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쟁이와 참교육학부모회
우리주부의 하루는 밥상을 차리며 시작해서 밥상을 차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 오죽하면 달리 부르기를 밥쟁이랄까. 한때, 밥쟁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를 서글픔에 발끈하곤 했었다. 밥하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여자라는 이 말 속에는 주부에 대한 폄하되고 왜곡된 인식이 투영되어 있었다. 오죽 못났으면 변변한 직장도 없이 밥하는 일에나 종사하게 되었을까 하는 비웃음이 그 말 속에 담겨 있었다. 주부로서의 내 '밥쟁이' 이력도 올해로 17년이다. 하지만 '쟁이'가 무엇인가. 표준어로는 '장이'라 한다지만 우리 지역의 익숙한 발음으로 '쟁이'라 하면 한정된 공간에서 수공업적인 기술로 이것저것 만들어내는 솜씨꾼을 말한다. '꾼'이라는 말이 오랜 세월 하나의 일에 종사해오며 생산적인 노동과 적극적인 삶을 일구어 온 사람을 이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밥쟁이는 장인이다. 밥 한 그릇 제대로 먹이자면 식단을 짜는 일에서부터 재료 선별과 구입, 조리와 세팅에 보관까지, 하루 종일을 투자해도 모자란다는 것을 누구나 알 것이다.이런 각고의 노력 끝에 밥쟁이가 된다는 점에서 진정한 장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에게 참교육 학부모회는 이런 밥쟁이와 함께 한 17년의 이력이다. 밥쟁이가 ‘꾼’이 되기까지 밥하는 일에만 전력투구해서 전문성을 가지게 된 것처럼 참교육학부모회와 함께 한 17년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자연스럽게 가지된 엄마라는 이름 앞에 각고의 노력 끝에 떳떳하고 당당한 “엄마”가 되는 과정 이였다. 제대로 된 밥쟁이가 되기까지 온갖 시련을 참고 견디어 내어야 하는 것처럼, 참교육학부모회는 나에게 “참부모”가 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을 요구했다. 더불어 사는 삶 의 지혜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부모가 되기 위해 참교육학부모회는 매순간 나의 삶을 긴장 시켰으며, 엄마에서 진정한 부모로서의 ‘쟁이’를 만드는 과정 이였다. 그런 참교육학부모회의 한해를 되돌아 보며.. 밥쟁이가 지난해의 밥상을 되돌아보며 얼마나 많은 차렸음에도 지겹다는 생각보다 올 한에는 뭘 먹을 지부터 걱정이 앞서는 것처럼 참교육학부모회도 지난해 지겹게 (현)정권과 싸웠던 영어몰입교육, 일제고사부활, 학교성적공개, 학교 선택제, 국제중 문제, 3불 정책 폐지 논란 등의 교육정책들 속에 올 한해도 아이들을 지켜 내는 일이 걱정이다.
그러나 당당한 엄마로서 참교육학부모회도 밥쟁이와 마찬가지로 올 한해도 아이들을 위해 삼백예순날 정성스럽게 밥상을 차리다 보면 아이들의 밝은 웃음처럼 세상은 따뜻하고 그득하지 않을까 ...
최정화(지회장)
2월호소식지 여는글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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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는 모양새가 한 눈에 보이네요...맘에 와 닿는 진솔함..맞아..참학 회원들은 밥쟁이들이지..글 맘에 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