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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g1YbA-afc1Y?si=R8ZbQvnepOKrdUDD
거짓 교사에게 속지 않는 성도 2:1~5
1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4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5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십자가로 승리하심 2:6~15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9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10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13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14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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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고 교묘한 말에 속지 말라고 합니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따르게 합니다. 하나님은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죄 문서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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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교사에게 속지 않는 성도 2:1~5
거짓 교훈은 마귀의 무기입니다. 골로새 교회 설립자가 아닌 바울은 그곳 성도들의 얼굴을 본 적이 없습니다(1절). 그럼에도 골로새 교회를 위해 수고하는 이유는 성도들이 위로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해 그리스도의 비밀을 온전히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2절).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지혜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교묘한 말로 속이는 거짓 교사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4절). 육신으로는 떨어져 있지만, 바울은 성령 안에서 성도들과 함께 있습니다. 거짓 교사의 유혹에도 흐트러짐 없이 믿음을 굳게 지키는 성도들은 바울의 기쁨입니다(5절). 진리 앞에서 거짓 교훈은 힘을 잃습니다.
● 더 깊은 묵상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는 보화들은 무엇인가요?
내가 그리스도를 아는 온전한 지식으로 분별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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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로 승리하심 2:6~15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빠지지 않으려면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거짓 교사 중에 그리스도를 천사보다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면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리스도가 ‘신성의 모든 충만’을 지닌 ‘모든 통치자와 권세의 머리’시라고 선포합니다(9~10절). 또한 육적 할례를 구원 조건으로 가르치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손으로 행하지 않은, 육신을 벗어 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다고 증언합니다(11절). 성도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하나님 능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완전한 죄 사함을 이루었고, 율법을 무효화시켰으며, 악한 영들을 제압한 승리의 사건입니다(13~15절).
● 더 깊은 묵상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궁극적으로 이룬 일들은 무엇인가요?
나는 날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능력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나요?
한절묵상:골로새서 2장 23절
성도는 영적으로 유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의적 숭배'(꾸며 낸 경건)란 자기 뜻대로 갈망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금욕주의처럼 잘못된 갈망은 자기 몸만 괴롭힐 뿐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모양'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고스'는 '말, 소문' 등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아닌 그럴싸한 말이나 소문을 기준으로 삼는 신앙생활은 어떤 유익도 없습니다. 영적으로 유익한 삶은 하나님을 갈망하고, 겸손히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시작됩니다.
영성 훈련이란 자기 삶이 하나님 외의 다른 것들로 가득 차지 못하게 막는 일이다. - 헨리 나우웬
오늘의 기도
주님, 십자가 위에서 모든 죄를 이기신 주님과 단단히 연합되어 살아가길 원합니다. 인본주의나 헛된 것의 현혹을 물리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으로 부요함을 누리게 하소서. 제 마음과 삶이 주님 말씀에 뿌리내리고 굳게 서서, 감사와 찬양으로 충만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540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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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당신 안에 뿌리를 박고, 세우심을 입어서, 당신의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의 마음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길 바라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였으니,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고, 그에 합당한 신분으로 살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자
예수 그리스 안에 뿌리를 받고, 그분의 제자로서 세우심을 입어서,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을 굳게 하여 감사하면서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살아가자
세상의 철학이나 헛된 속임수에 흔들리지 말고, 세상의 온갖 전통이나 유치한 원리를 따라 살아가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자
오늘 본문은 헛된 철학과 속임수에 미혹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 위에 굳게 세워져야 한다는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로, 그것을 따라야 하는 까닭은 그리스도의 신성한 육체를 통해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모든 믿는 이들에게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어서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 즉, 그리스도의 할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거짓 사상의 경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적 충만함, 육의 몸을 벗은 할례, 구원과 승리 등입니다.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 교회를 위해 노심초사 애쓰고 있다는 말로 여기에는 적어도 세 개의 교회가 해당됩니다. 즉, 골로새, 라오디게아, 그리고 히에라폴리스 교회입니다. 공교롭게도 그 교회들은 가만히 들어 온 거짓교사들과 대적하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비록 자신이 개척하지 않은 교회일지라도 바울이 중보로 영적투쟁을 하겠다는 암시의 말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에바브라에 의해서 시작된 교회로, 바울은 그곳을 직접 방문한 적은 없지만 편지를 보냄으로 그의 심정을 밝혔습니다.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로 추정되는 교회는 히에라폴리스 교회입니다. 위의 교회들은 골로새 지역의 세 교회들입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 세상풍조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주님만을 따르라는 말입니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직접적으로는 교인들을 현혹하는 영지주의를 말하는 것이고, 간접적으로는 복음과 반대되는 모든 거짓 교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일부러 ‘사로잡히다’는 말을 쓰는데 그 이유는 포로를 전리품으로 보는 것과 같이 이단들이 교인들을 그리스도로부터 떨어지게 하여 죄의 노예로 획득하는 차원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전통’은 사도 바울와 에바브라가 전한 것과 정반대되는 가르침을 말합니다. 세상의 초등학문도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게 하는 저급한 천사숭배와 같은 거짓교훈을 말합니다.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는 영적 할례를 말합니다. 영적 할례는 육체적 할례와는 대조되는 것으로, 침례를 통해 옛 본성 또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할례는 주님께서 친히 주신 할례입니다. 즉, 죄악 된 본성을 벗겨내는 할례를 말합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를 가리켜 ‘육의 몸을 벗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침례를 받음으로 옛 사람을 벗어버리며 죄의 종노릇에서 풀려 나옵니다. 아울러 침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게 될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나 새 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것이 곧 그리스도의 영적 할례입니다.
‘법조문에 쓴 증서’는 율법을 말합니다. 율법의 기능과 역할은 죄를 범함으로 타락한 인간의 죄를 고발하고 죄의 결과를 밝힘으로 그것에 상응한 형벌을 선고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율법을 무효화시킵니다. 예수님이 그 모든 율법의 형량을 감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대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라고 표현된 말이 그 말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힘은 율법이 십자가에 못 박힘을 뜻하며, 율법의 완전한 폐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더 이상 율법아래 있지 않아 그 어떤 제약도 받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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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 ‘주 안에 깊이 뿌리를 박고 그분을 기초로 여러분의 인생을 건설하며,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하십시오!’라는 말입니다. 우리 몸은 성전입니다. 창고도 단단하게 지어야 하는데 성전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굳건한 성전이 되기 위해 예수그리스도께 깊이 뿌리박으라고 주문한 것입니다. 그 분께 뿌리박아야 흔들릴지라도 곧 세상의 공격이 있을지라도 견디며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모름지기 그 기초가 단단해야 하듯이, 그분이 성전된 우리 몸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나무의 생명은 뿌리에 있다고 봅니다. 뿌리가 깊이 내려야 모진 비바람과 태풍에도 끄떡하지 않고 성장하며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뿌리가 그렇게 깊이 안 내려가도 작은 나무들도 태풍에 넘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 좋은 예가 제주도의 감귤나무입니다. 그것들은 결코 뿌리가 깊지 않습니다. 하지만, 옆으로 퍼져 있습니다. 마치 그물망처럼 얼키설키 옆으로 뻗어 있어 자기들끼리 서로 잡아주어 모진 비바람에도 넘어지는 일이 없습니다. 축대가 붕괴되었다는 뉴스는 있어도 제주도 감귤 나무가 뿌리째 뽑혔다는 뉴스가 없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열매가 너무 달려 옆 농장 울타리에 걸쳐 있어도 농부들은 절대로 그 나무들을 헷갈려 하지 않습니다. 뿌리가 자기 농장에 있는 것이 자기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난 장에서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아들의 나라로 옮겼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예수그리스도의 나라로 옮겨진 나무들입니다. 주님께 뿌리박아야 합니다. 깊이 그리고 넓게 되도록 최대한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진 비바람에 넘어 질 수 있고, 옮겨졌는데도 뿌리를 내리지 않으면 옆 농장 아저씨가 여전히 자기 나무라고 여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들은 옮겨지더라도 무성하게 잎사귀와 가지를 내며 탐스러운 열매들을 맺습니다. 왜 우리들을 그렇게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세상 욕심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애굽에서 옮겨졌지만, 여전히 파와 부추와 고기 등등 애굽의 맛을 잊을 수 없는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타성 때문이라고 합리화 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같은 것을 버리지 못해서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래서 믿음에 굳게 서라고 한 것 같습니다.
주님과의 교제가 없이 굳건히 서기는 불가능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주님을 바라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봄에 맺은 작은 열매가 커서 가을의 탐스러운 열매가 됩니다. 가을에 맺는 열매는 없습니다. 주님! 봄이 가기 전에 주님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길 원합니다. 가을이 오면 늦습니다.
거짓 일꾼을 조심하십시오(1-5절)
우리 주변에는 가짜 복음을 전하는 거짓 일꾼들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깨어서 그와 같은 거짓 일꾼들을 경계하고 조심해야 만합니다. 그들은 참 보화이자 감추어진 비밀이신 예수님을 모르기 때문에, 세상의 이치나 자기들의 생각을 마치 복음 인양 가르칩니다. 교묘한 말과 어설픈 논리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거짓 복음에 속아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 복음이자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을 통하여 발견하기 위해 힘써야만 합니다. 참 진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나의 믿음은 예수님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안전한가요?
분별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11-15절)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하여 골로새 교인들에게 거듭해서 참 복음과 거짓 복음을 분별하라고 말합니다. 그 예로 바울은 할례를 언급합니다. 할례는 손으로 행하며 눈으로 보이도록 행하는 의식입니다. 이같이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짜라고 믿는 거짓 교사들의 거짓과, 참 할례인 예수 그리스도의 할례를 분별하여 참 할례를 택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할례가 답답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믿음과 참 복음이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 줍니다. 이 눈에 아무 증거가 보이지 않아도 믿음으로만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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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6,7절 온 세상의 진정한 구원자요 통치자이십니다. 그러니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 열매를 맺듯이 신앙도 주 안에서 복음에 합당하게 행할 때 결실을 얻습니다. 그 열매가 ‘감사’입니다. 감사는 내 주인이 누구인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며, 새 백성의 특징(3장 15,17절)입니다. 주님께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2:1-3 만나 본 적 없는 성도들을 위해 바울이 이토록 애쓰고 힘쓴 목적은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그들이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한마음으로 거짓 교사들에게 맞서고, 진리를 온전히 이해하며 마음에 확신을 가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는 마음이 컸습니다. 말씀의 일꾼들이 이런 마음으로 사역하도록 기도하고 지원해 줍시다.
2:4,5 바울은 성도들이 거짓 교사들의 위협을 물리칠 만큼 질서 있게 행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굳건한 것을 보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이 상태를 유지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속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8~10절 바울은 그리스도를 부정하고 신앙의 자유를 위협하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조심하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고상해보여도 사람들이 고안해낸 전통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좇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것들의 막강한 위세에 눌려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따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추종하거나 복종할 대상이 아니라 다 헛된 속임수일 뿐입니다. 주님 외에, 또 주님이 요구하신 멍에(마태복음 11장 28~30절; 갈라디아서 5장 13절) 외에 어떤 멍에도 허용하지 마십시오.
11,12절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할례는 십자가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주님은 통치자와 권세의 폭력으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죽음을 우리의 구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세속적이고 육적인 일체의 관계를 벗어던지고 ‘새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영이 깃든 새 몸입니다. 그러니 날마다 옛것으로 살지 말고 새것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내 모습은 어떻습니까?
13~15절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삶을 옥죄는 종교와 도덕, 정치권력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죄를 없애지도 못하고 도리어 더 무거운 죄책만 지우던 종교적 계율과 법조문을 제하셨습니다. 또 그리스도의 부활은 권력자들의 무지와 무능을 만천하에 폭로하고, 모든 불의와 폭력을 용서하심으로 승리하셨습니다. 무력한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을 구원하지만, 권력과 폭력은 세상을 망가뜨릴 뿐입니다. 그런데도 힘의 질서를 좇으렵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고 십자가로 이기십시오.
에베소에서 200km 이상 떨어져 있었던 골로새, 히에라볼리 그리고 라오디게아의 교회들은 사도바울이 직접 개척하지 못했던 지역이었지만 간절히 기도하고 그들을 향한 여러 가지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1절)은 그들이 모든 보화와 지식이 감추어져 있는(3절)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온전히 알고(2절) 그들을 위협하는 세상 철학과 헛된 속임수를 이겨내길 그토록 원했기 때문입니다(4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인 지체로서 그들이 질서 있는 삶을 살고 굳건한 믿음을 가진 것이 사도바울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5절).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신앙을 깎아내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지식을 헛되게 하려 하지만 그 믿음 안에서 깊이 뿌리내린 삶은 흔들리지 않고 오직 감사로 넘칠 수밖에 없고 결코 그 세상의 초등 지식에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도리어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면 그분을 따르는 길, 그 십자가와 부활을 의지하여 ‘남은 고난’을 우리 안에 채워가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이는 그 걸음 끝에 계신 하나님을 만날 때까지 우리는 멈출 수 없는 행복한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의 모습으로 거합니다(9절)
신성과 충만이라는 단어는 이분법적 신념을 가진 ‘영지주의’ 이단자들이 흔히 사용했던 단어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온갖 이단들이 기존 교회에서 중요하게 사용해야 할 ‘구원’, ‘새 하늘과 새 땅’, ‘증인’, ‘안식’ 과 같은 단어들을 그 중심에 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고 현혹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진정한 신성이 그리스도의 육신 가운데 거하고 지금도 부활하신 그 육체의 모습으로 계심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습니다(9절).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우리의 육신 가운데 역사하심을 더 깊이 알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신 육체로 구원을 십자가에서 완전히 이루신 것과 부활하신 육신 가운데 성령의 충만하심을 누리신 것을 더 알고 우리의 육신의 입술로 시인하고 증거해야 합니다.
그들은 이방인이었으므로 육신의 할례를 행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영적 할례를 받았고 모든 죄를 그 십자가에 못 박아 제하심으로 그분이 이루신 영적인 승리를 이 땅 가운데서 맛보게 해주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전신 갑주를 입고 그 복음 위에 굳건히 서서 모든 악한 것들을 대적하는 거룩한 영적 군사로 이 땅을 걸어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모든 참된 보화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골2:2~3)
그 중에서도 가장 귀한 보화는 십자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신 것이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골2:13~14)
또한 세상을 이기신 것도 십자가이며,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2:15)
주와 같은 형상으로 일으키심을 받은 것도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2:12)
그러므로 오직 주 안에 깊이 뿌리내린 감람나무 같은 성도 되기 원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2:6~7)
또한 여호와를 깊이 의뢰하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 같은 성도 되기 원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17:7~8)
또한 주의 이슬을 먹는 레바논 백향목 같은 성도 되기 원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그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호14:5)
그리하면 우리가 흔들리지 않을 줄 믿습니다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잠12:3)
뿐만 아니라 풍성히 결실할 줄 믿습니다
"의인은 그 뿌리로 말미암아 결실하느니라"(잠12:12)
주의 추수의 날을 위해 아래로 뿌리를 깊이 내리고 위로는 열매를 많이 맺게 될 줄 믿습니다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왕하19:30)
오늘의 말씀해설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원(2:1~3)
참된 지혜는 세상의 지식이 아닌 예수님을 아는 지식 가운데 존재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깨닫게 되면 속사람이 존귀해지고, 존재 가치가 근본적으로 달라집니다.
그런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의 재물이나 명예, 성공 등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를 사모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인 복음은 역사 가운데 비밀스럽게
감추어져 있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하게 드러났습니다. 성도들이 사랑 안에서 연합할 때,
이 복음을 더욱 확실하고 풍성하게 깨닫고 누릴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의 비밀을 전하기 위해
바울이 그처럼 애쓴 것입니다. 모든 지혜와 지식이 담긴 복음을 깨달을 때,
우리도 바울처럼 이 비밀을 전하기 위해 힘을 다해 수고할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세상 어떤 지식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귀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관계 가운데서 어떻게 열매 맺고 있나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삼아(2:4~7)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에 깊이 뿌리를 내릴 때, 상황의 변화에 요동하지 않는
신앙을 소유하게 됩니다. 인본주의 사고방식이나 효율성에 입각한 대비책은 인생의 근본적인 위기
앞에서 반드시 한계를 드러냅니다. 바울은 골로새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이단의 교묘한 말에
현혹되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리스 철학에 미혹되지 말라고 엄히 경고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주로 믿고, 그 안에 뿌리박아 세워지며, 예수님 안에 굳건히 머물러야 합니다.
너무 새롭고 신기한 것만 좇다 보면 진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진리의 울타리 안에서 반석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깊이 뿌리내려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십자가 복음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 적용 질문: 어떻게 하면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으로 충분하다(2:8~10)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외에는 율법이나 천사의 보조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의 신성이 충만하고, 성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제한 없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신비한 지식도, 유대주의자들이 강요하는 의식이나
율법 조항도 필요 없습니다. 율법의 마침이요 완성이 되시는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
- 묵상 질문: 예수님과 세상을 동시에 좇으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 적용 질문: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과 거리가 먼 ‘신앙의 비본질’을 어떻게 가려낼 수 있나요?
죽었다가 다시 산 자(2:11~12)
신앙의 본질은 외면이 아닌 내면이 바뀌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이라는 표시로 몸에 할례를 받아도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도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나는 영적 할례를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죽음과 부활이 될 때,
비로소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틀에 박힌 형식적 신앙을 벗고 경건의 능력을 구비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육의 몸을 벗는 ‘그리스도의 할례’란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벗어 버려야 할 형식적 신앙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십자가의 위대한 승리(2:13~15)
십자가는 죄와 사망에 대한 최종 승리입니다. 사탄의 모든 권세는 십자가 앞에서 전적으로 무력해지고,
조롱거리로 전락했습니다. 죄인 앞에 걸려 있던 ‘법조문으로 쓴 증서’는 십자가로 말미암아
효력을 상실했고, 십자가는 죄인이 모든 심판과 정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음을 증언하는
사면장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나아갈 때, 성도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믿고 의지하는 그리스도인은 이미 세상을 이긴 존재입니다.
- 묵상 질문: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으로 인해 영적 세계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 적용 질문: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사탄의 정죄를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까요?
오늘의 기도
신앙의 연륜과 인생의 경험보다도, 매일 십자가에서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신앙의 본질에 집중하게 하소서. 제 부족함과 약함을 참소하는 사탄에게 속지 않고
담대히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확증하게 하소서.
골로새서 2:1~7 세상에는 비밀이지만 성도에게는 보물입니다.
말씀요약:
바울은 골로새와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그리스도를 깨닫고
아무리 설득력 있는 말로도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고 당부한다.
또 성도들의 질서있는 삶을 사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선 것을 기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를 영접한 것 처럼 주 안에서 뿌리 내리고
세움을 받으며 가르침을 받은 데로 믿음 안에 굳게 서서 감사가 넘치게 하라 하신다.
말씀묵상:
바울은 골로새와 라오디아에 있는 성도들에게(1)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으라고 말씀하신다.(2)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을 수 있는가?
한 사람을 알고 이해 할 수 있는 자장 좋은 방법은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고
그분과의 삶을 나누어 보면 그나마 좀 더 쉽게 사람을 알 수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2000년전의 사람이다. 한국 사람도 아니다.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잘 깨달을 수 있을까?
그것도 하나님의 비밀이라고 말씀하시는데.....(2)
골로새서 1:9~20 그리스도가 선물한 사랑과 화평의 나라
말씀요약:
바울은 골로새 성도를 위하여 기도하고 간구하고 구한다고 한다.
기도의 구체적인 내용이 지혜과 행위와 능력과 감사등이다.
그리스도인의 신분에 대해서 흑암에서 건져 아들의 나라로 옮겼고 죄사함을 받았다.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설명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묵상:
오늘 본문에서도 계속해서 골로새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구한다고 말씀하신다.(9)
바울이 감옥에 있으면서 골로새 교인들을 위하여 구하는 내용은 무엇인가?
1.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9)
바울이 첫번째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를 구하고 있다.
매일 새벽마다 내가 구해야 할 기도 제목이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혜, 분별력을 구하는 지혜 내가 구해야 할 첫번째 기도 제목이다.
2.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10)
두번째 구하는 것은 행위에 대한 것으로 보인다.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은 행위로 나타난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기 이전에 성도들의 행위를 주목하게 되어 있다.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욕 먹을 수 있는 행동들을 삼가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셨으니 주께 합당하게 행하고
범사에 주님을 기쁘게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잘 분별하도록하자..
범사에 주님을 기쁘게 하는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 있다.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10)
열매는 하루 이틀 만에 맺혀 지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1년 과목은 수년을 키워야 겨우 열매들이 맺히는 것이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는 없다.
사망을 위하여 맺는 열매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맺는 열매들이 있기를 원하고
특별히 성령의 9가지 열매들이 내 삶 가운데 있기를 기도한다.
이런 열매를 매기 위하여 행하여야 하는 것이 있다.
가만히 있어서는 절대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가야 한다.(10)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행하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바울이 3번째 구하는 것은 능력을 구하고 있다.
그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11)
늘 내가 구하고 싶은 욕망에 빠지는 기도 제목이다.
모든 능력을 능하게 하시기를 구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구하는 능력과는 좀 다르게 구하시고 있다.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11)
나는 오래 참고 견디는 능력이 아니라 알라딘의 요술 램프와 같은 능력을 구한다.
바울이 구하는 능력은 차원이 다른 능력이다.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으로 얻어지는 능력 이것은 사랑의 원자탄이다.
고전13장 사랑장에 나오는 내용과 오래 참음과 모든 것을 견디며 모든 것을
참음으로 나오는 능력이고 힘이다. 바울은 이 능력을 구하고 있다.
나도 능력을 구하되 이런 사랑의 원자탄을 구해야 겠다..
4. 바울이 구하는 4번째 간구는 감사이다.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2)
감사의 척도가 믿음의 척도가 아닌가 싶다.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다.
나는 내게 유익하고 좋은 것에는 감사하고 당장에 불편하고 섭섭하면 감사하지 않는다.
욥이 고백한 것 처럼 주신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 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기를 원하는 감사.
기도 응답하신 것도 감사 거절하신 것도 감사 기다리라고 하신 것도 감사
날마다 감사하기를 훈련하고 배우고 익히자.
<우리의 주> 본문/ 골로새서 2:6-15
오늘 본문은 우리를 구원하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1.예수님이 주 되심
신앙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어떤 관계일까요? '주종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6절)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주'로 믿고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우리의 처참한 상황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우리 자신도 아니고,
세상의 어떤 것도 아니며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으로 믿고 예수님을 우리의 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군상에 가기 위해서는 그곳에 가는 버스에 올라탐으로 자신을 맡기듯이 예수님을 주로 믿고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말로는 예수님을 '주'로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주'역할을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것은 자신의 인격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때 '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길은 항상 수동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7절) 믿음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받으며, 굳게 서야 합니다. 한글로는 잘 표현되지 않지만 이 세 행동(분사)은 모두 수동형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가 내려지고, 그 안에서 세움을 입으며,굳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분명히 믿음의 일로서 우리가 능동적으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능동은 인격적인 능동을 의미하는 것이지 주도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로 받아들이기로 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믿음의 일에 대해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하여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그리스도께서 주인이고 주관하십니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에 뿌리를 내리고, 세워져 가며, 강건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힘써야 하는 일이면서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에 수동적으로 순종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이루어 가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주 되신 예수님께 온전히 맡기고 믿음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든 것이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셔서 행하시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2.내가 주인 됨
비천한 자신의 처지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자주 교만해집니다. 처음 비참한 자리로 떨어질 때도 교만하여 그렇게 된 것인데 타락한 이 땅에서도 여전히 교만하여 더 멸망의 길을 갑니다. "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8절) '철학'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살면서 저마다의 해답을 찾아 이런저런 많은 사상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많은 전통을 만들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한 전통은 나름대로 유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헛된 속임수'로 불려지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헛된 속임수로 불려지는 것은 그것이 사람을 속이는 나쁜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결국은 거짓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저마다 최선을 다하여 여러 사상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들은 나쁜 의도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결국은 악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람의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없기에 그가 만든 사상이 그 사람을 구원하지 못하기 때문이니다.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구원입니다. 비참한 이 세상에서 구원받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그런데 세상의 지식이 지식인 것처럼 한껏 부풀리고는 결국 구원에 이르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에 매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전통과 초등학문은 나름대로 매우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필요한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주관하는 것이 되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예수님을 말하지 않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자신'을 더 내세우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본적인 학문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기초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일반계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씀의 조명을 받지 못한 세상의 학문은 '사람'을 최고의 무엇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 될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자신을 구원하는 자신'이 될 것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다른 누구를 자신의 주로 삼지 않고 오직 자기 자신이 자신의 인생의 주로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에 교만한 사람에게는 가장 매혹적인 제안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은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결코 구원할 수 없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보다 더 못한 세상의 학문이 우리를 구원하지도 못합니다.
세상 학문은 유익하지만 우리를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선한 행동도 유익하지만 그것이 그 사람을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엇을 한들 우리를 구원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뛰어다니는 모습은 자주적인 것이 아니라 교만한 것입니다.
우리의 주는 '나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합니다.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우리의 주로 고백하는 그것이 우리의 모든 삶에서 더욱 확장되고 강하게 확립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로 믿는다하면서 실생활에서는 자신의 주가 되어 생활한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주로 받아들인 모습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되심을 우리의 실생활에서 훈련되어야 합니다. 주께 우리 삶의 주도권을 맡기고 순종함을 배워가야 합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의 인생 가운데 직접 찾아오셔서
우리의 신랑이 되어 주시고 죄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건져내시고
십자가에서 한 몸을 이루신 그 사랑을 기억하고 증거하는 자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온갖 거짓 가르침을 성령의 능력과 말씀의 진리로 이기고
이 땅 가운데 주님 원하시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날마다
확장하는데 쓰임 받는 주님의 제자 되도록 그 영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자유를 허락하여 주시고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높이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