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참 빠르네요. 은성이가 벌써 졸업이라니. 저는 쑥스러워서 못 읽겠고 집에 가서 선생님이 은성이한테 읽어주세요. 글이 조금 깁니다.”
나현식 선생님이 직원 USB에 급하게 파일을 담아주며 당부한다.
“직접 읽을래요?”
“읽어주세요.”
낭독이 끝난 후 잠깐의 정적이 흐른다.
“나도 선생님한테 편지 써야겠다.”
“생각날 때 알려줘요. 제가 받아적을게요.”
길었던 은성이와의 3년을 마치며
나현식
2017년 겨울, 교육청에서 5년간의 근무를 마치고 다음 근무지가 아림고등학교로 결정되었을 때입니다. 전출지가 정해지고 느꼈던 두 가지의 감정은 다시 학교로 나가는 것의 두려움과 1년간 담당하게 될 학생의 궁금함이었습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될 학생을 배치통지서의 이름으로만 접하다가, 실제 학교 현장에서 담당하게 된다는 기대와 두려움이 함께 다가온 것입니다.
5년 동안, 교육청 주관의 현장체험학습에서만 간간이 만나던 그 학생. 제법 힘들다는 그 ‘서은성’이라는 학생과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신변처리 지원, 식사 지원, 수업 지원 등 모든 일들이 낯설었던 그 학생이 이제 곧 졸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3년간 은성이와의 생활이 어땠는지 이야기하자면 책 한 권으로도 다 설명하기 힘들겠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은성이는 3년간 학교 대부분의 일정을 잘 따라와 주었고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특수학급 생활을 한 학생입니다. 요령 부리는 일 없이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싫은 내색 한번 하지 않고 일주일 두 번의 실습을 참가하고, 특히 올해는 방과 후 직업교육까지 스스로 의지로 참여해냈습니다. 물론, 간혹, 그러니까 아주 가끔, 거짓말로 학급 모두를 골탕 먹인다거나 하는 일은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도 추억이네요.
3년간 은성이는 몸도 많이 성장했지만, 마음도 많이 성장했습니다. 1학년 때, 학급의 의사결정 상황이나 협동을 필요로 하는 단체활동 등에서 간혹 나타나던 다소 이기적인 성격도 3년간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바른 마음씨를 가지는 것으로 변해갔습니다. 스스로도 배려받아야만 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학교뿐만 아니라 은성이가 생활하는 월평빌라의 역할도 컸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록 변화의 속도는 느리지만, 꾸준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은성이의 모습을 보면서 3년이 지난 것 같습니다.
눈을 감고 3년간의 은성이를 떠올렸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모습은 작년 특수학급 수학여행 첫 번째 밤, 장기자랑에서의 노래하는 은성이의 밝은 얼굴입니다. 반 친구들이 휠체어 앞에 서서 은성이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다른 친구들은 박수를 치면서 크게 호응하던 바로 그 모습 말입니다. 그 순간의 은성이는 누구보다 밝았었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습니다.
특수교사는 학생이 항상 그런 모습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학교에서, 특정한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도 언제나 그렇게 밝고 자신감 있는 사람으로 생활하기를 바랍니다. 은성이도 꼭 그렇게 해 주었으면 합니다.
1월 13일. 졸업식까지는 이제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다행히 은성이에게는 졸업 이후 2년간 스스로의 생활기술을 조금 더 갈고 닦을 수 있는 기관에서의 생활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항상 조금씩 전진하는 성실한 은성이의 의지를 믿습니다. 새로운 학교에서도 그런 은성이의 장점이 잘 발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밝은 은성이의 앞날을 기원하고, 또 바랍니다.
2020년 12월 16일 일지, 류지형.
임우석: 좋은 선생님, 친구들과 후회 없이 3년을 보낸 은성이의 졸업을 지켜보며 류지형 선생님의 감회가 남다르겠습니다. 나현식 선생님의 편지를 듣고 은성이도 답장을 쓰면 좋겠네요. 졸업식날 선생님께 전해드리면 선생님이 기뻐하겠습니다. 류지형 선생님의 수고도 감사합니다.
월평: 나현식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은성이가 학교 잘 다녔습니다. 학교 행사 때마다 참석하며 친구들과 어울렸습니다. 나현식 선생님 덕분입니다. 편지 읽으며 뭉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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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은성, 학교 20-10, 거창나래학교 전공과 면접/학교 20-11, 거창나래학교 전공과 합격
첫댓글 나현식 선생님의 편지가 참 감동입니다.^^
한 문장 한 문장에 서은성 군을 향한 애정이 가득하네요.
예나 지금이나 선생님의 따뜻하고 자상한 마음이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