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백두대간 마루금을 따라 내리막길과 오르막길을 반복하드시
임진란과 정유재란을 당한 조선의 명신 서애 유성룡은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전쟁을 대비하지 못한 반성을 뼈를 깍고
살을 베이는 심정으로 기록한 책이 징비록"이다.
국보 제 132호로 지정된 징비록....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전쟁을 대비하지 않는 민족의 비참함을 기록한 서책!!
懲毖"란..시경의 소비편에 나오는 말로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後患)라는 뜻이라는데 지금 우리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읊조리며 그저 바라 만 보고 있지 않는지....
추풍령 고개는 후둑후둑 비를 흩날리고 있었다
일기예보에는 오는둥 마는둥 하다 개인 다 하니
가벼운 우장차림으로 들머리로 올랐다
금산(370m)으로 오르는 초입은 전형적인 동네 뒷산과 흡사하다
정상이란 곳에 서면 직벽으로 잘려나간 흔적과 함께 슬프다는 표현으로 선을 긋는다
지도에 그려진 이 산 북쪽 기슭의 등고선은 허공에 그려진 가상의 선일 뿐이다.
능선의 북쪽 절반이 몽땅 헐려나갔기 때문이다. 일제 때부터 석재를 파먹기 시작해서
해방이 되었어도 그렇게 파고 먹었다.
하지만 배가 고프면 아무 생각도 없는 법이다
백두대간의 상처는 두고두고 상기하고 자연에 대한 고찰도 ....
비산비야(非山非野)의 백두구간 이 곳,
조망거리라고는 없는 숲길을 잠행하듯이 2시간쯤 걷자 사기점고개다
사기점고개에서 20~30분쯤 나아가면
난함산(卵含山733.4m)이다 그런데 묘함산(卯含山)으로 아직도 관련문서에
대부문 묘함산이라 표기되어 있어 관계분들이 좀더 지리에 대한 공부가 필요했다
쉽다? 야산같은 구간이라도 힘둘긴 마찬가지다 오르고 내림의 반복에 서서히 지치기 시작한다
용문산, 국수봉 정상에 올라 시원한 조망을 바라보고 다시 기운을 차려본다
국수봉에서 큰재까지 내리막길은 꽃버선의 곡선처럼 순하다
질척거리는 양지 소로에 어기적 거리고 낙엽밑에 숨은 어름도 조심하며 서서히 고도를 낮추니
큰재의 사과밭과 농토에서는 개구리 합창, 울음소리가 계곡을 울리고 있었고
백두대간 위의 유일한 초등학교였던 곳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1949.11개교)는 (1997.3)폐교 되었으나
삼림청에서 세운 백두대간 숲 생태원으로 말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산행코스:추풍령 ~ 금산(370m)~ 난함산(731m)~ 작점고개(340m)~ 무좌골산(474m) ~ 용문산((710m)~ 국수봉(763m) ~큰재(300m) (도상거리19.67km) 3/7
금산 초입에서 502봉이 보이고
잘려나간 금산. 옛날엔 저 건너편 산과 잘 어우려 있어스리랴... 추풍령 저수지도 보이고
작점고개를 얼마두고 본 난함산
작점 고개에서 (능치재. 성황뎅이고개. 여덜마지기 고개.라고도 부름)
초창기 백두대간 취재팀이 영동군 마을 이름을 따서 작점고개라하여 현재까지 부름
용문산 정상
뒷 돌아 본 용문산
국수봉을 바라보며
국수봉 정상에서
국수봉 정상에서 본 걸어온 산 산...
가야 할 산 산...
뒷 돌아 본 국수봉
683봉에서 본 걸어 온 산 산...
큰재에서
Le Souvenir (금지된 장난) - Nana Mouskou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