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란치스코 성인은 두 번에 걸쳐 가슴이 뛴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한번은 아시시의 벌판에서 나환자를 만났을 때입니다. 가진 것을 나누어주고, 나환자를 보듬어 주었다고 합니다. 술을 마시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느낄 수 없었는데 나환자를 만나면서 가슴이 뛰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는 허물어져가는 성당에서 십자가를 보았을 때입니다. 성당의 이름이 다미아노 성당이었기에 다미아노의 십자가라고 부릅니다. 프란치스코는 쓰러져가는 성당을 일으켜 세우라는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강한 느낌을 받았는지 모든 것을 팔아서 성당의 신부님께 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프란치스코의 돈은 되돌려주고 성당에서 봉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고 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에 제자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서를 설명해 주셨고, 제자들과 함께 머물면서 식사하셨습니다. 나중에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함께 있었을 때 가슴이 뛰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무덤으로 예수님을 찾아갔던 마리아는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동산지기인 줄 알았던 예수님께서 ‘마리아야!’라고 부르셨을 때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보았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평화를 주셨고, 성령을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가슴이 뛰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두려움도 걱정도 없어졌습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눈을 뜨게 된 소경, 듣게 된 귀머거리, 깨끗해진 나병환자, 걷게 된 중풍병자도 가슴이 뛰었을 겁니다. 돌에 맞아 죽을 뻔했던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서 용서 받았습니다. 역시 가슴이 뛰었을 겁니다.
산보 가는 길에 차에서 누가 저를 불렀습니다. 길을 물어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게 사제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사제복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아내가 임신했는데 축복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마리아와 안드레아 부부 그리고 태어날 아기를 축복해 주었습니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기도를 청하는 남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묵주도 축성해 주었습니다. ‘사제입니까?’라는 질문이 저의 가슴을 뛰게 하였습니다. 신문을 제작하면서 사장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30년 가까이 사제로 살면서 어쩌면 사제라는 직분에 너무 익숙해서 소중함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새도 가슴이 벅찰 것 같습니다. 서품을 받고 처음으로 봉헌하는 미사도 가슴이 벅찰 것입니다. 오를 하루 가슴 뛰었던 순간을 기억해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마리아의 탄생 축일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성 안나 성당이 있습니다. 요아킴과 안나는 마리아의 부모님입니다. 성당은 공명이 좋아서 성가를 부르면 아름답게 들렸습니다. 순례를 가면 그곳에서 성가를 부르곤 했습니다. 성당에는 어린 마리아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구세주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인 마리아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마리아의 탄생은 부모였던 요아킴과 안나에게는 가슴 뛰는 기쁨이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탄생은 그렇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건입니다. 하느님의 선물이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이들을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탄생은 ‘임마누엘’입니다. 세상의 모든 탄생에는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의 탄생을 생각하며 아름다운 기도인 성모찬송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모후이시며 사랑이 넘친 어머니, 우리의 생명, 기쁨, 희망이시여, 당신 우러러 하와의 그 자손들이 눈물을 흘리며 부르짖나이다. 슬픔의 골짜기에서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님 불쌍한 저희를 인자로운 눈으로 굽어보소서. 귀양살이 끝날 때에 당신의 아들 우리 주 예수님을 뵙게 하소서, 너그러우시고, 자애로우시며 오! 아름다우신 동정 마리아님.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기도합시다. 하느님, 외아드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로써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을 마련해 주셨나이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함께 이 신비를 묵상하며 묵주기도를 바치오니 저희가 그 가르침을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성모님의 전구하심으로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조재형신부)
2020년 가해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인간 본성의 신분 상승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복음: 마태오 1,18-23
오늘 복음에서 마태오 복음 사가는 예수님의 족보를 말하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고 전합니다. 보통은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심성 상 자녀는 남자가 낳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태어나게 하는 주체입니다. 하지만 유독 그리스도는 어머니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십니다. 마리아가 낳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모 마리아께서 다윗의 후손임을 알 수는 없으나 아브라함의 족보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이렇게 마태오 복음 사가는 한 이스라엘 여인을 구원의 족보에 끼워놓습니다.
족보는 구원의 계보입니다. 그 사람에게서가 아니면 다윗의 후손이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에게서가 아니면 이사악이 태어날 수 없고, 이사악에서가 아니면 야곱이 태어날 수 없습니다. 마태오는 요셉이 아닌 마리아에게서가 아니면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수 없음을 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족보에 끼일 수 있는 남자가 아님에도, 또 다윗의 후손임을 알 수가 없는데도 어떻게 그 족보 안에 들어갈 수 있는지 성모님을 통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구원의 족보에 들어갈 수 있는지 성모 마리아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족보에 성모님만이 아닌 다른 네 여인이 더 들어있습니다. 그들이 성모 마리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타마르’입니다. 타마르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유다의 며느리였습니다. 하지만 그녀와 결혼한 유다의 두 아들이 죽자 유다는 그녀를 쫓아내다시피 합니다. 그녀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그 집안의 씨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창녀의 모습을 하고 지나가던 시아버지인 유다의 씨를 받습니다. 그녀가 위대한 이유는 세상의 평가가 아닌 누구의 씨를 받느냐가 더 중요함을 알았다는 데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도 남편 요셉으로부터 다른 남자의 씨를 받아온 사람으로 취급된 적이 있습니다.
또 ‘라합’이라는 여인도 나옵니다. 라합은 예리코의 창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예리고를 무너뜨리고 점령하였습니다. 라합은 비록 이스라엘 적국의 여자였지만 이스라엘의 씨를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자신의 집에 숨겨주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배신하는 일이었지만 그녀와 그녀의 가족이 구원되는 길이 바로 그 길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렇게 라합과 그의 가족이 이스라엘에 의해 구원을 받습니다. 이 모습도 성모 마리아의 상징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이 세상 사람들의 씨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하늘의 씨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씨로 태어난 분이 이 세상을 이기셨습니다. 세상과 싸워 이기러 오시는 분의 씨를 받았기 때문에 성모님은 이 세상에서 영혼이 칼이 찔리는 아픔을 겪으며 사셔야 했습니다.
그다음엔 ‘룻’이 있습니다. 룻은 남편을 여의고 이스라엘의 씨를 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의 권고대로 라합의 아들인 보하즈의 밭에서 일하며 보하즈의 씨를 받습니다. 보하즈는 합당한 대가를 치르고 룻을 자신의 아내로 삼습니다. 룻은 마치 예수님이 계시지 않던 무덤에서 울고만 있었던 막달라 마리아를 연상시킵니다. 룻은 이방인이었지만 구원 백성의 씨를 받기 위해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여인이었습니다. 밭은 소명을 의미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 구원 소명에 끝까지 항구함으로써 하느님에게서 오는 아드님의 씨를 받으셨습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다 보면 그분의 씨가 잉태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입니다. 그녀도 역시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우리야라는 남편이 있었지만, 다윗에게서 씨를 받았습니다. 다윗에게는 이것이 큰 죄가 되는 것이었지만, 어쨌건 그 덕분으로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성모 마리아도 요셉이라는 남편이 있었지만, 하느님으로부터 씨를 받아 솔로몬보다 더 위대한 분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고 쓰고 있는 것입니다.
저희 어머니는 부산에 가고 싶어 하십니다. 가족이 보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부산에 내려가셔도 가족은 잘 보지 않으십니다. 사실 호적만 있는 가족이지 친어머니는 어디 계신지 모릅니다. 어머니가 연세가 드시니까 당신의 진정한 핏줄을 찾고 싶으신 것입니다. 분명 연세로는 돌아가셨을 것이 당연하지만, 그냥 어머니가 사셨던 부산이 당신의 어머니처럼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의 족보는 어쩌면 마지막 때에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분의 핏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성모 마리아는 그 방법으로 주님에게서 오는 씨를 받아야만 함을 알려주십니다. 그리고 그 씨가 바로 주님의 뜻임을 알려주십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여인들은 어떻게 자신들의 족보를 변화시키고 신분을 변화시켰는지 그 방법을 알려줍니다. 외도하거나 바람을 피우라는 말이 아니라 구원의 씨가 어디서 오는지 알라는 말입니다. 구원의 씨란 ‘하느님의 뜻’입니다. 인간이 자신들의 뜻이나, 이 세상에서 그 사람들에게 무언가 바라는 사람들의 뜻을 들어준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 백성의 족보에 들 수가 없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주님의 뜻에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심으로써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시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성모 마리아께서 태어나신 날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셨지만, 족보를 바꾸심으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우리도 누군가의 씨를 받는 여인들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인간이 신분 상승을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보여준 분이셨습니다. 신분 상승을 위해서는 더 높은 신분을 가진 이의 씨를 받아야 하는데, 그 씨란 곧 하느님의 뜻입니다. 주님의 종이 되는 길만이 합당하지 않은 이방 여인들이 하느님 자녀의 족보에 드는 유일한 길입니다.(전삼용신부)
2020년 09월 08일 화요일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대영광송
성경에 동정 마리아의 탄생에 대한 내용은 없다. 그러나 초대 교회 때부터 성모 신심이 계속되면서 동방 교회에서 먼저 이 축일을 지내기 시작하였다. 로마 교회에서는 7세기 무렵부터 이 축일을 지내 오고 있는데, 예루살렘에 세워진 ‘마리아 성당’의 봉헌일(9월 8일)을 동정 마리아의 탄생 축일로 정한 것이다.
입당송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을 기뻐하며 경축하세. 정의의 태양,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을 그분이 낳으셨네.
본기도
주님,
복되신 동정녀께서 성자를 낳으시어 저희 구원이 시작되었으니
동정녀 탄생 축일을 지내는 주님의 종인 저희에게
천상 은총의 선물을 내려 주시어
길이 참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미카 예언자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제1독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예언대로,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다(복음).
제1독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 미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5,1-4ㄱ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하느님께서는 뽑으신 이들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28-30
형제 여러분,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3(12),6ㄱㄴ.6ㄷ(◎ 이사 61,10ㄱ)
◎ 저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이다.
○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
○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님, 복되시나이다. 정의의 태양,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을 낳으셨으니 온갖 찬미를 마땅히 받으시리이다.
◎ 알렐루야.
복음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1,1-16.18-23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23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 기도
주님,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성자께서
어머니의 순결을 손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거룩하게 하셨으니
저희가 성자의 인성으로 도움을 받고 죄에서 벗어나
주님 마음에 드는 제물을 바치게 하소서.
우리 주 …….
<또는>
주님,
저희가 기쁨에 넘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을 기념하고
이 예물을 바치며 간절히 비오니
동정녀 몸에서 사람으로 태어나신 성자께 구원을 받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감사송
<복되신 동정 마리아 감사송 1 : 어머니이신 마리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하고
복되신 평생 동정 마리아 ( ) 축일에
아버지를 찬송하고 찬양하고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령으로 외아들을 잉태하시고
동정의 영광을 간직한 채
영원한 빛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낳으셨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사들이 주님의 위엄을 찬미하고
주품천사들이 흠숭하며 권품천사들이 두려워하고
하늘 위 하늘의 능품천사들과 복된 세라핌이
다 함께 예배하며 환호하오니
저희도 그들과 소리를 모아 삼가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또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감사송 2 : 마리아의 노래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
거룩하신 아버지,
모든 성인을 훌륭히 이끌어 주신 주님을 찬미하고
특히 저희가 기념하고 공경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노래로
주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주님께서는 땅끝에 이르기까지 큰일을 하시고
대대로 자비를 너그러이 베푸셨나이다.
비천한 종 마리아를 돌보시어
마리아를 통하여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원자로 보내셨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천사들의 군대가 영원히 기뻐하며
주님의 위엄을 흠숭하오니
저희도 환호하며 그들과 소리를 모아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이사 7,14; 마태 1,21 참조
보라, 동정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아드님이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한 신비로 교회의 힘을 길러 주셨으니
저희가 온 세상의 희망이시며 구원의 서광이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일을 맞이하여 더욱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대개 족보는 그 집안의 근본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기능을 합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집안을 드러내는 듯하나, 동시에 이스라엘 역사와 사회 속에서 용인되기 어려운 다섯 여인(타마르, 라합, 룻, 밧세바, 마리아)을 등장시킴으로써 꽤 복잡하고 심오한 의미를 담아냅니다.
마태오 복음을 가리켜 ‘교회의 복음’이라고들 합니다. ‘교회’라는 용어를 유일하게 사용하는 복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복합체’로서의 교회 공동체를 강조하기 때문이지요.
교회는 특정 기준에 부합하는 이들만의 고결한 모임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 생채기를 낼지언정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이 사랑으로 하나 된 공동체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스라엘 역사 속에 세상 기준으로는 어둡고 불결하다고 여긴 여인들이 족보에 등장한 것이지요. 더욱이 예수님마저 ‘처녀’의 몸을 통하여 탄생하셨다고 기술하고 있는 대목은 보란 듯 우리의 관습과 전통, 그리고 상식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혼인도 하지 않은 딸이 나가서 아이를 배어 들어오는 상황을 맞는 어머니의 마음은 어떨까요. 어쩌면 복음은 우리의 마음을 찢어 놓고 갈라 놓아 아픔마저 느끼지 못하게 하는 처절한 호소를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아무리 법과 질서를 지키고 윤리적으로 흠이 없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초대와 호소는 얼마간 제 삶을 흔들어 놓고 뒤집어 놓는 데서 시작합니다. 성모님께서는 그런 혼란 속에서 당신의 믿음을 지켜 내신 분이십니다. 그분에 대한 기억과 존경은 삶의 익숙함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신앙의 가장 위험한 요소는 ‘이만하면 되었다.’라는 안도감 속에 기생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늘 새로운 도전입니다.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