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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장수 간 20번 고속국도는 2007년 12월 13일 개통되었다. 불과 61km의 짧은 구간이지만 이 도로의 개통으로 전북 동부 산악권인 고원의 고장 진안은 전국 각지로부터 가까운 곳으로 다가섰다. 이 도로는 호남고속도로와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로도 연결되면서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의 진안이 서울·부산과의 거리를 3시간 안팎에 놓이게 했다.
진안은 마이산과 운장산의 고장으로 산꾼들에게는 오래전부터 크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전북권의 산꾼들이 아니라면 덕태산과 선각산은 생소한 이름, 생소한 산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타고 호남고속도로로 연계하여 익산까지 간 다음 20번 고속도로로 진입하면 진안은 단숨에 달려갈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진안에서 덕태산과 선각산이 솟아있는 백운면까지는 지척의 거리. 더욱이 아름답고 신비로운 마이산의 두 봉우리를 끼고 달리는 30번 국도는 경이롭다. 이와는 다르게 백운면까지 도달하는 길은 여러 갈래가 더 있다. 35번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 금산에서 진악산을 끼고 달리는 13번 국도로 갈아타면 진안에서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불리는 용담호가 펼쳐진다.
또 있다. 조금은 멀게도 느낄 수 있겠지만 장수읍 논개사당이 있는 송천에서 장수 팔공산 8부 능선을 가로 지르는 서구이재를 넘는 코스다. 이 코스를 선택한다면 그 추억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역으로 귀환길에 이 코스를 선택,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샘이라도 둘러보게 되면 이것은 매우 소중한 지리공부가 되겠다.
덕태산장
시골 마을 별(星) 볼 일 있는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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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태산 산행들머리인 백운동의 덕태산장(063-432-5003)에서 하룻밤을 잤다. 식당이 있고 민박시설이 넉넉한데, 산장 안채 거실에서 70대 후반의 노모와 아들 내외, 그리고 다섯 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저녁 식탁에 둘러앉았다. 식당 음식이 아닌 통상의 가정식단이다. 청국장에 배추김치와 총각김치, 동치미와 간장에 절인 고추가 반찬의 전부다. 주인은 따로 음식을 차려내지 않았다며 객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했지만, 객은 그저 고맙기만 했다. 50년이나 지난 날, 시골 고향의 어머니께서 차려 주시던 밥상 그대로이니 어찌 고맙지 않을까. 서울에서도 유명하다는 어느 음식점 간판에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음식점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첫 번째로 맛있는 집은 어디냐고 물어 보면 그 식당 주인은 “그거야 당연히 집에서 어머니가 차려 주시는 밥상이 있는 자신의 집”이라고 한단다. 바로 그런 밥상을 받았던 것이다.
날이 저물고 넓은 마당으로 나갔다. 하늘을 쳐다봤다. 이것은 보통의 감동이 아니다. 수많은 군성(群星)이 머리 위로 쏟아져내릴 것만 같다. 50년 전 시골 고향의 밤하늘 모습 그대로다. 기와지붕의 민박동 큰 방에다 장작으로 방을 데워 놓았다.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잠이 들었는데 밤은 깊어 자시(子時·23시~1시)가 지나 축시(丑時·1시~3시)라도 되었는가. 꼬꼬데~ 꼬꼬데~ 닭 울음소리가 나그네의 잠을 깨웠다. 또 다른 민박동 다섯 개의 방에는 딱따구리, 꾀꼬리, 뜸북새, 뻐꾹새, 소쩍새 등 새 이름을 문패인 양 붙여 놓았다. 산장주인 유병한(劉秉漢·49)씨는 자신의 집은 유난히 산새 소리를 많이 들을 수 있는 산장이라며 자랑한다. 산새만이 아니라 봄이면 개구리들의 힘찬 합창을 들을 수 있고, 여름날 비라도 좀 내리면 식당 뒤쪽 계곡에서는 우렁찬 심포니가 연주된다고도 했다.
덕태산장 주인 내외는 3남2녀의 자녀를 낳아 주위의 많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는데, 어떤 이웃은 둘을 더 낳아 일곱이 되면 ‘도레미파솔라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합창단을 만들 수 있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고 했다. 서글서글한 성격의 안주인 신향순(申香順·41)씨는 이 우스갯소리에 대꾸, “이왕이면 넷을 더 낳아 야구팀 하나를 만들 작정이에요” 하면서 주위를 웃기기도 한다는데, 세상은 바뀌어 다산(多産)이 덕목이 되고 군수도 이 집에 들러 애기 하나만이라도 더 낳도록 권장까지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부인의 속내는 단호했다. “남편의 나이를 감안하여 애기는 이제 그만, Stop at 5” 라고 했다.
송어회 27,000원. 토종닭·오리주물럭 각 35,000원. 민박 방(성수기) 10만원.
백운관광농원
합숙하면서 단합대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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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수목과 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봄철이면 골짜기마다 진달래로 비경을 이루는 백운동계곡, 덕태산 산행 나들목 가장 깊은 곳에 ‘백운관광농원(063-432-4589)’이 있다. 합숙하며 잠 잘 곳으로 예약해두고 넓은 마당에서 돼지고기라도 구워 놓고 단합대회라도 하기에 적격인 농원이다. 동갑내기(43세) 주인 변정기-신종님씨 내외는 이곳이 태어난 고향으로 대도시로 나가서 공부를 했다. 남편은 대한민국 최고의 직장이라는 S전자에서 일했던 분인데, 어릴 때 자란 청정한 자연과 인정에 끌려 결국 고향을 지키는 삶으로 회귀했다는 것이다.
부인 역시 결혼 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었는데, 새파란 풀잎이 1급수 맑은 물에 떠서 흘러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고향 생활보다는 못했던가 보다. 지금은 사통팔달 교통망이 뚫려 사정이 바뀌고 있지만, 오지 중 오지로 이름을 날렸던 무진장의 진안, 그 진안에서도 덕태산 자락 백운동계곡은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변정기·신종님씨 부부가 그래도 아직은 사람들의 손길에 오염이 덜 된 고향땅으로 회귀할 수 있었던 것은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아름다운 정서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겠다. 그런 만큼 백운관광농원은 편안한 분위기로도 외부에 소문이 크게 났고 손님들도 이런 분위기를 알고 찾아온다는 것이다.
산자락의 업소답게 토종닭백숙와 오리주물럭을 차려내는데, 송어회도 먹을 수 있다. 40명까지 함께 쓸 수 있는 공간의 민박시설을 통째로 10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
통나무산장
‘카수’와 포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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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번 국도의 진안군 백운면 사무소가 있는 삼거리에 예쁘장한 입간판 하나가 서 있다. 백운동계곡까지는 3km, 계곡으로 들어가서 이용할 수 있는 민박집과 음식점을 쉽게 찾도록 해놓았다. 맨 먼저 만날 수 있는 집이 ‘통나무산장(063-432-9990)’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덕태산과 선각산 등산 나들목길, 백운동에서 백운계곡과 마주치는 곳에 이 산장이 있다. 2층으로 잘 지은 집 1층이 식당이고 2층은 민박방으로 배치해 놓았다.
식당인 1층으로 들어가 본다. 그런데 전혀 식당이라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식탁이 놓여 있지도 않는데 한 편에 있는 피아노 한 대가 눈에 들어온다. 마을에 있는 작은 어린이 집 같은 분위기다. 집주인이라며 명함을 건네는 젊은 여인이 이곳에서는 ‘진안의 카수(歌手)’라는 별명의 최선미(41)씨였다. 일요일 낮 KBS 1TV 전국노래자랑에서 ‘달타령’을 불러 인기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지역 노래자랑에서는 단골 입상자가 된 사람이라는데, 지난해 진안군민가요제에서는 ‘멋진 인생’을 불러 대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진안의 카수’라고 했다.
‘그 부인에 그 남편’이라고 했던가. 남편 강덕만(48)씨는 진안에서는 알아주는 포수라고 한다. 지금은 수렵이 허가된 기간이라 사냥을 나갔다고 한다. 마침 ‘카수’를 만나던 바로 그 시간, ‘포수’로부터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는 전화 연락이 들어왔다. 그래서 이 집에서는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의 음식차림이 있지만 멧돼지, 꿩, 산비둘기 고기(각 4만 원)도 먹을 수 있는 집으로 알려져 있다. 여름철, 포수는 바다낚시꾼이 되어 먼 바다로 나가서 우럭 등 바닷물고기들을 낚아서 오기도 한다는데 이들 물고기들은 손님들에게 사은행사로 회를 쳐서 대접한다고 했다. 쯧쯧, 적어도 공중파 TV의 카메라 정도가 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카수’는 사진 찍기기를 극구 거부했다.
송어회 3만 원, 토종닭백숙·토종닭볶음탕·오리주물럭 각 4만 원. 참옻닭 4만5,000원.
백운산장
섬진강 발원지 맑은 물속에도 송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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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 년 전만 해도 이 땅에는 송어라는 물고기가 없었다. 1965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냉수어종인 송어가 종란 상태로 한국으로 공수되어 강원도 평창땅 삼방산 줄기에서 솟아나는 자연용천수에서 양식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 송어가 맑은 물이 솟아나는 전국의 깊은 산골 곳곳에서 사람들의 미각을 즐겁게 해 주고 있다.
선각산 자락,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샘에서 멀지 않은 곳,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신암저수지 위쪽에는 ‘백운산장(063-432-3104·011-650-5472)’이라는 옥호의 송어집이 있다. 첩첩산중, 장수 팔공산의 자락이기도 한 이 집은 그 명성이 만만치 않다. 업주 이대규씨는 전주를 위시해 남원, 임실, 오수 등지에서 송어회를 먹기 위해 깊고 깊은 산속까지 많은 손님들이 찾아 주시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신기하기까지 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