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기준일이 3개월 모자라다는 이유로 맨 몸으로 쫓겨나야 하나요? 이 추운 날씨에 아이들 데리고 어디로 가라는 것입니까.”
13일 오전 인천시 남동구 만수동 향촌지구 대책위원들과 120세대
세입자 50여명이 향촌지구 주거환경 개선사업을 위한 행정대집행에
대항해 철거 용역원들과 몸싸움을 하고 있다./박영권기자 (블로그)pyk
눈발이 날리는 꽃샘 추위가 맹위를 떨친 13일 오전 7시40분쯤. 대한주택공사 인천본부의 인천시 남동구 만수2,3동 향촌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미이주 가구에 대한 행정대집행이 가차없이 시작됐다. J용역엽체 상호가 적힌 검정조끼를 입은 용역 반원 300여명이 향촌지구내 만수3동 79-15번지 상가건물 앞으로 줄지어 몰려 왔다. 일부는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미리 준비한 높이 30㎝ 길이 1.7m 폭 1m 정도의 스티로폼에 박스를 붙인 쿠션 7개를 건물 1층 앞에 깔아 놓고, 100여명씩 구성된 3개조 중 2개조가 양쪽 길을 막은 뒤 나머지 1개조가 건물로 진입했다. 건물 2층 철거민 사무실에서 농성중이던 주민 1명은 여성 용역 반원 10여명에 의해 순식간에 끌려 내려 왔다. 저항해 봤지만 역부족이었다.
상가 건물에 있던 집기가 모두 밖으로 나오자, 다음 차례는 일반 주택가였다. 이날 오전 9시쯤 만수2동 81-67번지. 8평 남짓한 방 한칸에 보증금 100만원 월 10만원을 내고 3년동안 거주했던 신현기(48)씨의 보금자리는 한 순간에 사라졌다. 몸이 아파 며칠째 노동일을 못나갔던 신씨는 갑자기 들이닥친 용역반원들에 의해 끌려 나왔다. 방안에는 이부자리와 식기, 옷가지들이 그대로 널려 있었지만, 이내 용역반원들이 들고 온 자루에 뒤엉켜 담겨졌다.
주거권과 이주권을 요구하던 이주 대상 주민 김옥림(45·여)씨는 분에 못이겨 인분을 봉지에 담아 용역반원들에게 뿌리기도 했다.
이날 오후 12시가 넘어서면서 용역반원들의 발길은 이른바 달동네로 불리는 만수3동 80-602번지 일대로 옮겨졌다. 용역반원들이 거치고 간 자리는 어김없이 ‘초토화’ 됐다. 중장비에 의해 집터는 사라졌다. 주민들이 산발적으로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경찰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3개중대 병력을 인근에 배치했지만 다행히 주민들과 용역반원들간의 마찰로 인한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주공은 이날 용역반원과 함께 포크레인 4대, 살수차 3대, 리프트 2대와 2.5t 트럭 7대를 동원, 주민들이 주거하고 있는 집 30여곳에 대한 철거를 단행했다. 오는 24일까지 나머지 80여곳에 대한 강제철거를 진행할 예정이다.
현재 이 곳에 남아 있는 미이주 116세대 가운데 대부분이 세입자이며, 이들은 거주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주공은 법적 기준에 해당이 안된다는 이유로 이사비용 30∼90만원만을 지급할 계획이다.
주민 최창환(62)씨는 “오죽하면 보증금 1∼200만원에 월세 10여만원씩 내고 이런 곳에 살겠느냐”며 “기준일에 적합치 않아 이곳에서 쫓겨나면 우리는 값이 싼 또 다른 철거 예정지구로 이주할 수 밖에 없다”면서 정부의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요구했다.
주공 관계자는 “개인적으로 보면 안된 마음도 들지만, 이들이 법적 기준에 적합치 않아 우리로서도 어쩔수 없다”고 말했다. /이승호·소유리기자 (블로그)jayoo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