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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live/0-YdA5aBO00?si=cLvMU4X_jbO_Mm23
율법주의와 천사 숭배 2:16~19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18 아무도 꾸며 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극단적 금욕주의의 실체 2:20~23
20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21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22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23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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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 요약]
바울은 장래 일의 그림자들을 의지하지 말고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붙들라고 권면합니다. 온몸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공급받고 연합해 자라납니다. 우리는 세상의 초등 학문에 대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 한때 쓰이고 없어지는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더는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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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주의와 천사 숭배 2:16~19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골로새 교회 안에는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의 준수를 요구하는 율법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16절). 그러나 음식법과 절기법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건을 예시하는, 장래 일의 그림자일 뿐 실체가 아닙니다(17절; 히 10:1).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기능이 정지(완성)된 율법을 더는 준수할 필요가 없습니다(히 10:9~14). 또한 골로새 교회 안에는 거짓 겸손과 천사 숭배를 가르치는 이단이 있었습니다(18절). 그들은 천사가 그리스도보다 우월하다고 가르쳤고, 그들이 소유한 거짓 환상을 하나님의 비밀이라며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연결되지 않았기에, 그들 안에는 참된 생명이 없습니다.
● 더 깊은 묵상
골로새 교회 안의 거짓 교사들은 어떤 것들을 가르쳤나요?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가르침을 들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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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금욕주의의 실체 2:20~23
바울은 육체의 정결을 위해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가르치는 금욕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합니다(21절; 레 11~15장). 한때 쓰이고 없어질 음식 규정에 집착하는 것은 사람의 계명과 가르침을 따르는 행위입니다(22절).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것이기에 거룩하니, 성도는 철학이나 금욕주의나 천사 숭배 같은 ‘세상의 초등 학문’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20절; 딤전 4:3). 금욕주의가 ‘자의적 숭배’ 곧 꾸며 낸 경건과 거짓 겸손과 육체의 욕망을 통제하는 지혜로운 수단처럼 보여도, 사실 육체의 정욕을 다스리는 데는 어떤 유익도 주지 못합니다(23절). 바른 경건은 금욕이 아닌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에 기초합니다.
● 더 깊은 묵상
바울이 금욕주의자들의 주장을 반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바른 경건에서 벗어난 잘못된 금욕주의의 사례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한절묵상:골로새서 2장 23절
성도는 영적으로 유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의적 숭배'(꾸며 낸 경건)란 자기 뜻대로 갈망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금욕주의처럼 잘못된 갈망은 자기 몸만 괴롭힐 뿐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모양'에 해당하는 헬라어 '로고스'는 '말, 소문' 등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이 아닌 그럴싸한 말이나 소문을 기준으로 삼는 신앙생활은 어떤 유익도 없습니다. 영적으로 유익한 삶은 하나님을 갈망하고, 겸손히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시작됩니다.
영성 훈련이란 자기 삶이 하나님 외의 다른 것들로 가득 차지 못하게 막는 일이다. - 헨리 나우웬
오늘의 기도
주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붙들며 날마다 강건하고 성숙해져 가기를 원합니다. 사람의 가르침을 좇거나 위선적인 경건에 빠지지 않도록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게 하소서. 진리는 날카롭게 분별하고, 은혜는 순전하게 채워 가는 신실한 주님의 제자가 되게 하소서.
오늘의 찬송(새 453 예수 더 알기 원하네)
하나님은 당신의 거룩한 백성들이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떠나서 오직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영양을 공급받고, 서로 연결되어서 자라가길 바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신 것을 적용함
세상의 온갖 규례와 규정, 형식과 전통에 얽매인 채 복음의 참 의미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하자
다른 복음, 다른 우상을 끌어들이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끊어지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깨어 있도록 하자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영양을 공급받고, 그분과 서로 연결되어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
오늘 본문은 골로새 교회의 거짓 가르침에 대하여 사도 바울이 반박하는 이야기로, 율법은 그림자로 단지 복음으로 인도하는 초등학문에 불과한 것이고, 천사를 숭배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붙어 있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야 신앙이 성장할 수 있고, 금욕으로 본성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곧 거짓된 교리 바로잡기, 율법주의, 천사 숭배주의, 극단적 금욕주의 등입니다.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 "붙잡지도 말아라. 맛보지도 말아라. 건드리지도 말아라" 하니, 웬 말입니까? 이런 것들은 다 한때에 쓰다가 없어지는 것으로서, 사람의 규정과 교훈을 따르는 것에 불과합니다.’라는 말입니다. 괄호 안의 말은 삽입구로, 사도 바울의 말이 아닙니다. 즉, 그것은 골로새 교회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의 슬로건으로, 율법주의와 금욕주의가 혼합된 그들의 교훈을 압축한 말입니다. 즉, 먹는 것과 입는 것 등 의식주에 필요한 것들조차 억제하고, 세상과 분리해야 거룩해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즉, 음식이나 물질은 일시적이며 부패하는 것이라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 그것에 대해 바울이 반반한 말입니다. 사람은 그런 율법 조항이나 금욕 같은 것을 통해 내적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과의 연합을 통해 성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람의 계명대로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듯이, 골로새 일부 교인들 역시 율법주의와 금욕주의 등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떠나 있었기에, 바울은 영적 아비로서 그렇게 나무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 ’그런 것들은, 꾸며낸 경건과 겸손과 몸을 학대하는 데는 지혜를 나타내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라는 말입니다. 자의적 숭배는 하나님과 상관 없이 사람이 자기 멋대로 만든 규례를 말합니다. 겸손은 천사 숭배자들이 인간이 하나님을 감히 경배할 수 없으므로 천사를 통하여 경배해야 한다는, 꾸며낸 겸손을 말합니다. 몸을 괴롭게 함은 각종 금욕주의를 말합니다. 곧 골로새의 거짓 교사들이 탁월한 지혜라고 주장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지혜인척하나 조금도 유익이 없다고 일축해 버립니다. 인간의 죄악 된 본성을 제어하는 데에 도무지 유익을 줄 수 없는 것들이라 그렇습니다. 그런 육체적 탐닉들은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다스려 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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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 아무도 겸손한체하며 천사숭배를 주장하면서 여러분을 비방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런 자는 자기가 본 환상에 도취되어 있고, 육신의 생각으로 터무니없이 교만을 부립니다’라는 말입니다. 이는 영지주의, 율법주의보다도 더 크게 골로새 교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천사숭배’에 대한 폐단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것이 거의 없지만 당시 그 사회에선 천사에 대한 동경 사상이 있어서 천사를 숭배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던 까닭입니다. 세계적으로 그것에 대한 피해는 아직도 커, 실은 사탄 교회 같은 것들도 거기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그 현상의 특징은 사도 바울이 지적한 대로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한다는 것입니다. 즉, 본 것을 본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물타기 하고, 뻥튀기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체험이 위대한 것이 될 수 있고,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한 것처럼 해야, 경지에 오른 수준으로 여겨져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정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헛되고 거짓된 것들입니다. 더 나아가 사기이고 불법을 행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불의를 밝히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은사를 경험한 사람도 없는데, 대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오직 예수! 복음! 뿐으로, 그것이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어떤 것도 예수그리스도 외에 교회의 머리가 될 수 없기에 그렇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영적인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각종 은사를 선물로 받을 수 있으니, 그 모든 것들은 우리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결코, 개인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지요. 따라서 신비한 체험을 했다고 자랑하거나, 예언을 받았다고 그것을 함부로 발설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골로새 이단들처럼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발백중 보고, 듣고, 느낀 것에 사람의 생각이 가미되어 과시될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영광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꾼 꿈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유리할 대로 해몽하는 우리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라고 외칩니다. 이는 오직 주님만 따라가며 마음에 그분만 모시기를 소원하라는 말입니다. 그분과 그분의 말씀을 붙들지 않으면 천 가지 은사라 할지라도 헛된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이상한 소문을 들으려고 여기저기 기웃대지 않습니다. 예언 받았다는 수상한 데 방문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시간에 형광펜을 들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곳을 줄을 치며 묵상합니다. 그리곤 한 번이라도 더 삶에 적응하려고 무지 애를 씁니다. 왜냐하면, 순종은 제사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보다 피조물로서 더 영광된 일이 어디 있을까요? 하물며 더 좋은 것이 있는데 어찌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최고의 은사는 오늘 주신 말씀대로 사는 삶입니다.
내게주시는교훈은무엇입니까?
16,17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전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이제 거짓 교사들의 비판을 수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주장을 따라 먹고 마시는 법들을 지키고,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 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도록 요구하지만, 그 법들은 실체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그림자에 불과했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성취하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이 더는 경건의 표지나 판단과 비판의 기준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살지 않으면서, 경건의 모양만 근사한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18,19절 바울은 신비체험을 했다고 우쭐거리는 거짓 교사들이 감히 성도들을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천사들의 겸손한 모습과 천사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면을 환상 중에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정말 은혜의 경험이라면, 우월 의식에 사로잡혀 타인을 정죄하지 않고 이사야처럼 자신의 부정함을 한탄했어야 마땅합니다(사 6:5). 교만하여 자신을 보지 못하고,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고, 자기 경험만을 절대화하는 사람들의 비난에 괘념치 마십시오.
제아무리 대단한 체험을 했더라도 그리스도를 통해 교회와 결합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고,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말씀을 통해 주님과 인격적으로 교제하지 않고 단지 신비한 체험이나 은사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말로만 떠벌리기를 좋아할 뿐 내적으로 견고한 신앙으로 성장하지 못합니다.
20-23절 거짓 교사들은 특정한 음식과 음료를 금하고 일부러 몸을 고통스럽게 하면 하나님을 예배하는 천사들의 환상을 볼 수 있다고 믿었고, 그 경험이 하늘에 속한 거룩한 백성이라는 증거라고 주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환상으로 보았다는 천사들의 숭배를 흉내 내어 금식하며 자신을 낮추는 그들의 모습이 겉으로는 지혜롭게 보이지만, 실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바울은 비판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거나 진정으로 경건한 사람이 되는 데는 무익하고, 단지 육체의 만족에 그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 종교적 수고가 궁극에 무엇을 위한 것인지 돌아봅시다.
몸이 머리로 인해 있듯이 교회도 머리로 인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골2:19)
따라서 뇌사상태의 몸이 죽은 것이나 다름 없는 것처럼, 머리 없는 교회는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머리 없는 교회 되게 하려고 쉬지 않고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자기가 본 것과 자기의 생각을 따르게 하여 머리를 붙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골2:18~19)
이 부분을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겸손한 체하며 천사들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속아서 여러분의 상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들은 자기들이 본 환상을 과장하며 헛된 생각으로 들떠 있습니다"(골2:18)
결국 머리 되시는 예수님을 버리고 자기가 머리가 되어서 자기를 자랑하며 자기 생각대로 하려다가 머리가 없어 죽은 몸과 죽은 교회가 되어 상을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사람을 머리 삼아 따르겠습니까? "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골2:22~23)
사람을 머리 삼아 따른다면 종교적 성취는 어느 정도 이룰지 모르지만, 그리스도께로부터는 떨어지고 하나님 나라와는 아무 상관 없는 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5:4)
그러나 우리는 머리가 되시는 주만 순종하며 따르기 원합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골1:18)
왜냐하면 모든 주권이 머리이신 예수님께 속하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대상29:11)
오직 하나의 계명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닮기 원합니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십자가로 모든 것을 멸하시고 승리하신 것을 받아들이고 믿었다면(15절)
과거 그들을 얽매이게 하는 전통적 관습이나 철학이나 유대교로부터 규정하는 절기나 안식일을 통한 율법적 기준에 얽매이게 하는 그림자와 같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함(16-17절)을 강조합니다.
세상에서도 너무 유명한 운동선수나 정치인, 셀럽들을 너무 멀리서 보면 그 본질적 인성을 도외시하고 동경의 마음만으로 맹신하고 그들의 내면을 오해하거나 거짓 포장시킬 수 있습니다.
복음에 관하여 골로새 교인들에게 전달된 것들 중 부가적인 규칙이나 교훈에만 집중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과 그 부활의 능력의 핵심을 잃어버리고 몸 된 교회를 머리 되신 그리스도 아래 바로 세우는데 장애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이들이 그 믿음의 창시자요 모든 바라는 것들의 궁극적 실상과 결론이 되시는 머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의 눈이 열려 몸 된 교회로서 더욱 굳건히 세워져 나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19절)
가장 중요한 재능 중의 하나는 계속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언뜻 보기에는 부족해 보이고 소질이 없어 보일지라도 꾸준히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고 성실한 자세를 유지하다 보면 결국 그 바라는 것 이상의 재능을 소유하는 것을 적지 않게 관찰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율법적 신앙의 테두리를 감당하지 못했던 이방인들로서는 때론 천사들을 숭배하거나 세상적 지혜, 거짓 겸손, 꾸며낸 경건이나 육신을 해하기까지 하며 거짓의 신앙을 입는 것으로 대신하여 위로를 얻고 그 구원에 대한 대가를 치르려 했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직접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 구하고 스스로 자신을 쳐서 그 앞에 복종시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붙들고 그분께로부터 오는 명령과 힘을 공급받을 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참 성장과 성숙 그리고 열매를 맺는 인생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19절). 죽을 수밖에 없는 죄를 해결하고 세상적 지혜에서 찾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오늘 하루의 시간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골로새서 2:16~23 율법은 복음의 그림자일 뿐입니다.
말씀요약: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기 때문에
이 일로 여러분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십시요.
일부러 하는 위선적 겸손과 천사 숭배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
자의적 숭배와 몸을 괴롭게 하는 오직 육체를 좇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다.
말씀묵상:
골로새 교회를 위협하던 이단 사상에 대하여 계속해서 말씀하시고 계신다.
어제 본문 말씀에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8) 말씀했다.
영지 주의 이단에 대한 경계의 말씀이였다.
이것은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 학문을 따르는 것이지(8)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8)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오늘 본문에는 영지주의 말고도 몇 가지 이단 사상을 경계하시고 계신다.
1. 유대 율법주의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승달 축제나 안식일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기 때문에(16)
이 일로 여러분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십시요.(16)
유대 율법주의 자들은 육체의 할례를 포함해서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대한 규정,
매월 초하루에 여호와께 드리는 초승달 축제나 유대인들이 정해 놓은 안식일 규정에 따른
모든 율법이 구원과 관계가 있다고 하는 이단 사상이다.
2000년이 지난 현대 교회에도 이런 문제로 인해서 교파와 교단이 갈라지기도 한다.
정말 목숨걸고 지켜야할 복음의 본질 때문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비본질적인 그림자를 가지고 예수와 그리스도가 싸우게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 변경 시키면 안되는 것과 변화 시켜도 되는 것을
잘 분별하고 판단 할 수 있는 성령의 분별력을 부어 주옵소서.
2. 천사 숭배 사상에 대해여 말씀하신다.
거짓된 겸손과 천사 숭배를 주장해서 나의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18) 하신다.
천사 숭배 사상이란? 사람이 하나님께 직접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매우 불경한 일이고
교만한 일이기 때문에 중보자로 천사를 세워서 천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겸손한 태도라고 가르치는 이단 사상이다.
마치 고해 성사를 하는 것과 비슷한 이단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참 좋은 목사님은 당신의 기도 제목을 나에게 가져 오지 말라고 하시는 목사님이다.
형제님이 직접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는 일을 왜 목사에게 가져 오냐고 가르치시는 목사님이다.
형제의 기도 제목을 목사님께 드려도 목사님이 그 기도 제목 해결해 주실 수 없다.
나의 기도 제목은 내가 직접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께 직접 요청 드리면 된다.
3. 금욕주의에 대한 말씀이 있다.
자의적 숭배와 몸을 괴롭게 하는데 육체를 좇는 것은 조금도 유익이 없다(23) 하신다.
자의적 숭배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 뜻과 생각되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나름대로 아무리 열심히 섬긴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과 상관이 없으면 다 헛 것이다.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은 금욕주의에 대한 말씀이다.
거짓 교사들은 세상적인 것은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21)
가르치므로 세상의 접촉과의 분리를 요구하며 외적인 금지 명령을 통해서
거룩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외적인 금욕을 통해서 내적인 변화를 가져 올 수 없을 뿐만아니라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고 거룩하다고 할 수 도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통하여서만이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는다.
금욕대신 하나님의 은혜를 날마다 구하자.
그러나 유대주의자들은 먹고 마시는 문제, 절기나 초하루, 그리고 안식일 문제를 구원과 연결시키려 하지만(16), 이것들은 다 오실 그리스도의 모형들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다 성취된 것들입니다(17). 할례, 절기, 율법의 준수가 신앙의 행위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그리스도의 복음을 방해하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23).
사도는 이어서 신비주의와 금욕주의를 다룹니다(18~23). 일부러 겸손한 척 하면서 천사를 숭배하는 자들에게 현혹되지 말라고 권합니다(18). 금욕주의와 신비주의는 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앙은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내가 맺는 관계에 근거합니다(19). 지체가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으면 몸은 자라게 될 것입니다(19). 그리스도인은 자신에 대해서 죽은 자인데, 어떻게 육체를 복종시키는 금욕주의로 살 수 있을까요?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21)”하는 것은 전형적인 금욕주의의 표현입니다. 이런 명령들은 육체의 일을 금하는데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23).
사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오직 그리스도는, 유대주의가 말하는 행위 종교에 대한 처방이며, 또한 신비주의나 금욕주의에서 벗어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교회들도 골로새 교회처럼, 그리스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이런 인식은 그리스도를 떠난 설교와 프로그램들(절기, 초하루, 율법 준수 등)로 교회를 채우게 되는데,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 외에 어떤 것을 더하는 태도일 뿐입니다.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교회가 죽어가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와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이 우리를 이 모든 위험에서 건져주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행하고, 그 안에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고,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오직 예수뿐입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골고다 저 십자가에서, 저희의 모든 죄의 문서를 파기하고 승리하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미 저희의 구원이 성취되었음을 믿습니다. 이제는 다른 것으로 구원에 덧칠하려는 헛된 욕망과 어리석음 가운데 머물지 않게 하시며,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만족과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인간이 지어낸 율법주의와 금욕주의, 신비주의를 통한 거짓 만족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고 뿌리를 박고 세움을 입고 믿음으로 행하여 감사함이 넘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씀요약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은 장래 일의 그림자로 이 때문에
비판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꾸며 낸 겸손과 천사 숭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
세상에 사는 것처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를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율법 대신 복음으로(2:16~17)
구원은 율법이 아닌 복음의 능력에서 나옵니다. 율법은 단지 복음으로 인도하는 초등 학문에
불과할 뿐입니다. 유대주의자들은 음식법이나 절기, 초하루나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은 장래 일의 그림자일 뿐이며 그리스도의 오심을 통해
근본적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이미 완성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율법 준수를 강요하는 것은 복음에 대한 모독입니다.
- 묵상 질문: 유대주의자들이 시효가 지난 율법에 여전히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내 속에 남아 있는 율법주의는 무엇인가요?
신비한 경험 대신 그리스도로(2:18~19)
영적 성장은 인간의 노력이나 신비한 체험이 아닌,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교제를 통해 점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골로새의 어떤 이단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로 신비한 천사 숭배를 강조하며,
이것이 마치 하나님을 직접 경배하는 것보다 더 겸손한 행위인 양 성도들을 현혹했습니다.
그러나 몸은 머리와 연결되어야 합니다. 머리 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영양분을 지속적으로
공급하십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거룩한 피조물로 자라 가야 합니다.
- 묵상 질문: 피조물로서 하나님 앞에서 참된 겸손함은 어떤 것인가요?
- 적용 질문: 예수님과 긴밀하게 연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금욕 대신 은혜로(2:20~23)
구원은 노력의 결과가 아닌 은혜의 산물입니다. 아무리 선을 행하고,
의지를 동원해 정욕과 탐욕을 철저히 제어하려 해도 부패한 본성을 완전히 처리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교만과 자기 의로 인한 또 다른 죄에 빠지게 될 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나의 의를 내려놓고 예수님의 의를 붙들 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묵상 질문: 내 노력의 산물인 선행과 은혜의 산물인 선행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 적용 질문: 육신의 정욕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요?
오늘의 기도
주님의 보배로운 은혜가 아니라면 저는 지금 어디에서 방황하고 있을지요!
구원을 얻기 위한 공로가 저 자신에게는 하나도 없음을 순간순간 기억하며,
율법과 관습의 매임에서 벗어나 은혜의 바다에서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날마다 우리의 마르지 않는 샘이 되시고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반석이 되어 주시니
감사와 평안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됩니다.
변치 않으시는 주님을 따라 우리의 믿음을 바로 세우고
몸 된 교회를 든든하게 하는 주님의 제자로 걸어가도록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고
그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채워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온갖 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베풀어 주시고
저 북녘땅의 백성들에게도 예배의 자유와 말씀의 기름 부으심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오직 아버지로부터 오는
참 사랑과 은혜로 채움 받는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