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되어 미꾸라지가 살이 오르면 여러 가지 채소를 넣어 푹 끓인 후 양념을 넣어 별미로 먹는 추어탕(鰍魚湯)은 우리 민족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이때 어떤 이는 산초가루를 달라하고 또 다른 이는 제피(초피)가루를 달라고 한다. 똑같은 향신료를 두고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 대체로 고향이 남쪽인 사람들은 ‘제피’라고 하며 서울 쪽의 중부지역 사람들은 ‘산초’라고 부른다. 제피나무(초피)는 남쪽에는 있지만 중부이북 쪽에는 별도로 심은 것이 아니면 자생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대구 경북의 지역도 경산과 청도 지역에는 많지만 팔공산 위쪽으로는 산초나무만 많기에 구분이 어려운건 마찬가지로 지역에서도 산행을 하다보면 제피다, 산초다 하고 서로가 잘 안다며 언성을 높이는 모습들을 보면 닮은 듯 서로 다른 두 나무를 구분하여 주는 과정에서 마저도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기에 생태적인 비교 관찰을 세밀히 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나무의 생김새가 비슷하여 많은 사람들이 잘못 구분하고 헷갈리는 나무가 초피와 산초이다. 식물학적으로는 엄격히 구분된 서로 다른 종이지만 일반인들이 부르는 데는 거의 구분이 없다. 초피를 잘 안다면 분명 고향이 남쪽이며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다. 필자도 어린 시절을 경산과 청도의 경계인 시골에서 자랐기에 아주 어렸을 때부터 초피와 산초의 구별은 어른들로부터 분명히 배웠다. 초피(제피)는 봄날에 꽃이 피며 어린잎을 따서 맛있게 먹은 산나물이며 여름방학 때 초피(제피)의 열매를 따며 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산초나무는 이재서야 꽃을 피우냐고 할 정도로 꽃 피는 시기가 봄과 여름의 차이를 보인다. 또 다른 면은 냄새와 가시가 달린 것을 보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피는 잎 냄새가 좋아서 가까이 하고 싶지만 산초는 조금의 독성이 있고 냄새가 역하여 멀리하고 싶으며 먹을 수도 없다. 초피나무의 가시는 마주 나며 잔가지 쪽에 많은데 산초나무는 제멋대로 가시가 나며 나무의 전체에 난다. 동네 어른들이 제피나무(초피)를 이용하여 물웅덩이에다 두들겨 풀면 물고기들이 일시적으로 기절하여 떠오르기에 물고기 잡이에 이용된 나무가 초피나무였다.
누님이 사시는 청도의 집에는 담장 주변에 여러 그루의 초피나무가 심어져 있고 마을에도 여러 집들이 초피나무를 심어 기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조상들의 지혜로움 중에는 집안의 울밑이나 장독대 근처에 봉숭아를 심어서 뱀들이 집에 접근을 못하게 한 일이나, 귀중한 책에는 좀 같은 해충의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은행나무의 잎을 책갈피 속에 넣어두는 일들은 흔했다. 누님 집에는 특히 우물 주위와 재래화장실 주위에 크게 자란 초피나무들이 지금도 있다. 해충이 접근하지 못하게 심어진 것이다. 특히 모기는 초피나무의 냄새를 싫어하여 주위에 얼씬거리지도 않는다고 하니 나무를 이용한 모기와 해충의 퇴치 방법이 참 자연적이라고 여겨졌다.
지역에서 부르는 두 나무의 이름도 달라서 산초나무는 ‘난디’라고 불렀고, 초피는 ‘제피’라고 불렀으며, 산초 열매는 익으면 과피(果皮)가 벌어져 씨는 검고 반짝이며, 가지의 끝에 열리지만 초피는 나무 여기저기 사이로 달린다. 초피의 열매는 껍질을 약용으로 쓰며 갈아서 주로 향신료로 이용하며 잎은 식용한다. 산초열매는 껍질은 버리고 씨를 쓰는데 정유의 함량이 높아 예로부터 종자에서 기름을 짜서 위장병이나 기관지 천식에 사용해 왔을 뿐 아니라 식용으로는 주로 전을 부치는데 쓰였으며 가끔씩은 물레나 씨아 같은 것에 윤활유로도 발랐고 잎은 냄새가 역하여 먹을 수가 없다. 산초의 기름은기관지 천식에 지금도 귀하게 쓰이기에 가을이 되면 초피와 함께 남획되고 있는 상태이다. 더구나 나무에 몹쓸 일은 나무를 베어서 열매를 거두는 멸종의 일을 저지르는데 자생에 큰 지장을 주는 어리석은 일은 말아야 한다.
사람이나 많은 동물들은 대체로 식물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편이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두 나무는 향신료와 약용으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나무이다. 초피나무는 주로 향신료로 쓰는데 열매를 입에 넣고 씹으면 입안이 얼얼해짐을 느끼면서 톡 쏘는 매운 맛으로 상쾌하고 시원함이 독특하며 항암, 항균, 살충의 효과까지 있음이 밝혀졌다. 잎을 돋보기로 보면 울퉁불퉁하며 가장자리 톱니와 톱니 사이에 작은 돌출된 선점이 보이는데 잎에 방향성 기름샘이 있어 초피나무의 강한 향은 바로 이곳에서 나온다고 한다. 잎은 여러 생선의 요리에 넣으면 비린내를 없애주고 독성을 완화 해주는 해독의 역할을 하기에 즐겨 내는데 기록에 의하면 지금의 고추가 사용되기 이전에는 고유의 양념으로 쓰였다 한다. 산초의 잎은 고르게 일정하고 윤기가 나며 얼마간 독성이 있기에 초피 잎으로 잘못 알고 먹는 일이 없어야 되고 임산부는 특히 유의해야 됨이 전한다,
여러 해 전에 중국에서 발병하여 지구상의 전염병으로 번지며 온 세계가 두려워했던 ‘사스(sars-급성호흡기증후군)’ 질병의 치료물질을 우리나라의 초피나무에서 찾았으며 미국에서는 몹쓸 ‘에이즈’ 질병의 퇴치에 역시 초피를 실험의 대상으로 연구를 한다니 앞으로 질병 치료나 항생식품으로 많이 이용되어질 것으로 여겨지는데 보도에 의하면 서구 쪽에서는 커피에 초피의 가루를 타서 먹는다고 하는데 이에 비하면 추어탕이나 김치, 나물, 횟감에 대대로 초피를 이용한 조상들의 앞선 지혜가 놀랍다 하겠다.
초피와 산초를 더욱 구분하기 어렵게 하는 데는 이웃나라 일본에서다. 초피를 너무 좋아하는 그들이 초피를 산초로 부르기에 아주 혼란스럽다 여긴다. 9월에 벌초를 하러 고향의 산을 오르니 빨갛게 익은 초피의 열매가 손짓을 하고 산초의 열매가 막 벌어진 껍질 틈새로 검게 반짝이며 반긴다. 지리산 쪽의 초피는 세계 최고의 품질로 인정을 받으며 초피의 중요성을 알아 재배를 확대하여 가는 편이다. 우리나라는 초피가 해안가와 남부지역에 많이 자생하는 관계로 평소 잘 접하지 못하는 면과 나무의 생김새가 비슷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은 나무를 두고 나라간의 이름도 같게 고쳐가야 하리라.
초피나무의 꽃, 잎
초피나무의 열매, 잎,
산초나무의 꽃, 잎, 가시
산초나무의 열매, 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