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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내가 나의 왕을 세웠다(신나오미)
시편 2편 첫째로, 우리가 생각할 것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는 말씀의 내용을 볼 때 성격으로 볼 때 어떤 특징이 있는가 하는 거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이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왕은 우리 육신의 눈에 보이는 그런 왕이 아니고 우리 육신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그런 분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나의 왕이라고 하셨는데 이 말이 좀 이상합니다. 하나님께 무슨 왕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왕을 세웠다가 아니고 나의 왕을 세웠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다스리는 왕이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낳으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하나님의 왕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을 가리켜서 너는 나의 왕이다 그렇게 말씀하신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아들을 오늘 내가 낳았다 말씀하시는데 이렇게 아들을 낳아 놓으시고 아들을 가리켜 너는 나의 왕이다 이렇게 말씀하신단 말입니다. 얼마나 이게 놀라운 얘기이고 사건입니까? 이런 왕이신데, 왕은 어떤 왕이냐. 당장에 세상에 내려가서 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을 싹 다 쳐 죽이고 벌을 내리시는 그런 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방의 왕들이라는 거는 누구냐, 이방은 누구고 왕들은 누구냐. 우리 성경은 역설적입니다. 아이러니입니다. 무슨 얘기냐, 예수님은 내 원수가 내 집안 식구라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원수가 어디에 있느냐 먼 데에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배반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자가 당신의 백성 유대인들입니다. 하나님의 왕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내려오셨을 때 그를 대적하여 그를 죽인 자들이 누구냐, 이것이 이방인들이잖아요. 이것이 유대인들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은 사실 예수님을 죽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죽일려고 합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시온에 세우셨다고 하는 말은 곧 하나님의 성전에 세웠다는 말이고, 예수님은 훌륭한 왕으로 오셨다고 하는 말씀이고, 또 다른 말로 예수님이 왕은 왕이신데, 오시자마자 통치를 하시는 게 아니고 실상은 어떻게 하셨어요? 예수님은 그들을 위해서 그들의 죄를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려고 이렇게 찾아오셨고 실제로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말았단 말이죠. 예수님은 심판하시는 왕으로 오신 게 아니고 저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저들을 회개하게 해서 구원에 이르도록 하시는 이런 거룩한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셔서 이렇게 우리를 위해 희생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생각해야 되는 거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 오늘 본문에서는 어떻게 하라고 말씀합니까? 첫째는 그러므로, 떨며 두려워하며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이렇게 하나님을 숨겨라 말씀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두렵고 하나님의 심판이 두렵고 하나님에 대해서 이런 두려움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첫째입니다.
둘째는 그 왕에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입맞추는 사람이 되라 이렇게 설명하시죠. 아들에게 입 맞추라 하는 말씀은 아들과 이렇게 깊은 관계를 가진 사람이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과 같이 아주 깊은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과 연인 관계가 되어야 됩니다. 예수님의 아내가 되는 이런 관계를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님과 정말 주님과 내가 이런 관계가 되어 있는가 그래서 주님 앞에 나가면 내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다 고백할 수 있는 이런 사이가 돼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 앞에서 무언가를 숨기는 것이 있으면은 절대로 안 된다는 말입니다.
뭐든 허물도 뭐든 잘못도 다 터놓고 다 공개하고 있어도 서로가 이해하고 동정하고 도와주고 덮어주고 이런 관계가 부부의 관계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 앞에서도 이런 관계가 되면은 내가 죄를 짓고 잘못했어도 주님께서 이것을 다 용서해 주시고 눈 감아 주시고 오히려 이것을 덮어주시고 이게 함부로 폭로되어 가지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지 아니하도록 나를 이렇게 보살펴 주신다 이제 이런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과 더 가까운 사이가 돼야 합니다. 둘째 의미는 말을 맞추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죄를 사하실 것이다” 그렇게 설명한단 말이에요. 근데 거기에 자백이라고 하는 말이 헬라말로 호모로게오라고 하는 말인데 호모라는 말은 같다는 말이고 로게오는 말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내가 똑같이 말을 해야 된다. 이게 자백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내가 죄지은 걸 환하게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거를 숨기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다 터놓고 하나의 하나님 앞에 고백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입맞춘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하시는 것과 내가 말하는 것이 일치하여야 합니다.
둘째로 목사가 설교를 할 때에 목사의 입에서 나오는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과 똑같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편 마지막 절 말씀에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합니다. 이 세상에 환난이 끝없이 쏟아지고 세상에 큰 위험이 찾아오지만 이럴 때에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은 나의 피난처, 그분은 나의 바위, 그분이 나의 안식처가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주님께 피하는 자는 이 세상을 넉넉하게 이겨나가는 사람이지만 주님께 피하지 아니하고 인간들 따라서 살아가려고 하면, 우리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이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더욱 주님께 피하는 자 되게 나의 반석이 되시고 피난처 되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날개 아래에서 편하게 쉬는 자 되게 하옵소서. 환난날에 주님이 나를 독수리의 날개로 업어 안전한 곳에 인도하시고 저의 삶 속에 영광을 나타내 주실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더욱 뜨겁게 사랑하고 진리 안에서 말씀 충만, 은혜 충만한 성도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6) 신비
요 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이 구절이 주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큰 사랑입니다. 돈을 한 보따리 떨어뜨려 주신 것이 사랑이 아니고 독생자를 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내 육신을 건강하게 만드셔서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 10개 따오게 만들어 주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고 나에게 독생자를 주신 것이 사랑입니다.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 하나라도 따온다고 하는 것은 기적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과 비교도 되지 않을 큰 복을 받은 것이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신 것이고. 우리가 독생자를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고 깨닫게 되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고, 인생에 성공하며 살아가게 되고, 이런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난다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3장 16절 중요한 몇 군데의 말씀들을 찾아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가장 유명한 말씀이 요한복음 3장 16절 근데 이 말씀하고 같이 짝을 이루는 말씀이 요한일서 3장 16절입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만 알지 말고 요한일서 3장 16절도 같이 알아야 된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는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씀만 거기에서 끝났는데 이 독생자가 무슨 일을 하셨느냐 하는 거는 거기에는 설명이 안 돼 있단 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요한일서 3장 16절에서는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그래서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면, 그 사랑이 내 마음에서 불타게 되면, 우리는 이웃을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어마어마한 복을 쏟아부어 주십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으로 변화를 받으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3장 16절과 요한일서 3장 16절이 이렇게 짝을 이루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성경 전체의 요절이 되고, 우리가 마음에 꼭 기억하고 외우고 이 말씀을 다시 되새겨 가면서 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곳에 3장 16절은 어떤가. 자 마태복음 4장 17절은 뭐예요?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외치는 말씀이고 그러면서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느니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 둘 것이라 하는 말씀이 앞부분에 나오고, 이렇게 예언했는데 드디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새 이게 이제 3장 16절입니다.
세 가지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첫째: 하늘이 열리고 둘째: 성령이 비둘기같이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셋째: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 음성이 들려왔다 하는 것입니다.
물에 들어갔다 빼내거나 머리에 물을 뿌려갖고 하거나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예수님의 세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받아야 된다 말이죠. 그런데 그때에 예수님에게 일어났던 이 세 가지의 현상이 오늘날 세례받은 사람들에게도 반드시 일어나야 됩니다. 첫째, 하늘이 열려지는 복을 받아야 되고 둘째, 성령이 강림하여 성령 충만해지는 복을 받아야 되고 셋째가 뭡니까? 하나님의 음성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 우리가 이거를 상상만 해봐도 얼마나 좋습니까? 주님이 나를 향해서 내가 너를 기뻐한다. 너는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야. 내가 너를 사랑하노라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그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3장 14절부터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열두 제자를 불러서 예수님이 밤새워 기도하시고 열두 제자를 불러서 세우십니다. 그런데 3장 14절과 15절에 열두 제자를 세우신 목적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세 가지가 뭡니까? 첫째는 이는 그들을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제자들을 왜 부르셨느냐 예수님과 함께 있으려고, 둘째는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전도하러 보낼려고 그래서 제자를 부르셨고, 셋째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이런 능력도 주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면 우리에게도 똑같은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려고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려고 나를 제자로 택하려 온다고,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게 주님이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느냐, 함께 하시지 않느냐? 이번엔 반대로 내가 주님과 함께 있느냐, 함께 있지 않느냐? 이게 복음인 것입니다.. 임마뉴엘 이게 복음이에요. 그래서 내가 어느 곳에 가든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이거를 늘 체험하고 이것을 늘 느끼고 이런 의식 가운데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 그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은 아직 구원 못 받은 사람 그래서 우리가 이런 분명한 체험을 가지고 날마다 기쁨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3장 14절 15절 그래서 이제 16절 가면은 베드로 시몬에게는 베드로라고 하는 이름을 새롭게 주셨습니다. 너는 반석이다 그러니깐 보잘것없는 바닷가에 어부 시몬을 불러가지고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고 장차 큰 역사를 이룰 교회에 초석이 되는 반석을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남의 얘기가 아니고 오늘 우리들에게도 주시는 그런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제 중요한 말씀 고린도전서 3장 16절은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씀이에요. 너희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 몸뚱이를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전으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거기서도 핵심은 뭐예요? 성령이 있느냐? 없느냐죠. 우리가 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거를 깨달아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 성경이 어떤 책이냐 하는 것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16절 말씀은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요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곱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경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일치시켜가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건의 비밀 그리스도의 비밀 하나님의 비밀 곧 그리스도 이렇게 참 놀라운 일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3장 16절 말씀을 잘 공부를 해야 합니다.
창세기 구약에 가면 어떻게 되느냐 구약에는 3장 16절도 중요하지만 구약이니까. 한발 앞서서 3장 15절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15절은 뭐냐 그거는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은 장본인, 그래서 남편까지 타락시킨 장본인, 그래서 어떻게 해요. 하나님께서 엄청난 약속을 하십니다. “너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서로 원수가 되게 한다. 그래서 뱀의 후손은 너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요 여인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메시아를 약속하신 말씀이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모세가 하나님께 여쭤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저에게 알려주시오. 내가 내 백성들한테 가면 분명히 내 백성들이 물어보기를 너를 보낸 하나님의 이름이 뭐냐? 하나님이 누구냐? 하고 물을 텐데 내가 뭐라고 대답을 하겠습니까? 그랬더니, 하나님 대답하십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
출 3장 15절에 하나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가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셨다 하고 전해라 그 14절에서는 스스로 있는 자, 15절에서는 야훼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을 생각하실 때는 ‘I AM’ 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니가 백성들한테 가서 말할 때는 I AM이 아니야. 너는 아이가 아니니까, 너는 뭐라고 말해야 되느냐 ,하나님을 지칭해서 말하니까 히 이스 데티 이스 이렇게 얘기하라는 말입니다. 즉 히 이스가 야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해라, 그래서 출애굽기 3장 15절 말씀에 하나님의 이름 야훼라고 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또 이렇게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하간 우리가 하나님 이 성경에 나오는 3장 15절 16절 말씀들을 이렇게 살펴보면서 새롭게 배우고 깨닫고 우리가 은혜를 받고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고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며 살아가는 그런 성도들이 되어야지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 모두에게 이 세 은혜를 부어주시고 성령의 충만하길 바랍니다.
(7) 가인과 아벨의 추수 감사절
창세기 1절-8절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오늘 이 말씀은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안 받으시고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다고 하는데 먼저 이 제사의 중요성에 대해서부터 생각을 해봐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예배를 또 이 제사를 얼마나 귀중하게 여기시느냐 이것을 잘 보여주는 말씀이 요한복음 4장에 사마리아 여인에게 나타나는 이야기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났을 때에 제일 먼저 물어본 말이 그거잖아요. 그래서 ‘내가 보니 선지자시로군요. 당신이 선지자이신 것을 내가 알았으니 내가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게 뭐예요?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했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했습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옳은 겁니까?’ 이 여자가 예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예배에 대해서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예배라고 하는 것을 귀중하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를 만나주셨느냐, 예배에 대해서 관심있는 사람을 만나주시는 것입니다.
이 제사가 얼마나 중요하냐. 가인과 아벨이 이 제사에서부터 둘로 갈라졌다고 하는 사실에서 우리는 여기에 그 중요성을 깊이 인정해야지만 하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갈라짐으로 이 세상에 인류는 둘로 나누어집니다. 이렇게 제사가 중요한데 히브리서 11장 믿음장에도 제일 먼저 등장하는 인물이 가인과 아벨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 또 바울도 로마서 12장 1절과 2절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을 드리라”고 말씀을 합니다. 또 모세가 바로를 찾아가서 우리 백성들을 내보내라 하고 명령 얘기할 때에 “광야에 나가서 우리가 이 애굽 땅을 떠나서 저 광야에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한다”
먼저 하나님이 찾으시는 제사가 무엇인가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는 성령과 진리로 예배해라”
오늘 우리가 예배하는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느냐, 여기에 성령이 계시느냐 이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진리이신 그리스도와 성령이신 영으로 이렇게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그러면 성령은 무엇이냐 어떻게 나타나느냐? 성령은 제사에 불이 있어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에는 반드시 불이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불을 드리고 있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불을 성령의 불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불을 들여야 합니다.
둘째는 제물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제물, 옛날 구약시대에는 짐승을 잡아서 제사였습니다. 소와 양과 염소, 이것이 제물로 쓰이는 세 가지의 짐승인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짐승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렸는데 짐승 중에서도 무얼로 드리느냐, 그 살을 가지고 드리는 게 아니라 사실은 가장 중요한 건 피가 아닙니까? 짐승의 피를 가지고 피 흘림이 있는 제사 이걸 드리는 거것입니다. 그래서 첫째 불이 있느냐 제물이 있느냐 믿음이 있느냐~ 이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면 아벨의 제사는 어떠했느냐 우리가 아벨의 제사를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아벨의 제사는 첫째 죄를 회개하는 제사가 있입니다. 그래서 짐승의 피를 가지고 이렇게 제사를 드렸습니다. 짐승 한 마리를 잡아서 짐승을 희생한 제사 그거는 그냥 짐승 한 마리를 하나님이 고기를 못 잡어서 그 짐승을 잡아 바쳐라~ 그러시는 게 아니고 아벨이 짐승을 잡아서 피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드릴 때에는 자기의 죄 피가 죄를 씻는 재료가 되기 때문에 피가 바로 생명이기 때문에 내 생명을 주님께 드립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피는 속죄의 피가 되고 이 피를 드린다고 하는 것이 나의 진정한 회개를 드리는 것이고, 아벨은 물론 가인과 비교해 보면 죄를 짓지 않고 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책망하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왜 그의 제물을 받지 아니하셨느냐 이거를 7절에서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지만 너는 죄를 다스려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죄를 다스리지를 못하고 죄에게 종 노릇하고 죄에게 끌려서 살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은 죄를 다스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다스리는 사람이 오히려 자기가 죄인이라는 걸 깨닫고 하나님 앞에 피가 있는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의롭게 살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마다 나의 부족한 거 깨닫고 나의 죄를 깨닫고 내 육신은 죄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할지 몰라도 내 마음속에 끊임없이 죄의 유혹이 찾아오고 죄가 늘 자라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서 하나님 앞에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하고 회개하고 새롭게 치료를 받는 아름다운 역사가 일어나야지만 하겠습니다. 그래서 아벨의 제사에는 첫째 회개하는 그런 제사였다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믿음으로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그다음에는 헌신하는 제사, 자기를 바치는 그런 제사를 드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쳤다는 얘기가 무슨 얘기냐, 그 다음에 보면 가인이 아벨을 쳐 죽입니다. 물론 피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가인이 더 힘이 세고 무기를 가지고 있고 그래도 졸지에 당했고 그래서 피할 수 없기도 했겠지만, 아벨은 이미 이렇게 죽을 수 있는 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됩니다. 죽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보실 때 준비가 되었으니까 죽게 하시는 것입니다. 준비된 자만 순교의 자리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벨은 이미 준비가 됐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을 때에 그는 이미 죄사함을 받고 지금 죽어도 천국 갈 수 있다 하는 이런 보증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기에 하나님은 그를 받아주셨습니다. 그러면 의인이 다 끊어지지 않았습니까 하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대책이 있으시죠 플랜a가 있고 플랜b가 있다 그래요. 플랜b가 뭡니까? 새롭게 아들을 새로 주셨습니다. 아벨을 받으시고 셋이라고 하는 셋째 아이를 주셔서 의인의 대를 이어나가게 하시는 이런 놀라운 복을 내려주셨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에게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가인은 진정 자기의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새사람 되기를 소원하는 이런 것이 없었습니다.
이런 것이 없는 거를 어떻게 아느냐 어떤 사람은 재물을 가지고 농산물을 가지고 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는 피가 없어서 그렇다, 하고 말하기도 하지만 피가 있거나 없거나 그가 하나님 앞에서 정말 내가 회개합니다~ 하는 진실한 회개가 있었다면 피를 가지고 드렸거나 농산물로 드렸거나 그것이 뭐 특별히 큰 것이 큰 영향을 끼치겠습니까? 중요한 거는 진심이 문제인 거죠. 그런데 가인에게는 그런 진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제사를 안 받아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안 받아주셨을까,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잘못되어 있었을까 이거를 생각하고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내가 다시 제사 드리겠습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제사를 다시 드릴 수도 있었을 텐데 가인은 그런 일을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동생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쳐 죽이는 짓을 했다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악인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이 받아주시는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될 것인가? 첫째,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늘 회개하고 옛날에는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들여서 속죄를 이루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를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살려내셨으니 그리스도의 보혈을 가지고 정말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는 이 생활이 이루어져야지만 하겠습니다.
둘째, 우리가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불을 불이 있는 제사를 드릴 수가 있어요. 내가 성령이 충만하지 않으면 어디서 불을 가지고 오겠습니까? 그래서 인간적인 열심을 가지고 그것도 불은 불이지만 그거는 하나님이 기뻐받으실 만한 제물은 되지 못합니다. 성령의 불을 받아가지고 이렇게 하나님 앞에 드리는 사람이 돼야 하겠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나를 드리는 아름다운 생활이 이루어져야지만 하겠습니다.
(8) 신령한 사람
고전2:11-16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고전3:1-3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오늘 이 본문 말씀에 보면,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이 세 종류의 사람이 뒤섞여서 살고 있습니다. 첫째로 등장하는 사람은 신령한 사람입니다. 이 신령한 사람을 어떻게 설명하고 있습니까? 신령한 사람은 13절에 보니까 “오직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하지 않고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한다” 이렇게 말하고 있슴니다. 둘째는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14절에 설명하는데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 자 그것은 왜 성령의 일을 받지 않느냐? 그들이 보기에 어리석게 보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사람들에게는 가르쳐줘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왜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오히려 자기는 누구에게도 판단을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6절 15절에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죠. 또 16절에서는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했으니 신령한 자는 주님의 마음을 아는 자다 이렇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3장에 들어가면 “내가 너희를 대할 때 신령한 자들로 이렇게 대할 수가 없다” 그러면서 “너희는 육신에 속한 자다” 그렇게 말씀을 해요. 그러니까 오늘 이 본문 말씀에서 세 종류의 사람이 나타나는데 첫째는 신령한 사람, 둘째는 육에 속한 사람, 그리고 셋째는 육신에 속한 사람 이렇게 셋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는 신령한 사람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지자로 세우실 때에는 적어도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살도록 해 주셔야 참 선지자가 됩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의 사람으로 변화를 받아야 새것입니다.
셋째 육신에 속한 사람이란 누구냐? 이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설명합니다. 거듭나기는 거듭났는데 아직도 육신의 소욕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육신 생활의 근심 걱정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육신에 매어 살아가는 사람, 이 사람을 가리켜서 육신에 속한 자다 이렇게 설명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들어와 복음을 받고 기도를 배우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이렇게 해서 변화를 받으면 그래서 거듭난 사람이 되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비로소 육신에 속한 자가 됩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고, 성경을 읽고 하나님 말씀을 기뻐하는 사람이 되고, 이렇게 자라가다가 보면은 우리가 더 큰 은혜를 받아서 신령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육신의 소욕을 버리고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따라서 주님과 동행하면서 살아가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이 사람을 신령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사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고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신령한 사람은 조금 더 설명하자면 어떤 사람이냐?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들이 전부 이것을 이렇게 설명해 주지 않습니까? 2장 11절을 보면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 누가 알리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온 성령을 받았슴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의 사정을 아는 사람이 된다. 하는 것입니다. 11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 사정을 아는 사람이 된다. 또 둘째로는 13절 말씀에 보니까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그런 말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것으로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우리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영적인 분별력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세대주의라고 하는 게 뭡니까? 세대주의는 근본이 어디서 나왔느냐? 이들은 성령의 은사를 부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가장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게 성령의 은사 가운데 방언하는 은사를 부정, 병 고치는 은사를 부정합니다. 그런 거는 없다고 말합니다. 성경 66권 곧 신약 27권이 확정된 다음에는 성령의 은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그러니까 방언이라고 하는 것도 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건 다 구시대 옛날 초대 교회 얘기고 지금은 그런 것을 알 필요가 없다. 이렇게 가르치는데 예수님께서 우리 마가복음 마지막, 마가복음 16장 17절, 18절에 보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그렇게 말씀하시고 다섯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둘째, 새 방언을 말하며 셋째, 뱀을 집어 올리며 넷째, 무슨 독을 마시든지 해를 받지 아니하며 다섯째,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을 하셨는데도 이 세대주의자들은 방언하는 거 없다. 병 고치는 것 없다. 예수님의 말씀을 전면으로 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2장 16절에는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참 선지자는 누구신가? “그는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을 뭐라고 했습니까? 빌립보서 2장 5절 이하에 보면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 또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우리 가운데 임하셨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이런 설명을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주님의 마음이 뭡니까? 온유하고 겸손하신 마음, 우리도 이 마음을 힘써서 배워야 하고 이 마음을 갖도록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신령한 사람이 되는 길을 가로막고 우리로 신령한 사람이 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 마귀의 역사가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하는 거를 우리가 살펴봐야지 하겠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절에서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하고 물으면서 갈라디아 사람들을 책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늘 바라보면서 우리가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를 채찍질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는데 가장 첫째가 뭐냐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육신의 소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육신의 일을 설명하고 있어요. 이게 육신의 소욕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육신의 소욕을 따라가면 멸망합니다. 오늘 3장 1절에 나타나는 이 육신에 속한 자 이 사람들을 그리스도 안에서의 아직 아기들이라고 말씀을 하셧습니다. 어린 사람들, 이 사람들은 영적으로는 변화를 받았지만, 육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소욕에 자꾸 끌려다니는 사람들이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이 우리를 아시고 그래서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내가 정말 하나님을 아는가,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는가, 이거를 자신에게 늘 물어봐야 됩니다. 하나님과 자주 만나야 됩니다.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가 있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하나님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너 아무개로구나 음성만 들어봐도 금방 아신단 말이에요. 이 관계가 이루어져야 심판 날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시겠죠. “내가 너를 아노라” 이런 말씀을 우리가 심판날 들을 수 있어야지 하겠습니다.
둘째는 그래서 우리가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귀의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자기를 죽이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살아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관계를 아름답게 맺어 나가야 합니다. 아멘, 아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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