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래차기라는 발차기 자체의 효용에 대해서는 일단 논외로 하더라도
어쨌든 박용수 선수는 태권도 출신 선수이고
이번 경기를 앞두고 나래차기를 쓰겠다라고 예고를 했었지요.
(제가 전에 올린 인터뷰 기사 참조)
그리고 카오클라이 같은 상대, 즉
링을 넓게 쓰며 잘 빠지고 큰 허리 움직임으로 한방을 피하는 스타일이라면
나래차기 같은 시차 적은 장거리용 연속 발차기가 먹힐 수 있는 가능성은 농후합니다.
박용수 선수의 코너맨은 무에타이 전문도장인 태웅회관의 공선택 관장이었습니다.
무에타이가 입식타격 최강종목이라는 데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고
태권도 발차기 '따위'라고 무시해도 좋을만한 포지션에 있는 사람이죠.
그런 사람이 무에타이 선수를 상대로 나래차기를 하라고 지시했다면
그것도 한번 할 수 있으면 해봐라라는 식이 아니라
"괜찮아, 맞출 수 있어. 지금 해봐! 왼발 페인트 주고 오른발!"이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주문을 넣었다면 그만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요약하자면,
선수가 기술을 쓰려는 계획이 있었고 그 기술을 쓸만한 능력을 갖췄으며
그 기술에 승산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랬을 거라는 겁니다.
흔히 코너맨을 선수 물 챙겨주는 정도의 역할로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코너맨이라는 위치는 생각 이상으로 전문적인 영역이며
제2의 선수라고 해도 좋을 만큼 선수와 신뢰있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선수가 유일하게 자기 등을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이라고도 하지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해외 원정 경기를 나가는 선수가 비용 문제로 코치 없이 와서
같은 국적의 선수나 코치들이 서로 코너를 봐주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저도 일본에 한국 선수 경기 취재를 가면 그런 경우를 자주 봤고
때로는 저보고 코너맨을 봐달라고 요청하는 선수도 있었습니다.
없는 것보다야 낫겠습니다만, 대개 그런 경우
임시 코너맨이 선수를 제대로 서포트해주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무슨 지시를 내려야 할 지 몰라 아주 기본적인 사항 아니면 그냥 남은 시간만 불러주거나
아니면 자기 지시와 선수의 손발이 맞지 않아 답답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래서 선수 중에도 그럴 땐 그냥 시간만 불러달라고 처음부터 얘기하기도 합니다.)
저 같은 경우는 대개 요청을 받은 시점에서 거절을 합니다.
(아직 코너맨으로 서본 적이 없고 그것도 큰 공부가 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런 부탁을 받을 때마다 서고 싶다는 생각은 참 굴뚝 같은데요...
심판 보는 것에 부담 느끼시는 분들이 많은 것처럼 -저는 심판에는 그렇지 않습니다만 -
오히려 코너맨에 부담을 많이 느끼는 편이라 역시 갈등하다가 고사하곤 합니다. )
왜냐 하면 그 선수를 100%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냥 대충 저 선수는 이런 스타일이고 특기가 뭐지.. 정도만 알아도
이런 걸 하면 좋을텐데, 체력을 길러야지 라고 쉽게 얘기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관중이나 팬, 기자 같은 3자의 입장에서 가능합니다.
실제로 코너에 선다면 그런 반 탁상공론이나 이상론은 선수에게 별 도움이 못 됩니다.
따라서 코너맨이라면 선수가 경기를 앞두고 해온 훈련량, 집중했던 기술,
실제 대련 시의 자세와 박자, 컴비네이션 패턴은 물론
버릇이나 징크스, 신체 상태, 컨디션 역시 꼼꼼히 체크하고
경기 중에 특히 선수가 신경쓰는 부분도 미리 알아둬서 챙겨야 하며
또 상대에게 이기기 위해서 어떤 전술을 선택하고 있는지를 모두 염두에 두고
그것을 바탕으로 경기의 흐름을 알려주고 지시를 내려야 합니다.
쉬운 예로 어떤 선수가 하이킥을 특기로 삼고 열심히 연습했는데
코너에서는 하이킥 차지 마, 로킥으로 무너뜨려... 라고 주문한다든지
받아치는 걸 못하는 선수에게 기다렸다가 받아쳐... 라고 주문한다면
그 경기의 내용이나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하면 보는 입장에서야 즐겁겠지만
코너맨의 입장에서는 빙빙 돌아 빠지고 클린치로 시간 끌어서라도 이길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라도 선수가 이겨야 한다면 그렇게 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우... 요거 요거 아까웠죠, 그런데 만약 이게 나래차기로 연결됐다면?
다시 박용수 얘기로 돌아와서
박용수는 초반 긴장 탓인지 나래차기를 쉽게 시도하지 못했습니다.
빠른 체력 소진도 역시 긴장에 원인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후에 허벅지 근육 파열이 있었다는 것도 밝혀지긴 했습니다만)
코너맨은 여기서 계속해서 나래차기를 주문했습니다.
실제로 3라운드에 한번 시도했을 때 성공적으로 먹혀들어갔지요.
경기 초반 체력이 충분할 때 시도해서 성공했다면 다운도 뺏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 한 번 성공하고 나면 박용수 스스로 자신감을 얻어
흐름을 자신의 것으로 이끌어 갈 수 있었을 테고
(앞발얼굴돌려차기나 내려차기를 성공한 이후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시도했던 것,
반면 한번 실패한 뒤차기는 이후 한 번도 시도하지 않은 것을 생각해보세요.)
그랬다면 경기 결과는 어떻게 바뀌었을 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문제는 코너맨이 지시를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을 갖지 못해
코너맨이 그토록이나 소리를 질러대도록 한 박용수에게 있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박용수는 체력이 아니라 결단력,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아직 신인에 불과한 박용수가 K-1 링 위에서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 패인이라면 패인이겠지요.
하지만 코너맨의 지시는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한줄요약 :
까놓고 말해서, 코너맨이 바보도 아니고... 할만 하니까 하라고 했겠지~ -_- 안 그래요?
첫댓글 저도 그 나래차기 주문목소리가 생생하다는..워낙 크게 들려서리ㅎㅎ..좋은글 잘 읽었습니다..감사요 ^^
저는 경기는 못봤습니다만...주변에서 태권도 안돼 하니깐 살~~짝 열불이 나더라구요...그치만 카오경기를 본 저로서는 연장까지 가서 패했다는데 박용수선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경기 운영이나 이런 면이야 점차 나아지겠죠...국기 태권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