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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동활의 음악정원 ♣ 원문보기 글쓴이: 김 용
Fernando Sor (1778. 2.14~1839. 7. 10) 의 소나타 작품14 Sonata for Guitar in D major, Op.14 "Grand Solo" 를 감상하겠습니다. 19세기초 고전파 음악의 대표적인 작곡가 겸 기타리스트 페르난도 소르(Fernando Sor). 1778년 2월 14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소르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초까지 활약한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이며 이탈리아의 쥴리아니 (M.Giuliani)와 함께 고전파의 쌍벽을 이룬 존재였습니다. 5세때부터 작곡을 할만큼 신동으로 천부적인 음악의 재질을 타고 난 소르는 카탈로니아의 몬토세라토 수도원 부속학교에서 바이얼린, 첼로, 화성학, 대위법 등을 공부합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이태리 가극이 전성을 이루었는데, 오페라에 감명을 받은 소르는 19세 때 "칼립소섬의 텔레마코"라는 오페라를 작곡하여 공연하여 호평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는 20대 초반에, 화가 고야의 후원자이기도 하였던 알바 공작부인의 가족으로 살면서 당시 막강한 메디나셀리 공작의 후원을 받으며 창작활동을 하였는데 오페라, 교향곡, 오라트리오, 3개의 현악4중주, 여왕봉 찬가, 피아노 또는 기타반주의 스페인 가곡 등 수많은 작품을 발표합니다. 소르는 반왕정 해방운동 등의 정치적 이유로 스페인을 떠나 파리에 망명, 1817년에 영국으로 건너가는데, 마침 기타음악의 개화기였던 런던은 소르의 기타 연주에 열광적으로 호응하였다고 합니다. 그후 소르는 기타를 위한 작품활동은 물론 오페라 작곡을 계속하여 호평을 받게 되는데 파리에서는 그의 오페라 "신데렐라 Cendrillon"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어 1823년에서 1830년까지 무려 104회나 공연되었다고 합니다. 1823년 파리에서 신작 발레 "신데렐라"를 상연한 후 당시 연주가들이 동경하던 러시아의 여행에서 7현 기타를 사용하던 그곳에서 현재와 같은 6현 기타의 묘기를 보여 절찬을 받았습니다. 페데르부르그에서는 국왕 알렉산더 1세의 장례를 위한 장송 행진곡을 작곡하였으며 모스크바에서는 니콜라스 1세의 즉위 축하를 위한 발레 "엘큐르와 옴파레"를 작곡 상연하였습니다. 파리로 돌아 온 후에도 유럽에서의 소르의 기타 연주는 계속 성공을 거두어, 그로 인하여 기타(guitar)의 대중적인 인기가 다시 살아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만년에는 빈곤과 병고, 사랑하는 딸의 죽음 등으로 비참하고 불행한 생활을 한 끝에 1839년 7월 13일에 사망하였습니다. 소르는 같은 스페인 출신 기타음악가 아구아도(Dionisio Aguado 1784~1849 스페인)와 깊은 우정을 나누면서 한때는 수년간 함께 살기도 하면서 서로의 예술을 깊이 연구하였다고 합니다. 기타를 연주하는 주법에 있어서, 아구아도는 손톱을 길러 사용한 주법을, 소르는 손톱 없이 하는 주법으로 서로 상반된 주법을 사용하였으나 서로를 존경하며 우의를 두텁게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당시 소르는 두사람을 위한 연주회용 2중주곡인 "두 친구"를 작곡하였는데 이곡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기타리스트들에 의하여 자주 연주되고 있는 명곡이라고 합니다. 그가 쓴 교본에서는 기타의 기술적인 면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손톱의 사용이 편하다고 쓰고 있다고요...!!! 소르는 '주제와 변주(Theme et Variations)'형태를 좋아해서 프랑스와 스코틀랜드의 수많은 노래를 주제로 변주곡들을 만들어냈는데 클래식 기타의 10대 명곡 중 하나로 손꼽히는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그 예입니다. 이 연주곡은 너무도 유명해서 클래식 기타 음악을 잘 모르시는 분들도 아마 충분히 귀에 익은 곡일 것입니다. Sonata for Guitar in D major, Op.14 "Grand Solo" Fernando Sor (1778. 2.14~1839. 7.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