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아픔(成長痛)
스페인 투우경기 / 플라멩코 춤(카르멘)
나의 어린 시절, 헤르만 헤세(Herman Hesse)의 소설 데미안(Demian)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던 말이 ‘알에서 깨어나라’라는 구절(句節)이었다.
일상(日常)에 길들고 습관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은 그 카테고리(Category)를 벗어나는 일이 쉽지 않고 그 속에 안주(安住)하려고 하며, 어쩌면 그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그 카테고리(Category:範疇)를 과감히 벗어나라는 말이겠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이 설정한 범주 속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나의 어린 시절, 헤세의 ‘알에서 벗어나야만 새로운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는 그 문장이 나에게는 그 범주를 뛰어넘게 하는 너무도 멋진 말로 가슴에 와 닿았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곤충들의 변태(變態)도 매우 흡사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에서 징그러운 애벌레로, 다시 모든 것이 정지된 고치 속의 번데기 시절을 보내고 그 껍질을 박차고 나오는 순간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을 비상할 수 있는 나비(나방)로의 화려한 변신이 기다린다.
또 작은 꽃씨를 드려다 보며 활짝 핀 아름다운 꽃을 머릿속에서 떠올려 보는 것도 그렇다.
미국의 영화감독 마이크 니콜스(Mike Nichols) 감독의 1967년도 작품인 영화 ‘졸업(The Pallbearer)’은 특히 아름다운 삽입곡(揷入曲)들로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던 작품이다.
사이먼과 가펑클(Simon &Garfunkel)이 불러 크게 히트한 ‘침묵의 소리(The Sound of Silence)’, 또 ‘스카보로의 추억(Scarborough Fair)’ 등은 그 특유의 아름다운 선율로 젊은이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아름다운 삽입곡과는 달리 영화 내용은 상당히 부도덕(不道德)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들이 많아서 보는 내내 놀라웠던 기억이 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벤자민(Benjamin-더스틴 호프만)은 고향으로 돌아와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유부녀 로빈슨(Robinson) 부인의 노골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불륜(不倫)의 관계에 빠지게 되는데....
얼마 후 지방 대학을 다니던 로빈슨 부인의 딸 엘레인(Katharine Ross)이 돌아와 벤자민을 만나서 서로 호감을 보이자 엘레인의 아버지(로빈슨의 남편)는 둘이 사귀어 보라고 하지만 질투에 눈이 먼 로빈슨 부인은 벤자민이 자기를 강간(强姦)했다고 거짓으로 폭로한다. 그 말을 들은 딸 엘레인은 절망하여 대학으로 돌아가고, 그곳에서 다른 남자와 결혼식을 올린다는 말을 들은 벤자민은 그곳으로 달려가 결혼식장으로 들어서던 엘레인을 끌고 도망을 간다.
결말은... 엘레인이 마음속으로 진정 사랑했던 남자는 벤자민 임을 고백하고 해피엔딩....
우리나라 정서(情緖)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19세 이하 관람 불가...
영화 제목 Pallbearer는 우리나라 말로 직역하면 ‘장례식에서 관(棺) 뒤를 따라가는 사람’인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졸업(卒業)’이라는 멋진 제목을 얻었다.
러시아의 문호 투르게네프(Ivan Turgenev)의 소설 ‘첫사랑’도 그런 맥락으로, 아버지의 연인 지나이다(Zinaida)를 짝사랑하는 소년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데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한다.
첫사랑은 누구나 겪는 성장기의 아픔이지만 그 대상이 하필이면 아버지의 연인이라니 너무나도 웃기는 이야기다.
오페라 카르멘(Carmen)은 프랑스의 작곡가 조르쥬 비제(Georges Bizet)의 작품인데 원작은 프랑스 작가 프로스페르 메리메(Prosper Mérimée)의 소설 ‘카르멘(Carmen)’이다.
군인 신분인 돈 호세(Don Jose)와 집시 여인 카르멘(Carmen)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가 그 줄거리로 강렬한 집시(Gypsy)풍의 삽입 아리아(Aria)로, 또한 매혹적인 집시여인의 플라멩코 춤과 자유분방한 카르멘의 매력으로 지금까지도 많은 고전음악 애호가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오페라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La Traviata/春姬),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La Boheme)과 함께 3대 오페라로 꼽기도 한단다.
카르멘의 삽입곡으로는 ‘투우사의 노래(Treador)’, 스페인 민요풍의 ‘하바네라(Habanera)’ 등이 우리 귀에 익숙하다.
그런데 삽입곡들은 너무 정열적이고 아름답지만, 이야기의 줄거리도 너무나 가슴이 아픈 내용이다.
군부대 위병(衛兵)이던 순박한 청년 돈 호세(Don Jose)는 성냥공장에 다니는 자유분방한 집시 여인 카르멘(Carmen)이 어느 날 장난으로 장미꽃을 자신에게 던지자 사랑에 빠진다.
온갖 정성과 진심을 담아 고백하는 호세의 사랑을 카르멘은 일언지하(一言之下)에 거절하고, 투우사(鬪牛士)를 비롯한 뭇 남성들의 품을 넘나드는 자유분방한 여인 카르멘, 그러나 투우사를 비롯하여 카르멘과 가까이 사귀던 남자들은 모두 불행한 사고를 당하여 파멸(破滅)에 이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언덕의 풀밭에 둘이 마주 앉아 돈 호세는 마지막 피 끓는 애원으로 사랑을 호소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카르멘의 싸늘한 답변뿐이다.
절망에 빠진 돈 호세는 사랑하는 여인 카르멘의 가슴을 칼로 찌르고는 가슴에 안고 애처로운 눈으로 드려다 본다.
숨을 거두며 공허(空虛)한 눈동자로 쳐다보는 카르멘을 마주 보며 오열하던 돈 호세는 자신도 그 칼로 자살하고 만다.
그 아픈 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아~, 이 얼마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짝사랑의 종말인가?
카르멘은 요즘 말로 진정한 팜므파탈(Femme fatale)이다. ※ 팜므파탈(Femme fatale)-마성(魔性)을 지닌 여인.
나는 중학교 때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요즘 무슨 책을 읽느냐고, 또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뭐냐고 물으신 적이 있었다.
나는 서슴지 않고 ‘카르멘’이라고, 특히 마지막 장면의 돈 호세가 사랑하는 여인을 죽이고 자살하는 대목이 감명 깊었다고 말하자.... 선생님을 내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먹이며,
‘네가 지금 몇 살인데 그걸 읽어 ? 뭐 감명을 받았다고 ?’ 하시던 기억이 새롭다.
나는 ‘아니 이게 무슨 말씀? 그게 뭐 어때서요? 우리 선생님이 왜 이러실까?’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성장기의 아픔과 더불어, 대학 시절 군부 독재에 항거하던 60년대의 학생운동을 보며 겪었던 심적 갈등, 산모(産母)의 뱃속에서 양수(洋水)를 마시던 작은 생명이 몸 밖으로 나오며 첫울음과 함께 산소호흡을 시작하는 신생아를 보며 느꼈던 생명의 신비로움....
이런 일련의 생각들을 정리해 보면 지극히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것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상식에서 벗어난 일, 무언가 내게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일에 충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위에 열거한 이야기들은 어찌 보면 하나같이 상식(常識)에서 벗어난, 충격적인 사건들인데 그것을 읽거나 보는 사람들은 충격 속에서도 대리만족(代理滿足)을 얻고 빠져드는 것 같다.
사람들은 이런 탈(脫) 일상적인 것들을 두려워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동경(憧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성장기의 청소년들은 강도(强度)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이 성장통(成長痛)을 겪게 되는데 나이를 먹어서도 이런 갈등이 말끔히 지워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애써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있어 그런 갈등이 없는 것처럼 위장(僞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정연수 담임선생님(당시 나는 트럼펫 연주) / 관동중 B반 영재들(담임선생님과 촬영/1963년 옥천사진관)
※강릉 농고 병설(倂設) 관동(關東)중학교 (1회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