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둑길 들녘을 지나
시월 하순 수요일이다. 주중 수요일과 목요일 이틀은 농촌활성화센터가 주관한 각기 다른 강좌 수강으로 대산 나눔문화센터로 나간다. 수요일은 지역 해설사 강좌이고 목요일은 실크플라워 강좌다. 둘 다 오후 시간대임에도 자연학교를 먼저 다녀야 해 아침 일찍 등교한다. 이른 시간 명곡교차로로 나가 대방동에서 출발해 온 본포 방면으로 가는 30번 버스를 타고 교외로 향했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동읍에서 곡목과 동전을 거쳐 용산에서 내렸다. 용산마을에는 가전제품 부품을 만드는 작은 공장이 하나 있는데 시내에서 젊은이가 둘 출근했다. 작년까지는 처녀 둘이 다니더니 올해는 총각으로 바뀌었다. 그들을 앞서서 보내고 산남저수지와 주남저수지를 짧은 목으로 배수문이 연결된 둑길을 걸으며 좌우 풍경을 바라봤다. 아침 안개가 끼지 않아 시야가 멀었다.
두 저수지 수면으로는 여름내 화사하던 꽃송이로 피고 지던 연이 끝물 잎사귀를 보여주었다. 최근 낮아진 기온으로 우리 지역에 무서리는 내려도 된서리가 오지 않았는지 연잎은 푸르름을 간직했다. 늦가을이 되어 연잎마저 갈색으로 시들면 베이스캠프를 겨울 철새들의 오글거리는 놀이터가 될 테다. 아득한 저수지 수면 남쪽으로 동읍 아파트단지와 정병산 산그늘이 수면에 비쳤다.
용산마을 골목을 지나 데크 산책로를 따라 주남저수지 둑길을 걸을 때 선발대로 내려온 재두루미가 V자 편대로 머리 위로 날아갔다. 짧은 둑길이 철새 모양 외관을 띤 화장실이 설치된 배수문을 지나 더 길고 곧은 둑길이 이어졌다. 가뭄이 지속된 지난여름 수위가 낮아져 바닥까지 드러난 주남저수지는 근래 내린 비로 수위가 높아졌다. 철새가 날아와 머물기는 지장 없을 듯하다.
둑길 언저리 내년 봄에 꽃을 피울 유채가 파릇하게 자랐다. 저수지 안쪽 비탈과 경계면에는 물억새가 이삭이 나와 가을 운치를 더해주었다. 둑길에서 바라보인 들판은 벼수확이 덜 되어 황금빛이 남은 구역도 보였다. 백양마을 근처 빈 논에는 남녘으로 먼저 내려온 재두루미가 먹이활동을 하고 있었다. 멀찌감치 떨어진 농로에서는 차를 몰아온 한 사진 작가가 렌즈 초점을 맞췄다.
해마다 주남저수지를 찾아온 겨울 철새는 기러기류 개체수가 가장 많고 고니류가 뒤따른다. 그밖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재두루미가 진객 대접을 받는다. 잿빛 깃에 목이 길고 머리에 붉은빛이 감싼 재두루미는 삼백 마리 정도 찾는다. 녀석은 밤이면 주남저수지 수면에서 잠을 자고 날이 밝아오면 들녘으로 날아가 추수를 끝낸 논에 떨어진 낱알 곡식을 먹이로 삼아 하루를 보낸다.
긴 주남지 둑길에서 낙조대에 이르러 주천강 물길이 시작된 배수문에서 포장된 길을 따라 주남 들녘을 지났다. 들판에서는 추수기를 맞아 콤바인을 굴러가며 벼수확이 이루어졌다. 먼저 벼를 거둔 논에는 축산 사료로 쓰일 볏짚이 공룡알처럼 생긴 둥근 다발로 뭉쳐져 비닐로 감싸져 있었다. 신동마을에서 장등마을을 거쳐 가술에 닿아 대산 평생학습센터 도서관 열람실로 올랐다.
거기서 창원도서관 대출 도서로 이서원의 ‘숙제 같은 인생을, 축제 같은 인생으로’를 읽었다. 저자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전문 상담가로 몇몇 대학에서 강의와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한다. 나는 글쓴이가 스승으로 모신 1세대 정신과 전문의 이근후 박사 저서도 다수 읽은 바 있다. 아흔이 넘은 이 박사는 눈이 실명 단계여도 요양사 도움으로 구술로 받은 내용이 책으로 엮어 나온다.
오전을 열람실에서 보내고 밖으로 나와 점심 식후 나눔문화센터로 가 지역 해설사 과정을 공부했다. 이번 주는 지난 시간 마을 지도에 포스트잇으로 메모해 둔 지점에 상세 정보를 더했다. 유청리 이장과 창원향토자료관 관장을 모셔 지역에 얽힌 여러 가지 내용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앞으로 네댓 차례 지역 정보를 더 보완해 AI와 컴퓨터 그래픽으로 한 장의 마을 지도를 만든다. 26.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