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 올림픽을 할 때도, 1996년 12월 12일 OECD 회원국으로 가입할 때도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었다고 언론은 늘 떠들었다. 중요한 국제행사를 치르거나 권위 있는 국제기구에 가입하는 것만으로 선진국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참 학교다니던 시절 나는 어른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했다. 그렇지만 별로 인정해주지 않는데 그냥 스스로 잘했다고 하는 것 같아서 억지스러럽다는 기분은 지울 수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선진국이 된 것 같다. 경제사회적 수치로 우리는 우월해졌고, ‘대한민국은 선진국이야’라고 애써 말하지 않아도 많은 나라에서 우리를 선진국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선진국 맞아? 라고 누가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선진국이 되려면 뭔가 많이 아직도 할 일이 많은 것 같아서 이다.
이런 의문이 들 때 읽어본 <눈 떠보니 선진국: 앞으로 나아갈 대한민국을 위한 제언>은 선진국이 되기 위해 어떤 점을 채워나가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통찰과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었다. 저자는 우선, 선진국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묻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인센티브 시스템, 교육, 경로의존성, 재정정책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그리고 나서 저자의 전문영역인 ICT분야를 중심으로 미래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소제목 속의 모든 내용이 다 의미가 있었지만 나는 두 가지 점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는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정의’를 내린다는 것이라고 한 부분이다(‘정의(定義)하는 사회-백서(白書)보다 녹서(綠書)를!’). 세계 최고의 후발 추격국 한국이 빠른 속도를 앞선 나라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베끼고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 최선이었기에 ‘무엇을’, ‘왜’를 묻을 필요가 없었고, “정답은 늘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었다. ‘왜’라고 물어본 적이 없이 수 십년을 ‘어떻게’를 풀며 여기까지 왔다”(본문 p.15) 라고 하면서, 독일의 사례를 들어 선진국이 된 지금은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유럽연합은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사회 전체의 토론을 요청하는 녹서(綠書)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는데, 독일은 4차산업혁명에 대응하면서 <노동4.0>이라는 백서(白書)를 발간하기 2년 전에 <산업4.0>이라는 녹서(綠書)를 내놓고 전 독일사회의 토론과 의견 개진을 요청하였다.
저자는 우리의 앞보다 뒤에 훨씬 많은 나라가 있고, 베낄 선례가 점점 줄어드는 상태가 선진국이 되어가는 것인데, 이런 상황에 놓인 우리는 중요한 이슈들을 해결할 때, ‘그 이슈가 대체 무엇인지’,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를 정의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긴 호흡으로 멀리 보아야만 합리적인 해결책도 마련할 수 있고 선진국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우리의 취약점 '왜'와 '무엇을'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두 번째는 한국 교육의 치명적인 3가지 결핍을 언급한 부분이다(‘AI 시대의 교육-한국교육의 치명적인 3가지 결핍’). 저자는 빠른 성과를 내기 위해 기본은 건너뛰고 기교만 가르치는 교육(‘기본이 없다’), 운동을 소홀히 하는 교육(‘움직임이 없는 아이들’), 문해력, 대화, 토론 능력을 키워주지 못하는 교육(‘근거가 없다’)을 콕 집어 내었다. 문제를 푸는 기교만 가르치고 운동 따위에 신경쓸 시간에 단어하나 더 외우라고 하는 교육, 남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도 제대로 못하는 어른들이 활개를 치는 현실이 3가지 결핍과 연결되어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미래의 자산인 아이들을 온전한 사회구성원으로 키워내는데 기여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교육의 치부를 가장 잘 드러낸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책을 덮고 나니, 물은 땅이 패인 모양을 따라 흐른다고 한 저자의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좋은 모양으로 이랑과 고랑을 만들어 아이들의 미래를 더 밝게 만들고 지금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의무가 우리 시대 어른들에게 있다는 생각도 함께 해본다.
첫댓글 우와.. 인상깊게 읽은 부분이 저랑 많이 겹쳐서 반가워요. 특히, 물은 땅이 패인 모양을 따라 흐른다는 부분이오.
"한 사회의 자원 배분의 요체는 그 사회의 보상체계, 즉 인센티브 시스템을 어떻게 만드는가에 달려 있다. 돈도, 인재도 그 사회가 파 놓은 보상 체계의 물길을 따라 흘러간다. 잘못된 인센티브 시스템은 사회의 영혼을 망가트린다." (p.73)
핵심적인 세 부분을 잘 설명해주셔서 감사해요.
교육 문제도 정말 공감가네요.
글을 읽으니 이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시스템을 잘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과 토론이 필요하겠다 싶어요.
저도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선진국이란 과연 뭘까 생각하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