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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르쥬 비제(Georges Bizet, 1838-1875)는 파리에서 태어났고 거기서 자랐다. 20세에 음악학교 학생으로 그는 학교의 최고대상인 "로마대상'을 받아 이탈리아의 수도에 3년간 체류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생애 나머지를 그는 그가 태어난 파리에서 보냈다. 그의 청춘기의 작품들에 이어 3편의 오페라를 내놓았고 이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불러 일으키는 작곡가의 능력을 드러내 보인다.
<진주잡이, 1863>는 실론에서의 사랑과 종교의식의 드라마이다. 4년 후에는 월터 스코트의 소설에서 딴 <퍼드의 아름다운 처녀>를 내놓았고 그것은 낭만적으로 각색된 스코틀랜드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자밀레, 1872>는 그 무대가 카이로이다. 이들 오페라 중 어느 하나도 압도적인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나 주목할 만 한 작곡가로서의 명성은 확립시키게 되었다.
알퐁스 도데의 암울한 희곡 <아를르의 여인, 1872>에서는 보다 훌륭한 비제의 모습이 드러난다. 여기에서 그는 특유의 부드러움을 가진 명쾌한 양식의 작곡가로서의 그를 보여 준다.
이번에는 메리메(Prosper Merimee)의 유명한 집시생활과 사랑의 이야기로부터 만들어진 메이약(Henry Meilhac)과 알레비(Jacques Halevy)의 대본이 제공되었고, 비제는 곧 이 일에 착수했다. 그 결과로 그 세기에 가장 훌륭한 프랑스 오페라가 탄생한 것이었다.
메리메의 이야기는 현실생활에 보다 가까운 문학을 추구하여 기본적인 인간과 정열을 취급하는 새로운 유형의 문학이었다. 메리메의 집시, 밀수업자, 그리고 산적들은 새로운 사실주의를 예고하는 성실성을 가지고 묘사되었다. 오페라에서는 원작의 적나라한 격정을 어느 정도 누구러뜨리기는 했으나, 1875년 3월 3일 초연하는 날 밤에 모인 청중들의 마음을 혼란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동반하고 오는 가족극장이었다. 무대 위의 정열은 그것이 이미 죽은지 오래된 왕들이나 공작부인들에 관한 이야기라면 괜찮지만 카르멘과 그녀들의 불미스러운 동료들의 이야기는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현실과 가까웠다.
이 오페라는 전설로 널리 전해지고 있듯이 그렇게 대실패는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작품은 첫 청중들을 정복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작품이 그다지 점잖지 못하다는 풍문 때문에 오히려 그 후 3개월간에 주 3회 평균으로 37회의 공연을 계속하게 되었으며, 지배인은 작곡가와 대본작가들에게 다음 작품의 계약을 제공하기에 이르렀다.
비제 자신만이 <카르멘>은 실패했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는 이 작품에 그의 천재성을 모조리 경주하였으므로 그 반응은 그에게 견디기 어려운 실망을 안겨 주었다. 여러 달에 걸친 연습에 지친 허약한 체질과 상연에 임한 정서적 긴장은 이러한 충격을 견디어 낼 수 없었다. 초연으로부터 정확하게 3개월 후 그는 37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그는 성숙한 양식에 도달하자마자 죽은 것이었다. 이 작품은 당장에 오페라 코미끄에서 상연이 중지되었다. 그러나 3년 안에 비인, 브뤼셀, 런던 등에서 상연되었다. 그로부터 5년 후 이 작품은 파리에서 재상연되어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전설적인 성공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사랑 받는 오페라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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