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성탄을 크리스마스(Christmas)라고 하는데 그 말은 그리스도와 미사(Mass)가 합성된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예배한다는 뜻입니다.
성탄은 아기로 탄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절기임을 뜻하는 것입니다.
복음서에 나타난대로 보면, 탄생하신 아기 예수를 예배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성탄절에 관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동방의 박사들이 찾아와 경배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고, 누가복음에는 들에서 양을 치던 목자들이 천사들의 전하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경배하였고, 그리고 아기 예수가 성전에 올라갔을 때 거기에 있었던 시므온과 안나가 아기 예수가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임을 알아보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바로 첫번 크리스마스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를 예배한 첫번째 사람들입니다. 첫번째 크리스마스 공동체 사람들을보면 아주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이방인이 있는가 하면, 성전에 머물며 일 생을 경건한 생활을 한 유대인이 있고, 율법을 알지 못한채 그날 그날 가난하게 살아가던 목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공통점이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구태어 공통점을 찾는다면 이들은 나름대로 무엇인가 이 역사를 변화 시킬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기다렸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이 아기 예수를 그리스도로 경배하게 된 것은 각각 계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신기하고 이상한 별을 보고 찾아왔고, 목자들은 천사들 의 전하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으며, 시므온과 안나는 성령의 감동으로 아기 예수를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경배한 그리스도는 한 평범한 아기에 불과했습니다. 그에게 어떤 특별한 모습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의 얼굴에 광채가 빛났던 것도 아닙니다. 한 평범한 갓난 아기를 보았을 뿐이지만 이 첫번째 예 배자들은 그 아기를 보고 경배하고 돌아가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가 나타내는 어떤 기적을 본 것도 없고, 그가 말씀하는 어떤 교훈을 들은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아기가 그리스도임을 의심치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한 보잘것 없는 아기에게서 온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의 미래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늘 자기들의 삶에 당장 미치는 어떤 구원을 본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에는 아무 변화도 일 어나지 않았지만 그들은 기뻐하며 돌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첫번째 크리스마스 공동체의 신비입니다. 오늘의 교회가 이 크리스마스 공동체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오늘의 교회야말로 크리스마스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그들의 예배는 이기심에 의해 오염되지 않았다.
우리가 이들 첫번째 예배자들에게서 배워야 할 점은, 그들의 예배에 전혀 이기적인 동기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이 아기 예수를 경배하면서 받은 외적인 혹은 물질적인 보상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동방의 박사들 은 오히려 값비싼 선물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아기 예수께 드렸습니다. 그들은 상당히 먼 곳에서부터 오느라고 많은 고생과 수고를 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여행을 위하여 적지 않은 경비를 들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마도 별을 따라 2년여에 걸친 시간을 여행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여행한 끝에아기 예수를 찾았고 기쁨으로 경배하고 돌아갔습니다. 타산적인 눈으로 이들의 행위를 계산해 본다면 참으로 막대한 손해를 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조금도 이를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앞에 나타난 별을 보고 "기뻐하고 기뻐하였다"고하였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자기들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보람있고 흐뭇한 순간으로 베들레헴 여행을 기억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가장 멋진 예배를 드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의 그 험준한 산을 오르는 등산가들처럼 아무 보상을 바람없이 다만 그들 앞에 별이 빛나기 때문에 무조건 그 별을 좇아 나섰던 것입니다.
시므온과 안나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동방박사들처럼 멀리서 온 사람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생을 바쳐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사람들입니다. 안나같은 여자는 과부된지 84년이라고 하였으니까 백세가 넘은 사람일 것입니다. 이들은 아기 예수를 본 순간 그들의 삶의 목적이 바로 그 아기에게 있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시므온은 노래하기를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아기 예수를 보기 위하여 일생을 기다린 이들의 예배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귀한 예배가 아니겠습니까? 이들의 예배에는 복을 받는다든지 자기의 개인적인 소원을 이룬다든지 하는 이기적인 동기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이 한번의 경배를 위하여 일생을 기다린다든지 아니면 상당한 모험과 고난을 감수하면서 불확실한 미 래를 향하여 준비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예배야말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진 아름다운 예배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너무나 이기심으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축복을 기대하며, 자기의 이기적인 소원의 성취만을 갈구하고 있습니다. 새 생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드리는 대신에 우리의 탐욕으로 얼룩진 얼굴이나 무감동한 무표정의 얼굴로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마스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런 예배의 태도를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의 생애 전체를 주님께 아낌 없이 헌신하여도 아깝지 않은 참된 예배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준비된 예배, 정성을 드린 예배, 감사함으로 드리는 예배, 화해와 용서와 사랑이 있는 예배는 참으로 감동적인 예배가 될 것입니다. 찬송을 부를 때 감격의 눈물로 부르게 되며, 간곡한 기도를 올리며, 말씀마다 아멘으로 응답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의 예배는 미래를 내다본 것이었다
둘째로, 첫번 크리스마스 예배자들에게서 배우는 점은 그들은 다같이 한 아기에게 경배하였다는 점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아닌 아기 예수님을 예배한 것입니다. 이들은 아기 예수에게서 인류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보고 예배한 것입니다. 감추어진 하나님의 미래를 내다보고 경배하였던 것입니다. 시므온의 노래에서 이런 신앙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그가 본 것은 한 아기이지만 그는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함께 성전에서 예수를 본 안나도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안나 할머니는 이 아기가 바로 예루살렘의 구속자가 될 것임을 계속 사람들에게 말하여 주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목자들도 마굿간에 태어난 한 아기가 그리스도 주가되심을 믿고 그에게 가서 경배를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연약한 아기 속에서 온 인류의 구원을 이루실 능력의 그리스도를 뵈온 것입니다. 그들은 구유에 누어있는 아기를 한 아기로만 보지 아니하고 미래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를 보고 경배를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역사의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통찰력이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이들에게는 특별한 계시가 있었습니다. 박사들에게는 빛나는 별이 있었고, 목자들에게는 천사들이 나타났고, 시므온이나 안나에게는 성령의 지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빛나는 별은 찾아온 세 박사만이 본 것은 아닐 것입니다. 누구나 볼 수 있게 밤하늘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지만 그 별의 의미를 알고 찾은 사람은 세 사람 뿐이었습니다. 천사들의 노래도 밤하늘에 널리 울려 퍼졌을텐데 그 노래를 들은 사람은 아주 소수의 목자들 뿐이었습니다.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이나 영적인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은 아무에게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밤하늘을 한번도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별빛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은 밤하늘의 별보기를 잊은지 오래 될 것입니다. 도시의 어린이들은 여름밤 멍석 위에 누워서 별하나 나하나의 꿈을 헤아리는 낭만을 전혀 알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밤하늘의 별이 주는 낭만과 꿈을 잊어버린채 그리고 그 별자리들이 이동하며 보여주는 우주의 속삭임을 듣지 못한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어떻게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마찬가지로 육적인 삶에만 얽매어 영적인 삶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어떻 게 영적인 통찰력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땅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의 재미에 정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앙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밤에 양떼를 지키고 있는 목자들이란 자기 집도 없이 떠돌며 양을 돌보는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민중들입니다. 그들은 일찍 이 사회에 대해 미련을 버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일생을 광야의 나그네로 떠돌며 각박하지 않은 삶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광야의 매마름이 도시의 각박함보다는 견디기 쉬웠고, 아무데서나 천막을 치고 머물수 있는 광야의 자유로움이 도시의 온갖 속박보다는 훨신 좋았을 것입니다. 광야에는 도시의 아귀다툼이나 중상모략 같은 것이 없기에 저들의 삶은 항상 여유가 있고 순박하며 도시의 때가 묻어 있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도 도시에 정착하여 사는 것이 훨신 편하고 안락한 삶이 될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굳이 광야의 거치른 삶을 버리지 않는 것은 도시가 줄 수 없는 광야의 매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특히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영적인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저들의 조상이 애급에서 나와 광야에서 40년을 지났고, 특히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약 백성이 되었기에 광야는 이스라엘의 신앙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자들은 바로 이런 광야의 영성에 이끌려 그곳을 떠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났다는 사실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복잡한 베들레헴 도시의 하늘이 아닌 막힘이 없이 확 트였고, 태초의 정적만이 깃든 광야의 하늘이야말로 천사들의 합창을 듣기에 알맞은 장소가 아닐 수 없습니다. 광야의 영성에 익숙한 목자들에게 천사들의 소식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그들은 의심없이 믿었고 곧장 베들레헴으로 찾아가 아기를 보고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찬미하며 다시 광야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무식한 목자들이었지만 그들의 영적인 감각은 무디지 않아 이스라엘의 그 어떤 종교 지도자들 보다 먼저 그리스도의 탄생을 경배하고 그 구원의 미래를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로, 성령이 그 위에 계신"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면서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던 사람이며 사람들에게 경건을 가르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통찰하며 그 역사를 기다리고 가르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아기 예수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미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이들 첫 예배자들의 신앙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신앙,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신앙, 이 땅에 미련을 두고 거기에 얽매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신앙, 하나님이 이룩해 가시는 구원의 역사를 살피고 연구하며 그것을 따라 살려는 신앙, 썩어 냄 새나는 도시 문명에서 벗어나 광야의 영성과 자유함을 얻고자 노력하는 신앙이 있을 때 우리는 오늘의 어두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미래의 빛을 볼 수있을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광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신앙이야말로 귀한 보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당장 내게 아무 것도 없다 하더라도 결코 낙심하지 아니하면서 아기로 우리에게 탄생하신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미래에 대한 소망을 더욱 확고하게 가져야 하겠습니다. 첫 크리스마스 공동체의 사람들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돌아가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그들은 지금 당장 어떤 물질적인 축복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더 귀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기쁨이 야말로 이들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 되었습니다. 값으로 따질수 없는 은혜의 체험을 한 이들은 어떤 값진 보배를 선물로 받은 것 보다도 더 큰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이들이 아기 예수를 만난 은혜를 소중히 여긴까닭은 그들의 영혼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영적인 은혜를 소홀히 할 때 가 많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우리의 영혼의 눈과 귀가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영성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기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탄생하셨는데도 우리가 보지 못하며 보았어도 거기서 진정한 은혜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것은 그 은혜를 사모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기다리며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첫번 크리스마스에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동방의 박사들과 목자들, 그리고 성전에 거하던 시므온과 안나의 그 신앙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진정한 크리스마스 공동체가 되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기심과 욕심으로 우리의 예배를 오염시키는 행위를 중단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비우고 겸손히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문명이 썩는 도시를 떠나 광야의 영성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땅만 바라보며 살던 삶에서 벗어나 하늘의 별들을 보며 미래의 약속을 기다리며 꿈꾸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탄의 기쁜 소식은 진정으로 자기를 비우며 준비한 자에게만 전하여 질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가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배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열심히 기도하 며 경건한 삶을 힘쓰면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여러분의 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댓글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여 이 세상만 바라보고 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지난날들을 회개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신앙,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신앙, 이 땅에 미련을 두고 거기에 얽매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신앙, 하나님이 이룩해 가시는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고 광야의 영성과 자유함을 얻고자 노력하는 신앙이 될 수 있도록 주님이 강권하여 날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이딸이 오늘의 어두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미래의 빛을 볼 수있게 인도하여 주실 주님께 감사드리며 사랑많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여 이 세상만 바라보고 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지난날들을 회개합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신앙,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신앙, 이 땅에 미련을 두고 거기에 얽매이기 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신앙, 하나님이 이룩해 가시는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고 광야의 영성과 자유함을 얻고자 노력하는 신앙이 될 수 있도록 주님이 강권하여 날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이딸이 오늘의 어두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미래의 빛을 볼 수있게 인도하여 주실 주님께 감사드리며 사랑많은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