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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Of8IreatEsI?si=KicrjKm4CZDLtWPk
바울의 중보 기도 1:9~14
9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10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11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창조주 그리스도 1:15~20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16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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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이 하나님 뜻을 알고 합당히 행하며 선한 일에 열매 맺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그분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고, 우리는 그분 아들 안에서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은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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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중보 기도 1:9~14
중보 기도는 사랑의 섬김입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의 신앙 성숙을 위해 기도합니다. 첫째, 그들이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 뜻을 분별하도록 기도합니다(9절). 성령의 조명으로 하나님 뜻을 이해할 때 거짓 교훈에 속지 않습니다. 둘째,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기도합니다(10절). 항상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모든 선한 일에 열매 맺고,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가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고난을 극복하도록 기도합니다(11절). 오래 참음으로 고난을 이기는 성도는 하늘의 기업을 상속받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하셨고, 어둠의 권세에서 건져 내어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13~14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과 영생을 누립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을 위해 어떤 내용으로 중보 기도를 했나요?
다음 세대의 영적 성숙을 위해 나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기도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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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주 그리스도 1:15~20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십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계시자요, 만물보다 먼저 나셔서 창세전부터 계신 분으로 선포합니다(15절).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되었으며, 그리스도에 의해 보존됩니다(16~17절). 그리스도는 창조의 시작이자 통로이며 목적입니다. 그분은 십자가로 ‘하나님과 죄인’의 화목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우주’의 화해를 이루어 ‘만물의 머리’가 되셨고, 부활의 첫 열매로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18, 20절). 바울이 그리스도의 선재성과 통치권을 선포한 이유는 그리스도를 천사보다 열등한 존재로 가르치는 이단을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 더 깊은 묵상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로 화평을 선물하신 그리스도는 본래 어떤 분이신가요?
예수님이 창세전부터 계신 하나님임을 믿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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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희생이 따르는 은혜
수년 전 한 여성이 예배 후에 내게 다가와 따졌다. “예수님은 꼭 죽지 않으셔도 됐어요. 저는 무조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순전한 사랑의 하나님을 믿거든요.”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물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시기에 치르신 희생은 무엇인가요?” “아무것도 없겠죠.” 나는 죄를 벌하셔야만 하는 정의의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하셨는지를 알 길이 없다고 전했다.
거룩하심과 사랑을 겸비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그분이 사랑이시기에 우리는 값없는 은혜를 누린다. 그러나 그분이 거룩하시기에 그 은혜에는 십자가 희생이 따른다. 예수님이 나를 살리려고 지옥의 심장부까지 가셨고 나를 위해 사랑으로 순종하셨음을 알면 그 사랑으로 변화된다. 그 사랑이 나를 낮추어 교만과 이기심에서 벗어나게 하고, 동시에 나를 인정해 열등감과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 사랑 덕분에 나는 죄를 미워한다.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사랑 덕분에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분이 나를 해방시키시려고 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사랑받는 존재니 열등감이 사라지고, 은혜로만 구원받은 죄인이니 우월감도 사라진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부르짖음을 이해할 때 참된 변화가 시작된다. 또한 그것은 온전한 용서와 화해를 가능하게 하는 위대한 열쇠가 된다.
팀 켈러의 용서를 배우다 / 팀 켈러_ 두란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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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절묵상:골로새서 1장 10절
성도는 주님 앞에서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합당하게'라는 하나님의 뜻과 기대에 부합함을 뜻하고, ' 행하다'(살다)는 성도의 생활 방식을 뜻합니다. 성도의 합당한 생활 방식은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계속해서 자라가게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녀의 삶을 기뻐하십니다. 신앙의 뿌리에 이웃을 향한 선행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있을 때, 나와 공동체를 살리는 '성숙함'이라는 신앙의 꽃이 핍니다.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그 비전을 이루기까지 기도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다. - 하용조
오늘의 기도
하나님, 흑암의 권세에 갇힌 저를 건지셔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신 구속의 은혜가 놀랍습니다! 하나님 뜻을 알고 행하며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는 하루를 보내게 하소서. 오래 견디고 참아 내야 하는 삶이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어 믿음으로 전진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293 주의 사랑 비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 가시면서 다른 이들을 가르치고, 그리스도의 비밀을 온전히 알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 주셨으니,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워가면서 교회를 바로 세워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이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지혜를 다하여 그들을 가르치는 일을 성실히 감당하자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비밀을 더욱 더 온전히 알아가는 일에 집중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더욱 더 굳건히 세워가자
12월2일 상동역과 청라호수공원에서
오늘 본문은 골로새 교인들을 위한 사도 바울의 가르침으로, 교회의 머리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실체와 그 우월성이 강조되고 있는 내용입니다. 또한, 육체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목케 하신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그 일을 위한 화해의 전도자로서의 사명을 다할 것이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도 실려 있습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창조의 근원, 구원의 주체, 화목의 목적 등입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 여기 쓰인 ‘건져내사~ 옮기셨다’라는 동사는 완료 형이지만, 미래와 현재를 동시에 말한 것입니다. 즉, 장차 갈 천국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현재 이 땅에서 살아야 할 하나님나라도 말하는 것입니다. ‘나라’는 영토적인 의미보다는 주권적인 의미가 더 강조되어 골로새 교인들의 마음에 통치되고 있는 나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흑암의 권세’는 사단의 권세를 지칭하는 것이고, ‘사랑의 아들’은 물론 예수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아버지께서 성도들을 사단의 다스림에서 건져내셔서 그분의 아들 곧 예수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게 하셨다’라는 말입니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창조된 존재-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즉, 최초의 피조물이 아니라는 것으로, 무게중심은 ‘먼저 나신 이’가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모든 창조물보다는 먼저 계셨던 분이란 뜻입니다. 그런 이유로 만물에 대한 우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곧이어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라는 말이 나온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리스도를 최초의 피조물로 해석한 3C 신학자 ‘아리우스’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여 파문당한 일도 있습니다.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다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 곧,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모두가 그리스도로 인해 창조되었고 그리스도를 위해 창조되었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그 배경에 천사 숭배사상을 두고 바울이 의도적으로 한 말입니다. 이단들에 의해 반입된 천사 숭배사상이 골로새 교회에 만연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천사들조차도 아들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밝혀, 교회에 침투한 천사숭배는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선언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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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 평화의 길을 열어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그분을 통해 자기와 화해하게 하셨다’라는 말입니다. 곧 화목의 길을 말하는 것으로, 이로써 하나님과 죄인된 사람의 평화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울러 사람과의 화평도 이루어졌으니, 이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함입니다. 이는 용서받은 사람으로서 화목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고 가야 할 길을, 바울이 알려 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얻어진 하나님과의 귀한 화목이 이론으론 그쳐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정성이 들어가는 화목입니다. 단순히 말로 그쳐서는 되지 않으니 그것은 단지 립서비스에 불과합니다. 또한, 화목은 베푸는 것이지 움켜쥐는 것도 아닙니다. 시간과 물질이 들어가야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서로 화해가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 외에도 많은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결국 마음을 열고 베푸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특히 사람과의 화목은 필수 불가의 항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내미는 손과 베푸는 손이 없이 여간해서 쌍방간 평화가 성사되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이 먼저 손을 내시어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인간이 도무지 하나님과 화목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독생자 외아들입니다. 하나님 자신을 희생하셨으니 그만한 가치도 피조 세계에는 없습니다. 화목은 마인드라고 봅니다.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은 화해를 위해 그 어떤 것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마음이 아픈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고민이 있는 사람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정신적으로 고통 받는 사람을 위로하고, 또한 애도 속에 있는 사람과 함께 슬퍼하는 것입니다. 즉,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것이죠.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은 물질도 나눌 수 있지요.
누구나 물질은 부족합니다. 이 세상에 돈 풍족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인 치고 한가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이익만 좇으며 살 수는 없다고 봅니다. 평생 움켜쥐는 손으로만 살 수는 없으니,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주께서 가리키신 화목의 길을 언제 갈 수 있을까요? 우리 삶에는 반드시 끝이 있는데요. 자기 것만 챙기면 그것이 지옥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 나라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화목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화목과 평화가 없는 하나님 나라는 상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화목의 길, 화해의 길이 없이 그 나라를 살수도, 갈 수도 없습니다. 먼저 내미는 자가 큰 자입니다. 먼저 베푸는 자가 의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들입니다.
예수님은 만물의 창조주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6~17)
또한 예수님은 영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보이는 형상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골1:15)
이렇게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 그
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1:18)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전부이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기도제목은 주를 아는 것에 더욱 성숙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1:10~12)
그러므로 우리가 쉬지 않고 구할 것은 하나님을 더욱 알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선한 열매를 맺게 해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골1:9~10)
참으로 우리가 주를 아는 것에 게으르지 않게 되어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기 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벧후1:8)
그래서 하나님 아는 지식의 충만함에 이르기 원합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땅을 적시는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6:3)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감사하는 골로새 교인들로 한 발짝도 옮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최선과 최고의 표현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통해 골로새 교인들과의 유일한 소통이었고 그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께 모두 맡겨드리는 그의 진심 어린 지원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것은 그들의 영적인 지혜와 통찰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고(9절)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맺으며(10절) 모든 고난을 잘 견딜 수 있게 되는 것(11절)입니다. 결국 우리의 기도는 ‘예수님을 잘 알고 잘 믿는 것’에서 시작하여 그 십자가를 바라보며 코끝에 호흡이 멈출 때까지 ‘예수님 따라 잘 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하늘의 유업을 물려받는 양자로 ‘감사’(12절) 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교회의 머리..근본이시요..먼저 살아나신 분(18절)
교회를 흔드는 수많은 사상과 이론, 이단의 공격은 스스로의 힘으로 막아낼 수 없습니다. 그가 역시 옥중에서 쓴 에베소서에서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3)”라고 선언하였는데 이는 몸 된 에베소 교회의 타락이 그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되는 것임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골로새교회는 에베소 교회와는 달리 오히려 율법적이고 과도히 절제적인 교회의 풍토를 가지고 있어 바울의 선언은 몸 된 교회 보다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그 아들의 화목하게 하심과 만물보다 먼저 계시 하나님이 되심을 상기시킴으로 그들에게 닥친 영적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주고자 합니다.
오늘 당면한 신앙인들의 영적, 육적 위기는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영혼을 돌보고 육신을 제어하는 것, 구원을 기뻐하면서도 구원받지 못한 이들을 위해 슬퍼하고, 강건함을 추구하면서도 이 땅의 유한한 생명을 덧없이 여길 줄 아는 믿음이 모두 필요합니다. 부활하신 육신으로 영원한 영적 회복과 구원을 이미 온전히 이루신, 우리의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감당치 못할 시험이 없음을 선포하는 거룩한 주님의 백성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5~17절 골로새 이단들의 주장과 달리, 예수님은 피조물 중 하나가 아니라 세상을 창조하고 붙드시며 유지하시는 창조주입니다. 그 창조 목록 안에는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들(2장 18절)이면서 정치적인 권세들(2장 15절)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피조된 것이기에 우리를 지배하거나 구원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주님보다 높지 않기에 우리를 어찌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성도들이 천사를 숭배하거나 세상 권력에 길들여지는 것은 어리석은 자기모순입니다.
15,19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타내는(요한복음 1장 18절) 절대 화신이자,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하는 맏아들입니다. 당시에는 신으로 자처하는 황제의 형상과 인생의 충만함을 약속하는 철학과 사상이 난무했습니다. 하지만 생명의 주를 떠난 그들의 말은 다 거짓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이 하나님을 알 수 있듯이, 이제 그분의 말씀 안에 거하여 주를 따라 사는 우리를 통해 어둔 세상이 하나님을 알고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18~20절 교회의 머리요,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십자가를 통해 죄로 어그러진 만물에 ‘보기에 심히 좋았던’ 조화와 질서를 회복하여 하나됨을 이루시고, 분열과 갈등과 대립 가운데 있는 만물이 그리스도의 주권에 온전히 복종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교회는 만물을 화목하게 하고 충만케 하시는 하나님 나라 역사의 출발점입니다. 그러니 교회가 주의 통치에 잘 복종할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소식이 우리에게도 가장 반가운 복음입니까?
21~23절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자기중심적 생각과 삶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타락한 이 세상의 세속적인 가치관에 순응하며 살던 우리입니다. 십자가의 구속은 거룩하고 흠 없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빚기 위한 구속입니다. 완성될 그날까지 여전히 대적하는 세력들이 있겠지만 아무도 주의 통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믿음에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마십시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9,10a절 바울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되어 주께 합당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럴 때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께 기쁨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령께서 주시는 지혜와 이해력(총명)으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간구합니다. 그래야 거짓 교사들의 교묘한 주장을 분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b-12절 바울이 기도한 ‘주께 합당히 행하는 삶’은 무엇일까요?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고, 복음이 온 세상에서 자라듯(6절) 성도들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며, 세상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주신 능력에 힘입어 모든 것을 견디되 기쁨으로 참고, 영원한 나라(기업)에 참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를 소유할 때 이러한 삶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이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하나님의 뜻을 안 대로 살아 낼 수 있게 해주시길 간절히 구하고, 매일 그렇게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13,14절 구원은 주권이 교체되는 사건입니다. 흑암의 권세 아래서 지배받던 우리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그분이 다스리시는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사도는 에바브라에게서 골로새 교회의 소식을 들은 날부터 시작한 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9). 그는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충만해지기를 구했습니다(9; 엡 1:8). 사도의 기도의 우선순위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둘째로 주님께 합당히 행하고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기를 구했습니다(10a). 삶의 열매를 위한 기도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기를 구했습니다
(10b~1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성도로 하여금 능히 모든 상황을 기쁨으로 견디고 참게 합니다. 자기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합니다(단 11:32). 넷째로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성도의 기업을 얻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가 넘치기를 구합니다(12). 그래서 사도는 다시 구원의 은혜를 놀랍게 진술합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게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13~14).”
본론으로 들어가면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창조와 구원의 으뜸이심을 말합니다(15~23).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계신 하나님이시고(15), 창조의 하나님 곧 창조주시며(16~17), 교회의 머리이십니다(18).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육신하신 예수님 안에 모든 충만이 거하게 하셨고(19),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그 피로써) 만물을 화평하게 하기를 기뻐하셨습니다(20).
오늘의 말씀요약
바울은 골로새 성도가 하나님 뜻을 알고 합당히 행하며 선한 일에 열매 맺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그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이요 만물보다 먼저 계신 분이요 교회의 머리로,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교회를 위한 기도(1:9~12)
기도의 핵심은 내 뜻을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깨닫고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온전한 의도와 계획을 발견할 때 비로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하면서 무엇보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아 가는 ‘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충만하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
신령한 지식과 영적 각성을 통해 영적 분별력이 회복되어야 바르게 사고하고 행동하게 되며,
죄의 길에서 떠나 인내와 절제 가운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기주장과 고집은 반드시 악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지속적으로 자라갈 때,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얻습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 뜻을 깨닫는 데 필요한 ‘신령한 지혜와 총명’은 어떻게 얻을 수 있나요?
- 적용 질문: 최근 기도 제목을 돌아볼 때, 하나님 뜻을 아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나요?
만물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1:13~20)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요, 우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온 세상은 주님을 통해,
주님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타락한 세상은 하나님과 원수 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우리는 흑암의 권세에서 벗어나
사랑의 통치를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져 영원한 안식과 화평, 충만을 누리게 됩니다.
만물은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유지되며, 모든 왕과 통치자는 ‘만물의 으뜸’이신 존귀하신
그리스도의 권세 앞에 무릎 꿇고 복종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특정 종교의 지도자나 선지자 가운데
한 분이 아니라, 세계의 창조자요 지배자며 모든 피조물의 존재 근원이자 목적입니다.
- 묵상 질문: 세상 사람들이 ‘만물의 으뜸’을 잘못 설정함으로써 빠지게 되는 오류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만물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안다면 다른 피조물과 이웃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지식을 쌓고 말에 능하고자 말씀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알고 사랑하는 데 그 목적을 두게 하소서.
만물의 창조자요 주인이신 주님 앞에 겸손하게 하시고,
주님의 대리자로서 빛을 비추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도우소서.
말씀요약:
바울은 골로새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고 간구하고 구한다고 한다.
기도의 구체적인 내용이 지혜과 행위와 능력과 감사등이다.
그리스도인의 신분에 대해서 흑암에서 건져 아들의 나라로 옮겼고 죄사함을 받았다.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묵상:
바울은 무엇보다도 정말 기도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인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한다고 고백했던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도 계속해서 골로새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구한다고 말씀하신다.(9)
바울이 감옥에 있으면서 골로새 교인들을 위하여 구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1.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9)
바울이 첫번째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를 구하고 있다.
매일 새벽마다 내가 구해야 할 기도 제목이다.
모든 교회의 리더들이 특별히 구해야 할 기도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교회의 정책과 방향에 대해서 의견을 내야 할 때가 되었다.
누구 목사편을 드는 것도 안되는 일이고 어느 장로 편을 드는 것도 안되는 일이다.
정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고 언제나 하나님의 편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편에 안 있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마는
한국교회의 역사를 보면 소수의 지도자의 잘못된 욕심과 탐욕과 권력욕과 명예욕 때문에
수 많은 교단과 교파가 분열된 것은 누구도 부정 못할 일이 되어 버렸다.
교회 다툼과 분쟁은 핵심 지도자들 특히 장로와 목사의 다툼이 대부분이다.
초신자들 때문에 타 종교인들 때문에 일어나는 분쟁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 분별력을 구하는 지혜 내가 구해야 할 첫번째 기도 제목이다.
2.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10)
두번째 구하는 것은 행위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행위로 나타난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기 이전에 성도들의 행위를 주목하게 되어 있다.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 먹을 수 있는 행동들을 삼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셨으니 주께 합당하게 행하고
범사에 주님을 기쁘게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도록하자. 아멘.
범사에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있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10)
열매는 하루 이틀 만에 맺혀 지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1년 과목은 수년을 키워야 겨우 열매들이 맺히는 것이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는 없다.
사망을 위하여 맺는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맺는 열매들이 있기를 원하고
특별히 성령의 9가지 열매들이 내 삶 가운데 있기를 기도한다.
이런 열매를 매기 위하여 행하여야 하는 것이 있다.
가만히 있어서는 절대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가야 한다.(10) 아멘.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행하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바울이 3번째 구하는 것은 능력을 구하고 있다.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11)
늘 내가 구하고 싶은 욕망에 빠지는 기도 제목이다.
모든 능력을 능하게 하시기를 구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구하는 능력과는 좀 다르게 구하시고 있다.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11)
나는 오래 참고 견디는 능력이 아니라 알라딘의 요술 램프와 같은 능력을 구한다.
바울이 구하는 능력은 차원이 다른 능력이다.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으로 얻어지는 능력 이것은 사랑의 원자탄이다. 아멘.
고전13장 사랑장에 나오는 내용과 오래 참음과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참음으로 나오는 능력이고 힘이다. 바울은 이 능력을 구하고 있다.
나도 능력을 구하되 이런 사랑의 원자탄을 구해야 겠다.
4. 바울이 구하는 4번째 간구는 감사이다.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2)
감사의 척도가 믿음의 척도가 아닌가 싶다.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다.
욥이 고백한 것 처럼 주신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 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기를 원하는 감사.
기도 응답하신 것도 감사 거절하신 것도 감사 기다리라고 하신 것도 감사
날마다 감사하기를 훈련하고 배우고 익히자.
<십자가 앞에서>
본문/ 골로새서 1:15-23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그리고 그 백성의 인격과 삶에 대한 말씀입니다.
1.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앞선 14절에서 말하였습니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14절) 아니 대체 '그 아들'이 누구시길래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을까요? 그것에 대한 답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15-17절)
그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보이는 형상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도, 영원토록 그러할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그 분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 그 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분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 분이 첫 피조물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분은 영원전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분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며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통하여 창조하셨고 아들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 위에 계신 분이며 모든 피조물을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바로 그 위대하신 분이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하여 무엇을 하셨을까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20절) 인간의 죄로 인하여 만물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만물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보자가 되셔서 모든 피조물을 다시금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 일은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입니다. 그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역사 속에 일어난 일이고 직접 고통 당하신 일입니다. 일반 사람이 십자가를 졌다는 사실도 놀라운 일인데 만물의 으뜸이 되신 분이 십자가를 지고 피를 흘리셨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 일을 하셨고 그 일을 이제 교회를 통해 드러내십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18절) 그 분의 놀라운 사랑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잘 모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몸되신 교회를 통하여, 교회의 머리가 되셔서 교회에 임하시고 가르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그 형상으로서 참으로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그 분이 죄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친히 중보자가 되셔서 피조물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더욱더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임하시는 그 분의 신비를 더욱더 알아야 합니다.
2.사람의 인격과 사역
그리스도꼐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사람은 어떤 처지였습니까?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21절) 사람은 악한 행실로 하나님에게서 멀리 아주 멀리 떠난 '원수'가 되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의 비참함입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귀한 피조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악한 행실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완전히 외인이 되었습니다. 악
을 행함으로 그 악에 대해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피조물이었습니다.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의 원수'라는 단어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람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람이 그것을 알든 모르든 상관없이 그들은 그렇게 원수되었고 영원한 멸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영원한 멸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이 안다면 어찌 그리 가만히 살 수 있을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악하여 그것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생각하여도 그것의 깊은 의미를 모른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화목의 사역으로 인하여 이제 새롭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22-23절) 그리스도의 사역은 화목하게 하는 사역입니다. 그 화목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목적이 그리스도의 피로 성취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23절) 믿음의 터에 굳게 서야 합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신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완벽하게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힘써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입니다. 그 언약은 우리를 새롭게 합니다. 언약을 맺은 백성은 신실함으로 지켜야 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출애굽기를 보십시오. 선지서를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 백성에게 언약에의 신실함을 요구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피로 씻겨졌다고 말하는 사람이 만약 신실함이 없다면 그는 오히려 내쳐질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어떻게 버려질 수 있느냐고요? 네 사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신실함이 없다면 그는 보혈피로 씻겨진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졌다는 것은 신실함으로 증명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신실함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모든 고난을 다 받으신 것처럼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사역으로서 믿음과 그 신실함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사람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깊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교만하고 거만한 사람이 아니라 이제 신실하게 믿음의 거룩한 길 위에 신실하게 서기 위해 부단히 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의 삶을 지켜보시고
구원의 닻으로 안전케 해주시니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흔들림 없는 신앙으로 오늘도 그 앞에 바로 서고 보이지 않는
그 나라에서 여호와와 함께 할 그 영원한 시간과 기쁨을 사모하며
인내하는 지혜로운 주님의 제자로 걸어가도록 성령 충만함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온전한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의 따스한 손길을 경험케하시고
눈물과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가 회복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부활의 능력에 의지하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