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최재훈
한 무리의 사내들
불빛 주위를 방풍림으로 둘러서 있다
저마다 입김 하나를 머리 위에
텅 빈 말풍선으로 띄워놓은 채
불을 쬐고 있다
불은 활활 타오르는데
언 땅을 향해 고드름처럼 길어진
그들의 눈빛은
좀처럼 녹아내리지 않는다
내가 다가가자 한 사내가
흠칫 놀라며 예리하게 날 겨눈다
순간 그의 눈빛이 뚝, 너무 쉽게 부러져
바닥에 산산조각 난다
저들의 연약한
경계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난 주머니에서 꺼낸
손바닥을 그들의 어깨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는다
‘정말이지 유난히 춥고 긴 겨울이군요’
난 가느다란 입김으로
말풍선 하나를 띄어놓고는
방풍림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불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데
아무리 쬐어도
몸은 좀처럼 데워지지 않는다
이네들의 온기를 다 빼앗고
저만 외로이 뜨거워진 걸까
불은 자신의 차가운 영혼에서
뜨거워진 몸을 떼어내려
쉴 새 없이 버둥거리는데
사내들은
젖은 나무토막처럼 더 이상
쉽게 타오르지 않으려는 걸까
그때 난 마지막 사내가 불 속에
그림자를 던져 넣는 것을 보았다
그림자를 삼킨 불이
검은 불꽃을 화르르 피워내는 것도
‘정말이지 유난히 춥…’
내 말풍선은 공중에 얼어붙어 있다
난 품속에 그림자를 숨기고
무리에게서 빠져나오려 몸부림친다
몸부림치면 칠수록
흙탕물 속을 휘젓는 빗줄기처럼
섞이고
풀어지고
마침내 난 희미해져 간다
불빛 속에서 타다 만 그림자를 건져낸다
황급히 발목에 감아보지만
그것은 이미
누구의 것도 아니다
내 안에도 이제서야
젖은 나무토막처럼 부풀어오르는
그 무엇이 생긴 걸까
아침해를 수없이 실어 나르고
낮과 밤을 들이부어도
이곳은 언제나
이른 새벽 공사장
이쪽을 향해
못박을 듯 쏘아보던 눈빛 하나가 순간
못대가리처럼 힘없이 구부러진다
웹진 『시인광장』 2025년 3월호 발표
최재훈 시인
2018년 계간《시산맥》으로 등단. 제3회 정남진신인시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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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3.06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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