정겹게 들리네요.ㅎㅎ~~운동화 값이 350원이라!~ㅎ 기억도 좋으십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영원히 기억에 남는 일들이 더러 있네요..지금은 어제일이 깜빡깜빡 하면서도...절대 잊혀지지 않을것 같은데요...그 가격은...ㅎㅎ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니면 발등이 새까맣게 되는데 운동화 사러 같다가 챙피헤 죽는줄알았네 초딩 이맘때네 아그리운 그시절
용천님도 신어 보셨구나...ㅎㅎ 그 창피함 저도 느껴져요..그래도 추억이 되었잖아요..이젠 창피함 보다는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해 보입시더..ㅎㅎ
청주 덕성초등학교 2년때 엄마가 사준 검정고무신을 신고 내덕성당을 갔다 미사끝나후에 검정고무신을 찿으니 없어 바닥에 앉아 울고 있는데 미국수녀님이 어눌한 한국말로 울지마 내가 새신사줄께 하며 내손을 잡고 가게에가 흰고무신을 샀어요 사랑과 봉사정신이투철한 수녀님의 나라 미국이 내겐 좋은나라로각인이 되어요 그런데 미국소 미친소하며 미국쇠고기먹으면 광우병걸려 죽는다는 친북좌파와 야3당수뇌부의원들 헌법절차에의해 탄생한 MB정권을 몰락시키려는 행위는 헌법을 부정, 적화통일야욕의 북한에 친북하는 친북좌파세력과 연대는 국가내란 예비음모협의로 처벌받아야지요 검정고무신의추억이 그립습니다
검정고무신보다는 흰고무신이 한 단계 위였으니 격상이 되셨네요..ㅎㅎ 수녀님들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 봉사정신이 투철하신 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님과 같은 정치성향을 갖고 있긴 하지만 여기 샘터방에서는 되도록 정치 이야기는 배제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그냥 제 생각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부럽습니다. 운동화라는 걸 중학교 졸업하고 신어봤습니다. ㅎㅎㅎ
웅아범님은 거짓말 같아요..ㅎ 중학교 교복에 운동화 신어야 되는데..
찢어진 고무신을 힌실로 꿔매면 이 가 소풍간다 했네요 저도 중때 운동화 첨신었네요
아하...이가 소풍을 간다는 표현이었군요..ㅎㅎ 뜻을 몰라 한참을 멍해 있었네요..ㅎㅎ 우리때는 머리에 이가 많았으니까요..이 검사하는 날은 일부러 지각도 하곤 했었는데..ㅎㅎ저도 중학교때 처음 신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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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으로 바라보는것과 실제 경험은 아마 큰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어요..검정과 흰색의 차이도 크고요..살아 오면서 제게 가장 큰 은인은 그 선생님이셨다는 걸 늦게나마 깨닫게 되어 다행이랍니다.
4학년 학기초에 엄마가 저 세상에 가셔서 ...고향집으로 내려갔어요...그리고 고향마을에서 한 오리쯤 떨어져있는 학교로 전학을 갔어요.... 넘넘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져....초등학교 6학년 학기초에 다시 설로 왔으니까 ...불과 2년만 고향에서 살었지만.. 지금도...그 친구들과 가장 친하게 지내요.... 마치 제 친구같은 느낌이 드는 heeya님 이신거아세요.... 반가워요 heeya님 ^^ 넘 진솔한 글 가슴이 뭉클해서요..
너무 어릴적 엄마랑 이별 하셨네요..제가 다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도 씩씩하게 살아 오셨는데 전 부모님 밑에서 살면서 고무신 타령이나 하고 있었으니..ㅎㅎ좋은 마음으로 바라 봐 주셔서 고맙습니다..나무님..
heeya님의 글을 읽고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몸이 많이 약했던 저는 담임선생님의 측은한 제자였지요... 전 검정고무신이 아니라 맨발로라도 가고 싶었던 소풍이 있었는걸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아무도 믿지 않는 건강한 중년으로~~ ㅎㅎㅎ 저도 몇년전 선생님을 뵙고 감사했다는 말씀드렸습니다... 그땐 슬펐는데...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 미소지으며... 그치요???
지금 현재 건강하다는것..그게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요..?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거늘.. 직접 겪을때는 혼자 부끄러워 하고...ㅎ 왜 그랬는지...아마도 너무 어려서였으리라..생각해 봅니다. 선생님 뵈니 무척이나 반갑던데..담채화님도 제 마음과 비슷했으리라 느껴집니다.
제가 얼마전에 어떤 님이 쓰신 글(아마도 시골 풍경에 관한시)에 댓글로 '제가 서정적인 시, 글을 못쓰는 이유가 시골에서 자연과 접해서 살아보지 않아서 인 것 같다'고 글 못쓰는 변명을 한 적이 있어요. 물론 그건 웃자고 한 이야기고요. 요즘 님의 이런 글 그리고 공감하는 댓글들이 제 자신 어릴 때 너무 안이하게 살았구나 하고 조금 창피한 생각이 들게 만드는군요.ㅎㅎ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쓸 이야기가 많은것만은 확실한데..다시님이 창피한 생각이 들다니요..다 살아 온 과정을 글로 표현해 내다보면 아름답게 보이는게 아닐까요? 추억이 깃든 삶이기에..시골삶은 시골삶대로 도시의 삶은 도시의 삶대로...다시님은 도시에서 살아 온 삶을 표현해 주시면 되는데...ㅎ
아직 잊지 못할 초등학교1학년때 선생님을 다시 보고싶은데 오래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맘이 아프던지요 ~~
네..그러네요..살아 계셨더라면 반가운 만남이 되었을텐데요.. 잊지 못할 선생님 한 분이라도 내 마음 안에 남아 있다는것...그것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 당시 지방에서는 우리또래면 남자.여자아이 할 것 없이 검정고무신을 신은애들이 많았답니다. 검정고무신으로 기차놀이도하고 논에서 올챙이도 잡고 했지요..저는 고무신을 벗으면 발가락은 하얗고 발등만 새까만것이 되게 부끄럽던데..주로 기차표 동양고무에서 나온 고무신을 많이 신고 다녔는데 질기기는 정말 질기데요..올 만에 어릴때 추억이 되살아 나네요..
맞아요..기차표 동양고무신...ㅎㅎ 나만 부끄러웠던 게 아니었구나...난 나 혼자만 그런 경험 해 본 사람마냥 이렇게 글도 쓰고 그랬네요..논에서 올챙이 잡을때 정말 중요한 도구가 되었겠네요..ㅎㅎ 님 댓글에서 풍요로운 들판을 연상해 봅니다..
해리포터님.. 오랫만이네..
형님.. 잘 계시지요? 변함없이 활기차게 생활하시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항상 건강 하시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