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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의 밑에 유황이 있으므로 그 물맛이 떫고 성질이 따스하다. 여석(礜石)에서 분출하는 것은 세고 뜨겁지만 병을 치료하는 데는 유황에서 분출하는 것보다 낫다. 단사(丹砂)에서 분출하는 것은 맛이 달고 냄새가 나지 않아 수명을 연장하고 양생하는 데 도움이 된다.1) 단사 온천은 천하에서 오직 여산(驪山)에서만 나는데 한나라의 감천궁(甘泉宮)과 당나라의 화청궁(華淸宮)이 그러 한 예이다.2) 여석 온천 또한 백 개나 천 개 중 하나 정도로 귀하다. 유황 온천은 곳곳에 흔하게 있는데, 일체의 종기나 습종(濕腫), 마비 증세 등을 귀신같이 치료한다. 이러한 것은 옛사람들이 지은 글에 나온다.
내가 어릴 때부터 병이 많아 온천욕을 좋아하였다. 중국의 여산은 내가 본 적이 없지만 계주(薊州)의 행궁(行宮)이나 봉성(鳳城)의 탕점(湯站),3) 그리고 우리나라 선천(宣川)과 희천(煕川), 평산(平山), 명천(明川) 등의 온천은 한두 번 가보았다. 그러나 하나같이 유황온천이었다. 오직 평산의 온천은 뜨겁고 세며 물이 한 자 정도의 높이로 솟구쳐 나오는데, 또 야채를 데치거나 닭과 돼지를 삶을 수도 있다고 한다. 아마도 여석에서 나오는 온천이 아닌가 싶다.
온양온천은 고려 때부터 우리나라에서 명성을 날렸고 우리 역대 임금님들이 여러 번 나들이를 하셨다. 지금 온천 곁에 행궁이 있으며 온천 위쪽에 욕실 전각이 있다. 행궁 동쪽에 쓰지 않는 온정이 둘 있다. 예전 목욕간이라 하는데 담장을 두르고 궐문이 만들어져 있다. 안쪽으로는 시중드는 궁녀와 내시들의 처소, 바깥쪽으로는 호종한 신하들의 숙소가 두루 잘 갖추어져 총총히 늘어서 있다. 대부분 기울어지고 무너졌지만, 휘장이나 발, 병풍, 서안 등 여러 가지 임금께 올리던 기물들은 먼지 속에 버려진 채 쌓여 있어도 아직은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못쓰게 되지는 않았다. 대개 영조 경오년(1750) 이후 거둥이 없었으니 지금까지 85년이 되었다. 부로들도 남아 있는 이가 없어, 당시의 일을 얻어 들을 데가 없으니, 탄식할 만하다. 우리 임금님은 질환이 없는 듯하니, 이것이 진실로 우리 백성들이 기뻐하고 다행으로 여기는 것이다.
욕실 전각은 남북 방향으로 기둥이 다섯이고 동서 방향으로 기둥이 넷이다. 옥돌로 함 가운데를 빙둘러 붙여서 두개의 온정을 만들었다. 마치 한 방인 것 같지만 가운데를 막아 놓았다. 온정의 깊이는 6자 정도인데 세로는 16자가 되고 가로는 8자가 된다. 그 곁에 세 개의 구멍이 나 있어 그곳에서 고인 물이 흘러나온다. 전각의 벽 밑으로 나오기 때문에 안쪽의 두 온정을 상탕(上湯), 중탕(中湯)이라 하고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하탕(下湯)이라 한다. 온천수가 상탕 서북쪽에서 분출되어 동쪽으로 꺾여 중탕으로 들어가 분출되고 다시 남쪽으로 꺾어지면 바깥으로 나와 하탕이 된다.
온천수는 그다지 뜨겁지는 않아 처음에는 뜨겁지만 한참 앉아 있으면 따뜻하여 좋아할 만하다. 만약 분출되는 구멍을 막아 물을 고이게 해놓으면 밥 한 끼 먹을 정도의 시간에 두 온정에 몇 자 높이로 찬다. 가물다거나 아니면 겨울이나 여름이라 하여 수량이 줄어들거나 수온이 변화하지는 않는다. 상탕에서 하탕까지의 거리는 적어도 10여 보는 족히 될 듯하다. 그 땅 크기만큼 큰 솥을 만들고 땔감을 준비하여 물을 덥히고자 한다면 날마다 천 명의 젊은이들이 손에 굳은살이 배도록 일을 하더라도 온천에서 끊임없이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처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 참으로 기이하다.
온정에는 여산(驪山)이나 계주(薊州)와 같이4) 거북이나 물고기, 게와 같은 동물이나 연꽃과 마름과 같은 물풀도 없고 완상할 만한 보옥이나 기교있게 아로새긴 치장도 없지만, 돌의 재질이 뛰어나고 제작이 완벽하고 치밀하다. 조종(祖宗)의 태평성세에 공업이 위대하고 화려하며 규모가 굉장하면서도 질박하였다는 것을 우러러 살필 수 있다. 정말 요즘 사람들이 사모하여 비슷하게나마 본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선비나 서민들은 감히 상탕에서 목욕을 하지 않는 것이 예의다. 그런데 오직 우리 돌아가신 선왕께서 하교하시기를 “나에게 온정에 가라고들 하는데, 백성들도 병을 치유해야 한다. 내가 목욕을 하지 않을 때는 백성에게 주어라. 게다가 매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예비용으로 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이제부터 영원히 두 온정의 출입을 금지하는 규정을 풀어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하늘의 은혜로운 물에 함께 목욕을 하여 모두 태평성대에서 천수를 누리게 하라.” 하셨다. 위대하도다, 대왕의 말씀이여. 이는 성덕(聖德)의 일이다.
이에 귀가 먹은 자, 말을 못하는 자, 다리를 저는 자, 종기나 부스럼이 난 자 등이 지팡이를 짚고 들 것에 실리고 등에 업히고 수레에 실려서 줄줄이 길을 메우며 찾아와 사시사철 빈 날이 없게 되었다. 비록 병이 심한 자라 하더라도 열흘이 되지 않아 누워서 왔다가 걸어서 돌아가게 되었고 신음하면서 들어왔다가 노래를 부르면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아아, 온천의 영험함이 이런 정도라니!
갑오년(1834) 8월 내가 옴이 걸려 온천에 목욕하러 왔는데, 머문 지 며칠만에 나았다. 온천의 물을 마셔보았더니 달콤하고 또 약간 유황 냄새가 났다. 이른바 단사에서 분출하는 온천이 아니겠는가? 어떤 사람은 이 온천에서 목욕을 하면 병이 낫지만, 오래 목욕을 하지 않으면 병이 재발한다고 한다. 아, 이 어찌 온천 때문이겠는가? 병이 들어 온천에서 목욕을 하는 사람은 모두 바깥으로부터 육기(六氣)5)의 병증에 걸리고 칠정(七情)이 그 마음을 손상시켜 음침한 기운이 굳게 엉겨 오래되면 병이 생긴다. 이를 치료하자면 또한 적셔주고 걸러주며 씻어줄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음침한 것은 씻어내고 엉긴 것은 풀어준 다음에야 비로소 병이 사라지게 된다. 그러니 어찌 갑작스럽게 이르는 병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저 살갗에 조금 차도가 있는 것만 보고 마치 오래 있으면 몸이 더럽혀질까 재빨리 가버렸다가, 조금 있다가 질병이 다시 도지게 되면, ‘온천 때문이다’, ‘온천 때문이다’ 하니, 어찌 심히 어리석은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듣자니, 광동(廣東)에 도화천(桃花泉)이 있는데, 북쪽에서 온 등짐장사들이 한번 그곳 사람과 정을 통하게 되면, 돌아가는 길에 반도 못 가서 큰 종기가 생겨난다고 한다. 백약이 무효라서, 부득이 도화천으로 되돌아와 물을 마시면 하루도 되지 않아 정상이 되고 이 때문에 그 땅에서 늙어가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한다. 또 온천수를 마시더라도 남녀관계를 맺지 않은 사람은 아무 탈 없이 돌아간다고 한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사실이라도 그 사람이 자초한 일일 뿐이니, 어찌 도화천이 그렇게 한 것이라 하겠는가?
내가 장차 돌아가려 할 때 어떤 사람의 말을 기록하여 온천의 입장을 밝히고, 겸하여 목욕하러 오는 사람을 경계한다.
1) 오잡조(五雜組)》에 따르면 온천수 아래에는 주사나 유황, 여석이 있다고 하였는데 여석은 독성이 매우 강한 물질이다.
2) 여산에 있는 감천궁(甘泉宮)은 한무제(漢武帝) 때의 피서궁이며 화청궁(華淸宮)은 당명황(唐明皇)이 지은 별궁(別宮)으로 양귀비(楊貴妃)와 온천욕을 즐기던 곳이다. 감천궁에 온천이 있다는 기록은 확인하지 못하였다.
3) 모두 중국으로 사신 갈 때 행로에 있어 들르던 곳으로 온천이 있었다.
4) 여산(驪山)에 당 현종(玄宗)의 별궁 화청궁(華淸宮)이 있는데, 매년 10월 1일 양귀비(楊貴妃)를 데리고 가서 온천욕하고 놀았다. 계주(薊州)의 행궁(行宮)에 온천이 있고 그곳이 화려하였다.
5) 한의학에서 한(寒), 열(熱), 조(燥), 습(濕), 풍(風), 화(火)의 여섯 가지 병증(病症)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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