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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록열전(馬鹿列傳) 3
서 기 원
비 오는 날, 방 안에서 우산을 받쳐들구 독서한 재상이 있었다. 아조(我朝)에서 그런 짓을 하다가는 당연히 위선자로 몰리게 될 것이다. 사라져가는 어느 청백리의 우행(愚行)을 비구상적 (非具象的)으로 기록함도 반드시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에 열전(列傳) 제3을 적는다.
마준은 청백리의 종손이었다. 그의 육대조가 영예스러운 청백리의 칭호를 받은 후, 고조부는 참판, 증조부는 군수 등으로 혁혁한 지체를 그럭저럭 지탱해왔으나, 조부 대에 와서는 겨우 진사에 합격했을 뿐 벼슬은 못했고, 아버지 대엔 생원으로 퇴락하여 사대부의 반열에서마저 떨려나갈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처럼 가운이 기울어진 원인이야 물론 한두 가지가 아니었을 것이다. 삼대 벼슬을 못하면 사대부집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진사는 벼슬이 아니므로 손자인 마준이 최소한 군수·현감 한자리 지내지 못한다면, 청백리 집안이고 사대부 집안이고 볼 장 다 보게 될 판국이었다.
그러니 삼대독자 마준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는 어려서부터 실로 눈물겨운 바가 있었다. 일곱 살에 천자문을 떼자 크게 기뻐한 아버지는, 마준을 충청도 청주의 유림(儒林)으로 다소 알려진 당숙 댁에 보내어 장가들기까지 근 십 년간을 공부시켰다. 형편만 허락했더라면 장안의 유명 학자한테 개인교수를 받게 했었을 것이다. 마준을 거꾸로 읽으면 준마(俊馬)가 된다. 애초에 그런 글자놀음으로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것은 아니었지만, 준마처럼 뛰는 날이 기어이 오리라고 은근히 믿어온 아버지였다. 하기야 일곱 살에 천자문이라면 대단한 준마라곤 못할망정, 태마(馱馬)*의 수준은 넘어섰다고 할 만했을 것이다.
구태여 가운이 기울어진 까닭을 살피자면 내부와 외부의 요인으로 나눌 수가 있을 것이다.
외부의 요인이란 말할 나위도 없이 세태가 너무나 혼탁해진 탓인 것이다. 조정에서도 청백리 집안을 돌봐주지 않게 되었을 뿐 아니라, 그나마 네댓 집 간신히 명맥을 유지해온 청백리들도 견디다 못해 이 명예로운 칭호를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말았으니 말이다.
내부의 요인은 아마도 혈통의 유전과 관계가 없지 않았을 것이다. 청백리의 전통을 고지식하게 지켜온 마씨 댁에서 어육(魚肉)의 비린내가 제법 풍기는 날이란 일 년 열두 달 설과 추석뿐이었고, 5대 봉사 열 번이 넘는 제사에도, 육포 두어 조각, 북어 한 마리 정도밖에 쓰지 않았으므로, 적어도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영양실조에 결려 있었으리라는 것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와 같은 부모 밑에서 두뇌가 우수한 자식이 태어날 리는 만무하다. 더더구나 그런 영양실조가 2대, 3대를 겹쳐져왔으니, 아랫대에 멍텅구리가 나오지 않는 것만도 여간 다행한 노릇이 아니었을 것이다. 진짜 멍텅구리가 나오지 않은 것은 역시 청백리의 긍지가 부족한 영양을 정신면에서 어느 만큼 보충해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지만, 마준의 이십 년 공부가 아직도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데는 오늘날 과거(科擧)가 야바위판으로 타락한 것만을 탓할 수 없는 어떤 구멍이 마씨 일족의 두뇌 속에 뚫려 있음직했다.
그걸 도무지 지각하고 있지 못한 데서 마씨 부자의 비극이 싹튼 것이라고 볼 수도 있으리라.
대개 아비는 완고하며 교훈적이고, 아들은 고리타분한 교훈일랑 코웃음 치면서 시체 돌아가는 판에 뛰어드는 것이 보통일 텐데, 마씨 부자의 경우는 그게 정 반대였다.
마준이 스물일곱 살, 세번째 과거에 웅시 했을 때, 아버지는
“그래 이참엔 응시자가 얼마나 됨직하더냐?”
우선 이렇게 물었다. 됨직하더냐고 어림잡아 물은 것은, 과거 때마다 응시자가 운집하여 도저히 백이나 천 단위로는 그 수효를 가늠할 도리가 없다는 걸 아버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 이삼만 명 되더군요.”
“급제는 여전히 십여 명 뿐일 테지?”
“그렇겠지요.”
“과망(科望)에 오르내리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고?”
“장동 김대신의 아들하고, 또 창동 대제학 댁의 손자하고…… 근 열 명 되나봅니다.”
과망이란, 과거를 보기 전에 이미 합격 예상자의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도는 것을 말한다. 학식과 인물이 뛰어나서 과망에 오르기보다 차례로 급제하기를 대기하고 있는 세도가의 자제들 이름이 방방곡곡에 퍼진 다음, 십중팔구 과망이 들어맞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 제 실력으로 급제하는 사람은 잘해야 네댓뿐이겠구나.”
“어디 이번뿐입니까, 아버님.”
“청백과(淸白科)라도 신설한다면 모르거니와…….”
하며 아버지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청백리 집안을 위해서 특별 고시라도 열기 전엔, 하늘의 별따기보다도 어려운 문과 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하는 수가 없다. 성지시자(聖之時者)라, 성인인들 시류에 따라야 하는 것이야.”
“아버님, 제가 배우기로는 시대가 성인을 낳는다는 뜻입니다만.”
“대동소이한 뜻이니라. 내가 세도가 문객 노릇을 하며, 장성한 아들에게 감투 하나 씌워달라고 쫓아다닐 수는 없고, 네가 좀 부지런해져야 하겠다. 그것밖엔 다른 수가 없어.”
아버지의 이 말씀은 처음이 아니었다. 하긴 급제 대기자가 줄을 짓다시피 늘어서 있는 이 마당이라, 과망에 오를 엄두는 애당초 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청 백리 마 아무개의 종손인데, 남행(南行)*으로 군·현의 수령 한자리쯤이야 이편만 부지런하다면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이 부지런해야 한다 운운의 말만 나오면 마준은 입맛이 씁쓰름해지는 것이다.
“청백리의 자손이 어떻게 권문의 사랑을 드나들 수가 있겠습니까?”
이 대답에 아버지는
“세상사란 그런 게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일을 너라고 해서 배척할 까닭이 무엇이냐? 네가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면 우리 집은 끝장이야.”
“아버님, 그렇지가 않습니다. 청백리의 명예를 더럽혀서 되겠습니까. 설사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제물에 결이 난 마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무슨 흉측한 소릴 하느냐! 네가 과거에 연거푸 떨어지더니 사람이 변했구나.”
아버지는 화를 내다 말고 힘없이 말했던 것이다.
마준이 스물아홉 나던 해 여름, 아버지는 돌연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었는데, 마준이 아니면 그의 아내가 아버지의 똥오줌을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명색 문간방에 젊은 내외 한 쌍이 살고 있었지만, 찢어지게 군색한 살림살이에 출행랑을 놓지 않는 것만도 고마운 터에 그런 시중까지 들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씨 댁의 생계를 부지해준 수입원은, 주로 일곱 명의 노비들이 바치는 몸값이었다. 말이 노비이지 문서상에만 올라 있고 실제로는 경향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으며, 일 년에 한 번 하나 앞에 쌀 한 섬씩 주인댁에 보내오는 것이다. 그편이 호세(戶稅), 인두세(人頭稅) 등 각종 세금을 내는 것보다 수월한 것은 둘째치고, 양반가의 종은 군역(軍役)이 면제되어 있는 것이다.
청백리는 전답을 소유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노비의 소유에 관해서는 그런 불문율이 없는 것이다. 이 점 산 사람 목구멍에 거미줄 치란 법은 없도록 되어 있는 모양이었지만, 아버지가 병석에 눕고 그 알량한 가계(家計)를 아들에게 넘겨주자, 지금까지 아무 의문도 품지 않았던 종의 몸값에 대해서 새삼스레 양심의 가책을 받기 시작한 마준이었다.
이웃 몰래 바느질 품삯을 파는 아내가 측은하지도 않은지, 문서상의 종들을 몽땅 속량시켜야겠다고 마음먹기에 이른 것이다. 중풍엔 이렇다 할 처방이 없는 건 사실이지만, 제아무리 불효막심한 자식이라 할지라도 가끔 약첩이나 지어드리는 것이 도리일 텐데 약첩은 고사하고 끼니조차 대기 어려운 지경으로 살림살이를 몰고 갈 소갈머리인 것이다.
“대관절 당신은 어쩌자는 거예요? 아버님의 우환도 그렇지만, 애들의 장래도 생각을 하셔 야지요.”
눈 가장자리에 시커멓게 기미가 낀 아내의 호소였다.
“누가 모르나. 기맥힌 노릇이지만 불의를 알고도 잠자코 있는 것은 군자의 도가 아니요. 더구나 우리로 말하면 세상의 모범이 될 청백리가 아닌가. 그처럼 부정한 방법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떳떳치 못한 일이요.”
그러고는 냉수 한 대접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서 아내의 참견이 성가신 듯, 책상머리로 돌아앉았다. 이런 사람한테 시집온 팔자를 한탄한들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책을 천 권이나 읽은 남편의 큰 뜻이 그렇다면 아녀자로선 무조건 좇아갈 수밖에 없다고 단념한 아내였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책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이런 경우 어떻게 살아나가야 한다는 얘기는 한마디도 씌어져 있지 않으니, 비록 만 권을 독파했다손 치더라도 무슨 소용에 닿는단 말인가. 이런 심정으로 장서를 모조리 불살라버릴 충동에 사로잡힐 때도 있으나, 그나마 책 없이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딱한 나날이었다. 쓸데없는 염려를 끼칠까 두려워서, 노비 속량 문제는 아버지께 의논을 드리지 않았는데, 며느리를 통해서 아셨는지 병석에 마준을 불렀다.
“네 작심이 정 그렇다면 내 말리지는 않겠다. 자식이 옳은 일을 하겠다는데 애비로서 반대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북촌 김대감 댁에 한 달에 세 번만 문안을 올리러 다니도록 해라. 김 대감 댁은 우리와 동색(同色)은 아니나, 세의(世誼)가 있다면 있는 사이니까, 네가 가끔 얼굴이라도 내밀면 박절하게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귀가 아프도록 들은 말씀이었다.
“엽관*운동 하러 다니는 작자들과 어떻게 한데 어울릴 수가 있단 말씀이십 니까?”
“허허어, 반드시 벼슬을 하기 위해서 그러라는 것은 아니다. 더러는 그런데 출입도 하면서 세상물정을 배워야 하느니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쯤은 환히 알고 있습니다.”
“네가 뭘 안단 말이냐?”
“되는 일 없고 안되는 일 없는 세상 아닙니까. 돈이면 죄도 풀리고, 돈 없이는 행세를 못하는 세상 아닙니까.”
“알긴 아는구나. 그런데 왜 너만 유별스레 굴 게 뭐란 말이냐.”
“청백리의 채신을 지켜야지요.”
피차 밤낮 같은 소리가 되풀이될 뿐인 것이다.
“하여간에 내 말을 들어야 노비의 속량을 허락할 터이니, 네 그런 줄 알아라.”
이날따라 아버지는 음성이 얼얼하지도 않았고 또박또박 말씀하셨다. 아들에게 이래라저래라 엄명만 내리면 그만인 것을, 무슨 흥정처럼 조건을 붙이다니 기묘한 부자지간이 아닐 수 없었는데, 어떻게 보면 외곬으로만 파고드는 아들의 좁은 성미를 거꾸로 이용해서, 아들의 앞길을 열어주자는 속 깊은 배려일 법도 했던 것이다.
“그러시다면 아버님께선 왜 그렇게 안하셨습니까?”
마준이로서는 사리에 맞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당신 스스로는 세속에 물들지 않으셨으면서 어찌하여 아들에겐 그것을 강요하시는지 석연치 못한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그때는 미처 깨닫지를 못했느니라. 너도 좀더 나이를 들면 알게 될 것이다. 북촌에 가서 아첨을 떨라는 얘기가 아니다. 의젓하게 문안이나 드리고 돌아오면 되느니라. 문객이 많아서 사랑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명함을 놓고 와도 상관이 없는 법이다.”
그런 정도라면 과히 창피하지 않을 것 같았지만, 북촌 김대감으로 말하면 재야의 선비들이 시국이 뒤흔들릴 적마다 목을 잘라야 한다고 떠들어대는 간신의 표본인 것이다. 관리의 인사권도 한 손에 틀어쥐고 있다고는 하나, 선비의 탈을 쓰고 그런 데를 어떻게 출입할 수가 있단 말인가. 또 그나마 청백리 마씨 댁의 지체를 알아주고 또 마준의 꼿꼿한 지조를 높이 평가해주는 재야의 선비들한테 무슨 낯으로 대할 수가 있단 말인가.
재야의 선비들이라야 마준이가 교제하고 있는 범위란 극히 한정된 것이어서, 동대문 밖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유림촌과 남산골 샌님들 사이에서 다소 이름이 팔려 있는 정도였다. 그것도 마준의 덕행이 칭송을 받고 있다거나 빼어난 인품의 소치는 물론 아니고, 그저 희소가치가 있는 청백리 자손으로서 청빈한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데서 비롯됐을 것이었다. 하지만 대장부의 뜻을 펴지 못한 채 고단하기 짝이 없는 마준의 처지로서는 기십 명의 양심적인 선비들이 그처럼 자기를 사준다는 것은 뭣에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었다.
대개 여러 차례 대·소과(大小科)에 떨어진 경험을 가진 그들은 십 년 세도의 막바지에 다다른 노론(老論)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 한,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출할 방도가 없다는 것이었고,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썩어버린 이놈의 말세 풍조를 쇄신하기 위해서 본보기로 간신 몇을 처단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대부분이 전조(前朝) 때 당쟁에서 일패도지 했던 소론들이었는데 개중에는 무색투명을 자처하는 인사도 없지 않았다. 마준이도 소론이었지만 한 십여 년 전만 해도 당하관(堂下官) 가운덴 심심치 않게 소론이 끼어들 수가 있었는데, 근자엔 능참봉 한자리도 소론한테 차례 가는 법이 없어진 것이다. 그만큼 이편과 저편이 뚜렷하게 갈라진 색이라고 할까. 하긴 대궐이나 대궐 같은 저택 객실에 턱 좌정하여 인구 십만도 못되는 장안을 굽어보고 있노라면, 저편이라야 문자 그대로 한 줌의 어리석고 못된 유림들이 불평과 불만이 가득 차서 반대하기 위한 반대를 일삼고 있을 따름일 것이었다. 다만 우리 조선은 예로부터 선비들을 형식적으로나마 존중하는 기풍이 있는 것 이며, 백성들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버릇이 있는지라 겁도 없이 까분다고 하여 마구잡이로 쓸어버리기엔 좀 난감하다늠 정도일 것이었다. 그런 대국적인 안목으로 볼 때, 마준이가 이른바 양심적인 선비들에게 약간의 호감을 사고 있다는 사실을 그처럼 끔찍하게 섭기고 있는 정(情)이란 실로 가련하고도 우스꽝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런 게 모두 패배자의 열등감에서 우러나온 자기 위안이나 다름이 없을 것 이었다.
행인지 불행인지 이런 사정을 생판 이해하지 못하는 마준에게 여전히 절실한 것은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하고 가짜 노비문서에 의지해서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스스로의 부정을 과감하게 도려내는 대신 친구들의 조소를 무릅쓰고 취직을 해서 꾸려갈 것이냐, 양자택일의 문제였다.
며칠을 잠 못 이룬 고민 끝에 마준은 동대문 밖 유림촌으로 평소 흉허물없이 지내는 최치열이를 찾아갔다. 말이 선비의 마을이지 게딱지 같은 초가집이 삼사십 호 가파른 언덕 아래 모여 있는 빈민촌이었다. 문안으론 도로를 넓히고 하수구도 손질을 해서, 제법 한 나라의 수도다운 면목을 갖추고 있지만 문밖으로 한발만 나가면 신라·고러 때의 풍경 그대로였고, 특히 유림촌 같은 데는 저들 할아버지 때부터 공동우물이 단 하나뿐이었다.
“이리 오너라!”
헛기침을 크게 낸 다음 점잖게 부르자, 최치열이가 좀 황황해서 쫓아나왔다.
“공연히 큰 소리 내지 말게.”
“왜 그러나?”
“동네 들어올 때 혹시 뒤를 밟지 않던가?”
“아아니.”
“요즘 조심을 해야 되네. 우리 집에 출입하는 사람을 하나하나 살피는 모양일세 .”
“그래서 뭘 하나?”
“뭘 하다니, 내 전번, 부정부패를 일소하라는 상소를 올린 후로 아무래도 감시를 하고 있는 눈치야.”
“뭐 그른 소리 한 것 아니잖나?”
“그러니까 답답한 노릇이지. 허긴 그 상소문이 과연 상감한테까지 올라갔는지 의심스럽지만 말일세.”
“시체 물정을 개탄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과격하게 나가면 재미 적으니 자네도 조심해야겠네 .”
마준이치고는 꽤 사려 깊은 충고였다.
일신상의 고민을 숨김없이 털어놓자, 최치열은
“이 사람아,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가 노론 정권에 빌붙어서 영화를 누릴 마음만 먹었다면, 아 혁혁한 청백리의 종손이요, 인물로 보나 학식으로 보나 못할 것이 무엇 있었겠나. 조금만 더 참으세, 굶어서 말라죽을 지경이야 되겠나. 정 곤란하면 우리들이 조금씩 도와줄 수도 있으니까. 아예 그런 약한 마음 먹지 말아.”
다짜고짜로 이렇게 조언하는 것이었다. 조언이라기보다 옴짝달싹 못하게 덮어씌우는 것이었다.
“……아버지 말씀도 감투를 얻어 쓰고 협잡을 해먹으라는 뜻은 아니야. 녹봉을 받아 정직하게 살아나가면서 목민(牧民)에 힘을 쓰는 것도 선비의 길이 아니겠나?”
마준은 친구의 말을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그런지 좀 섭섭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속 편한 소릴 하는군. 아 그 판이 어느 판인데, 자네처럼 고지식한 사람이 배겨날 것 같은가? 설사 밑천 안 들이고 군수 한자리 얻어걸렸다고 하세. 그걸 유지하려면 감사에게 상납해야 하고, 내직(內職) 요로에 철따라 진상해야지, 녹봉만 가지고 말갛게 살겠다니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린가. 원 참!”
최치열은 가끔 방바닥을 내리치며 흥분하는 것이었다.
“허지만 청백리의 간판이 있으니, 좀 달리 봐줄 수 있을 테지.”
“거 다 자네의 혼자 생각일세. 그렇다면 자네 같은 사람을 무엇 때문에 등용하겠나? 그저 간신배를 내쫓고 국정을 쇄신하는 길밖엔 방책이 없네.”
“소론이 들어서면 잘된단 말인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야. 노론 안에도 때묻지 않은 사람이 없지 않으니까. 양심적인 인사들로 당파를 초월해서 공정한 정사(政事)를 펴나가야 하겠다는 걸세. 자네 대에서 청백리의 가명*을 손상시키지 말게.”
이 말엔 전적으로 공감이 갔다.
저녁때가 됐지만 주인은 마준이를 굳이 만류했다. 오랜만에 남산골에서도 동지 한 사람이 찾아오기로 돼 있으므로 함께 저녁을 들고 가라는 것이었다. 손님은 마준이도 안면이 있는 박진사였다. 남산골 젊은 선비 중에서 좌상격인 박진사였는데, 작년 대거 상경하여 상소문이 접수되기까지 광화문 밖에 연좌해서 버티던 영남의 유림들이 일망타진된 후, 조정의 처사를 비난하는 통문을 지어 돌려서 유명해진 위인이었다. 그 때문에 의금부에 붙들려 들어가 혹독한 고문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뒤로 그편에서도 박진사란 자는 으레 그런 놈이려니 싶었던지 여느 때 얌전한 선비가 그랬다면 큰일 날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고 다녀도 별 탈이 없는 묘한 존재가 된 것이다. 밀담처럼 은밀히 노론 정권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듣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큰 소리로 마구 욕을 해대는 것이다. 그날도 그랬다.
“그런 놈들은 종로 네거리에서 그저 포살해야 돼. 진주 지방에서 민란이 난 걸 들었나? 다른 지방에 펴질까 무서워서 쉬쉬하고 있지만 대단했다더군. 민심이 천심인데 덮어놓고 억누른다고 권세가 무궁무진할 줄 아나. 천부당만부당이지, 암 그렇구말구.”
육기(肉氣)라곤 몇달 전에 곰국 한 그릇 마셨을 뿐인 마준의 뱃속이라, 두어 잔 술에 사지가 나른히 취해오른 탓도 있지만 거침없이 지껄이는 박진사의 말이 여간 후련하지 않으면서도 한쪽으론 어떤 반발을 느끼고 있었다.
“근자엔 사관(史官)이란 것들도 매수당하지 않은 놈이 없으니, 세상은 다된 걸세.”
“말해 뭣 하나.”
주로 최치열이와 박진사가 주고받는 것을 마준이는 듣기만 했는데, 만일 아버지께서 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계시다면 이런 자리에 합석한 아들을 죽엄하게 꾸짖었을 것이다. 어느 시대이고 이따위 불평의 무리가 으레 있었던 것이지만, 요컨대 저들 재간이 부족하거나 사람 됨됨이가 변변치 못해 입신 못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깊이 뉘우치지는 못할망정 제 허물은 제쳐놓고 온통 세상사를 저주할 뿐인 것이며, 사관의 곡필(曲筆)이 어쩌구저쩌구 잘난 체들을 하나 역사에 이름깨나 남기는 사람은 결코 이런 불평의 무리들이 아닌 것만은 틀림이 없느니라. 이렇게 아버지가 훈계하셨을 거라고 마준이는 생각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 훈계에도 일리가 아주 없지는 않은 것처럼 여겨지니 이상스런 일이었다. 아버지를 대하고 있을 적에는 마준이 자신이 최치열이나 박진사의 마음가짐과 비슷해지고, 이 자리에 선 아버지의 말씀이 되레 그럴싸 싶은 구석 이 있어 뵈는 것이다.
최치열의 충고라는 것도 그렇다. 자기와는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선비의 지조를 지키라고 식은 죽 먹듯 지껄이는 것이다. 정 사정이 곤란해지면 친구들이 도와줄 수도 있다고 했지만 저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에 무얼 어떻게 하겠단 말인지, 그것도 무책임한 방언(放言)에 불과하다. 지금이라도 대궐에서 부르심이 내리면 황망히 의관을 정제하고 달려나갈 위인들이 아니라고 과연 장담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이처럼 개운치 못한 심사 때문인지, 동대문 밖 나들이도 마준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두 달 후 아버지의 유언이 마준의 행동을 결정짓는 오직 하나의 계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진지만은 한 사발씩 거뜬히 치우시던 아버지였다. 마침 추수철이라 수원에 사는 문서상의 종이 엽전 한 꾸러미를 보내왔기에, 마누라에게 저자를 보아오게 해서 푸짐하게 한상 차려드린 것이 탈을 내고야 말았다. 한 밤중에 별안간 관격을 일으킨 아버지는 혀가 돌지 않는 음성으로
“과, 광교, 안의원(安醫員)을 불러다오.”
하셨다. 새벽 인경이 울리기까지 기다릴 수도 없어서 마준이가 종을 데리고 나섰다. 광교까지 두 번 순검(巡檢)한테 걸려서, 집안에 급환이 생겨 의원을 모시러 가는 길이라고 사정한 다음, 준비해온 동전을 몇 닢씩 쥐여주곤 했다. 마준에게도 그런 정도의 상식은 있었던 것이다.
북촌 왕래가 잦은 안의원을 아버지께서 찾으시다니 도통 격에 맞지 않는 일이긴 했지만, 아무튼 침으로는 용하다는 소문이었다. 대문을 두드리자 하인이 눈을 비비며 나왔다.
“아무 데 사는 마 아무개가 급히 의원을 모셔야겠다고 전해라.”
하인은 안에 들어갔다가 한참만에야 나와서,
“그런 분 모르신다는 의원님 말씀이오.”
콧방귈 뀌듯이 내뱉는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좌우간 위중한 환자가 났으니 수고 좀 해줘야겠다고 다시 전해봐라.”
했으나,
“이 양반이! 암만 떼를 써야 소용없소. 교군*을 끌고 와도 시원치 않을 텐데, 아닌 밤중에 어딜 나가선단 말이오. 날이 새거든 환자를 데리고 오시오.”
덜커덩, 대문을 닫아버리고는 빗장을 걸었다.
딴은 그놈 말이 옳을 것이다. 가마를 대령해놓고 청을 넣어도 될지 말지 한 이름난 의원을 삼경 심야에 빈손으로 부르러 왔으니, 아버지도 오활하셨고 나도 숙맥이었다. 북촌 김대감 댁 분부라면 계집을 끼고 자다가도 얼씨구 지화자 벗은 채로 춤을 추며 옷을 주워 입을 것이 뻔하다. 청백리 마 아무개? 웃기지 말라고 하인한테 호통을 쳤을 것이다.
약국 한 군데를 찾아 소생환(蘇生丸)을 지어가지고 바삐 돌아오자, 아버지의 얼굴엔 벌써 사색(死色)이 깃들고 있었다. 마준은 아버지의 귀에 대고 말했다.
“안의원은 시골 내려가고 없습니다. 자, 이 환약을 잡수세요.”
환약을 반으로 쪼개어 아버지의 입에 넣어드렸으나 고개를 흔들고 뱉어버렸다. 마준의 손을 잡으며
“이젠 글렀다. 네 관복 차림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한이다만…….”
들릴락말락하게 중얼거리고는 숨을 거두었다.
그건 아버지의 한탄이 아니고 유언이었던 것이다. 적어도 마준은 그렇게 믿었다. 아버지와 교분이 있던 미관말직의 관리 서너 명과 늙은 유생들, 그리고 최치열·박진사 등 친구들 해서 일가친척을 빼면 통틀어 십여 명이 문상을 왔을 뿐이었다. 부고를 수백 장 써서 행세깨나 한다는 곳에 두루 돌렸더라면 단 하나 남은 청백리 집을 동정해서 혹 부의금이라도 보내오는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았을지 모를 일이지만, 마준으로선 도시 상상조차 못할 노릇인 것은 덮어두고라도 우선 필묵대와 심부름꾼부터 마련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었다.
아버지를 광주(廣州) 선산 어머니 산소 곁에 나란히 묻고 올라오자, 마준은 백 일 동안 일절 외출을 삼가고 무시로 신주 앞에 엎드려 곡을 했다. 그동안 아버지의 유언을 좇는 것만이 생존시의 불효를 용서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허위문서에 매달려서 비루하게 연명해 온 생활태도를 뜯어고칠 수 있는 길이라고 마음속 깊이 굳게 결심한 바가 있었던 것이다.
복기(服期) 3년 대상날까지 만 이 년 동안은 대개 관직에 나가지 않는다. 요즈음엔 제복출사(除服出仕)가 유행이지만, 그건 이미 현직에 오른 벼슬아치들이 자리를 뺏기지 않으려고 그런 편법을 남용하는 것이고, 이제부터 나리 호칭이나마 들어볼까 싶은 마준으로선 대상을 치르기 전에 부지런히 쫓아다니면서 한자리 따봐야 할 판이었다.
가만히 돌이켜볼 때 관직에 나가면 으레 나쁜 짓을 하게 마련이란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사로잡혀 지레 겁을 집어먹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청백리의 자손이 어떻게 감투 구걸을 하고 다닐 수 있느냐는 군색스런 변명도 실상 그런 겁 많고 심약한 소견머리가 시킨 일이 아니었던가. 청렴결백한 관리만 된다면 누가 감히 손가락질을 하며 흉을 볼 수 있단 말인가. 마준의 이런 작심을 아버지는 퍽 기특하게 보고 계실 것이었다. 마준 스스로도 나이 삼십이 넘어 비로소 철이 드는 기분이었다.
이듬해 졸곡(卒哭)을 마친 며칠 뒤, 마준은 머리를 감고 상투를 고쳐 튼 다음 아내에게 말했다.
“북촌 김대감 댁에 다녀올 터이니, 영칠이더러 채비를 차리도록 일러놓으오.”
“김대감 댁이라니요?”
“글쎄, 당신은 상관할 것 없소.”
보잘것없는 백면서생의 행차지만, 세도대신을 방문하는데, 하인 하나쯤 거느리지 않고서는 명함조차 접수시키기가 어려울 것이었다.
김 대감 댁은 실평수가 백오십 여 칸이란 소문대로 으리으리한 저택이었고, 과연 대문 밖이 메워지다시피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돌담 밑으로 여기저기서 교군들이 패를 지어 투전판을 벌이고 있었다. 사인교, 초헌, 그중 못한 것이 가마, 그리고 나귀, 제 발로 걸어오는 사람은 심부름꾼 아니면 이 댁을 출입하는 장사치들뿐이었다. 청지기로 뵈는 사내가 문간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명함을 일일이 접수하여 명단에 기록한 다음 하인을 시켜 안으로 들여보낸다. 잠시 후에 면회가 허락된 사람을 호명한다. 마준이는 다섯 차례나 기다렸지만 허사였다. 비록 거렁뱅이 과객일지라도 자기 집 찾아온 손님을 문전에서 내쫓는 법은 없는 것이다. 이건 너무하다 싶었으나 조석으로 문객이 하도 많은 탓이려니 하여 퇴짜 맞은 것을 원망하지 않았다. 이튿날도 허탕이었다. 심통이 나서 견딜 수 없었으나 한 번만 더 참아보자고, 청백리 마 아무개의 종손 마준, 이렇게 적어서 들여보냈던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대뜸 호명이 떨어졌다. 이십 칸도 더 됨직한 방에 선객 이삼십 명이 둘러앉아 있었다. 옥관자 둘에 금관자 하나가 상좌에 의젓하게 도사리고 있다. 뒤꽁무니나마 이런 자리에 합석한 것만 해도 광영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윽고
“대감마님 기침하셨소.”
마당에서 열뜬 콧소리가 날아왔다. 손들이 일제히 시립하다시피 두 손을 맞잡으며 일어서서 대감을 맞았다.
“오늘 조례(朝禮)가 있어 관복을 입었소. 여러분, 용서하시오.”
김대감의 우람한 음성이었다.
“별 말씀을!”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읊조리자 핫핫핫핫, 소리 높이 웃는 것이었다. 대감이 웃는 이유를 알 수가 없는 마준이었는데, 심중으로 일국의 재상과도 얼마든지 대등하게 사귈 수 있는 것이 선비의 특전이 아니냐고 일부러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계집종 둘의 부액*을 받으며 비단 보료 위에 좌정한다. 사내종이 재빨리 장죽과 화로를 대령한다.
“대감께선 어떻게 이처럼 일찍이?”
“오늘은 모처럼 대감을 모시고 등청 할까 해서 왔소이다.”
주인과 늙은 옥관자와의 대화였다. 대신이라고 해서 권세가 꼭같이 도도한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대감, 소인 내일 부임 하겠습니다. 만사가 대감 은혜올시다.”
중간에 앉은 어깨가 축 늘어진 사내가 아뢰었다.
“아, 목천 (木川) 이던가?”
“아뇰시다. 과천 (果川)이올시다.”
“그랬던가. 내려가서 실수 없이 잘하게.”
실수 없이…… 참으로 묘미가 있는 말이다. 백성을 다스리는 데도 실수가 없어야 하고, 상납을 꼬박꼬박 하는 데도 실수가 없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자 대감께서 좌중을 한 바퀴 둘러보며
“청백리의 자손 되시는 분이 어느 분인가?”
혼잣소리로 중얼 댄다.
“소, 소인이올시다. 소인의 육대조 함자가 무슨 자 무슨 자올시다.”
대감은 잠깐 고개를 기웃거리더니 ,
“들은 것 같기도 하군. 헌데 아직도 청백리 제도가 남아 있었던가?”
하며 나직이 웃었다. 모두들 덩달아 웃는다.
“청백리는 소인 집안 하나뿐인가 하옵니다.”
“연전, 모두 반납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하튼 돈만 아는 요즘 세상에 갸륵한 일이로군.”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청백리 댁에서 이렇게 대감을 뵈우러 오셨으니 어찌 경사가 아니겠소이까.”
이만큼 기지 있게 아첨을 떨 수 있다면 반드시 쓸모가 있는 자일 것이다. 대감이 사믓 만족스런 얼굴로 그쪽을 돌아보자
“소인 대감댁 사랑을 출입 한 지 오늘로써 꼭 십 년이올시다.”
“그래?¨
또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졌다.
“그래 소원이 뭐였지?”
“파주(坡州) 군수올시다.”
“오늘부터 파주 군수야.”
“네 엣?”
“내 이조(吏曹)에 일러놓을 터이니 그대는 이삿짐이나 싸도록 하게.”
“대감!”
딴 사람들만 없었더라면 아마 울음보를, 터뜨렸을 것이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등청하기로 할까?”
두어 번 용트림을 하고 나서 서서히 행보를 옮겼다. 줄줄 따라나간 손님들도 대문 밖에 도열하여 사인교 위의 대감을 전송했다. 문전에서 딱지를 맞고 서성대던 사람들과 구경꾼하며, 한길에까지 넘쳐흐르고 있다. 행차가 골목을 빠져나가려는데,
“대감!”
울부짖음 같은 고함소리가 울렸다. 유건을 쓴 젊은이 하나가 땅에 엎드리며 앞을 막은 것이다.
“비켜라!”
포졸들이 달려들어 사정없이 방망이질을 퍼부었다. 유생은 개구리가 배때기를 안고 나자빠진 꼴이었다. 구경꾼의 웃음소리. 이 댁 종놈 하나가 궁금증을 덜어주었다.
“어디 사는 미치광인지, 꼬박 한 달째 맨날 대감마님을 뵙겠다고 저 모양입니다요.”
그 유생에 대면 마준이야말로 조상 덕을 톡톡히 보게 된 셈이 아닐 수 없었다. 명함에 청백리 자손임을 밝혔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던들 대감댁 사랑방에 오르기란 일 년 가야 어림도 없었을 것이다.
그날 마준은 집으로 돌아와서 사당 앞에 꿇어앉아, 향을 피우면서 구성진 목소리로 아뢰었던 것이다.
“아버님, 아버님의 분부 따라 오늘 김대감 댁에 문안을 드리고 왔습니다. 과연 부귀의 황홀함에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이었습니다. 별반 신통치도 않은 한 토막 재담으로 원님 자리를 딴 재수 좋은 사람도 봤습니다만, 아버님이 아시다시피 이 불효자식은 그만한 말주변도 없으니 장차 어찌하면 좋으리까? 삼백육십오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문안을 올리면 혹 가망이 있을는지요.”
“잘했다. 아들아, 선비로서 창피스러운 점도 없지는 않겠지만, 세상만사가 어찌 내 마음대로 될 수가 있단 말이냐. 그저 꾹 참고 계속 정성믈 들여봐라. 다시 한 번 유언하노니 너마저 벼슬을 못하게 되면, 우리 집은 영 패가하고 마느니라. 낙향을 하고 싶어도 전답이 없어 토반 행세도 못할 처지가 아니냐?”
생존시의 음성을 방불케 하는 위패의 말씀이었다.
“허지만 아버님, 소자의 심중도 괴롭고 심란하옵니다. 김대감 댁 출입이야 아버님 분부대로 거행하겠사오나 저를 아끼는 벗들에게 무슨 면목으로 대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또 그들의 비난과 조소를 무슨 수로 감당한단 말입니까?”
“이 못난 녀석아! 네가 이십 년간 책을 읽은 것이 그들을 위해서 읽었느냐. 모름지기 수신(修身)한 연후에 제가(齊家)하고 나아가 치국(治國)하기 위해서가 아니겠느냐. 그따위 혹세(惑世)의 무리들과는 아예 상종하지 말 것이며, 그자들이 뭐라고 한들 저들 배가 아파내지른 신음소리쯤으로 치부해두면 그만이다. 그렇지 않겠느냐? 아들아, 양반정치라는 게 그리 쉽게 망하는 게 아닐 것이어.”
느닷없이 아버지께선 왕십리 하류배의 언사를 쓰셨는데 이상스런 실감으로 가슴에 와닿는 것이었다.
“그리구 이놈의 노론판도 마찬가지란 말이어.”
“글쎄, 그럴 것도 같습니다.”
사람이 죽을 때 하는 말은 착한 법이다. 하물며 죽은 다음의 말이야 진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마준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비가 오나 바람이 불거나 대감댁 문안을 거르지 않기로 했던 것이다. 일단 그렇게 작정하고 세상물정을 살피니까, 전과는 생판 거꾸로 보이게 되는 것도 퍽 신기한 노릇이었다. 사모관대하고 궁궐에 나가 앉아 있는 것은 물론 아니고, 또 그럴 날이 언제나 찾아올는지 아무 기약도 없는 처지인데, 양심적인 선비니 뭐니 심지어 청백리란 문자마저 몹시 퇴색해 보이는 반면, 장터에서 잡상인을 족치는 나졸들의 행패도 눈에 과히 거슬리지 않게 된 것이다. 졸개들도 제 밥벌이 하자는 건데 민폐라고 할 것까지야 있겠나. 이처럼 관용스런 심사일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제 속은 차리지도 못하고, 이미 실속을 차린 치들의 눈부터 빌려와서 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 재간이란 것이 좋게 말해 순박함이요, 에누리없이 말하면 마준의 바보스런 대목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마침내 은연중 걱정하던 일이 찾아오고야 말았다. 최치열이가 나타난 것이다. 마준의 부친 사당에 참배하고 나서 마주 앉기가 무섭게 따져 묻는 것이었다.
“북촌엘 드나든다니 사실 인가??
“……”
“그래 한자리 하기로 했나?”
최치열의 말투엔 벌써 조롱기가 어리어 있었다.
“아버님의 유언이라네. 낸들 좋아서 그러는 줄 아나? 내 심정도 좀 이해를 해줘야지.”
마준은 그만 울상이 돼서 구구하게 늘어놓았다.
“자네마저 절개를 꺾다니!”
최치열은 탄성을 토하고 나서 별안간 목소리를 죽였다.
“자네가 아버님을 생각해서 관직에 나가겠다는 뜻은 잘 알겠네. 허지만 김대감의 천거로 받는다는 건 재고해야 돼. 이놈의 노론 세상이 오래갛 줄 아나? 자네한텐 숨길 수가 없어 하는 말인데, 다음 달 초하룻날에 일제히 들고일어나기로 했다네.”
시퍼런 서술이 번득이는 최치 열의 눈이었다.
“들고일어나다니?”
마준은 가슴이 섬뜩해서 다급히 물었다.
“동대문 밖 유생들하고 남산골 선비들, 그뿐인가, 청계천 주변의 중인들도 우리와 행동을 같이하게 됐으니까. 이번엔 가부간 결판이 날 걸세.”
“결판이라니!”
“광화문 밖에 몰려가서 상감께 직소하자는 거야. 종래 아무리 상소를 올려도 간신배들이 소장을 날조하거나 깔아뭉개는 통에 우리만 억울하게 당하고 말았지만 이번에야말로 그렇겐 안될걸.”
"어떻게?”
그러자 최치열은 바깥 동정을 살피고 나서 더욱 목소리를 낮추었다.
“도끼 한 자루씩을 들고 나가 기세를 떨치자는 걸세.”
“반란이 아닌가?”
“반란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민심의 소재를 상감께 직소하겠다는 건데. 그걸 막는 벼슬아치들이 역신(逆臣)이 아니겠나. 대궐문을 도끼로 쳐부수고 들어가서 상감께 호소할 결심일세.”
최치열은 주먹을 틀어쥔 채 씩씩거리고 있었다.
등허리에 얼음물을 끼얹힌 듯 오싹오싹 추워지는 마준이었다.
“그런 소릴 왜 나한테 하나?”
하소연에 가까운 말이였으나, 뜻밖에 최치열은 배시시 소리 없이 웃고는
“난 알아. 자네가 절대로 김대감한테 고변(告變)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단 말일세. 또 자네더러 우리와 함께 나서자고 부탁하지도 않아. 그러니 못 들은 셈 치고 잠자코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자네 처신은 자네가 알아서 하게. 난 벗으로서 이 말밖에 할 얘기가 없네.”
저 할 얘기는 다 하고 듣지 않은 걸로 해두라니 어처구니없는 노릇이기도 했지만, 김대감한테 고변 운운만은 어쩐지 모욕적인 언사 같기만 하여 기분이 언짢은 마준이었다. 그럴 용기가 없는 위인이란 뜻인가. 아니면 친구의 의리를 배반할 사람이 아니라는 말귀인가 도무지 알쏭달쏭했으나 되도록 선의로 받아들여 후자를 택하기로 했던 것이다.
최치열의 음모를 몰랐다손 치더라도, 그와 닮은 다른 어느 놈이 그런 흉계쯤 꾸미고 있을 것만 같은 뒤숭숭한 난세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님 말씀마따나, 낯빛이 싯누렇게 뜬 꽁샌님 기백 명이 힘에 겨운 도끼를 휘둘러댄다고 해서 졸지에 세상이 뒤바뀔 것도 아니겠고, 가령 그들의 직소가 국왕께 상달된다고 하더라도 하루 아침에 어떻게 김대감과 같은 고간지신(股間之臣), 아차 고굉 (股肱)지신*을 자를 수 있올 것이냐 말이다. 보나마나 대역죄인으로 몰려 삼족이 멸하게 될 것이 훤하다.
김대감 댁에 출입하기 시작한 지도 그럭저럭 두 달째, 이젠 문간에서 접수하는 청지기에게도 농담 한두 마디는 던질 수 있게 되었고 또 매번 명함을 통하지 않아도 무시로 통과할 수 있게 되었다. 이쯤 되면 족히 대감 측근 행세를 할 만도 할 것이다. 대개 대감의 측근이란 소문이 나게 되면 돈보따리를 싸들고 찾아와서 청을 넣어달라는 정상배들이 생기게 된다지만 아직은 그런 일이 없었다. 마준의 약간 서운한 짐작으론 청백리란 헛된 명성 탓이 아닌가도 싶었는데, 막상 거액의 어음이라도 내놓고 이권을 부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걸 어떻게 해야 되나 근심걱정이 될 것이어서 필경 자기와 같은 청빈지사와는 인연이 먼 얘기로 돌리며 지냈던 것이다.
드디어 초하룻날 아침 이었다. 최치열이가 그처럼 무시무시한 흉모를 소곤거렸던 것은 괜스레 겁을 주고 넋을 빼서 동지의 배신을 막자는 허풍일 수도 있겠거니 싶은 심사로, 어제와 같이 영칠이놈올 데리고 일씨감치 집을 나섰다. 영양실조에는 변함이 없지만 전보다 한결 점잖아진 마준의 행보였다.
“영칠아, 너 올해 몇 살이지?”
"서른하고도 다섯입니다요.”
“나보다 삼 년 위로군……그동안 너도 고생 많이 했다.”
“샌님! 무슨 말씀이십니까요.”
“다른 놈들은 타관에 가서 제멋대로 호강을 하면서 일 년에 고작 쌀 한 섬씩만 들여놓고 있다마는, 너희 내외는 지지리도 못사는 우리 집을 위해서 뼈가 가루가 되도록 애를 썼구나.”
여느 때 마준답지 않게 감상에 젖은 목소리였다.
“원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요.”
“허되, 천도(天道)가 무심치 않아, 너도 고생길을 면하게 되었다. 내 사또가 되면 널 이방으로 쓰겠다. 조강지처를 푸대접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불우했을 때 충복을 어찌 헌신짝처럼 버릴 수 있겠느냐.”
“샌님, 과망에 오르셨습니까요?”
“그런 건 아니지만…….”
더이상 설명해야 쇠귀에 경 읽기일 것이었다. 보다도 마준은 며칠 전 아내로부터 들은 바깥소문이 새삼스레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아내는 지나가는 행인들 얘기를 주워들었다고 하면서
“온갖 비난이 김대감한테 쏠리고 있지만, 청백리를 가까이하는 것을 보면 오히려 나은 편인지도 모를 일이야.”
이처럼 옮겼던 것이다.
“암, 나은 편이구말구.”
그 자리선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말았던 것인데, 요새 김대감께서 갑자기 친절하게 대해주게 된 것과 그런 소문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지나 않을까, 덜컥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심일랑 개한테나 던져주면 그만이다. 더욱 다정스레 대해주게 된 거야 그만큼 친분이 두터워진 때문이고, 멀지 않아
“그대 소원이 뭐던가?”
학수고대하던 말씀이 떨어질 것이었다. 오늘따라 눈을 뜨면서부터 그런 길한 예감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큰사랑엔 낯익은 면면들이 죽치고 앉아 있었다.
“대감께서 기침하셨소!”
하자 얼른 도포자락을 가다듬고 단정하게 고쳐앉았다. 화사한 바람과 함께 대감이 들어오셨다. 오늘은 평복인데 심기가 썩 좋으신 모양이다.
“천하대세는 여전하렷다.”
그러면서 크게 웃어젖히자,
“이를 말씀이십니까.”
일제히 입을 모았다.
“날씨도 청명하군……, 그 청백리 마모(馬某) 나와 있소?”
“여기 대령하였소이다.”
“음, 그대 소원이 제학(提學)이던가?”
“아뇰시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외직(外職) 한자리올시다.”
“외직이라? 시방 군수·현감이 비어 있는 데가 어딘고?”
아래쪽의 비서를 향해 물었다.
“비여 있는 곳은 없습니다만.”
"하하아. 내 말을 못 알아들었군. 한자리 비우면 될 것 아닌가!”
대감의 불호령이었다. 낭패한 비서가 서류를 뒤지더니
"마침, 정읍(井邑) 현감이 비어 있습니다만.”
그동안 몸뚱이가 덩실덩실 하늘로 뜨는 것만 같은 마준이었다. 대감은 헛기침을 하고 나서 마준에게 말한다.
“정읍이면 좀 멀지만, 상관이야 없겠지.”
“대가암!”
이런 장면이 벌어지기만 숨 가쁘게 기다리고 있는데, 별안간 뚱딴지 같은 소리가 울렸다.
“대감! 난리 났습니다.”
어떤 군교(軍校) 하나가 숨이 턱에 닿아 보고하는 것이었다.
“광화문 앞에 하얗게 몰려와서 아우성입니다.”
“닥쳐라! 네 이놈, 그런 일쯤 가지고 얼이 빠져 허둥대다니, 썩 물러가거라.”
그러나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은 듯했다. 잇따라 금위대장이 말을 타고 들이닥쳤다.
“대감,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폭도들이 무엄하게도 상감을 뵙겠다고 도끼를 들고 나와 버티고 있습니다. 포군(砲軍)을 풀어 싹 쓸어버릴까요?”
“금위대장.”
“예에.”
“그 무식한 소리 작작 하오. 누구나 다 이 나라의 백성, 싹 쓸어버리겠다니…… 그러지 말고, 어디 좀 구경이나 가봅시다.”
역시 대감은 출중한 거물이었다. 속은 어떤지는 몰라도 겉보기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마준은 감동을 이기지 못해 수행자들 뒤를 쫓아갔다. 금위영 군사 백여 명이 일행을 호위했다. 행차는 건춘문(建春門)으로 대궐 안에 들어갔다. 그 재수없는 군교가 한순간만 늦게 도착했을지라도 정읍 현감이 됐을 텐데, 이게 모두 최치열 일당이 경거망동하는 소치라고 놈에 대한 울분을 가누지 못하는 마준이었다. 마준이도 대감 일행을 따라 광화문 누각에 올라갔다.
과연 선왕 인산(因山) 때 운집 했던 군중만하였다. 가마니와 거적을 깔고 엎드려 있다가 앞줄의 수모자(首謀者)들이 뭐라고 고함을 치자, 일제히 몸을 일으켜 읍하고는 재배(再拜)하는 것이었다.
“상감마마, 통촉하소서, 간신배를 물리치시고, 나라일을 바로잡아 주소서.”
간간이 이런 소리도 들렸다.
눈여겨보니, 맨 앞줄에서 최치열과 박진사가 도끼를 휘두르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소장을 어김없이 상감께 올릴 것이야. 어서 물러가서 생업에 종사하도록 타일러라.”
분부를 받은 군교가 문밖에 나가 고래고래 내질렀으나 군중의 소용돌이는 한층 험악해질 뿐이었다.
“포군을 푸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을 것 같소.”
금위대장의 말이 떨어지고 김대감도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순간, 뜻밖의 광경이 일어났다.
한 놈이 광화문을 향해 도끼를 높이 쳐들고 달려들었다. 바로 최치열이가 아닌가. 문짝을 찍어 쳐부술 줄 알았는데, 웬걸 제 머리통을 제 손으로 까고 있지 않은가. 먼눈에도 유혈이 낭자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최치열의 사지를 떠메어 가마니에 눕혔다. 박진사가 군중을 향해 몇마디 외치자 곡성이 진동하는 것이었다.
“충신이로군, 저자의 성명을 알아오너라.”
대감은 좀 떨리는 음성으로 일렀다.
“동대문 밖에 사는 최치열이란 자라고 합니다.”
보고를 받은 김대감은
“최가가 죽지 않았다면, 정읍 현감을 제수한다고 전해라. 과연 충신이로고.”
그런 다음
“금위대장, 도끼로 제 이마를 까는 자들이라 염려할 것 없소. 저녁 무렵해서 술과 고기를 후히 대접하여 해산시키도록 하오.”
여유작작하게 말하고는, 그 특색 있는 웃음소리를 높이 울리는 것이었다. 곁에서는 안경을 낀 사관이 열심히 붓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문학과지성』 6호(1971 겨울); 『암사지도』 (민음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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