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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상 글 >
부활시기를 지내며...
글 : 윤 클레멘트 (양호) 신부님
<전주교구 소속 지도 신부>
계절은 봄, 전례는 부활시기, 때는 만물이 시작되고
새로운 가꿈을 시작하는 아름다움이 열리는 시간들이다.
하늘을 우러러 땅을 바라보고 나무, 꽃, 풀, 바람, 이슬을 보아도
때로는 모든 것이 슬픔이고 아픔이다.
몸, 맘, 영혼은 슬픈 영가를 부르고,
인간의 약한 존재성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들 속에서 떠남과 이별을 헤아리기도 한다.
쉬이 다가오는 어둠과 그늘, 종종 가까이와 머무는 상처들...
그러는 인간의 길, 그렇듯 슬픈 존재성의 땅에서
우리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깊은 숨을 내쉬며
다시금 새로움을 향해 눈을 든다.
날마다 새롭게 부활을 그린다.
“샬롬!” 부활하시어 날마다 새롭게 오시는 주님!
아침마다 새 하루를 주시는 주님! 당신으로 우리 부활케 하소서.
우리도 당신처럼 죽음으로써 살고 자비와 용서로 새롭게 일어나며
용기와 희망으로 거듭 태어나는 당신의 부활을 살게 하소서.
당신 부활로 사랑하게 하소서.
부활하신 주님!
당신의 부활과 현존으로 우리 살아가는 생애도 부활과 희망으로 기쁨이게 하소서.
빛과 생명으로 약동하게 하소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깜박이는 심지를 꺼버리지 않는 자비와 인내의 당신 은총으로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죽음으로써 사는 부활이게 하소서.
자비와 용서로 새롭게 약동하는 당신의 사람들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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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종의 칙서 >
‘자비의 특별 희년’ 선포 칙서 자비의 얼굴 - 제5부 -
글 : 교종 프란치스코
하느님의 종들의 종, 로마 주교 프란치스코가 이 편지를 읽는 모든 이에게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빕니다.
13. 이 희년에 우리는 ‘아버지처럼 자비로워지라’ 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고자 합니다.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상기시켜 줍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이는 힘들지만 기쁨과 평화가 충만한 삶을 제안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명령은 당신의 목소리를 듣는 모든 이를 향한 것입니다(루카 6,27참조). 자비를 실천할 수 있으려면, 우리는 먼저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곧 우리를 향하신 말씀을 묵상할 수 있게, 침묵의 가치를 되찾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관상하고 우리의 생활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14. 성년에 하는 순례는 특별한 표징입니다. 순례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삶에서 지나온 길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삶 자체가 순례이고, 인간은 나그네, 곧 간절히 바라는 목적지를 향한 길을 가는 순례자입니다. 로마나 세상의 다른 곳에 있는 성문을 향하여 모든 이는 자신의 능력에 맞게 순례를 하여야 합니다. 순례는 자비 또한 그 목적지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노력과 희생을 다하여 그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순례는 회개의 계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성문을 지나가면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를 감싸 주시어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하시듯이 우리도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힘써 노력할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우리에게 순례의 단계를 보여 주십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 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 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6,37-38). 주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심판하지 말고, 단죄하지 말라고 요청하십니다. 하느님의 심판을 피하려는 사람은 누구나 제 형제자매를 심판하여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심판할 때 겉으로 드러난 것만을 보지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내면 깊숙한 곳을 보십니다. 질투심과 시기심에서 나오는 말은 얼마나 해롭습니까! 어떤 사람들을 험담하는 것은 그들을 곤란한 입장에 빠지게 하고 그들의 명예를 떨어뜨려 사람들의 구설수에 오르게 합니다. 우리가 심판하거나 단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다른 사람의 장점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는 우리의 편파적인 판단과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어떤 사람을 괴롭게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자비를 표현하기에 부족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용서하고 자신을 내어주라고 요청하십니다. 곧 우리가 먼저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기에, 용서의 도구가 되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한없는 자비를 베푸셨음을 깨달아 우리도 남에게 관대하게 대하라고 요청하십니다.
성년의 표어는 ‘아버지처럼 자비로워져라’ 입니다. 자비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에 대한 증거를 발견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대가를 바라지 않으시고 당신을 온전히 거저 내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부르면 언제든지 우리를 도와주러 오십니다. 교회가 날마다 기도를 “하느님, 저를 구하소서. 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시편 70[69].2)로 시작하는 것은 정말 아름답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간청하는 도움은 이미 우리를 향한 하느님 자비의 첫 단계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놓인 나약한 상황에서 우리를 구하러 오십니다. 그분의 도우심은 당신 현존과 가까이 계심을 우리가 깨닫도록 도움을 주십니다. 주님의 자비가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어 우리도 나날이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로워질 수 있습니다.
- 5월호에 제6부 연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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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일 / 하느님의 자비 주일
2016. 4. 3
요한 20, 19~31
♠ 복음 연구
* 19절 : 제자들은 ‘주간 첫날 저녁’, 유다인들의 박해가 무서워서 문을 닫아걸고 모여 있었다. 예수님은 닫힌 문을 통해 들어와서 제자들 가운데 서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인사하셨다. 평화의 인사는 통상적 인사일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온전한 구원과 행복을 베푸신다는 뜻이다. 평화는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속죄의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여 그들을 죄와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하신 데서 비롯된 선물이다.
* 20절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의 손과, 창에 찔리신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바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임을 알리고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생긴 상흔을 그들에게 보여주셨다는 말은, 환영처럼 가상으로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나타나셨음을 강조한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뵘으로써 영속적이고 완전한 기쁨, 천상의 행복을 체험했다.
* 21절 :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평화를 베풀고 그들을 파견하셨다. 부활하신 그분은 몸으로는 제자들과 함께 계시지 않아도 영의 힘으로 평화를 베푸신다. 평화는 그들이 낙담하지 않도록 예수님이 협조자 영을 통해 그들 가운데 현존하며 베푸시는 구원의 총체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평화의 사자로 이 세상에 파견하셨다.
* 22절 : 제자들은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성령을 받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부활절 주일 저녁에 그들에게 나타나서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아라! 하고 성령을 베풀고 그들을 세상에 파견하셨다. 성령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가신 뒤 파견하신 ‘협조자’이고 그들과 영원히 함께 있으며 예수님 말씀의 뜻을 설명하고 그분께 받은 사명을 이행하게 한다. 이처럼 “성령을 받아라!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당신의 부활로 성취된 새로운 창조에 제자들을 참여시킨다는 뜻이다.
* 23절 : 성령을 체험한 제자들은 사람들에게 성령을 베풀고 사죄권을 행사한다. 이 사죄권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어린양이신 예수님의 속죄 죽음과 부활에 기인하고 그분이 보내주신 성령을 통해 실현된다. 성령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죄의 용서와 생명을 받는 반면, 성령을 거절하는 사람들은 회개를 거절하기 때문에 죄를 용서받지도 못하고 파멸로 떨어진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베풀고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거나, 용서하지 않을 수 있는 권한, 구원이나 심판을 선언할 권한을 주셨다.
* 24~25절 : 열두 사도 중 하나이고 별명이 ‘쌍둥이’인 토마스는 예수에 대해 회의적이고 비관적이었다. 그는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그분의 손과 발의 못자국을 보고 그분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지 않고는 결코 그분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분의 상흔을 손으로 느껴보려고 했다.
* 26~27절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여드레 후 주일날 제자들이 문을 닫아걸고 토마스와 함께 방안에 모여 있었을 때 그들 가운데 들어오셔서 평화의 인사를 하셨다. 그분은 당신 옆구리와 손의 상흔 속에 손가락을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는 토마스에게 그렇게 확인해 보고, 불신을 고집하지 말고, 당신의 부활을 믿고 따르라고 이르셨다.
* 28절 : 토마스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에 심오한 뜻이 있음을 알아들었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자기 삶을 결정하시는 주님이자 하느님과 같은 분으로 받들어 모신다는 뜻으로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했다.
* 29절 : 토마스는 예수님의 발현에 힘입어 적절한 믿음을 받았다. 그분은 당신을 눈으로 보고서야 부활을 믿는 토마스를 책망하셨다. 토마스는 영적인 몸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육안으로 보지 않고 믿음의 눈으로 만나 뵈었다. 우리는 예수께서 성령의 힘으로 보이지 않게 현존하시는 오늘날 복음의 말씀을 듣고서 그분의 부활을 믿고 따른다. 이처럼 우리의 믿음도 차원이 높은 믿음이다.
* 30~31절 : 표징들은 예수님이 공적 활동기간 중에 행하신 것으로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당신의 권능을 미리 드러내는 것이다. 요한 복음사가가 복음에 기록한 표징들은, 독자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따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요한복음은 예수께 대한 믿음을 일으키고 굳건하게 하며 심화시키는 신앙의 증언서요, 영생을 위한 길잡이이다.
♠ 복음 요약 :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무서워 문을 닫아걸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기쁨을 주신다. 이어 당신 수난의 흔적을 보여 주시며 평화를 빌어 주시고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용서할 의무와 권한, 즉 사죄권을 주신다. 교회에 전해져오는 사죄권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선물이며 성령의 작용으로 이루어진다. 토마스 사도는 동료 사도들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야 “저의 하느님!”하고 고백하며 믿게 된다. 그러나 보지 않고서 믿는 사람들이 더 훌륭한 것이다.
♠ 대화 방향 : ① 제자들은 어떻게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되었는가? 예수님은 그들에게 발현하신 대로 우리에게 나타나시지 않는다. 우리는 어떻게 그분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는지 나누어 봅시다.
② 성령을 체험한 사람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위해 심부름을 해야 한다는 사명을 느낀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누어 봅시다.
♠ 참고 문헌 : ▪ 말씀의 등불 (가톨릭신문사) ▪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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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3주일
2016. 4. 10
요한 21, 1~14
♠ 복음 연구
* 1절 : 예수님은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일곱 제자들에게 당신을 부활하신 주님으로 계시하셨다. 당신이 하느님의 영광과 이름을 드러내려고 이 세상에 왔다고 하셨는데,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당신을 보여줌으로써 이 계시활동을 실현하셨다. 또 우리는 예수님의 이러한 계시활동을 보고 예수님이 다시 와서 당신을 드러내실 날을 예상하게 된다.
* 2-3절 : 예수님이 당신을 드러내 보여주신 제자 일곱은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 다른 두 제자였다. 시몬의 이름이 제일 먼저 나온 것은 그가 제일 중요한 인물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마지막에 나오는 두 제자 중 하나는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이고, 다른 제자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나타나엘은 열두제자 명단에는 나오지 않는다. 시몬 베드로가 나머지 여섯 제자들에게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고 하자 그들이 따라 나섰다. 그러나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고 어떤 부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뵈었다는 말을 듣고 당황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이 말을 믿지 않고 현세의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다.
* 4-8절. 11절 : 제자들은 호숫가에 서 계신 예수님이 누구인지 식별하지 못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신비스러운 영적인 몸으로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부활하여 영광을 입으신 예수님의 몸은 이 지상의 실존방법과는 다른 차원에 속하고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렵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이 물고기를 잡지 못했다는 대답을 듣고 그물을 배 오른쪽으로 던지라고 이르셨다. 이쪽에 물고기가 많이 잡힐 것을 초인적인 힘으로 알고 계셨던 것이다. 과연 물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배로 끌어올릴 수 없을 정도나 되었다. 모두 백쉰세 마리가 그물에 가득 들어있었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던 제자는 이 물고기 기적을 보고 호숫가에 계시는 분이 예수님이심을 알아 뵈었다. 그는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을 때에도 베드로보다 먼저 달려가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알아 뵌 이 제자는 베드로에게 그 분이 예수님이라고 알려 주었다. 베드로는 물고기를 호숫가로 끌고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옷을 벗고 있다가 겉옷을 두른 채 즉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성급한 그는 될수록 빨리 예수님 곁으로 가려고 서둘렀다. 그 동안 다른 제자들은 물고기가 가득 든 그물을 배로 끌고 물가로 왔다. 물에서 백 미터쯤 떨어져 있었다. 제자들이 백쉰세 마리나 되는 많은 물고기를 잡은 기적은 루카복음처럼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을 이행함을 상징한다. 많은 학자들은 에제키엘 47장에 대한 예로니모의 설명에 따라 이 숫자가 모든 물고기 종류를 가리킨다고 여긴다. 이 숫자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왕국으로 인도하는 사도들과 그리스도교회의 사명이 모든 민족을 위한 것이라는 상징적인 뜻이기도 하다. 많은 물고기는 수많은 다양한 종족을 상징한다. 수많은 종족이 그리스도의 교회 안으로 들어와도 그물,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교회가 분열되거나 파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 올렸다. 그가 사람들을 하느님의 왕국으로 인도하는 사도직을 이행하는데 다른 사도들보다 더 우선권을 가진다는 뜻이다. 공관복음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 모든 민족을 회개시키는 사명을 주셨다. 예수님이 사랑하신 그 제자는 비록 호숫가에 서 계신 분이 예수님이심을 제일 먼저 알아 뵈었지만 이 우선권을 베드로에게서 빼앗지 않았다.
* 9-10절 : 제자들이 뭍에 내려오자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으며, 빵도 있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방금 잡은 물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게 하여 아침상을 마련해주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영적인 몸으로 변화한 모습이기 때문에 바로 알아 뵙기 어렵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침상을 마련해주신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몸으로 나타나신 주님이심을 의심하지 않았다. 예수님은 당신이 직접 빵과 물고기를 잡수시지는 않아도 아침상을 마련하여 제자들과 친교를 나누셨다.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셔서 빵과 물고기를 주신 것은 그들과 지상에서 함께 사신 것을 부활하신 후에도 계속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부활생명을 전해 받는 방법은 성체성사이다. 전 인류는 성체성사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한다.
* 14절 : 요한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세 번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21장을 편집한 이는 예수님이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신 것을 무시하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경우만 헤아려 세 번이라고 했다..
♠ 복음 요약 : 스승이 죽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은 낙향하여 다시 예전의 직업으로 돌아가 고기잡이를 한다.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하여 실망하고 피곤에 지쳐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분의 지시대로 했더니 많은 고기를 얻게 되었다. 153마리의 고기는 모든 종류의 고기를 의미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교회로 불러올 것이라는 뜻이다. 일터에서 돌아오는 제자들을 위해 주님께서는 식사 준비를 다 갖추어 놓고 계신다. 숯불과 생선과 빵이 있고, 그들이 잡은 생선도 가져오게 하신다. 그리고 식사에 초대하시고 직접 먹여 주신다. 사람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한다. 부활하시어 함께 계시는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하고 계신다.
♠ 대화 방향 : ① 물고기 백쉰 세 마리를 잡게 하신 예수님은 부활하여 모든 종족들을 모아 하나인 교회를 세우셨다. 이 일치를 세우기 위해 우리가 가정에서나 신심단체에서나 본당 차원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봅시다.
② 성체성사에 참여할 때마다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분의 부활생명을 받는다. 그분은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아침상을 마련해 주셨듯이, 미사 때 마다 우리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깨닫고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 참고 문헌 : ▪ 말씀의 등불 (가톨릭신문사) ▪ 말씀의 두레박 (생활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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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일 / 성소 주일
2016. 4. 17
요한 10, 27~30
♠ 복음 연구
* 27-28절 : 주석가들은 양떼를 다양한 방법으로 해석한다. 양우리 속에 있는 어떤 양들은 예수님의 양떼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직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양만이 그에게 속한다. 하나의 양우리 속에 있는 많은 양떼들과 그들이 각각 다른 목자에게 속한다는 것인데, 이와 같은 비유의 해설은 예수님 당시의 유다인들을 거대한 양떼로 상징하고 있으며, 다른 우리에 들어 있는 양떼는 이방인들을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초대하는 언급일 수 있다. 양떼는 다양하지만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고 모두 그에게 모여든다. 다른 양들, 곧 예수님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는 양들은 흩어진 채로 남아 있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의 목소리에 지속적으로 대답해야 한다.
* 29-30절 : 예수님을 통해 양떼를 향한 하느님의 관심이 표현되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선물인 양은 어떤 것보다도 귀중한 것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선물한 것이기에 양들은 예수님 안에 있는 동시에 아버지의 전능하심 안에도 있는 것이다. 착한 목자 예수님은 당신과 아버지의 관계와 흡사한 관계를 양과 자신에게 적용시켰다. 아들이 아버지를 알고 그로부터 생명을 받았듯이 아들을 아는 사람은 아버지를 알고 영원한 생명을 받는다.
♠ 복음요약 : 착한 목자는 자기 양들을 잘 알고 있다. 양들은 그분 안에 있으며 그들을 보호하고 위험에서 구해주며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지도자뿐만 아니라 인도자로 삼아 그 안에 늘 머물러 있어야 한다.
♠ 대화방향 : ① 착한목자의 목소리에 내 자신은 어떻게 응답하는지 나누어 봅시다.
② 착한목자의 목소리를 잘 듣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이야기해 봅시다.
♠ 참고문헌 : ▪ 영적독서를 위한 요한복음 (요셉 출판사)
▪ 4복음서와 예수전승 (성바오로딸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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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5주일
2016. 4. 24
요한 13, 31~33ㄱ. 34~35
♠ 복음 연구
* 31절 : 유다가 나간 뒤에 최후 만찬 자리에서 떠난 유다의 행방은 18,1절 이후에 보도된다. 이제는 예수가 십자가에 들어 올려져 영광스럽게 되는 시간, 곧 예수 죽음의 시간을 가리키는 시간의 전환점을 뜻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되었고 유다가 떠남으로 인해 예수가 영광스럽게 될 시간이 왔다. 배신의 밤은 곧 영광의 시간이다. 십자가상 죽음이 임박했고, 그 죽음으로 인해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기 때문이다. 이 영광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께 주어지는 구원의 충만된 능력을 뜻한다. 예수의 죽음이 곧 영광이라는 말은 예수가 성부께로 돌아가기 때문만이 아니라 "들어 올려진 자" 로서 인간들에게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 32절 :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란 미래 형태는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한 것에 대한 하느님의 대응적 특성을 시사 한다. 그리고 하느님과 사람의 아들이 서로 영광스럽게 하기 때문에 하느님이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곧"이란 시간적 표현으로 강조된다. 이 "곧"이란 표현으로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을 극도로 영광스럽게 하는 시간, 곧 십자가상 죽음을 가리킨다.
* 33절 : 이제부터 예수께서 가시려는 곳까지는 제자들을 데리고 갈 수가 없으시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헤어지시려고 하는 때에 위대한 사랑의 울림이 있다.
* 34절 : 이웃사랑에 관한 구약성서 계명에 대한 반명제가 아니라 사랑에 관련된 예수의 인품과 행동을 표현한다. 예수의 사랑계명이 "새롭다"는 것은 예수의 사랑이 가득한 봉사와 죽음으로서의 현신을 통해 그 사랑의 유일무이한 특성이 나타났다는 것을 뜻한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 하느님이 몸소 놀라운 무조건적 사랑을 "새롭게"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사랑 실천의 새로운 방식을 시사한다. 예수의 사랑을 체험함으로서 이웃 사랑을 "새로운" 방식으로 실천하여 삶의 장이 "새롭게" 되는 것이다. 이 "새 계명"은 제자들과 이별을 예고하는 맥락에서 언급되므로 마지막 유언의 특성을 지닌다.
* 35절 : 사랑 실천이 곧 예수와 함께하는 제자 신분을 나타내는 표징이라는 뜻이다. 이 표징을 통해 "모든 사람"이 예수의 사랑을 알게 되고 또한 실천해야 하기 때문에 이 "새 계명"의 보편성과 영원한 유효성도 시사된다.
♠ 복음 요약 : 영광의 시기는 벌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조건으로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이다. 감동으로 말미암아 떨리는 음성으로 다가온 영광에로의 출발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신다. 제자들에 대한예수님의 이 호소는 그 분의 위대한 사랑만이 줄 수 있었다. 가장 깊은 자비의 말씀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아들과 '신앙인들을' 한데 묶는 사랑의 '동그라미' 속에서 사랑이 가장 완전하게 실현됨을 알려 주신다. 서로 사랑하여라. 조건이 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 대화 방향 : ① 그리스도께서는 떠나시기 전후에서 제자들 사이에 일치를 특징짓고, 일치를 조성하는 요소는 다름 아닌 사랑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나의 방식대로의 사랑이 아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새 계명'의 표시)의 모습을 내가 어떻게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는지요?
② 아직도 나 중심의 사랑은 아닌지요?
♠ 참고 문헌 : ▪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 (분도 출판사)
▪ 신약성서 주해집 요한 복음서 (크리스챤 출판사)
▪ 신약성서 중급 (시청각 통신 성서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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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례회의 스케치 >
봄 전주 교구청에서 사순기간의 의미를 보다...
서울 당산동 산상수훈 팀 FB
전국 서기 : 김 효주아녜스 (향자)
+ 찬미 예수님 !
특별한 이유를 알지 못한 채로 오광근(스테파노)형제님과 필자는 이른 시각인 7시, 사강 수도원에 도착. 안나 수녀님과 전주시를 들어선 싯점은 10시가 채 되지 못한 시각이었고, 풍남문근처에서 어느 자매님을 만나고, 그 자매님과 안나 수녀님이 어느 식당에서 이야기하는 사이에 그 근처 전동성당에서 한동안 거닐다가 그곳 근처에 있는 조그만 공원에서 일본군. 독립운동 젊은이의 퍼포먼스, 그리고 세월호의 천막을 보다...
잠시 후 수녀님 일행을 재래시장에 두고 우리는 교구청으로 들어오다... 제가 어느 자매님의 호출을 받고 그곳으로 달려간 것이다. 교구청 본관 3층에서 몇 분이 모여 묵주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기차사고로 늦어진다는 서울팀 소식을 들은 우리들은 점심시각을 늦춰가면서 먼저 코이노니아를 진행하였다. 복음낭독과 간단한 자기소개와 묵상나눔이 있었다.
전주에서 우림과 서신성당에서 새로운 자매님의 도착하셨고, 안나 수녀님 말씀을 듣고 각 팀별 보고를 하였다.
그 시각에 마침 반가운 서울팀(수원 미카엘포함) 3명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전 조정봉사자에 의한 ‘FB 묵상회’ 총평이 있었고, 안나 수녀님은 에쿠아도르 일들을 말씀하셨다.
‘FB 창립 50주년 준비 위원장은 전 조정 봉사자인 이 보나벤뚜라 형제가 결정되었으며, 5개 분과로 구성된다는 기본 조직을 아울러 듣게 된다.
그리고 성가집, 그동안 발간된 ‘기쁜 소식지’을 모아서 책자로 만들고, 레크레이크션 모형 개발 등 앞으로 해야 할 사항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앞서 늦은 시각인 오후 1시30분경에 전주팀에서 준비한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 중 빈첸시오 주교님의 집전으로 미사가 사제관 경당 옆 조그만 방에서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준비하여 서둘러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미사 중 몇 사람의 묵상과 간절한 기도가 덧붙여지고, 미사 끝에 몇몇 봉사자들이 호명되고 주교님의 축복을 받았다...
그리고 그 방에서 30여 분간 더 머물면서 못 다한 이야기를 더 하였고, 봉사자들에 대한 임명장을 전 조정봉사자가 전달하였다.
그리고 약간의 전주지구 문제가 남아 있어 보였고, 그 문제가 무엇인지 인지되긴 했지만 결론이 나지 않는 관계이고, 또 당사자 간의 조정문제도 있고 해서 그 내용을 표현하지 않는다.
다만 회의가 끝나고 돌아온 후에 필자는 개인문자로 조정봉사자에게 임명에 관한 여러 가지 갈등조정에 필요한 위원회의 필요성을 건의했다.
다음 봉사자 전국월례회의는 4월 9일 (2째주 토요일) 11시 안산 원곡성당에서 실시하기로 하였다.
그밖에 들어나지 않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들 모두의 문제는 사순기간 중임을 고려해서 주님께 봉헌하기로 하였다.
필자는 일찍 전주에 왔으며, 교구청에 오기 전에 전동성당에 가서 잠시 묵상의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본당 사순특강에서 프란치스코 신부님께서 ‘세상에는 변화시킬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되고, ‘이를 위해서 우리는 노력해야 한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누구는 정보를, 누구는 친교를 얻으려고 한다.’ 고 하셨다. ‘그런 환경 안에서 대화가 이루어져 서로 인정함을 통해서 행복이 시작된다.’ 고 했다. 그리고 ‘적절한 긴장과 아픔을 통해 성장해 나간다.’ 고 하셨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사순기간동안 되새겨봐야 한다고 정리하셨다.
저는 요번 전주 월례회의를 통해서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느낌을 간직하였다.
이 순간 성서 한 귀절이 제 마음속에 들려온다.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루카 2,51)
사족 : 오래간 만에 전주팀 나범순(로사) 자매님을 만나 너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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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1 >
성서형제회를 위한 나의 기도
안산 원곡동 세르브스 팀 FB
권 토마 (순)
사랑이신 주님, 찬미드립니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보잘 것 없는 민족인 아브라함 족속을 책하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가라고 하셨지요...
그들은 나이가 먹도록 아들하나 점지해주지 않는 상태에서, 그리고 떠돌이하는 그들의 보잘 것 없이 무리를 향해 바다의 모래와 같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보이는 모든 땅을 너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저희는 지난 번에 주신 ‘자비의 얼굴’ 을 4가지 마당으로 이를 잘 묵상했었습니다. 오랜 고민 끝에 묵상회를 준비한 형제가 강사진을 구하지 못해서 자체프로그램으로 구성했다고 하지만, 아주 절묘하게 전주교구에서 마련한 ‘자비의 얼굴 강독자료’ 를 전주교구청의 도움으로 연수교재로 확보할 수 있었지요... ‘주님의 오묘한 능력의 결과’ 라고 밖에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주교님의 은혜로운 집전 미사를 통해 몇몇 사람들의 묵상고백을 듣게 되었고, 성당이 아닌 교육센터에서 미사를 드리게 됨으로써 반주를 할 수가 없는 여건 속에서 어린 아이의 손을 빌어서 한곡만이라도 반주를 듣게 해주시는 오묘한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아주 감동스러운 느낌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우리의 자만이라는 씨앗이 자라나고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몇몇 사람들이 이를 이기적인 모습으로 지켜보는 오류를 범했음을 고백합니다... 마치 풍요로운 에덴동산 안에서 뱀 따위에게 유혹 받아서 선악과를 먹었듯이...
주님이 하시는 일에는 반드시 당신의 뜻이 있다고 믿어 왔습니다. 어떤 갈라짐을 우리들은 나중에서 알게 됩니다. 그것이 어떤 원인으로 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절대적으로 그런 까닭이 당사자 몇몇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속해져 있는 공동체 전체적으로 흐르는 문제를 주님께서 지적하셨으리라 여깁니다.
주님!
외람되게도 저희들은 그러한 일들이 상태는 다르지만 우리 내면에서 조금씩 우리 안에 들어있음을 지금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특정인에서 주님의 흔적도 때로는 사탄의 작용으로 깜박 잊고 살고 있었음을, 그리고 그로 인하여 우리와 가까운 이들을 시기와 질투하고 있었음을 당신 앞에 감히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는 아주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변명 같지만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살아남기 위해서 많은 경우를 동물과 같이 부정적인 관념과 경쟁적인 구도 속에 살다보니 그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소리인지, 사탄으로부터 오는 소리인지를 잘 분간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주님!
일찍이 아담은 주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었으며, 카인은 그의 아들 아벨을 죽였으며, 그 후손들은 계속 살인을 해왔음을 주님의 책 안에서 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주님 보시기에 우리들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기에 죄짓더라도 그 죄를 용서해주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주님께서 당신 백성을 구하시면서 그들을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곧바로 인도하시지 않으시고, 모세에게 주님의 계약판을 건네주고 있을 때에 백성들은 아론을 중심으로 황금황소를 만들어서 그에게 경배하는 오류를 범함으로 인해 주님의 귀한 계약판을 부수고 그 백성들이 그 백성들을 찔러 죽이고 참극을 지시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게 모질게 하셔야만 정신을 차릴 수 있는 민족이지 않습니까?
저희 조그마한 공동체인 성서형제회도 그런 민족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들이 모르는 사이에 성서형제회에 들어오는데, 그리고 봉사하는데 많은 장벽을 만나고 있는 줄 우리는 알지 못했고 느끼지도 못한 것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우리 성서형제회가 처음 시작할 때에 ‘성서를 열심히 연구하고 아나윔 정신으로 살아가겠습니다. ‘ 라고 주님 앞에 맹서하였지만, 우리들은 이들을 ’친교‘라는 포장지로 모두 덮어버렸음을 이제야 알게 되어서 고백합니다...
주님!
저희가 당신께 하는 행동이나 모습들이 과연 소중하거나, 주님께 합당하기에 선처를 요구하거나, 저희의 고통을 감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저희가 드리고자 하는 맘이 약간의 성의가 있다고 여기시거나 우리가 용서하는 맘이 조금이라도 묻어나온다고 여기신다면 지난날의 잘못을 생각하시지 마시고 우리들을 서로 갈라서지는 않게 해주십시오...
베드로처럼 주님의 뜻을 살피지 못할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주님께 드리는 열정으로 이를 버텨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열정이 지금도 남아있다고 여깁니다. 멀리서 왔다고 몇 십 명의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한 때는 서로들 앞에서 눈물로써 고백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완벽하다고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완전히 옳다고도 느끼지 않습니다... 저희가 했던 실수도 욕심이든지 간에 생긴 일들과 행동과 모습들은 불과 얼마 가지 못해서
행동으로 다시 돌아오곤 합니다. 저희들의 마음이 온전치 못한 때문이라 고백합니다.
저희는 한때 이들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바꾸어 보려고 했었습니다. 저희가 가진 마음이 변치 않는 상태에서 일시적인 효과이고 이들이 세속적으로 발달된다는 것을 저희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저희들은 수시로, 또는 일 년에 두 번 판공 때에 주님 앞에 저희 죄를 고백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저희가 하고 있는 방법이 옳다고도 느끼지 않습니다. 저희들이 하는 방법들은 때로는 아주 연약하고 흔들리기 쉬운 갈대보다 못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저희들은 이제 주님께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들의 불안한 마음이 있기에 갈등뿌리를 완전히 온전히 뿌리 뽑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자비함이 없이는 저희들은 욕심을 비우고 착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갈 수만은 없는 듯합니다. 다만 저희가 이런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주님 자비의 거울’ 에 비춰본다면 주님이 요구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가 있으리라 간절히 믿으렵니다. 그리고 저희는 자신보다는 나약하고 모자란 이들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을 돕는 일에 우선적으로 노력해 나가는 것이 훨씬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에 감히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창설자 신부님과 초기봉사자들을 통해서 하신 말씀을 우리가 잘 지키도록 이끄시고, 이를 잘 지키지 않는다고 내치지 마시고, 사랑으로 같이 할 수 있도록 돌봐주시기를 부디 간청드립니다. 저희들을 통해 주님사랑의 모습을 발견하고, 주님의 자녀들이 여기 성서형제회에 모여 함께 할 수 있도록 힘써 나가렵니다.
창설자 신부님이 멀리 에쿠아도르로 떠나신 이후에 선교지에 대해서 저희는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멀리 있는 그곳 교우들도 주님이 지으신 귀한 자녀임을 느끼고 사랑하게해주시고, 그들과 영성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함께 나누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지금 저희는 ‘성서형제회 창립 50주년’을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위원회를 구성하려고 합니다. 지금 아무것도 준비한 것이 없습니다만 그동안 누락되거나 잊혀져가는 것들, 즉 성서형제회의 각종정신이며, 처음부터 해왔던 소중한 기록과 기억들을 되살리고, 미래의 성서형제회를 이끌어나갈 교우들을 위해서라도 용서와 자비의 마음의 불꽃이 꺼지지 않고 타오르게 하소서...
주님!
저희들의 조그마한 희망이 지켜지도록 주님께서 기다려주시고 일깨워주시기에 결코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고 확실히 도달할 것이라 여깁니다. 주님, 저희는 주님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고 불평들 하지만, 정작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따라 잡기에 급급하고 불만투성임을 잘 아시리라 여깁니다.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광야에서 40년간 헤맬 때도 그들을 단련시키시어 그들 전부는 아니더라도 결국은 유대공동체를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가셨듯이, 저희에게도 그렇게 해주시리라 믿고 이번 사순기간을 통하여 새롭게 다짐하렵니다...
주님께서는 늘 도와주시고, 늘 축복해주시고, 늘 위로해주시기에 이제 저희들도 서로 돕고, 서로 축복해주고, 서로 위로하렵니다.
주님이 오래 전에 주님의 사도 바오로를 통해 하신 말씀을 새삼 끄집어내면서 주님께 향한 우리의 다짐을 새롭게 해봅니다. 어둔한 저희는 모일 때마다 사도 바오로를 통해서 주신 말씀을 왜 합창해야 하는지를 마음속에 깊이 새겨봅니다.
“ 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너그러운 마음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걱정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고,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의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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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원 기고 2 >
교종 성 요한 23세의‘평정의 십계명’
서울 당산동 로고스 팀 FB
자료 제공 : 남 파비올라 (은정)
☞ 교종 성 요한 23세의 평정의 십계명 '놓아두며 살기' 라는 책을 읽다가 공유하고 싶어서 글을 옮겨봅니다.
▣ 오늘 하루
나는 내 삶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 들지 않고,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
▣ 오늘 하루
나는 행동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 품위 있게 행동하고 아무도 비판하지 않으며 오직 나 자신만을 바로잡겠다.
▣ 오늘 하루
나는 내가 행복하기 위해 창조되었고, 다른 이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서도 그렇게 창조되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행복하게 지내겠다.
▣ 오늘 하루
나는 상황이 내가 바라는 대로 맞춰지기를 바라지 않고 상황에 나를 맞추도록 하겠다.
▣ 오늘 하루
나는 내게 주어진 시간 가운데 10분만이라도 좋은 책을 읽는 데 쓰겠다. 육신을 위해 음식이 필요하듯 영혼을 위해 건전한 독서는 꼭 필요하다.
▣ 오늘 하루
나는 착한 일을 한 가지를 하겠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
▣ 오늘 하루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는 무언가를 하겠다. 혹시 불쾌하더라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조심하겠다.
▣ 오늘 하루
나는 명확한 계획을 세우겠다. 지키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세우겠다. 그리고 '조급함' 과 '우유부단함' 이라는 두 가지 악을 조심하겠다.
▣ 오늘 하루
나는 상황이 어떻든지 하느님의 자애로운 섭리가 마치 세상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나를 돌보고 계신다는 것을 굳게 믿겠다.
▣ 오늘 하루
나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겠다. 아름다운 모든 것에 기뻐하고, 두려움 없이 하느님의 호의를 믿겠다. 선을 행하라고 내게 주신 시간은 12시간뿐이다. 평생 쉼 없이 선을 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나마 선을 행해야겠다는 용기마저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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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BI 재정 회계 보고 >
☧ 매월 FBI본부로 보내주시는 의연금은 본당별로 보내지 말고, 각 팀별로 회계 정산하시어,
금액이 크든 적든 매월 꾸준히 보내주셔야 합니다…….
✟ 2016년 2월 입출금 내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