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란 버림 아닌 초연 ‘틀’서 자유로워지는 것 / 우학 스님
오늘 음력 2월 8일 부처님 출가재일입니다.
불교에는 5대 명절이 있는데 그 가운데 으뜸인 부처님오신날,
그 다음이 성도재일, 출가재일, 열반재일이고 여기에 백중을 포함해
5대재일이라고 합니다. 특히 출가재일로부터 시작해서 열반재일에 까지
이르는 8일간을 불교도 정진 주간이라 하여 용맹으로 정진수행합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 절에서는 하루 108배 두 번하기, 하루 참선 한 시간 하기, 하루 신묘장구대다라니 7독하기, 포교 두 명하기가 숙제입니다.
오늘은 출가재일을 맞아 출가의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출가를 영어로 표현하자면 ‘becoming a monastic’이 가장 적당하고
생각됩니다. 수행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이 절에 온 것도 넓게 생각하면 수행자가 되는 것입니다.
출가 목적은 ‘이고득락’
그렇다면 출가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고득락(離苦得樂), 괴로움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절에 오는 이유는 괴로움을 떨치고 정신적이든, 물질적이든 즐거움,
좋은 것을 얻고자하는데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출가하실 때
“나는 생로병사가 없고 무고안온한 행복의 삶, 열반을 얻기 위해 출가한다”고 밝히셨습니다.
이것이 이고득락입니다.
이러한 출가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그 가운데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사친출가, 삼계출가, 오도출가입니다. 사친출가란 가족으로부터의 출가입니다.
삼계출가는 물질로부터의 출가입니다. 오도출가는 정신으로부터의 출가입니다.
이 세 가지 출가는 옛부터 많이 쓰이던 말인데 현대적인 의미로 바꾸어 해석하면 이렇습니다.
출가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포기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현대적 의미로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초연하다’입니다.
가족으로부터 초연하고, 물질로부터 초연하고, 정신으로부터 초연해졌다입니다.
출가의 ‘가(家)’는 집을 뜻하는 동시에 고정된 틀을 의미합니다.
고정된 틀에서 뛰쳐나왔다, 초연해졌다, 자유로워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출가에는 초연하다, 자유로워졌다는 등의 개념이 담겨 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사친출가’는 가족으로부터 초연,
즉 가족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오늘 하루 여러분이 절에 오신 것도 가족으로부터 출가한 것이고 초연해진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가족을 버린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절에 오신 것은 가족을 버리지 않고 좀 더 큰 삶, 내 가족이라는 틀을 넘어서
초연한 삶을 살기 위해 절에 오신 것입니다.
가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족에 대해 할 일은 다 하면서 보다
넓은 범위의 가족을 생각하고 사랑하기 위해 절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가족은 그대로 있고 덤으로 더 많은 가족이 생기는 것이 사친출가의 의미입니다.
두 번째로 삼계출가는 물질로부터 초연해졌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물질을 다 버렸느냐, 그건 아닙니다. 물질로부터 초연, 집착하지 않는다입니다.
집착하지 않는다고 해서 물질이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집착하지 않아도 생길 것은 생깁니다. 사람이 물질을 쫓아가다보니 힘들어지는 것이지
자기 할 일 열심히 하면 물질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절에 오면 물질로부터 초연해지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맛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물질에 집착하지 않았는데도 내가 원하고 바라고 기도한 만큼 물질이 갖춰지는 것이니
초연, 집착하지 않는다는 말이 버린다, 떠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수행은 출가자의 전제조건
세 번째 출가는 오도출가. 정신으로부터, 생각으로부터 초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고정관념, 번뇌망상에 집착하다보면 새로운 정신세계, 새로운 행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절에 와서 내가 갖고있던 모든 생각을 내려놓아도 손해 볼 것이 없습니다.
부처님 말씀 듣고, 스님들 말씀 들으면 거기에서 전혀 새로운 행복이
내 마음 속 알 수 없는 샘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도출가입니다.
버렸다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행복한 생각이 차게 됩니다.
버린 것이 오히려 초연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도출가란 새로운 행복 에너지들이 내 몸에 갖춰지는 이치를 말합니다.
절에 다니면서 가족으로부터, 물질로부터,
내 갇힌 정신으로부터 초연해지고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법문 들을 때, 참선할 때, 기도할 때도 자기 생각을 다 내려놓아야 오도출가입니다.
출가란 초연의 삶이고 완전한 자유의 삶이기에 이고득락의 삶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출가에는 이만큼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하지 않는 출가는 없습니다. 수행은 출가의 전제조건입니다.
그러기에 절에 오는 모든 이들은 다 출가자입니다.
이 가운데에는 ‘전문 출가자’들이 있는데 이들을 스님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재가 신도의 입장에서 ‘전문 출가자’인 스님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스님이 없으면 불법승 삼보가 없어집니다. 그러면 불교가 무너집니다.
스님이 없어 절이 문을 닫게 되는 것을 미국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절 하나에 스님 하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특별한 인연이 아니면 출가하기가 힘듭니다.
본인이 원한다고만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시켜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여건이 다 맞고 과거 숙세의 모든 인연이 성숙돼야
머리를 깎고 가사 장삼을 입는 스님이 됩니다.
출가할 때는 가족들의 가슴에 말할 수 없는 이별의 슬픔을 안기기도 합니다.
어느 행자 어머니를 만났는데 신심 깊은 불자고 오랫동안 신행생활을 했는데도
아들 둘 중 하나가 출가하겠다고 하니 얼마나 반대를 하는지.
결국 어머니가 포기를 했기에 출가가 가능했지만
그 어머니와 통화를 하며 모정이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미국에서 시를 하나 썼습니다.
‘그것이 선업이라 할지라도 마음 아려서 말도 못한다.
장가가서 애도 낳고 평범하게 살면 좀 좋으련만 말 듣지 않는다.
출가는 어머니의 시린 가슴을 딛고 무정하리만큼 휑하니 이뤄진다.
밤중에도 벌떡 일어나 앉는 애달픈 눈물의 강을 오늘도 이 미국 땅에서 보고 있다.
삼세에 걸친 대작불사 니르바나는 너무도 큰 것을 막무가내로 요구한다.’
출가는 예삿일이 아닙니다. 모든 여건, 인간적인 여건과 관계가 갖춰졌더라도
시절인연, 상황이 맞지 않으면 안 됩니다.
출가자 외호는 불자의 의무
그러니 여러분들은 출가한 사람을 잘 돕고 외호해야 합니다.
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수행자에게 딴 생각으로 접근하지 마라. 수행자는 연예인이 아닙니다.
수행자를 연예인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두 번째, 수행자를 흉보지 마라입니다.
갓 출가한 초심자라해서 법력이 없겠거니 생각하는 것도 착각입니다.
초심자가 가장 마음이 순수하고 법력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가볍게 여기면 안 됩니다.
세 번째는 수행자의 허물을 대신 지고 가라입니다.
스님이 목탁을 못치고 염불을 못하더라도 ‘수좌염불’이려니 하고 이해해주면 됩니다.
그것이 스님의 허물을 자신이 지고 가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수행자들의 공부를 도우라입니다. 스님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잘 하면 됩니다.
스님들이 가람을 지키고 불법을 전합니다. 우수한 스님 없는 불교는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 길러내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 출가재일은 부처님을 기념하는 날이지만
출가재일의 의미를 내 마음 공부의 밑천, 소재로 삼으셔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도 수행을 해야 하고
수행자들에 대한 자세 네 가지를 항상 실천하는 불자가 돼야 합니다.
이 법문은 2009년 3월 4일 부처님 출가재일을 맞아
한국불교대학대관음사 회주 우학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우학 스님
조계종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출가해 성파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선방, 토굴, 강원, 무문관에서 참선 수행하였으며
성우 스님으로부터 비니(毘尼)정맥을 이었다.
현재 한국불교대학대관음사 회주 소임을 맡고 있으며
경산, 칠곡, 구미, 감포, 자인, 서울, 중국 칭다오, 미국 뉴욕 등에 분원을 두고
대중포교와 수행에 진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저거는 맨날 고기 묵고』, 『금강경 핵심강의』,
길손여행』, 『완벽한 참석법』등 다수가 있다.
출처 : 법보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