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는 작은 초가에 숨어 지내던 제갈공명을 모시기 위해 세 차례나 거듭 방문했다. 이른바 삼고초려의 고사이다. 제갈공명을 등용함으로써 유비는 곤궁한 처지에서 벗어나기 시작할 수 있었다. 제갈공명이 유비의 삼고초려에 응한 뜻은 무엇일까?
삼고초려에서 '초려'는 풀로 이어 만든 작은 집, 즉 초가라는 뜻이며, '고'는 돌아본다는 뜻이다. 사람을 초청하여 맞아들일 때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고 예의를 갖춘다는 뜻으로 쓰이며, 뛰어난 인재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노력과 정성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제갈공명이 위나라를 공격하기 전에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에 '세 번이나 초가집 가운데 있는 저를 찾아 주시고'라는 표현이 나온다. 조조가 모사 순욱을 얻을 때에도 순욱을 세 차례 방문하여 자신을 도와 줄 것을 부탁한 적이 있다. 반드시 세 차례는 아니더라도, 군주는 뛰어난 신하를 얻기 위해 정성과 예의를 다하여 자신을 도와줄 것을 부탁하곤 한다.
일본의 TV 도쿄에서 1990년대 초에 방영되어 인기를 모았던 삼국지에 등장한 제갈공명. 지도를 펼쳐 놓고 유비에게 천하삼분의 계책을 설파하고 있다.
고대 중국의 지식인들 대부분은 유학자였다. 유학자들은 조용히 숨어 지내면서 학문을 닦고 자기 수양에 전념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벼슬자리에 나아가 군주를 섬기고 백성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앞의 경우를 처(물러서 있음), 뒤의 경우를 출(나아감)이라 한다. 유학자들은 출처를 올바르게 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군주가 덕이 없고 간신들이 판을 칠 때면 벼슬자리에 나아가는 일을 삼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정치에 참여하여 나라를 올바르게 이끄는 역할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렇다면 와룡 언덕의 초가에서 조용히 지내던 제갈공명이 세상 속으로 뛰어든 것은 왜일까?
물론 세 번씩이나 찾아와 도와줄 것을 부탁하는 유비의 간곡한 정성에 감동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그 때문 만일까? 제갈공명은 조용히 숨어 지내면서도 천하의 형세를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판단하고 있었다. 세 번째로 방문한 유비에게 제갈공명은 지도까지 펼쳐 놓고 천하의 형세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유비가 독자적인 세력과 근거지를 마련하여 천하통일에 나설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한다. 제갈공명이 애당초 세상으로 뛰어들 마음이 없었다면 천하의 형세에 그토록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이유가 없다. 바꾸어 말하면, 제갈공명은 숨어 지내면서도 세상으로 나아가 자신의 뜻을 펼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유비를 섬기고자 했을까? 제갈공명이 지내던 곳은 유표가 다스리던 지역에 속해있다. 더구나 제갈공명의 뛰어난 학식과 지략은 이미 어느 정도 널리 알려져 있었다. 세력도 미미하고 근거지도 없는 유비보다는 차라리 유표, 조조, 손권과 같은 제후를 섬기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그러나 제갈공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일까? 무너져 버린 한 황실을 회복하고자 하는 유비의 대의명분이 제갈공명에게는 중요했을 것이다.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올바른 명분을 유비에게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비에게는 뛰어난 모사가 없었다. 이에 비해 다른 제후들은 뛰어난 모사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었다. 때문에 제갈공명으로서는 유비를 돕는 편이 자신의 뜻과 지략을 마음놓고 펼칠 수 있는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