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아침, 거제도 지인으로부터 6년근 인삼과 진배없는 노래 선물을 전화로 받았다. ‘새해 아침 환히 밝았네 / 새론 결단하고서 / 지난 일들 모두 잊고서 새로운 맘 가지세 / 어제보다 오늘 더욱 신실하게 살면서 / 서로 돕고 사랑하여 천국 소망 이루세’ 지인은 노래에 덧붙여 다음과 같은 경구도 카톡으로 보내왔다. ‘남이 당신을 비난할 때, 절대로 말댓구 하지 말아라! 그 비난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대 빈 배 저어 오오! 호수는 돌(비난)을 던진 자에게 반격하지 않는다. 단지 시간과 스스로의 물리적 에너지로 그 고요를 되찾을 뿐이다. 비난이 쏟아질 때, 고맙다! 내 영혼을 닦아주는 숫돌이 되어줘서! 인생의 정원에서 분노의 잡초를 뽑아내고, 감사의 꽃을 심자!’ 참으로 필자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助言)이라 생각하며 2026년 병오년 첫 칼럼으로 성인(聖人: 지혜와 덕이 매우 뛰어나 길이 우러러 본받을 만한 사람)을 이루고 있는 한자를 들여다본다.
성스러울 성(聖)은 귀 이(耳)에 평평할 정(呈)이 더해진 글자다. 귀 이(耳)는 사람의 귀 모양을 본뜬 글자로‘귀’나‘듣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이다. 오른쪽 귀의 귓바퀴와 귓불을 그린 것이다. 耳자는 사람의 귀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귀의 기능인‘듣다’와 관련된 뜻을 내포하고 있다. 이과(耳科: 귓병을 전문으로 고치는 의학의 한 분과), 이순(耳順: 나이 예순(60)을 일컬음)이 좋은 용례이다. 덧붙여 옛 고문(古文)에서는 耳자가 종종‘~일 따름이다’와 같이 어조사로 쓰이곤 한다. 훈민정음 서문에서 ‘욕사인인 이습 편어일용이(欲使人人, 易習, 便於日用耳 :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가 좋은 용례이다. 평평할 정(呈)은 다시 입 구(口)에 천간 임(壬)이 결합 된 한자이다. 성(聖)자의 갑골문을 보면 큰 귀를 가진 사람 옆에 입 구(口)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성(聖)자는 타인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이나 총명한 사람을 뜻했다. 하지만 후에 뜻이 확대되면서 어떤 일에나 잘 통하고 공평하며 거짓이 없는‘성인’이나‘거룩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성역(聖域: 거룩한 지역), 성전(聖殿: 거룩한 전당이나 신전), 성제(聖帝: 뛰어난 임금, 덕이 높은 임금)가 좋은 용례이다.
사람 인(人)은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서 있는 모습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글자로 人자는‘사람’,‘인품’, ‘다른 사람’의 뜻을 가지고 있다. 人자는 한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글자이다. 상용한자에서 人자가 부수로 쓰인 글자만 해도 88자가 있을 정도로 고대(古代)인들은 人자를 응용해 다양한 글자를 만들어냈다. 혹자(或者)는 人자가 두 사람이 등을 서로 맞대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해석을 하지만, 갑골문에 나온 人자를 보면 팔을 지긋이 내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소전체(小篆體)에서는 팔이 좀 더 늘어진 모습으로 바뀌게 되어 지금의 人자가 되었다. 이처럼 人자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부수로 쓰일 때는 주로 사람의 행동이나 신체의 모습, 성품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인간(人間: 사람), 인품(人品: 사람의 됨됨이), 인아(人我: 남과 나)가 좋은 용례이다.
경남 의령군 의령읍에 이 시대에 성인(聖人)의 본보기가 되는 퇴계(退溪) 이황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덕곡서원이 있다. 처가댁(妻家宅)이 의령(宜寧)이신 이황 선생님이 겨우 기어다니려 하던 7개월쯤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이황의 어머니는 홀로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며 자식을 키웠다. ‘과부 자식은 배우지 못해 버릇이 없다.’ 이런 말을 듣지 않도록 엄하게 가르치셨다. 그래서 이황은 어머니가 걱정하는 일이 없도록 항상 자신을 살폈다. 어느 날 이황이 동네 골목에서 ‘예의(禮儀): 예도 예, 거동 의’라는 글자를 땅바닥에 적고 있었다. 그때 동네 아이들이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자랐다는 아이구나? ” 이황은 화가 났지만, 어머니 말씀이 생각나서 꾹 참았다. “예의를 지키며 말하면 좋겠어.”“왜, 기분 나쁘게 말하는 거야?” 동네 친구들은 큰 소리로 빈정거렸다. “콩알 같은 눈을 똑바로 뜨고 대꾸하는 걸 좀 봐?” “예의를 글로 배웠어.” “아비 없이 자란 녀석이란......”이황은 참을 수 없어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어쭈, 한 대 치겠다. 어디 쳐봐! ”“아비만 없는 줄 알았는데, 배짱도 없구나?”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이황은 아이들과 싸웠다. 아이들이 싸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어머니는 회초리를 들었다. “왜 싸웠느냐?” 이황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라고 그리도 일렀는데!” “어미 말이 우습더냐?” 이황은 회초리를 맞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여종은 낮에 있었던 일을 마님께 아뢰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이황의 어머니는 아들 방을 찾았다. “황아! 자느냐?” 기척이 없자 방으로 들어가 다리에 약을 발라 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얼마나 아팠을꼬...... 미안하구나!” “네 맘도 모르고......” “아이들 말에 얼마나 화가 났으면 싸웠을까?” 어머니의 혼잣말을 자는 척하며 들은 이황은 깊이 반성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좀 더 참았어야 했는데......’ 그날 이후 이황은 친구들과 싸우지 않았다. 그리고 예의를 다해 사람을 공손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덧붙여, 집안 노비에게도 존댓말을 한 퇴계 이황(李滉) 선생의 평생 좌우명은 사무사[思無邪, 생각 사(思), 없을 무(無), 간사할 사(邪) :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다]였다. 2026년 새해 아침, 붉은 말(馬)의 해에 퇴계 이황 선생님의 좌우명을 곱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