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 복지국가론'에 대한 2개의 비판
지난 6월 5일(토) '비판과 대안을 위한 사회복지학회'는 2010년 춘계 학술대회를 열었습니다.
김대호 소장은 '무상급식과 보편주의: 한국에서 보편주의 논쟁의 특수성과 함의'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김태일(고려대) 교수 등이 토론을 하였습니다.
오후에는 이상이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가 '역동적 복지국가와 복지재정'이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 하였고, 양재진(연세대) 교수 등이 토론을 하였습니다.
김대호 소장과 양재진 교수의 '역동적 복지국가론'에 대한 각도가 다른 비판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김소장 주장의 핵심은 한국사회 특유의 이중(왜곡)구조를 감안하여, 문제의 근원인 정의와 공평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증세와 복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양극화, 낮은 복지 수준, 5대 불안 등을 오염 물질에 비유한다면 김소장의 주장은 상류의 오염원을 제거하면서, 하류에서의 대책(증세, 재정 구조 변화, 복지 강화 등)을 구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컨대 김소장의 주장은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의 결합, 병진을 추구하기에, 즉 더 큰 복지를 위해서는 더 강력한 정의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기에 복지국가 전략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치전략과 정책적 우선 순위는 '역동적 복지국가론'과 분명히 다릅니다.
양교수 주장의 핵심은, 한국이 국가경쟁력을 유지하면서 복지국가로의 발전을 모색한다면 '망하는 복지국가'인 미국, 일본, 이탈리아, 그리스의 길이 아니라 영국, 뉴질랜드, 스웨덴, 덴마크의 길로 가야하며, 스웨덴, 덴마크 등 스칸디나비아 복지국가를 이상적인 목표로 삼더라도 현실적으로 그 중간 단계인 자유주의 복지국가- 영국, 뉴질랜드, 호주, 캐나다 등-의 전략과 사회보장제도를 진지하게 검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이 보편주의 원칙하에 앞으로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하는 부분은 ‘사회화된’ 산.전후 유급휴가 (최소 1년), 보육, 교육, 적극적노동시장정책, 그리고 의료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들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중산층이 지지하고, 또 인적자원개발과 연계되어 생산적인 복지(사회투자성 복지)가 되기에 경제성과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진국 복지지출의 약 50%를 차지하는 연금지출를 미리미리 재정안정화 구조를 만들어 GDP 대비 7~8%내에서 통제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양극화(소득분배의 악화)가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산물이라는 이상이 교수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이 점은 김대호 소장의 인식과 유사합니다. 그 외에도 양교수의 토론문은 놀라운 통계와 통찰이 수두룩합니다. 한국 진보의 가치, 비전, 전략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양교수의 토론문 일독을 강추합니다.
토론회에서 발표한 김대호 소장과 양재진 교수의 글을 올립니다.
참고로 김대호 소장의 글은 논문 전문(A4 16페이지)이 아니라 이를 5페이지 분량으로 축약한 내용입니다.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초중등학교 ‘무상급식(의무급식)’ 문제가 6.2 지방선거의 핵심 의제로 부상했다. 진보(범야권)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초중학교에서 보편적 무상급식 즉각 실시를 주장했다. 보수 후보들은 저소득층에 한해 선별적 무상급식 실시를 주장하거나(오세훈, 김문수), 전면적 무상급식, 즉 의무급식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되 다만 예산 부족을 이유로 단계적 실시를 주장했다.(안상수, 이원희)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 후보 76명 중 무상급식 전면실시에 찬성한 후보가 72.1%, 반대한 후보는 27.9%에 불과했다. 그나마 보수로 자처하는 많은 후보들도, 특히 중소도시나 농촌을 많이 끼고 있는 지역은 전면적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비율이 높았다. 무상급식 논쟁이 불붙은 결정적인 계기가 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2009년 12월에 경기도 의회에 제출한 안이 ‘경기도 내 초등학교 5, 6학년에 한해 무상급식 실시 후 단계적 확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무상급식 논쟁은 지방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진보의 정책적 승리라고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무상급식 관련 논쟁의 격화와 진보의 정책적 승리의 배경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대규모 부자 감세와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과도한 건설예산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 복지 및 예산 편성의 중요성에 많은 시민들이 눈을 떴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대규모 부자 감세와 거대한 삽질 예산이 없었다면, 그래서 이미 주어진 교육, 복지 예산 내에서 우선순위 조정을 통해 무상급식 예산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합쳐서 2조 원가량의 예산이 소요되는 전면적 무상급식 정책은 그렇게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의무교육의 취지로 보나, 두터운 빈곤층의 존재로 보나, 극심한 사교육비 고통(자식 학력 향상에 대한 열망)으로 보나 무상급식 못지않게 시급한 예산 할당 항목이 수두룩하다. 교과서, 준비물, 교복 관련 비용, 빈곤층 고교생과 방학 중 결식 학생 관련 예산, 방과 후 학습지원 예산, 상담교사 등 보조 교원 확충 예산, 공공 장학금 예산, 우수 교장교사 인센티브 등이 그것이다.
둘째, 복지(국가)에 대한 보수의 무능, 무책임, 무비전과 과도한 이념시비 때문이다. 이들은 경제 성장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식의 사고를 내비치며, 복지 국가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않은 채 거친 이념시비만 일삼았다. 사실 전면적(보편적) 무상급식 정책은 김문수 경기지사와 한나라당의 대응 여하에 따라 크게 이슈화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참여정부처럼, 아니 안상수나 이원희처럼 원칙에는 동의하면서도 예산 부족을 이유로 단계적, 점진적 무상급식 확대로 받았더라면, 적어도 지금처럼 크게 이슈화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초노령연금처럼 상위 20%나 30%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해서 무상급식을 실시한다고 했더라도 그랬을 것이다. 한나라당 경기도 의회 의원들이 김상곤 교육감이 제출한 예산안 650억 원을 거칠게 전액 삭감하고, 대신에 저소득층 초, 중, 고 학생들을 위한 무상급식 예산을 편성하는 불법을 저지르지 않았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김문수 지사와 한나라당은 전면적 무상급식 정책을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과시하고, 진보의 이념적 후진성을 폭로하는 계기로 삼고자 원칙적으로 반대하면서 이념 시비를 하였다. 단적으로 김지사는 “전면적 무상급식은 무조건 배급하자는 북한식 사회주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무상급식 주장은) 저급한 포퓰리즘”이라며 공박했다. 이군현 의원은 “가정형편에 관계없이 무조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데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다”며 색깔론을 펼쳤다.
셋째, 범진보가 전면적 무상급식에 관한 한 모처럼 한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특히 예산 대책 없는 급격한 복지 확대에 유보적이었던 참여정부 인사들과 민주당 주류(뉴민주당 플랜)가 재원 조달 부담을 훌훌 털어버리고 전면적 무상급식 실시에 동참한 것이 주효하였다.
넷째, ‘개발, 성장’과 공허한 이념정치를 주창하는 보수에 맞서 ‘사람, 복지’와 피부에 와 닿는 생활정치를 주창하는 진보가 자신의 정체성을 대중적으로 과시하는 좋은 계기로 삼았기 때문이다.
다섯째, 선별주의, 잔여주의를 주된 논적으로 보고, 보편주의적 복지국가의 비전과 전략을 확산하려는 정치사회 세력의 목적의식적 노력이 오래 전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 논쟁은 주로는 예산과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정책 논쟁이자, 지방선거에서 승기를 잡고자 하는 진보적 정략과 보수적 정략의 충돌이었다. 동시에 대한민국의 중장기 비전, 전략을 둘러싼 이념 논쟁이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무상급식 논쟁 촉발의 핵심 당사자를 꼽는다면 보수 측에서는 이념 시비를 의식적으로 벌인 김문수 류이고, 진보 측에서는 이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로 대표되는 ‘역동적 복지국가’류가 아닐까?
조만간 넷째, 다섯째 조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진보는 김문수 류가 아닌, 나름대로 체계적이고 그럴 듯한 복지국가 비전과 경제성장 비전을 가진 세련된 보수와 싸우게 될 것이다. 어쩌면 참여정부가 2006년에 발표한 ‘비전2030’류와 싸우게 될 지도 모른다. 실제 ‘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에서도 안하는 보편적 무상급식을 한국이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냐?’는 비판이 만만치 않은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서울 시장 선거TV토론에서 전면적 무상급식을 내세우는 한명숙 후보는 하위 30%에 대한 선별적 무상급식과 3무(사교육, 학교폭력, 학습준비물) 정책을 표방하는 오세훈 후보와 논전을 벌였지만 결코 압도하지는 못하였다. 분명한 것은 대규모 감세, 4대강, 좌파 시비 등이 잦아들고 나면 오세훈 식의 예산・정책 우선순위 대결이 일반화 될 것이 틀림없다. 그 때 과연 보편적 무상급식론을 떠받치는 강력한 이념적 지주의 하나인 복지국가 비전과 보편적 복지 전략이 얼마나 대중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 점을 따져봐야 한다.
어쨌든 무상급식 논쟁에서 진보는 꽤 ‘재미’를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이를 계기로 진보의 대표 상품(가치)으로서 ‘복지국가’ 또는 ‘보편적 복지’를 주창하는 흐름이 강해 질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한국은 정치 지도자와 여론 주도층의 사상이념적 내공이 약하다 보니,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 외래 사상이념이 급속히 유행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조선의 보수적 유학 사상과 20세기 초 중반 소련과 중국에서 유입된 급진 좌파 사상이 대표적이다. 1980년대 등장한 NL(주체사상), PD, 전투적 조합주의, 신자유주의 사조도 ‘철지난 유행’ 내지 ‘과도한 유행’의 맥을 잇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과연 지금 급격히 부상하는, ‘복지국가’ 비전과 ‘보편적 복지주의’ 전략을 집약한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그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까? 한국 진보의 주류적 이념이 될 수도 있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진보에게 다시금 ‘집권’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이를 찬찬히 따져보자.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지붕과 기둥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심각한 중병에 대한 처방전이다. 여기에 따르면 중병의 이름은 ‘민생불안=5대 불안(일자리, 보육 및 교육, 주거, 노후, 건강 불안)’ 과 ‘양극화’이다. 원인은 시장만능주의(승자독식의 삭막한 경쟁지상주의)와 복지결핍이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와 잔여주의 복지제도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처방의 핵심은 보편적 복지시스템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처방 내용을 집에 비유하곤 하는데, 지붕이 3대가치(존엄, 연대, 정의)라면 기둥은 4대원칙(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이다. 이 집 속에 들어 있는 사회정책의 핵심은 “보편적 복지체계를 확립하여 모든 사회구성원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적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각종 제도적 장치(아동수당, 실업수당, 상병급여, 연금 등)를 빈틈없이 법제화하고, 출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 과정에 걸쳐 각종 사회써비스(건강 및 의료, 보육, 교육, 주거, 고용, 요양 및 복지)를 보편적으로 제공받도록 제도적 장치를 법제화”하는 것이다.(신동면, <창작과 비평> 2010년 여름호, ‘이제는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내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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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이중구조에 대한 몰이해 나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내민 처방전에 담긴 중병에 대한 정의도, 원인 진단도, 처방도 다 틀렸다고 생각한다. 이 오류의 핵심은 한국사회의 독특한 이중구조에 대한 몰이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는 정치, 행정, 사법, 언론 등으로 대표되는 ‘공공’이 사익집단에 휘둘리거나 스스로 몰염치한 사익집단이 되어 있다. 따라서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여 힘센 사익집단이 사는 곳에는 시장원리(소비자 선택권, 심판권)가 별로 통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독과점이나 부동산이나 각종 경쟁제한 장벽을 통해 자신의 기여와 부담에 비해 너무 많은 권리와 이익을 향유한다. 반면에 3非층(비경제활동인구, 비임금근로자, 비정규직, 시간강사 등)과 부동산 비소유자와 하청중소기업으로 대표되는 힘없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는 무한경쟁의 파도, 독과점과 불공정거래의 파도, 부동산을 통한 약탈의 파도가 거세게 밀려든다. 당연히 힘센 사익집단들이 사는 지대의 성안으로 올라가는 사다리 아래서는 엄청난 경쟁이 일어나지만, 사다리를 타고 나면 경쟁이 너무 적다. 기득권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패자부활 시스템도 너무 취약하다. 물론 사회안전망도 취약하다. 한국 사회는 시장, 경쟁, 개인 자율책임 등 정통 보수의 가치가 크게 왜곡되었거나 과잉 실현되어 있다. 동시에 국가(반시장), 복지, 평등, 국가사회의 책임 등 정통 진보의 가치도 다르지 않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는 정의와 공평이 사익 집단에 유린되어 오른쪽으로 확 굽은(보수 가치 과잉 실현) 사회이자, 왼쪽으로 꽤 굽은(진보 가치 과잉 실현)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지 1997년부터 생겨난 모순부조리가 아니다. 신자유주의 사조에만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얘기다. 또한 1987년부터도 아니다. 노조와 좌파 이념에만 책임을 돌릴 수 없다는 얘기다. 이는 기본적으로 봉건과 식민, 그리고 1948, 1961년을 계기로 형성된 모순부조리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채, 1987년, 1997년의 모순부조리가 덮씌워졌기 때문이다. 선진국에서는 세계화, 지식정보화, 자유화로 인해 생긴, 너무 풀어놓은 시장(신자유주의)이라는 폭력 하나가 민중을 힘들게 한다면, 한국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너무 통하지 않는 시장)이라는 폭력이 하나 더 있다. 따지고 보면 시장 과잉도, 시장 결핍도, 복지 결핍도 그 뿌리는 힘센 이익집단에 휘둘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국가와 사회에 있다. 이는 노무현식으로 말하면 주류들의 반칙, 특권, 무원칙, 몰상식이며, 유시민 식으로 말하면 민주주의의 엄청난 외상값이며, 보통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전근대성(천민성)으로 표현된다. 물론 이는 대대적인 증세 및 복지 예산 증액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준거로 삼는 너무 가혹하고 과도한 시장과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론이 준거로 삼는 너무 온화하고 과소한 시장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동전의 앞뒷면 관계처럼 한쪽이 다른 한쪽의 원인이다. 따라서 삭막한 경쟁지상주의와 복지결핍 문제를 해결하려면 몰염치한 경쟁지양(止揚)주의와 시장 결핍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한다. 마치 구부러진 동전을 펼 때는 볼록한 면을 눌러서 오목한 면이 펴는 것처럼! 그런데 ‘역동적 복지국가론’에는 이런 인식이 없다.
민생의 핵심 고통을 5대 불안으로 정의(定議)해서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런 시각은 은연중에 지나치게 보호된 ‘성안’을 정상으로 여기고, 5대 불안이 휘감고 있는 ‘성 밖’만 비정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스스로 비정상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는 대다수 청년들은 결혼도, 출산도 미루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저출산 문제를 아이 낳고 키우는 비용(사회화) 문제, 즉 복지 문제로 보는 것은 일면적이라는 얘기다.
사실 한국에서 5대 불안이 심각하게 느껴지는 것은 복지 결핍도 주요한 원인이긴 하지만 그 못지않게 지나치게 보호되는 ‘성 안’과 지나치게 방치된 ‘성 밖’의 격차가 극심하면서도 불합리하고, 또 상호간에 합리적 순환(오르내림)이 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성안’ 사람은 격심한 인력사업 구조조정 등으로 천 길 낭떠러지인 ‘성 밖’으로 내쫓길까봐 불안에 떨고, ‘성 밖’ 사람은 객관적으로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들은 사회안전망이 취약하기에 시장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고, 불합리한 게임규칙에 분통을 터뜨리고, 늦게 태어난 죄로 하게 된 ‘성 밖’ 생활을 자신의 주체적 노력으로 청산할 전망이 희박하기에-제대로 된 직장의 경쟁률은 수백 대 일이다- 암울하고 불안해 할 수밖에 없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복지강화라는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을 주창함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우려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 담론이 시장과 경쟁에 대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그 건강함 힘을 균형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장과 경쟁은 오로지 승자독식, 고용불안, 양극화의 원흉이다. 생래적으로 자신의 손에 더 많은 자원(재정, 권능)을 집중시키려는 경향이 있는 공공부문은 오로지 연대의 대상이다.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심각한 질환의 정확한 병명은 총체적 조로증(早老症)이라고 할 수 있다. 힘 있는 존재들이 후속세대와 전후방 가치생산 사슬이 가져가야 할 가치를 너무 많이 빨아가면서 가치생산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출산 고령화, 대기업 공기업 생산현장의 고령화, 청년실업, 고시․공시(공무원시험) 열풍, 시간강사와 비정규직의 고통, 하청중소기업의 피폐, 과도한 대학진학률, 부동산 투기 열풍 등은 그 증상의 하나이다. 이 증상의 핵심 원인은 정의의 결핍이자 공공의 결함(취약함)이다. 시장의 결핍과 복지의 결핍은 정의의 결핍의 한 측면이다.
보편적 복지와 증세 물론 한국병에 대한 진단이 일면적이라고 해서 처방이 다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4대 원칙의 하나인 ‘공정한 경제’는 20세기 초반 미국과 유럽 등에서 나타난 지독한 독점의 폐해로 인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부정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정치세력도 부정하지 않는 원칙이다. ‘혁신적 경제’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노동시장의 유연안정 정책이 핵심 지주인데, 지식정보화시대에 요소투입형 성장이 한계에 달한 대부분의 문명국이 채택하는 원칙이다. 사실 ‘공정한 경제’와 ‘혁신적 경제’는 신자유주의조차도 대단히 강조하는 원칙이다. 기회, 조건, 출발선의 평등을 실현하여 인적자본과 사회적 자본의 확대강화를 중시하는 ‘적극적 복지’도 대부분의 문명국이 채택하는 원칙이다. 문제(복지수요)가 생기면 그 때가서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원천을 봉쇄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확실한 차별화 지점은 ‘보편적 복지’와 이를 위한 대대적인 증세(增稅)일 것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상이는 이렇게 말한다.
“소득세를 내는 모든 국민들은 누진적 방식으로 세금을 더 내자. 그래서 선진국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소득세의 비중을 높여나가자. 기업도 선진국 수준으로 부담을 더 늘려야 한다.(중략) 중산층, 고소득층, 대기업이 주로 세금을 더 내게 하고, 복지 혜택은 온 국민이 누리게 해야 한다”(이상이, 내일신문 2010년 4월9일자)
이렇듯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핵심 정신은 국가에 더 많은 자원(세금, 사회보험, 인력, 사회서비스 기능 등)을 집중시켜 국가가 개인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지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국가의 강력한 재분배 기능을 통해 더욱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고귀한 생각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그랬듯이 뜻이 좋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단적으로 보편적 복지시스템의 대 전제인 조세 저변 확대와 조세 부담률 상향을 회의적으로 전망하게 하는 요소가 너무나 많다. 여기에 더해 대표적인 ‘성안’인 공공부문에 대한 이유 있는 불신도 증세의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증세가 필요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그렇지 않다. 증세를 소리 높여 부르짖기에는 재정구조와 공공부문에 불합리한 요소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보편적 복지주의’를 대표상품으로 내세우면서 ‘대대적인 증세냐 아니냐’ ‘보편적 복지주의냐 선별적 복지주의냐’ 하는 엉뚱한 전선을 치고 있다. 이는 복지강화를 위한 주 전선과 거리가 먼 전선이자, 결코 진보세력에게도 개혁세력에게도 유리하지 않은 전선이다.
사회(복지)서비스의 생산의 분담 한국 사회는 개인 및 가족이 짊어진 각종 위험(실업, 재해, 질환, 노령 등)과 부담(교육, 육아 등)을 국가와 사회가 더 많이 나눠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책임성을 더 높여나가야 한다고 해서 이것이 반드시 일률성과 무차별성이 특징인 ‘보편적 복지’나 ‘국가복지’로 귀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명국이 공유하는 상식은 돈(재정)이든 사람이든 권능이든 복지든, 자원을 가장 잘 배분하고 활용할 수 있는 곳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소비자 선택권과 공급자 경쟁과 서비스 차별화가 특징인 시장이 이 조건을 잘 만족시키면 시장 주도적으로, 서비스의 일률성과 무차별성과 안정성이 특징인 국가가 이 조건을 잘 만족시키면 국가 주도적으로, 자발성과 호혜성이 특징인 시민사회(가족 포함)가 잘하면 시민 사회가 이 조건을 잘 만족시키면 시민사회 주도적으로 서비스를 공급해야 한다는 말이다. 시장, 국가, 시민사회 중 어느 한쪽에 자원 배분권을 몰아주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 3자를 혼합하되 주된 배분 기제는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현재 제공되는 보건의료서비스와 교육서비스는 그 서비스의 질적 차이가 커기에 시장, 국가, 시민사회가 분담하고 있다. 고급 의료서비스와 교육서비스의 경우 시장이 공급하고, 기초적인 서비스는 국가가 공급하고 있다. 의료생협이나 대안학교처럼 시민사회가 비용 대비 효율이 뛰어난 모델을 구축해 가고 있는 곳도 있다. 그런데 보편적 복지를 ‘선’으로 선별적 복지를 ‘악’으로 여기는 경직된 보편적 복지주의자들은 사회(복지)서비스 생산, 소비 과정에 시장원리(소비자 선택권과 공급자 경쟁)가 들어오는 것을 꺼린 나머지 고급 서비스 시장의 발전을 지나치게 억누르려 하는 경향이 있다.
보편적 복지주의의 현실적 함의 중하위권 학생이 공부 잘하는 모범생의 생활습성과 공부 습성을 닮으려고 열심히 노력하면 1등이야 못하겠지만, 잘하면 상위권에 들 수가 있다. 혹시 북유럽식 보편적 복지시스템을 한국에 안착시키려는 노력이 그런 효과를 거둘 수는 없을까? 그러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부정적이다. 북유럽 시스템이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시스템이 유기적인 통일성을 가져야 하는데, 이를 수입할 때는 이익집단들은 아무래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 강화하는 측면을 우선, 아니 그것만 받아들이려 하기 때문이다. 즉 공공부문 종사자들은 북유럽 공공부문의 큰 규모와 권능과 후한 복지를 우선 받아들이고, 높은 세금, 높은 평등도(부문, 규모=교섭력, 수익성과 상관없는 처우), 상호신뢰에 기반을 둔 대화와 타협 정치문화, 반칙이나 변칙을 고발하는 시민문화 등은 거의 수용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 맞는 경제사회 시스템을 설계할 때 지경학적 조건도 간과할 수 없다. 원래 승자와 패자의 격차 혹은 성과/행운에 따른 격차를 대폭 줄여야 보편적 복지제도가 안정화 되는데 한국의 문화, 지경학적 조건, 한국인의 성정(性情)상 이것이 쉽지가 않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성과/행운에 따른 격차가 엄청나게 큰 중국과 미국이 지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너무 가까이 있어서,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우수한 인력의 국외 탈출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시대착오적 좌파를 향해 던지는 번지수 착오적 좌파의 승부수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혁명주의, 사회주의, 전투적 노조주의 등으로 무장한 시대착오적 좌파들의 담론에 비해서는 확실히 진일보한 측면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진보의 역사에 끊임없이 등장해온 ‘좌익맹동주의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증세는 쉽지 않고, 지역의 부동산 가치를 높여주는 토건 사업에 대한 지지는 여전히 높아서, 오래지 않아 전면적 무상급식 정책은 4대강 사업처럼 다른 많은 예산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고 원성을 살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보편적 복지 항목을 급속히 확대해 나가려 할 때는 상당한 반발이 필연일 것이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한국사회에 대한 일면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전투적 복지주의’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복지강화에 적극적이다. 3대 가치, 4대 원칙과 이를 뒷받침하는 수백편의 정책논문 등 일관되고 방대한 이론 체계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역동적 국가’라는 진보세력에게 그리 친숙하지 않은 화두도 받아 안으려 하고 있다. 또한 이념정책을 중심으로 학자, 시민운동가, 복지관료 출신, 정치가 들이 모였다. 그런 점에서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시대적 요구의 절반은 분명히 체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대폭적인 증세’와 ‘보편적 복지주의’를 경직되게 구사하면서 복지강화-재정 및 공공부문 합리화-시장 및 경쟁 합리화 전선을 교란한다면 절반 정도의 진보적 기여조차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론적으로 5대 불안 해소를 위한 보편적 복지를 대표 상품으로 내놓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시대착오적 좌파를 향해 던지는 약간 개명된(번지수 착오적) 좌파의 승부수’ 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시대를 향해 던지는 진보의 승부수’라고 볼 수는 없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