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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망을 들을 수 있는 귀 (렘2-6)
2026년 9월 25일 (금요일)
찬양 :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본문 : 예레미야 6:1-30절
☞ https://youtu.be/X4GUNGOPQS4?si=Jr7u2CzMFL0a3q6j
소중한 명절이다. 아들과 딸 모두가 모여 어제 저녁 기도회를 하며 지난온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감사하고 행복했다. 모두가 건강하게 모일 수 있어 감사했고,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달려가고 있어 감사했고, 앞으로 새 길을 여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 감사했다.
오늘은 형님 가정에서 명절 감사예배를 드린다. 형제간에 모여서 예배하는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올려드린다. 형제가 모여 함께할 수 있음은 놀라운 축복이다. 이 소중한 시간이 계속되기를 마음 모아 기도한다.
아침 일찍 움직여야 하는 오늘도 바쁜 마음으로 말씀앞에 선다.
이날 주님은 어떤 말씀으로 인도하실까?
예레미야 6장은 유다의 총체적 타락을 불러온 근본적인 원인, 즉 '거짓 평안'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완악함'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며 시작한다.
오늘 본문 1절은 이렇게 다급하게 외친다.
‘베냐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가운데로부터 피난하라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고 벧학게렘에서 깃발을 들라 재앙과 큰 파멸이 북방에서 엿보아 옴이니라’
이 비상한 외침을 이해하려면 베냐민 자손들이 사는 지리적 위치를 알아야 한다. 그들의 땅은 예루살렘 바로 북쪽에 있어, 북방에서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올 때 가장 먼저 짓밟히게 될 최전선이었다.
더 나아가 이곳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고향인 '아나돗'이 위치한 곳이다. 즉, 예레미야는 지금 가장 먼저 적의 칼날을 맞게 될 자신의 핏줄, 친척, 고향 사람들을 향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제발 예루살렘에서 도망치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진정 주목해야 할 사실은 예루살렘이 가진 상징성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은 어떤 곳이었는가? 그곳은 견고한 성벽을 갖춘 이스라엘 최고의 안전한 도피처였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기에 그곳에만 머물면 무조건 안전하다는 맹신이 팽배한 곳이었다.
화려한 제사가 드려지는 성전 뜰을 밟고 있으니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는 '거짓 샬롬(평안)'에 완전히 취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 헛된 믿음을 산산조각 내며 "예루살렘 안에서 밖으로 피난하라"고 외친다. 예루살렘이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라, 하나님의 가장 맹렬한 진노가 쏟아질 '심판의 중심지'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충격적인 역설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적의 반대편인 예루살렘 남쪽 고지대 성읍 '드고아'에서 나팔을 불어 경고를 알리고, '벧학게렘'에서 봉화(깃발)를 올려 다급한 침공을 알려 피하게 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껍데기뿐인 종교적 형식에 안주하지 말고, 심판의 나팔 소리와 경고의 깃발을 보고 깨어나라는 비상벨이다. 이는 선지자의 외침이기 이전에, 완악한 백성들을 어떻게든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찢어지는 아픈 심정 그 자체다.
그러나 백성들은 이 다급한 경고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급기야 하나님은 심판의 도구인 이방 군대에게 직접 성을 포위하라고 명령하시며, 예루살렘의 감춰진 실상을 이렇게 폭로하신다. 6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나무를 베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목책을 만들라 이는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악한 것뿐이니라’
<벌 받을 성이라, 그 중에는 오직 포악한 것뿐이니라>
본래 예루살렘은 '평화(샬롬)의 성'이라는 뜻을 가진 곳이다. 그들은 겉으로는 화려한 성전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의 평안을 자랑했지만, 굳건한 성벽 안쪽의 실상은 끔찍했다. 약자를 향한 착취와 불의, 즉 '포악'만이 가득했던 것이다.
종교적인 껍데기만 남고 삶의 진실과 공의가 완전히 사라진 곳, 하나님은 그곳을 더 이상 거룩한 성이 아니라 '벌 받을 성'이라고 단호하게 규정하시며 이방 군대의 목책(포위망) 앞에 내 던지신 것이다.
이토록 타락한 백성을 보시며 아버지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듯 아프셨을까? 하나님은 10절에서 참담한 심정으로 탄식하신다. 10절
‘내가 누구에게 말하며 누구에게 경책하여 듣게 할꼬 보라 그 귀가 할례를 받지 못하였으므로 듣지 못하는도다 보라 여호와의 말씀을 그들이 자신들에게 욕으로 여기고 이를 즐겨 하지 아니하니’
오늘 아침, 이 말씀이 내 가슴에 매우 위중하게 다가온다. 평화(샬롬)의 성이 벌 받을 성으로 전락한 결정적인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할 뿐 아니라, 도리어 그 생명의 말씀을 자신들을 불편하게 하는 '욕(거슬리는 소리)'으로 여기며 배척했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는가?
말씀이 내 삶을 찌르고 경책할 때, 그것을 피하고 싶은 무거운 짐으로 여기는가, 아니면 내 영혼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들어야 할 생명의 음성으로 받고 있는가? 주님은 오늘 내 귀가 온전히 할례를 받아, 어떤 뼈아픈 말씀이라도 달게 받을 수 있는 온유한 심령이 되어 있는지를 엄히 묻고 계신다.
내가 듣고 싶은 위로의 소리만 골라 듣는 완악한 귀가 아니라, 마땅히 들어야 할 하나님의 책망까지도 겸손히 듣고 순종하는 부드러운 마음이 되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가족들이 모이는 이 명절, 사람들의 다양한 소리가 오가는 중에도 내 영혼의 귀는 온전히 주님을 향해 열려 있기를 원한다. 비록 그것이 내 자아를 깨뜨리는 뼈아픈 경책이라 할지라도, 겸손히 달게 듣는 '할례받은 귀'를 가진 종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기도한다.
주님, 이 종의 귀가 할례받기를 원합니다. 모두의 소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소리를 겸손하여 들을 수 있는 귀가 되게 하소서.
한줄 묵상 :
<무너질 거짓 평안의 성(城)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나를 찌르는 하나님의 경책을 생명의 말씀으로 듣는 '할례받은 귀'를 갖는 것이다.>
적용 질문 :
1. 최근 내 삶을 찌르는 하나님의 말씀이나 신앙적인 권면을 들을 때, 그것을 나를 살리는 '생명'으로 받았습니까? 아니면 피하고 싶은 무거운 짐이나 '잔소리'로 여기며 귀를 닫아버리지는 않았습니까?
2. 가족들이 모여 다양한 소리가 오가는 이번 명절에, 내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판단하는 완악함을 내려놓고, 타인의 아픔과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할례받은 귀'를 열기 위해 오늘 당장 실천할 수 있는 태도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