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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은 말씀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은 말씀을 읽거나 또는 설교를 들을때 기대하는 마음으로 듣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변화 되기를 사모 하십시오. 기도하실 때 진짜 오늘 받은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대로 살기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검입니다. 즉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기록한 것은 목사가 아니라. 성령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람은 말씀으로 거듭나는데 목사가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뿐 아니라.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행전6:4절에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슴사역에 힘쓰리라하니”
지난 주간 용문산 기도원 집회에 갔다 왔는데, 어떤 강사님이 여러분의 담임목사님이 하나님의 대언자 이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설교에 귀를 기울이면 안됩니다. 라고 강조하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맞지만 한편으로는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담임목사가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고, 그분이 우리 교회의 영적인 목자이긴 맞지만 그분의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이나, 영혼들을 위해 충분하게 기도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의 지도력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니까 다른 방속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에 목회자들이 아주 많이 왔기 때문에 목회자들 여러분 정신 차리고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셔야 하나님 앞에 버림받지 않습니다.(겔3장33장)라고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너무나 정치적이고 각종 모임과 식사 자리에 참석하고 그 외에도 쓸데 없는 일로 너무 바쁩니다. 강해 설교로 대부분 전하고 성경을 해석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 시간을 너무 적게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예수님이 명령하신 대로 “가르쳐 지키게 할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어보면 너무나 기름부음이 없습니다.(살전1:5/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설교에 기름부음이 넘치도록 기도하고 성경에 집중해야 합니다. 행전20장에 바울이 얼마나 성경을 집중적으로 가르쳤는지 그곳에는 “말씀에 잡혀”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성경 그대로 전해야 할 뿐 아니라. 강력한 기름부음이 임하도록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1:25)
여기에서 “들여다본다”는 표현이 보여주듯이 진리를 사랑하고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설교자가 참 진리를 전하면 듣는 모든 사람이 도두 거룩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설교를 전할 때 어떤 마음으로 받으라고 하는가 하면
살전2:13절에서,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설교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겸손하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비숫한 말씀이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사66:2절입니다.
일례로 고넬료 집에 모인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고넬료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놓고 기다렸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자 그 발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베드로는 급히 일으켜 세우며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고 말하며 말렸습니다. 그때 고넬료가 뭐라고 말했습니까?
행전10:33절에,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전하는 설교가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로 받고 그분이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겸손하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행10:44) 그런데 훗날 베드로는 이 사건을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행전15:7-9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날 설교를 들은 사람들의 마음이 깨끗하게 되는 일이 일어났다고 증언학 ㅗ있습니다. 그런즉 거룩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과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으면 성령이 임하고 그 결과 마음이 깨끗해 집니다. 이것이 은혜이며 특권인가? 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성경의 지식을 얻기 위한 그런 성경 공부에만 관심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이 거울을 보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똑같이 말씀을 통해 자기 실상을 깨닫기 위함입니다. 자기의 살상을 모르는 자들은 희망이 없습니다. 심령이 가난하고 통회하며 하나님 말씀 때문에 두려워 떠는 참 신자가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말씀을 듣고 적나라한 자기의 실상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단지 소원이나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죄를 버리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 회개하며 기도하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우리 교회와 여러분들이 그런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편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라고 문구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 아십니까? 그것은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와 “실천하는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실천 즉 변화의 비결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즉 진리를 사랑하고 깊은 관심읋 가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사모하며 듣는 것이 변하 되는 비결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외에 다른 비결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그렇게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다가 실패한 후 뭔가 새롭고 특별한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방법도 특별한 방법도 없습니다. 성경을 주의해서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실제로 말씀을 잘 듣는 것이 비결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시119:11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이 구절은 죄짓지 않고 말씀대로 살수 있는 비결을 보여줍니다. 비결은 바로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을 때 되어집니다.
눅8:15“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
이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씨뿌리는 비유는 말씀을 어떻게 듣느냐에 대한 비유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전2:13절에, 13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이 구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은 놀랍게 변화된 모범적인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설교를 들을 때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은 것이 그 비결입니다.
고후3:2-3절,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이 구절도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을 통해 일어나는 일을 기록한 것이므로 같은 의미입니다.
히8:10절에도,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히10:16-17절, 16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 구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참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듣는 것이 참으로 변화와 성화의 비결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다음과 같이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목사님 그런데 저도 그렇게 오랫동안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었는데도 변화가 안일어 납니다. 왜 그럴가요?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러나 다른 비결은 없습니다. 그러나 잘 들으세요, 만일 그렇게 했는데도 변화가 안일어 납니까?
[거듭난 사람도 아직 몸의 구속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영혼을 거스르는 육체의 정욕이 올라옵니다. 또 문화 자체가 타락했고 너무 악한 시대입니다. TV를 시청하든, 영화를 감상하든지, 인터넷을 접속하든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선정적이고 음란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심지어 광고와 뉴스도 안심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 세상은 온통 유혹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계속해서 부채질 합니다. 마귀는 타락한 세상의 문화를 충동하여 끊임없이 유혹하고 범죄하게 하려고 합니다. 반면에 우리는 주일날 한편의 설교를 듣고 세상 유혹에 반하는 도전과 자극을 받는 것이 전부입니다.
과연 이것으로 일주일을 버티는게 가능합니까? 참 복음과 진리를 듣는 것이 변화와 성화의 비결인 것을 맞습니다. 그러나 용량이 부족합니다. 그로 인해 충분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내어서 가정에서 개인적으로 성경을 대하는 시간과 말쓰을 듣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이것이 참 비결입니다.]
여러분, 좋은 설교를 자꾸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기도원에가서 집회도 참석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롬10:17절에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또, 믿음이 생겨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롬1:5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어떤 방법이 없습니다. 순종할수 있는 믿음이 생기도록 말씀을 더 많이 들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말씀대로 살아야 하겠다. 이런 의지가 어디에서 생깁니까? 설교 들을때마다 생깁니다.
“정신차려야 하겠다. 회개해야 하겠다. 이대로 살면 안된다. 말씀대로 살아야 하겠다./!”이런 소원과 의지가 언제 생깁니까? 설교를 들을 때 생깁니다. 그런데 그런 수원과 의지가 생겼는데 이 세상에서 가정과 사회에서 사업터에서 말씀대로 살아갈 만큼 충분히 강합니까? 그렇지 못합니다. 그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뎡연히 더 많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런 수원과 의지가 더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듣는 시간과 설교를 듣는 총량을 늘려야 합니다.
유명한 복음 성가 중에 다음과 같은 찬양이 있습니다.
“주님뜻 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
뒤돌아 보지 않겠네!”
그런데 많은 경우 아무리 이 찬송을 많이 불러도 별 효과가 없습니다.
또 성경 말씀중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시편51:10절에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그런데 이런 기도를 해도 별효과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전혀 무익한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을 통해서 변화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설교를 충분하게 들은 것과 똑같은 효과를 발휘한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기도를 많이하는 것만으로는 사람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잠언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잠언 28:9절에, 9 사람이 귀를 돌려 율법을 듣지 아니하면 그의 기도도 가증하니라.
참변화는 찬송하며 결단하고 기도 좀 한다고 변화되지 않습니다. 말씀을 통해 마음이 새롭게 될 뿐 아니라. 말씀을 더 들음으로 계속 자국과 도전을 받아 마음이 영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회를 거듭할수록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가 더욱 강해집니다. 죄짓는 것도 원리가 같지 않습니까?
어떤 유혹이나 자극, 시험이든지 처음에는 견딜만합니다. 그러나 두 번째는 더 강해지고 세 번, 네 번 반복될수록 더 강해집니다. 그래서 굴복하게 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있는데 원한다고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소욕은 유혹이 될만한 것을 자꾸 접하면 강해지고 성령의 소욕은 말씀을 통해 은혜받고 도전받을수록 더욱 강해집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더 많이 들어야 합니다.
쉬운예로 밥 한 숟갈 먹고 힘쓸수 없습니다. 만약에 소식한다면 그것먹고 힘이 생기더라도 잠깐 지나면 힘이 다 소진됩니다. 적어도 밥 한그릇은 먹어야 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설교 한번 듣고 일주일 내내 말씀대로 살기를 기대하고 “나는 말씀대로 살고 싶은데 왜 회개하고 기도해도 안되지?” 이렇게 말하면 됩니까? 그러므로 그 분량으로 승리하려는 생각을 버리시고 충분하게 말씀을 먹오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시편에 나오는 시 한편을 통해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잘 아시는 시편1:1-3절입니다.
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에 나오는 “복 있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뒤 나오는 구절들이 그 증거입니다.
4-6절을 보시면
4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승리하는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일주일에 한번 설교 듣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날마다 말씀앞에 서는,시간을 많이 가지기를 바랍니다. 성경적이고 성령 충만하여 날 선 검과 같이 찌르는 설교!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 강하게 도전받는 설교! 정신이 번쩍 나게 하는 설교! 마음과 각오를 새롭게 하는 설교를 지금보다 더 많이 들어야 합니다.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노무현 시대에 국정원장하고 법무부 장관까지 역임하신 진짜 신앙인 김승규 장로님에 대한 간증입니다. 그분은 1년에 호텔에서 다 모여서 가족전체의 신앙을 점검한다고 합니다. 성경을 얼마나 읽었는지? 그리고 자기가 존경하는 변승우 사랑하는 교회 목사님의 설교를 잘 듣고 있는지 그리고 죄를 구체적으로 얼마나 이기고 있는지를 점검한다고 합니다.
결 론을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란?)
하나님은 사람을 당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드셨다고 합니다.
창1:26-27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성경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유일하게 사람을 상대로만 사용되었습니다. 다른 피조물들은 “그것들의 종류대로”창조된 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이 사람과 다른 피조물들간의 차이 입니다.
창9:6 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동물은 잡아먹어도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면 큰 죄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창세기1:26절에 보면 사람을 단지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라 모양대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형상은 뭐고 모양은 무엇입니까?
많은 학자들이 형상과 모양이 서로 다른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자(존 하틀러)는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형상은 복사본 혹은 원본과 아주 흡사한 형태를 가리킨다. ...모양은..두 대상의 유사함을 강조한다.]라고 합니다.
또 어떤 학자는(부루스 윌키)이렇게 해석합니다.
[중요한 추가인 모양대로는 인간이 단지 하나님의 모사품이고 따라서 그분과 구별된다는 것을 강조한다. 고대 근동에서는 신의 형상이 신 자체와 동등시되는 반면 모양이라는 단어는 성경의 세계관에서 하나님과 인간을 분명하게 구별하는 기능을 한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는 뉴에이지 사고로부터 구별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으니 단지 모양일 뿐이다... 오직 둘째 아담이신(참조, 시8편 히2장)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형상의 대리적 기능을 완전하게 성취하신다. 유일무이하게 하나님의 형상의 현시이신 분이요 하늘의 인자요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분이 진정한 형상이시며 그래서 땅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왕이시다.]
멋진 설명입니다. 그러나 형상과 모양이 다르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케네스 매튜스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형상과 모양은 1:26젎과 5:3절에서만 함께 나오는데 5:3절에서는 어순이 다르다. 두 용어는 용법상 본질적으로 같은 것으로 드러나서 상호 대체적이다.. 이 용어를 상호 대체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의 근거는 시리아의 텔 페케리예(고대의 시칸)에서 복원된 9세기 조각상에서 나오는데, 여기에는 앗수르와 아람어의 두가지 언어로 된 본문이 담겨있다. 이 조상과 관련하여 형상과 모양이 짝을 이루며 같은 의미로 사영되었다.]
여러 학자가 이같은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형상과 모양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또한 학자들이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었다”는 말씀을 “사람을 영적 존재로 만드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교제할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 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사람을 만든 목적과 관계가 있고, 사람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민약에 인간을 만든 목적이 단순하게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만들었다면 굳이 몸을 만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영으로만 만들어 천국에서 함께 지내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천지창조후 마지막으로 사람을 만드셨고 사람을 땅에 두셨습니다. 이것은 땅에서 사람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워 모든 만물을 다스리게 하길 원하셧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을 만든 목적이며,성경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창세기1:26,28절입니다.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시편115:16절에도 있습니다.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그러므로 사람은 단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단지 영을 가진 영적인 존재로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이땅에서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로 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놀라운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이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단지 영이 아니라. 영혼육 전체라는 것입니다.
동물은 미미하지만 혼이 있습니다.
식물은 몸만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동물 식물,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이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사람의 영도, 혼도, 몸도 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이 과연 인간에게 어떤 부분인가? 라고 질문합니다. 그러나 영혼육 전부가 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왜 만드셨을까요? 하나님의 대리자로 삼아 땅을 다스리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천사들과 달리 동물들은 영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보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대리할 존재로 영 혼 육을 가진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사람의 영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능을 합니다. 영끼리 서로 통하게 됩니다. 그러나 동물들은 영이 아니라 혼과 육입니다. 때문에 사람을 영뿐 아니라. 혼과 육을 가진 존재로 만들어 동물들과 소통하며 땅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또 사람이 땅에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려면 동물들이 사람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인식할 수 있도록 영,혼,육 전체가 하나님의 형상이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단지 영이 아니라 영,혼,육 전체를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만든 이유입니다.
그나저나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은 사람의 영과 관계가 있고 몸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학자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조직신학자 웨인 그루뎀의 주장은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을 닮은 육체적인 면/ 우리의 육체도 하나님의 형상 대로 만들어졌다는 말이 일리가 있는 말일까? 하나님은 영이시다.(요4:24)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적인 모습은 하나님도 육체를 가지고 계심을 암시한다고 보아서는 안되고, 하나님이 물질적이거나 육체적인 것을 가지고 계시는 듯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형상을 만드는 것은 죄가 된다.(출20:4,시115:3-8,롬1:23을 보라) 우리의 육체가 하나님이 육신을 가지고 계심을 의힌다고 암시하도록 해서는 안됨으로 불구하고 우리의 육체가 하나님의 특징을 반영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에 육체적인 연 중에서도 포함 시켜야 할 면은 있다고 생각한다. 가령 우리의 육신은 눈을 통해 사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닮은 특성이다. 왜냐하면 비록 우리처럼 육신의 눈을 가지고 보시는 것도 아니고 우리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시지만, 하나님도 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적인 귀를 가지고 계시지는 않지만 우리의 귀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하나님을 닮은 능력이다. 말할수 있는 능력을 주는 우리의 입도 역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하나님의 창조물을 이해하고 느끼고 맛보는 우리의 감각은 하나님도 자신도 당신의 피조물을 즐기고 느끼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처럼 사람의 영과 혼뿐 아니라. 몸을 하나님의 형상 및 모양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측면이 아니라. 기능에 대한 것으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영시지만 형체가 없는 분이 아니라는 점이빈다.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육체가 없지만 영체가 있습니다. 비근한 예로, 사람의 영에도 영체가 있습니다. 부자는 음부에서 자기 혀에 대해 말했스빈다. 또 나사로의 손가락에 대해 말했습니다. 무엇보다 나사로를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에 영체가 있고 그 사람의 육체와 똑같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에 영체가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영에 영체가 있다면 영이신 하나님께도 영체가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 영체가 있다는 사실은 출애굽기에 매우 잘 나타나 있습니다.
출애굽기33:18-23절에 보신면 분명하게 형체가 있다고 나타나 있습니다.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보십시오.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손도 있고, 등도 있고, 얼굴도 있다고 합니다. 즉 영이지만 분명하게 형체가 있습니다. 때문에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육체의 몸뿐 아니라 영의 몸도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천사들은 영이지만 그들은 어떤 형태나 영의 몸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자신도 영이지만 어떤 사람들이 이 사실을 해석하듯이 하나님이 단지 영향력이나 우리가 느낄수 없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모양이나 어떤 형태의 영의 몸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성경은 모세가 시내산 위에 있을 때 하나님께 얼굴을 마주하고 말을 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출33:20) 모세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은 보여질수 있었던 얼굴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모세에게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가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을 보지 못할리라.(출33:22-23)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도 영체가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참으로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영체가 사람과 그 뫃습이 같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에스겔과 다니엘서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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