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포구 목도리
전날 진북 상생활력센터에서 목공 강좌를 수강하고 온 시월 마지막 주 화요일이다. 잠에서 깬 새벽녘 ‘우드 버닝화’를 남겨 지인들에게 안부로 전했다. “판재를 화지 삼아 밑그림 그려 놓고 / 먹지를 아래 깔고 펜으로 꾹꾹 눌러 / 새끼와 어울려 노는 어미상을 본떴다 // 전원에 달구어진 인두를 붓끝처럼 / 바깥쪽 윤곽 따라 살려본 음영인데 / 솜씨는 서툴지라도 최선 다해 그렸다”
날이 밝아오는 여명에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어 창원천 수변 산책로 운동 기구에 한동안 몸을 단련했다. 부전역을 출발해 순천으로 가는 열차가 물금을 지나 삼랑진을 거쳐 올 때였다. 창원천 상류에서 창원대학 캠퍼스를 관통해 창원중앙역으로 올랐다. 정한 시각 다가온 하동행 무궁화를 타고 긴 터널을 몇 개 거치면서 마산과 함안을 지나 진주로 향했다.
터널로 컴컴하거나 차창 밖 풍경은 익숙한지라 객석을 열람실 삼아 배낭에 넣어간 황금비가 쓴 ‘숲으로 출근합니다’를 펼쳐 읽었다. 글쓴이는 강릉 바닷가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첫 직장 신문사 기자는 10여 년 만에 그만두고 미디어 플랫폼으로 옮겼다. 거기서 얼마간 이력을 붙여 낙향하다시피 천리포수목원에서 일했다. 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 의사 다이어리였다.
하동역에 내려 이번 트레킹 구간은 여러 차례 다닌 섬진강 강변에서 방향을 다르게 했다. 그동안 평사리 일대 강변 모래밭에서 송림까지 나눠 걸었다. 화갯골로 들어 쌍계사 불일폭포 등정이나 의신계곡 서산대사 숲길을 걸은 적 있다. 구례로 올라 화엄사나 피아골 연곡사를 답사하기도 했다. 남도대교 건너 수달 생태 보호 구역을 걷거나 광양 다압 매실농원 앞을 지나기도 했다.
이번에는 하동역에서 송림공원 강가에서 하류 구간으로 걸을 참이다. 외진 농가와 농지를 지나 섬진강대로 건너 강가로 나갔다. 송림에서 파크골프장에 더 아래로 내려간 강 언저리를 따라가니 저구마을이 나왔다. 농가보다 어가로 봐야 할 강변 시골집이 몇 채 나왔다. 농지가 없고 강에서 재첩을 잡아 생계를 잇는 사람들이었다. 포구에 배가 묶인 인적 없는 마을 앞길을 걸었다.
저구마을 곁으로 강변보다 지대가 높은 언덕 따라 국도가 지나는 좁다란 길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니 목도리 어촌계가 운영하는 선착장이 나왔다. 섬진강 유역에서 어촌계가 있을 정도였으니 재첩잡이 규모를 알 수 있었다. 재첩은 섬진강 중류 악양에서부터 읍내리를 거쳐 오며 강마을 포구마다 잡아 올렸다. 거기보다 하동 포구가 가까운 하류 유역에서 대규모로 어로가 이뤄졌다.
평사리나 읍내리보다 유속이 느려지고 강폭이 넓어진 하류였다. 강심으로는 하동과 광양을 잇는 2번 국도 섬진강대교가 아치를 그리면서 걸쳐 지났다. 교량이 지나는 교각 아래 하동포구 목도공원 쉼터에 앉았다. 강가는 꽃이 핀 물억새와 갈대가 바람에 쓰러질 듯 흔들렸다. 강심에는 동력선 두 척이 방향을 엇갈려 오르내리면서 써레와 같은 긁개로 강바닥의 재첩을 건져 올렸다.
배낭에 챙겨간 삶은 고구마를 먹으며 곡차를 비웠다. 쉼터에서 일어나 강변으로 내려가니 해송이 숲을 이룬 공원은 횡천강에 닿았다. 샛강에 놓인 횡천교를 지나니 신월 습지와 대숲이었는데 산책로 데크는 보수 중이라 둔치로 내려서지 않았다. 갈대가 색이 바래지는 포구 물길 바깥은 남해도가 가린 은빛 윤슬로 비치었다. 발길을 돌려 갔던 강 언저리를 되짚어 목도리를 지났다.
포구에는 쌓인 재첩을 부려 선별기서 모래와 작은 돌을 가려내느라 손길이 분주했다. 하동역으로 돌아와 귀로 열차에서 ‘하동포구 재첩’을 남겼다. “평사리 섬진 물길 목도리 이르도록 / 강기슭 포구마다 재첩을 건져 올려 / 대대로 생계 이어온 고깃배를 띄운다 // 동력선 물살 갈라 강바닥 긁개 끌어 / 모래는 씻어 내려 자잘한 패각 벗겨 / 조갯살 담백한 국물 미식가를 홀린다” 26.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