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수행 강향자 씨
득남 기원하다 부처님 참 뜻 알고 수행
이웃과의 조화로운 삶 속에 ‘참나’ 있어
내가 불교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나에게도 아들이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구 갓바위에 가서 늘 기도를 올렸고 그 공덕 때문이었는지 딸 둘에 이어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는 아이 키우는 재미에 부처님 생각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부처님 오신날이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대구 팔봉산 갓바위에 가보니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 있는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보고 지나쳤을 것인데 그 날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2500년이라는 까마득한 세월이 지나 갔는데도 사람들이 부처님을 기억하고 부처님의 태어남을 저토록 찬탄하는 이유는 뭘까?
불교라는 것이 그저 현세구복적인 종교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으로 불교 공부를 시작했다. 불교 입문서부터 옛 스님들의 법문집을 보고 절에 가서 법회에 참석하고 법문을 들었다.
그러다 순간 ‘나는 무엇인가’라는 의심이 떠올랐다. 내가 무엇이기에 아이들은 나에게 엄마라 부르고 남편에게는 아내가 되며 부모님께는 자식이 되고 옆집 아주머니도 됐다가 절에서는 또 보살님 소리는 듣는 ‘나’는 누구인가? 하루에 몇 번 거울을 통해 보는 나 말고 또 다른 나가 있을텐데 그 ‘참 나’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무렵 때마침 대구의 한 사찰에서 시민 참선방을 개방했다.
참선을 하면 나를 찾을 수 있을까? 답답함을 안고 수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결가부좌를 트는 것도 힘이 들었다. 그 동안 내 몸이 얼마나 비뚤어져 있었던가를 실감했다. 구담화상의 법어집에 의지하며 다리와 허리에 오는 통증을 참아냈다. 가만히 앉아 있는 자세가 익숙해질 무렵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생각은 바람난 고양이마냥 이리갔다 저리갔다 도무지 한 곳에 머물지 못했다.
그 당시 나는 시각장애인과 함께 하는 봉사활동에 자주 참여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나의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고 나는 그들에게 도움 주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몇 번 그들과 함께 지내보니 반드시 그런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앞은 보지 못하지만 그 외 감각은 나보다도 훨씬 뛰어났고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물이나 상황의 이치를 나보다도 잘 꿰뚫고 있었다. 어두운 눈만큼이나 밝은 마음을 지닌 그들에 비하자니 나의 수행이 턱없이 부족했음을 느끼고 해마다 하안거와 동안거에 참여하고 있다.
눈에 보인다고 해서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빤히 보면서도 그것들의 가치를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제는 좌선을 하면 허리가 꼿꼿해 지면서 내 자신이 당당해짐을 느낀다. 그리고는 이러한 환희를 느끼게 해 주는 부처님과 삼라만상 모든 것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나’의 진정한 의미는 주위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찾을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이들의 엄마로서, 남편의 아내로서, 친구로서, 자식으로서, 도반으로서 이 모든 것이 다 모여 내가 이뤄짐을 깨닫고는 더욱 밝아진 마음의 눈으로 이들과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한다. 너와 내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이웃이 조화를 이룰 때 ‘나’란 무엇인가 라는 답이 없는 질문은 더 필요 없게 될 것이다.
<2004-09-29/773호>
입력일 : 2004-09-25 12: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