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는 것
임수민
나는 연극을 보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 극이었다 누굴 미워하거나 시기하지 않았다 다만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주인공이 나오는 극을 끝까지 봐야 했기에
내 옆에 앉은 사람을 사랑하게 될까 봐 손을 잡고 있었다 오늘은 고백을 받아야지 무슨 고백인지도 모른 채 기쁘거나 슬프거나 외롭지 않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종종 잊었다
암전
불이 꺼지고 무대는 분주히 움직인다 불이 켜지면 그는 여전히 내 옆에 있겠지만 그가 아닐 것만 같고 무대 위에선 주인공이 영혼을 불어넣고 있다
벌떡 일어나 그 영혼을 돌려 달라 소리칠 것이다 아무래도 옆 사람의 영혼을 훔쳐 간 거 같아 아아, 나는 혼잣말을 하고 무대로 오라고 손짓하면 그렇게 연극배우가 된다
나는 아직 영혼을 빼앗기지 않았는데 대본을 외우지 않아도 몸이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영혼을 빼앗길까 봐 움직임을 멈추기 위해 노력했다 몸은 멈추지 않고 옆옆 사람이 대사를 친다
대사를 뱉어내자 나는 다음 대사를 외운 사람처럼 입을 열고 중얼거린다 아아, 당신의 몸에는 그대의 영혼이 들어가 있나요
모든 관객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여기 누가 앉아 있었나요 의자가 접힌다 나는 무대에서 내려오기 위해 마지막 대사를 외친다 내가 원래 연극배우였던가 옆 사람은 잊은 채 그 사람을 사랑했던가
허공에 떠도는 영혼 숨을 들이마시는 일
나는 연극을 보고 있다 내 옆에는 내 손을 잡으려는 사람이 있다 막이 내리고 암전 다시 불이켜지고 배우들은 마지막 인사를 한다 서로에게 입맞춤하며 서로의 숨을 뱉어내는 일
그제야 알 것 같다
(연극이 어땠는지 묻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자 소극장을 빠져나왔을 땐 해가 뜨고 있었다)
웹진 『시인광장』 2025년 3월호 발표
임수민 시인
2024년 계간 《시와산문》 신인문학상 시부문 대상 등단.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재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