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야님의 글을 보고
옛적 내 생활이 스쳐 올려봅니다.
우린 결혼을해 이년을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남편 직장도 서울이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랑이 늘 홀로 계시는 어머님때문에 편치않다며
시골로 내려가 살자며 싫으면 일년이라도 살아보자고
퇴근해 저녘식사를 할때 늘 그렇게 부탁을했습니다.
신혼생활에 어머님이랑 산다는것도 불편하구
내가 직장 다니던터라 직장을 그만둬야할 입장이되니
더욱 반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돈도 자기가 쓰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할것이며
어머님이랑 사는동안 불편하지않도록 적극 협조한다며
저녘상 머리에서 늘 말을꺼내 반은 눈물 바람이었습니다.
저도 고집이있고 아집은 있지만 이혼을 안하려면
남편의 입장에 동의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윽고 이사를 하게되었습니다.
일손을 도와주신다며
지하철공사 에서 휴무인 역무원들은 오셔서 시골가
놀다올 요량으로 짐보다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딸이 하나있고 두째를 임신 햇던터라 몸도 무겁고
반갑지 않은 이사였기에 직원들에게도 좋은 인상은
아니었을듯 합니다.
어머님은 일단 같이살겠다 왔으니 무척이나
저에게 고마우셨나봅니다.
스레트 지붕에 나무마루, 흙마당...
거친 마루를 하루에 서너번씩 닦아 나중엔
얼굴 그림자가 비치고 이끼가 끼려했던 앞마당은
수수비로 몇번씩 쓸어대니 나중엔 반들반들 윤이 나더군요.
어머님께서는 낭비라고는 없는 검소하시구 그저
식사하시면 밭으로 논으로 정말 일벌레 셨습니다.
저는 그저 살다보니 빨래가 취미가 되어버렸고 완죤
전설의고향 쓰냐는 친구의 말처럼 시골 아낙이었습니다.
목욕하러 갈라하면 한번은 간다말씀드리고 한번은 밤에
몰래 챙겨 병원에 다녀온다며 다녀오는식으로 완죤 된
시집살이엿습니다.
살며 살며 젊은 나이에 한이되고 남편이 미웠습니다.
잘나가던 직장이며 꿈을 키우던 서울생활이 너무나 그리워
어머님이 없는틈을타 형님께 전화를해 나좀 형님댁에
며칠 머물게 도와달라고 요청도 하며 시골을 벗어나고싶었습니다.
.................................................................................................
윗글처럼 불편한점 많은 아니고 좋은 기억도 많았는데
원해서가 아니고 의해서가 되어버리니까 ...몇년을 살아도
내집같지 아니하고 분가할 생각뿐이 었나봅니다.
시골에서 사는동안 뒷집에 침해노인은 제가 해드리는 점심식사로
3년을 사시다 돌아가셨고, 집안 어르신은 딸만 있어 사위의 눈총을받고
이집저집 돌다가 저와함께 3년을 사시다가 분가나오며
헤어졌습니다.
윗글의 그러한 희생이 있어서일까 지금 저희는 딸둘에 아들녀석이
있지만 아이들 착하게 대학들어가 열공하구 어머님이 인정해주시구
남편도 제가 뭣을 하려구 결재를 요구하면 알아서 하라며 믿어주고
형님 부부도 저를 존경 한다고 까지 하셨습니다.
지금은 여러가지로 몸도 마음도 약해져 부실하지만
애써 고생하시던 시 어머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 고생 하시던 흔적을 저희에게 봉사하셨으니깐여.........
현재 84세이신데 불편하신곳 없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랍니다.
첫댓글 좋은글입니다 , 저희 어머님 생각이납니다 매일같이 새벽에 절에가서 자식잘되라고치성을 올리시는 우리어머님 그어머님의 뜻데로 사회봉사를 할수있는 휼률한사업가로 성장키위해 최선을 다한답니다
하시는일 번창하시길빌며 ,노인분 한사람 한사람에게 사랑이 간절하시길...
앵커님도 그런 시절이 있었네요..그런 고생 마다하지 않았으니 지금은 인정 받고 사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들도 잘 자라 주었으니 우리 그것으로 만족해야겠지요..같은 공감대를 이루어 주어서 내가 더 고맙군요..앞으로 열심히 살아 가입시더~~~
분가할때 살던정이 있어 할머님, 어머님 너무 섭해하셔서 마니 괴로웠습니다.
지금의 50대 전후... 거의 그런 어려움은 당했겠지요... 고생 많으셨네요.. 그리고 지나고보면 추억이고 보람도 있으리라 생각되네요..
지금은 집안 경조사에 가면 어르신들이 마니 예뻐라해주십니다. 집안 어르신 모시고산 희생을 아시기에....
서울 생활하다가 시골 생활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박수를 보냅니다. 저도 시골에서 출생하고 성장하고...서울 생활도 해보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와 살고 있습니다만.. 이제는 저도 마지막 생의 마무리 준비를 해야겠는데...산골에서의 이런 삶을 생각해 봅니다..마당의 풀도 뽑지 않고, 낙엽이 져도 눈이 와도 쓸지 않고...
시골 사는동안 앞뜰에 삐죽삐죽 나오는 풀이 제일 스트레스였지만 나오기 시작하면 금방 다듬고해 후에 만족감도 컸습니다. 시골에서 살아보니 부모님 모시는분께는 잘 대접해야한다는것이 저의 철칙입니다....
시골내려가 사시면서 고생도 하셨지만 그만큼 보람도 있으셨던것 같습니다....아이들도 잘 자라주었고 시어머님이 건강하게 오래사셨으면 합니다~~~
잠시 살면서 일가친척도 알수잇었고 단점도 있었지만 장점이 더많았습니다.
훌륭하고 장한 며느리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ㅎㅎ
아이고~이럴땐 부끄럽기 한이없습니다. 쉽게 할수있는 일이었는데...고집 부리다 조금 연장했을뿐이고 남들다하고 사는 모습을 어렵게 시작했다싶습니다.
참말로 예쁜 며느리이자 휼륭한 아내입니다. 남편은 키워주신 어머니 홀로 되시니...마음이 편치 않았나 봅니다. 남편을 따라 시골 생활이 어려웠을 텐데 남편에게 마음 맞추어 주는 삶이 현명하고 훌륭해 보입니다. 사랑은 서로 맞추어 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랑은 입으로만 효도하구 저는 몸과마음을 부딪기며 참말로 마음고생힘했지만 그 희생이 있었기에 이 시점에 웃을수있지 않나 해봅니다.
*^.^* 복 많이 받으실거예요... 그리고 사시는동안 어르신께 건강의 축복이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다음생이 있다면 아예 큰며늘로 시집가서 대우받고 살고싶습니다...울 어머님이 저를 자주찿아 요즘은 행복한 고민에 빠졌습니다.ㅎㅎ
참 훌륭하신 며느님이자 현모양처이신 앵커님께 진정한 마음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평안하시고 더욱 다복하세욤ㅁ ^^*
샘의 과찬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건강하시고 추석한가위 잘보내시길 바랍니다.
풍성한 명절 되시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