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DC인사이드에 Palm 님께서 올리신 글(크리스피크림 오리지널글레이즈드 도넛)
제가 일병일 때 군대에서 첫 크리스마스를 맞아야했습니다.
부대에 면회실이 있는데..... 각 대대가 돌아가면서 면회실 청소를 합니다. 주말에요... 하필이면 크리스마스날 면회실 청소가 저희 대대가 걸렸습니다. 제가 있던 곳은 지원대라고 하여 대대 수준은 아니고(공군 비행단의 대대는 적으면 병사 70명, 많으면 200명 정도입니다. 육군 대대와 비교할 게 아니지요), 대위가 대장을 맡는 '대'라서 60명 정도 병사가 있었더랩니다. 면회실 청소는 주로 휴일에 하는 것이니 내무실에서 쉬는 사람이 가게 됩니다. 절반이 취사병이고, 나머지는 당구장, 노래방 등에서 카운터를 보고 있거나 아니면 고참들입니다. 결국 면회실 청소는 사무실 근무하는 이병, 일병들이 하게 됩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비닐위생장갑, 쓰레기봉투, 빗자루, 쓰레받이를 지참하고 이병, 일병 대여섯 명이 모여서 후문 면회실로 갑니다. 면회실 청소의 첫 단계는 면회실 내를 쓸고 닦는 것인데 이것은 별로 힘든 게 아닙니다.
진짜 힘든 것은 면회실 밖에 있는 작은 쓰레기 적재함을 열고 분리수거하는 것이지요. 재활용품, 일반쓰레기, 음식쓰레기로 나누는 것인데.... 그날따라 왜 이리도 면회객이 많았는지... 적재함 뚜껑이 안 덮일 정도더만요.
적재함을 뒤집어 엎고 쓰레기를 열심히 분류합니다. 쓰댕.... 이날따라 음식물 쓰레기가 많더군요.
먹다 만 족발, 먹다 버린 케익, 먹다 버린 통닭, 먹다 버린 피자, 먹다 버린 김밥, 먹다 버린 탕수육, 먹다 버린 짜장면 등등..... 장난 아닙니다. 이병, 일병 때이니 고참들 눈치보다 매점도 이용하기 어려울 때인데 얼마나 먹고 싶은 것이 많았겠습니까.... 먹지도 못할 음식을 버린 년놈들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쓰레기 속에서 뒤엉켜 섞여 나는 음식 썩는 악취에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 안 차리고 실수하면 체련복에 음식물 쓰레기가 묻기도 합니다.
사실 케익 빼고는 평상시에 면회실 청소해도 볼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날따라 왜 이리도 케익이 많은지..... 요것은 뚜레쥬르, 요것은 파리바게뜨, 저것은 크라운베이커리, 이것은 베스킨라빈스, 저것은 던킨도너츠....아주 케익 박스도 요란하게 마구 나오는데 눈물이 납니다. 이런 날 쓰레기나 치우고 있는 나는 대체 무엇인가... 찾아와주는 사람도 없고....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1차 방정식도 못 풀어서 숫자 계산도 제대로 못하는 사무실 졸병 놈은 아침부터 면회한다고 기어나가서 일몰 후에야 들어왔는데..... 젠장할..... 빽이 좋은 놈이라서 그 자식은 초보적인 실수를 해도 혼이 안 나고 포상휴가 거저 먹고, 빽 없는 놈은 잘 해도 포상휴가 한번 못 받으니...젠장할... 그나마 주말에 밀린 일 좀 하려고 하면 개자식이 면회한답시고 맨날 튀어요.... 개념없는 이병 자식이 영외자(간부) 출근하기 전에 바깥 신문을 먼저 보질 않나...... 심부름 보내면 매점 뒤에서 군것질하다 걸리기나 하고.....
중대장이 전근간다고 한 턱 쏜다더니 병장들만 데리고 부대 밖에서 회식을 시켜줬나 봅니다. 열심히 쓰레기들과 씨름 하고 있는데 병장들은 밥 잘 얻어먹고 후문으로 들어오면서 "느그들이 고생이 많다!" 손이나 흔들어대고 있고..... 눈물 한번 더 나더군요. 빨리 병장이 되던가 해야지.... 이놈의 짓거리....
2003년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솔로들이 왜 크리스마스를 싫어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저도 그냥 수면제 먹고 12월 23일 자정에 취침하여 12월 26일 07시에 기상하길 원했었지요.
여러분~ 메리크리스마스~
첫댓글 아...정말 리얼한 크리스마스의 악몽이군요...ㅠㅠ
진짜 안 좋은 기억입니다.
진짜 군대에서는 크리스마스도 설날도 그렇고 좋은 추억보다는 안좋은 기억이나 추억이 저도 비슷한 경우를 겪은게 많았습니다만..이등병 일병때 빨리병장되어서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고 제대하고 싶은데 군대에서 일병 이병은 왜이리고 길어보이던지..지금보면 아주 예전의 기억입니다만..그당시에는 그생활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습니다..솔직히 표현하면 저는 지겨운 기억이네요..아름다운 기억이 아니라 아주 지겨운 기억입니다..저는 제대하기 전날까지 하수구 청소하다가 다음날 제대 했습니다ㅡ..ㅡ
제대하기까지 보름쯤 남았으면 응당 열외시켜줘야 하는데 너무했구만요.
정말 안 좋은 크리스마스 였군요ㅠ,.ㅠ
예....이병, 일병 때의 기억이 좋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