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노닐며 사라져간 것들을 보다.
하루 종일 서울에서 놀았다.
칠월 말에 나올 <대한민국의 폐사지> 가칭 <사라진 옛 절터> 출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교정을 보고,
혜화동에 갔다.
그곳에 내가 좋아하는 우리옷 전문점인 <우리 옷 질경이>가 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생활 한복 우리 옷은 <돌실나이>와 <장남주 우리 옷> 그리고 질경이인데, 가장 많이 입었던 옷이 <질경이>었다.
2006년 <다시 쓰는 택리지>가 휴머니스트에서 다섯 권으로 완간되자 KBS에서 <TV 책을 말하다>에 선정되었고, 그 때 담당 피디가 내게 양복을 사 주겠으니 양복을 입고 방송을 하자는 것이었다. 내가 그때 ”이십 여년동안 생활한복을 입었고 양복을 입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어색해서 못 입겠다고 했고, 피디와 내가 절충 했던 것이 검정 두루마기를 입고 방송을 하기로 했다. 그 때 출연료가 80만원이었고, 두루마기 값이 70만원이었는데, 지금도 입고 있으니, 그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전주 MBC의 시청자위원으로 4. 5년 동안 활동했는데, 그때 김수곤 시청자 위원장님이 나에게 양복을 사주겠으니 방송을 할 때 가끔씩 입고서 하라고 여러 차례 말했었는데, 그 또한 거절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나를 감싸주었던 우리 옷 질경이를 찾아갔는데, 얼마 전에 문을 닫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질경이를 찾아가서 윗옷 두어개를 샀던 때가 지난 가을이었다. 그런데, 이제 사라지고 없다니, 밟아도 밟아도 되살아 나는 것이 질경이인데, 지금은 그렇지를 않는가 보구나. 한참을 문 닫힌 가게 앞에서 서 있다가 혜화역으로 다시 왔더니, 입구에 서 있는 표지석, 월사 이정구(李廷龜, 1564~1635)의 집터 표지석이었다.
조선 중기의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월사 이정귀 선생이 이곳에서 살았구나.
”그는 그릇된 데 대하여 굴하지 않았으며, 나라 걱정을 모두 시로써 발표하였기 때문에 세상에서 시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반드시 석주의 시를 다투어가며 전하고 외웠다.“
월사 이정구가 석주 권필의 석주집 서문에 쓴 글이다.
이정구의 말 속에 나오는 권필과 같은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고, 오로지 아부하는 글을 써서 일신의 행복만 좇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대가 이 시대가 아닐까?
“서남쪽으로 푸른 대해가 아스라이 하늘과 맞닿아 있고, 구름 속에 떨어지는 해가 은빛 속에 아득했다. 여기서 보아 기록할만한 산으로는 수락산. 아차산, 관악산, 청계산, 천마산, 송악산, 성거산이었는데, 서로 잇닿은 것이 마치 작은 언덕 같이 보였다. 또 월계 골짜기는 탁 트여서 놀란 물결이 서쪽으로 모여들고,::한강 한 줄기는 마치 깨끗한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왕도를 감돌아 꿈틀대며 흘러가고 있었다.”
월사 이정구의 <삼각산 기행,>문에 나오는 삼각산은 보이지 않고 인왕산 언저리만 보다가 종로 3가에서 이번에 펴낸 우리 땅 걷기 40년 사 <대한민국에서 놀다>에 인터뷰를 진행한 맹한승 작가를 비롯 그리운 얼굴들과 술 한 잔 나누고 밤늦어 돌아온 하루가 그새 아스라하다.
2026년 7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