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시골마을 점빵
사라진 시골마을 가게는 점빵과 구판장이다
막걸리 냄새 진동하던 시골마을의 소통공간이었던 점빵,구판장은 사라져가는 시골마을처럼
그시절 먼 추억속의 이야기속으로 숨고 말았다
요즈음 시골마을에 가보면 100여호 이상 가는 큰 마을이 아니면 잡화를 파는 가게가 없다.
산업화 과정에서 시골마을 사람들 대다수가 도회지로 떠나버려 마을에 남아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수십명에 불과한데다 교통이 좋아져 필요한 물품을 시내에 나가 사다 쓰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과 달리 태어난 마을에서 늙어 죽을때까지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제비새끼 까듯
자식을 6~8명씩 낳아 기르던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교통이 불편하다보니 읍내에 서는
오일장에 장보러 가는 날 빼고는 마을 사람들이 필요한 물품을 사다 파는 마을 가게에서 사서
쓰곤 하였다.
이른바 점빵 또는 구판장으로 불리던 가게였다.
구멍가게라고 할 수 있는 점빵이나 구판장은 수십호 정도되는 보통 마을은 한곳,100여호 이상
되는 큰 마을은 많게는 두세곳씩 운영되고 있었다.
이와같은 마을 가게는 새마을 사업 이전에는 점빵으로 불렸었다.
그러던게 새마을 사업이 시작되면서'구판장'으로 명칭이 바뀌어져 불려졌는데 왜 그렇게 명칭에
변화가 생겼는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같은 시골마을 점빵이나 구판장은 명색이 가게라고 하지만 보잘게 없었다.
읍내에 있는 가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아니 가게라고 볼 수도 없는 시늉만 낸 가게였다.
그러니 파는 물건이 많을리가 없었다.
겨우 몇가지에 불과했다.
빨랫비누,국수,사카린,사카린처럼 단맛을 내는 당원,비닐봉지에 땅콩 몇개와 멸치 대여섯마리를
넣은 술안주,신선로 그림이 그려진 미원 몇 봉지,바늘,실,머리핀,참빗정도였다.
담뱃집을 겸하고 잇으면'아리랑' 궐련담배 몇갑에 말아 피우는 풍년초를 쌓아 놓은 정도였다.
이외에 1원으로 쓰던 십환짜리 동전 한개에 2~3개씩 주던 은행알 크기의 동글동글한 하얀
독사탕(돌사탕)과 비과,캬라멜,일본말로'덴뿌라'라라고 부르던 꽈배기 정도를 아이들 간식용으로
팔았다. 그러나 점빵과 구판장 주력 상품은 막걸리이다
마을 점빵과 구판장의 주력 상품은 뭐니뭐니 해도 막걸리를 빼놓을 수 없다.
점빵이나 구판장 한쪽에는 주로 간장 담글때 사용하는 대형 옹기 항아리가 놓여 있다.
막걸리를 담아 놓은 술독이다.
주로 한개가 보통이지만 술꾼이 많은 마을은 술독이 두개가 놓여 있는곳도 있다.
술독 뚜껑은 옹기로 만든 뚜껑이 아니라 열고 닫기 편하게 나무판자로 만든 것으로 가운데
손잡이가 달려 있다. 뚜껑위에는 역시 나무 판자를 이용 사각형으로 손잡이가 길게 달린 1되
짜리나무 되가 올려져 있다.
막걸리를 퍼주는 도구다.
막걸리는 면 소재지 마을에 있는 막걸리 도가집에서 만들어 아침 일찍 배달해 준다.
당시에는 시골에 자가용은 물론이고 소형 화물차도 전혀 없던 때라 막걸리를 짐빠리 자전거를
이용하여 직원으로 고용된 배달부가 배달해 주었다.
막걸리통은 1970년대 들어와 플라스틱통으로 바뀌었지만 1960년대 말까지는 나무통이었다.
나무로 만든 막걸리통은 다섯되가 들어가는 반말짜리와 열되가 들어가는 한말짜리 두가지
종류가있었다. 생김새는 밑바닥은 좁고 윗쪽으로 갈수로 퍼자는 둥근 형태로 2센티폭의 철판
으로 아래중간,위쪽 세군데 테를 둘러 만들어 졌다.
맨 위 덮개 부분에는 중앙에 손잡이가 있고 한쪽에 원형으로 지름 5~7센티 크기의 구멍을 내
술이 채워지면 나무로 만든 마개를 나무 망치로 살살 두들겨 끼운다.
술이 가득 채워진 술 통개들은 서너곳 마을씩을 담당한 배달부가 전날 배달할때 주문받은 양만큼
짐빠리 자전거에 싣는다. 배달부가 짐빠리 자전거에 싣는 막걸리통은 자전거 뒷바퀴 양옆으로
한말짜리 각각 두개씩 4통을매달고 짐칸위에 한말짜리와 반말짜리 서내개를 포개 총 7~8개를
실어 폐타이어를 쪼개 만든 줄로 꽁꽁 동여 맨다.
이렇게 실은 술통개 7~8개의 무게는 엄청났다.
당시에는 도로가 모두 비포장 자갈길 신작로였는데도 이처럼 무거운 막걸리통을 잔뜩 매달고도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모습을 볼라치면 배달부 아저씨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오르막길은 내려서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은 짐빠리 뒷쪽 짐칸 모서리를 잡고 장딴지에
핏줄이 돋을 정도로 발 버티는 힘으로 끌고 올라가는 모습을 보면 장사가 따로 없었다.
막걸리 배달부가 도착할때쯤이면 점빵,구판장앞에는 주전자나 파르스름한 빛깔이 도는 한되짜리
유리됫병을 든 아주머니나 아이들이 모여서 기다린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아버지 술 심부름을 나왔거나 그날 농사일 하러온 놉(일꾼)들 새참과 점심
반주용 막걸리를 받아가기 위해서다.
아침에 갓 배달된 막걸리 맛은 괜찮지만 그때는 냉장고가 없던 시대라 하루 전 팔다 남은
막걸리나 배달된지 몇 시간 지난 막걸리는 신맛이 나기 때문에 모두들 그날 쓸 막걸리는 대부분
아침 일찍사간다.
막걸리 배달부 아저씨가 주문한 막걸리 통을 내려 놓으면 점빵 주인 아저씨는 돌멩이를 들고
마개 한쪽을 살살 쳐서 마개를 뺀다.자전거에 실려오는 동안 꿀렁거릴때 가스가 차 있어 한방에
쳐서 마개를 따다가는 자칫 술이 솟구쳐 올라 엉망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술통개 안에 차 있는 가스가 조금씩 새어 나가도록 살살 두드려 마개를 따는 것이다.
마개를 딴 막걸리통은 술독에 거꾸로 걸쳐 놓으면 알싸한 막걸리 냄새를 점빵안에 피어 올리면서
콸콸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술을 다 붓고 나면 주인은 손잡이 달린 나무되를 항아리속에 넣어 서너번 휘휘 저어 저은뒤 조금
떠서 맛을 본 다음 "오늘 술맛은 어제것보다 괜찮구먼.....
누룩을 좀 더 넣었는가벼"한마디 내지르곤순서대로 주문한 양만큼 퍼서 들고온 주전자에 담아
주거나 유리병에 양철 깔대기를 꽂아 부어준다.
막걸리값은 곧바로 현금으로 돈을 내는 경우는 드물었고 외상이 많았다.
외상인 경우에는 나무기둥에 끈을 꿰어 매달아 놓은 공책으로 된 치부책 외상장부에'주천떡(댁)
2되','운봉양반 3되','함양아짐 1되','안골 아재 2되'식으로 적어 놓았다가 보리타작이 끝나거나
쌀방아를 찧고나면 보리쌀이나 쌀로 받는다.
점빵앞이나 구판장앞에 놓여진 와상에 앉아 술을 달라고 하여 된장 풋고추를 안주 삼아 마시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 아이들을 술 심부름시켜 사오도록 하여 집에서 반주로 또는 논밭에서 새참
으로 마셨다. 마을의 소통공간 추억속의 점빵,구판장 점빵이나 구판장은 이처럼 막걸리,담배,
국수를 파는 것 말고도 마을내 소통의 중간자 역할도 톡톡히 하였다.
요즈음에는 마을마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회관이 없는 마을이 없지만 그때만 하여도 회관이 있는
마을은 거의 없었다. 마을회의를 할 경우에는 잘사는 집 사랑채나 마을서당,제각등을 이용하였다
여름에는 마을 동구나무라 불렀던 느티나무나 팽나무 고목 아래 돌을 의자삼아 깔고 앉아 이장이
면에서 지시한 사항을 전달한다
말빨깨나 하는 몇사람이 이게옳네 저게옳네 침을 튀기면 말 주변 없는 쑥맥들은 그저 하염없이
듣는 식으로 진행하다 나이 지긋한 어른이"아 이제 그만혀.하루내 쟁기질 했더니 온몸이 쑤시구만
어이 이장!그만 끝내"식이었다.
그러다보니 외지에서 마을에 사람이 오게되면 먼저 점빵이나 구판장을 찾게 되다보니 찾는 집을
안내하고 물건이나 편지를 맡겨 놓으면 가져다 주기도 하였고 마을소개까지 도맡아 하는 홍보
역할을 전담하였다.
1972~3년 쯤에 마을에 전기가 처음 들어 오면서 마을에 한대씩 교환양을 거치는 자석식 마을
공용전화가 놓여진 곳도 점빵이나 구판장이었던 관계로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이나 친척들이
전화를 걸어오면 받아 이집 저집 뛰어 다니며 전화 받으라고 알려 주느라 쉴틈이 없었다.
다행이 마을 공용 앰프가 설치된 뒤로는 전화가 올 경우 마이크를 잡고"안골떡! 안골떡!
서울에서개똥이 아들이 전화 했구만,빨리 와서 전화 받아"
하는 식으로 방송을 하면서부터 발품파는 일이줄어 들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한가한게 아니었다
이웃간에 말다툼을 벌이거나 싸우면 달려가서 말리고 면서기나 지서 순경이 마을 지도 방문차
들르면 담뱃불을 붙여주고 간간이 술국에 밥상도 준비해야 하는 등 점빵이나 구판장 주인은
부지런을 떨지 않을 수 없었다.
부모가 논밭에 일 나간 뒤 잠에서 깨어나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악을 써 울어대며 골목길을
헤매는 마을 꼬맹이를 보면 팔아야할 독사탕을 두어개 꺼내 손에 쥐어주며"
하이 이~노옴 동네 떠나가겠다.
네 어머이 안 도망갔응께 그만 울어라.
요 사탕 맛있다.어서 쪽쪽 빨아봐"
하며보모역할까지 하던 점빵,구판장 풍경도 이제는 추억속의 골동품이 되어 버렸다.
글/사랑방이야기/김환태
첫댓글 아련한추억 되새기게 합니다
울집도 동네서운영하는 점빵이었는데
엄마몰래 건빵훔쳐먹던기억이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