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복
하나님의 복은 신령한 복 곧 영적인 복입니다
이러한 잘못된 복에 대한 이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진실로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러나 3절의 “복”은 세상에서 잘되고 물질적으로 부유해지는 “복” 이전에 “신령한 복”을 말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언급하는 복은 세상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복보다 훨씬 더 귀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복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 복 주시되” 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영어성경 NIV에는 완료형 동사인 “has blessed”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하늘의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셨다” 라는 의미입니다. 과거 어느 한 시점에서 주신 복이 지금도 우리에게 누려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바울은 4절부터 그 복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밝히고 있습니다. 다시 3절로 돌아갑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셨는데 어디에서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네, ‘그리스도 안에서’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즉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이미 주셨는데 그리스도 안에서 주셨다’ 라는 말이 됩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길과 방법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한 마디로 줄인다면 여러 말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여깁니다. ‘신앙생활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 신앙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를 소유하는 것. 이것이 신앙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 이하의 표현에서 우리는 이 점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 그리스도 안에서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
탈무드에 이런 얘기가 실려 있습니다. 한 아버지가 죽기 전에 자신의 모든 재산을 노예에게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이제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라.” 여러분, 그 아들이 무엇을 선택했을 것 같습니까? 네, 물론이죠. 아버지의 재산을 다 가진 노예를 선택했습니다. 노예를 가지면 아버지의 모든 것을 다 가지게되니까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소유하면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격이 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의 영원한 목적은 예수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모든 것으로 예수님을 소유해야만 예수님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값어치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부터 46절입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여기 두 개의 비유에서 비유되고 있는 대상은 ‘천국’입니다. 그런데 천국 즉 하나님 나라의 주체는 누구입니까? 네,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전도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의 주체인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언급된 “보화”는 하나님 나라이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이기도 합니다. 네, 예수님이 보화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모든 것으로만 예수님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됩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팔아 예수님을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우리의 모든 것을 팔아 사라고 하니까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니, 그러면 우리의 재산을 다 팔아 그 돈으로 예수님을 산다는 말이냐? 아니, 예수님을 어떻게 돈을 주고 살 수 있단 말인가?” 성경에는 구원을 돈으로 살 수 없다고 분명히 못박고 있습니다. 어린이 복음찬송에도 있습니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재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지식으로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그렇다면, 예수님을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팔아 사야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물론 이 말은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헌금해야만 예수님을 소유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믿음의 성격차원에서 이해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정확한 성경적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먼저, 믿음이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 지식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아니라 성령의 조명으로 발견한 하나님. 개인적이고, 실제적으로, 성령의 인도 속에 만난 하나님. 경험되어진 하나님. 즉 산 지식을 말합니다. 곧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만큼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알게되면 그분의 명령 앞에 완전히 순복할 수 있게되며, 그분만을 온전히 의지하게 됩니다. 이것이 믿음의 성격입니다.
모든 것을 다 팔아 예수님을 사라는 말씀은 예수님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권자가 되시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다 팔아 예수님을 사라고 하는 말은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주권자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완전한 순복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가 온전히 믿을 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아까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시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네, 하나님은 모든 복의 진정한 근원이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의 근원’을 이해함에 있어서 세상의 돈, 명예, 자식의 성공 등과 ‘복의 근원‘ 을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큰 문제입니다. ’복의 근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관점을 다르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기복신앙은 다른 말로 일반적인 복의 관점 즉 세상적인 관점에서 복의 근원을 이해하게 만들었습니다. 이 신앙관의 문제점은 하나님을 세상에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의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점입니다. 열심히 헌금하고, 열심히 예배하는 이유가 모두, 세상에서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신앙이 기복신앙입니다. 열심히 기도하지만 이 기도를 통해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얻고자 하는 바를 얻어내는 데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기도는 그저 수단일뿐입니다.
하나님을 수단삼는 신앙이 기복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수단삼는 신앙이 기복신앙입니다. 이것은 타락한 신앙이며, 하나님을 떠난 신앙입니다. 엄밀히 따지면 기복신앙은 신앙이 아니라 세상사랑입니다. 이 기복신앙의 가장 큰 해악은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모든 신령한 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복신앙이 추구하는 바, 세상사랑은 하나님이 증오하시는 영적 간음이며,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기억합시다. 모든 하나님의 신령한 복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그 예수님을 얻는 길은 우리의 모든 것으로 예수님을 사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즉, 예수님만이 우리의 목적과 목표가 되는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렇게해서 예수님을 소유하면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모든 복을 소유하게 됩니다. 마태복음의 비유를 다시 읽겠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주를 향한 노래 [NTC] notes # 14
[ 주께 용서받은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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