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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祖 | 曾祖 | 祖 | 父 |
오규 | 구(捄) | 이도 | 방(坊) |
자(字) 몽서(夢瑞) 호(號) 석당(石塘)
행적(行蹟) : 정훈(庭訓)을 이어받아 경학(經學)과 도의(道義)가 높아 유학(儒學)의 사표(師表)가 되었다. 영상(領相) 조두순(趙斗淳)의 상주(上奏)로 효문전(孝文殿) 참봉(叅奉)으로 제수(除授)되고 통례원(通禮院) 인의(引義)가 되었으며 또 외직(外職)으로 전라도사(全羅都事)가 되었다. 조정(朝庭)에서 경연(經筵) 참찬(叅贊)으로 의망(擬望)했으나 세상을 떠나니 모두 애석하였다.
문집(文集) : 족손 송남(松南) 규종(圭綜)이 서문을 찬(撰)했다.
행장(行狀) : 문인(門人) 이운명(李雲明) 찬(撰)
묘갈(墓碣) : 승지(承旨) 김복한(金福漢) 찬(撰)
5대손 윤상(胤庠) 서(書). 입비(立碑)
묘소(墓所) : 반산 지현 우룡 정좌(丁坐)
배위(配位) : 경주이씨(慶州李氏) 이하규(李夏圭)
묘소(墓所) : 반산 뒤 지현 미좌(未坐)
ㆍ子 제강(濟康) ㆍ子 제창(濟昌)
ㆍ女 김영구(金永龜) 광산인(光山人)
[승정원일기]
◼ 고종 2년 2월 5일 신미 1865년
有政 - 정구석(鄭龜錫)을 효문전(孝文殿) 참봉(叅奉)으로 삼았다.
◼ 고종 2년 3월 16일 신해 1865년
임금이 희정당(熙政堂) 거동시 입시(入侍) - 전참봉(前參奉) 정구석(鄭龜錫)이 아직도 학문을 정진하시는데, 연세(年歲)가 이제 80세에 다다릅니다. 인명(人名)은 하나로서 기록에 그치지 말고 특별히 6품직(品職)을 제수(除授)하여 차자 중용하심이 어떠십니까? 대왕대비(大王大妃)가 그리하라!
◼ 고종 2년 3월 17일 임자 1865년
정구석(鄭龜錫)을 인의(引儀)로 삼았다.
◼ 고종 2년 4월 22일 병술 1865년
吏曹 啓 - 통례원(通禮院) 인의(引儀) 정구석(鄭龜錫)가 제수(除授)되었으나 아직 숙배(肅拜)하지 않았으니 개차(改差)하소서... 왕이 윤허(允許)하다.
◼ 고종 2년 6월 17일 경술 1865년
有政 吏批 - 정구석(鄭龜錫)을 전라도사(全羅都事)로 삼았다.
◼ 고종 5년 4월 9일 정해 1868년
고인(故人)이 된 도사(都事) 정구석(鄭龜錫)을 애도(哀悼)하여 보은(報恩)의 전범(典範)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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