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기념일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오늘은 70년 전 정전회담이 이루어진 날이다. 이 정전회담에 대한민국은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이후 남북한 간에는 상호 교류를 하면서 평화관계를 구축하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평화교섭 정책을 써 왔고 역대 대통령이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경주해 왔을 뿐만 아니라 남북한 학자들이 공동 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북한은 지금까지 핵개발 정책에서 한 번도 변화가 없었다.
미국의 트럼프가 김정일과의 하노이 회담이 회담장에서 결렬된 것도 북한의 핵폐기 조처가 위선임을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북한 핵을 억제하고 이를 해결함에는 미국이나 우리의 힘만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제 공공연한 상식에 속한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일과의 핵확산 억제 외교가 북한으로하여금 시간을 벌게할 것임을 남한의 웬만한 상식을
가진 사람은 예견했던 것이다. 북한의 속셈을 한국인들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지금도 북한은 핵탄두를 실은 미사일을 동해로 쏘아대고 있는데 이를 방향을 틀면 남한 공격용임은 확실한 일이다.
그리고 북한은 무지막지한 말로 남한을 위협하고 있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말이 그 단적인 예이다.
요컨대 지난 70년간 남북한은 전면적인 전쟁은 막아냈지만 아직도 남북한 간에는 전쟁은 휴화산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금강산 개발 사업으로 현대그룹에서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지금 북한은 이를 완전 몰수했다.
개성공단을 만들어 북한의 산업화에 남북한이 공동으로 노력해왔다. 국가간의 약속도 헌신짝 버리듯이 하는
북한의 소행은 이 공단을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은 남한이 경비를 들여 지은 개성의 남북공동사무소를 사전 협의 없이 폭파시켰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이에 제대로 항의조차 못했다.
북한은 연평도 앞 바다에서 해중 지뢰를 쏘아 천안함을 폭파시켰다. 이를 북한 소행임은 국제적 조사와 과학적으로
입증되었으면서도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을 밝히는 데에 문재인 정권은 주저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누구나 정전회담의 영향 속에 살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나 핵무기 개발에 유엔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는 것은
북한의 후원세력인 같은 공산당 체제인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공산당이 지배하는 체제이지만 자본주의의 산업화를 이룩하여 북한과 엄청난 경제적 격차를 벌이고 있다.
북한도 산업화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북한이 인민의 생활개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북한의 개방을 위한 노력을 우리 정치인들이 정파간의 대립을 넘어서 공동으로 협력할 필요가 있다.
현재 남북한은 세계적인 이념 대결의 최일선에 서 있다.
70년간 우리는 남북이산가족의 상봉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채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실향민들이 고향 방문의 기대가 생전에 이루어지기는 어렵게 되었다.
우리는 6.25 전쟁에서 남북한 간에 군인 전사자 보다 민간인 살해가 훨씬 많이 있었던 참혹한 전쟁이었다.
이는 참으로 비참한 일이다.
한국 전쟁은 유엔군이 파견된 최초의 전쟁이었다. 16개국에서 군대를 파견해 주었고, 의료지원 등을 한 나라를 합치면 25개국의 도움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유지발전하게 되었다.
우리가 현재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그러나 역사학자로서 한가지 제언하고 싶은 것은 6.25 전쟁사의 구술사 자료를 만드는 일이다. 전쟁 기간 3년간 그 후 군복무나 경찰활동에 대한 수기를 모으는 일이 전 국민적 운동으로 필요함을 역설하고 싶다.
전쟁에 대한 기록은 국가적인 기록도 있지만 이는 주로 전투 기록일 뿐이고 전쟁기간 동안 우리의 삶은 어떠하였는가, 이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은 어떠하였는가에 대한 역사기록을 남길 필요가 절실하다.
역사의 창조자가 전 국민인 이상 전 국민이 전쟁에 대한 회고록이나 실기를 남기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런 일은 전쟁과 평화에 대한 세계적 문학적 업적도 나올 수 있고, 인류의 역사와 전쟁에 대한 사회사적 저술도 나올 수 있다.
또한 우리는 휴전선 일대를 국제적 평화공원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런 작업은 필요하다. 이 기념관에 채울 자료를 민간인이 준비하는 일이다.
일제시대 일본인이 남긴 통치 자료가 아닌 식민지 시대의 우리의 삶에 대한 우리들의 구술자료를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잃어버렸다. 그러나 6.25 전쟁과 그 이후의 우리의 삶에 대한 구술자료의 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없어져 간다.
이 일을 위해 언론계, 문화계, 교육계, 산업계 학계 등등 전국민이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첫댓글 이에 대한 여러분의 고견을 부탁 드립니다.
<6.25전쟁사의 구술서자료>를 만든다는 것은 살아있는 한국사의 가장 중요한 자료이기도 할 것입니다.
정전후 7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전쟁을 경험한 국민들의 생존자도 매우 적고
고령으로 건강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형편이 되어
그들에게 구술서자료를 기대하기도 여러운 형편이 되었다.
그러나 여러가지 난관에도 불구하고 많은 단체와 기관에서 협력하여 하루속히 추진하지 않으면 안될 처지에 으르렀다.
낙암선생의 고견을 언론 출판 등 여러 기관과 국가보훈부에 전달하여 하루 속히 착수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참으로 중대하고 화급을 요하는 국민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고림 . 청계산)
존경하는 지교수님 곧비로 댓글을 올려 독려해 해주신 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속한 한국사학사학회에서 이 구술사 자료를 만드는 일에 중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좌담회도 열 계획입니다.
얼마 전 "막찬승 교수가 쓴 "마을에 이어진 한국전쟁"이란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좌우익이 밤 낮으로 뒤바뀌는 상황에서
민간인 학살이 꼬리를 물고 자행되었습니다. 민간인 학살은 북한군이 인민재판이란 방식으로 민간인을 학살함에서 시작되었고
전세가 역전되자 부역자라고 해서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이 책은 다섯 개 마을을 대상으로 집필한 책입니다.
고림선생님도 6.25전쟁에 대한 기억을 써서 자료로 남겨주시기 앙망합니다.
직접 경험하신 것과 자유 대한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친 이웃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도 중요합니다. 기왕에 쓰신 글이 있으면 올사모 카페에 올려주십시오. 건강에 유념하시며 9순이 넘으신 지 선생님이 이렇게 열심히 응해주시니 감사하기 그지 없습니다.
어쩌면 이념의 대립이 아직도 안 풀리고 응어리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 날을 회상하기조차 꺼리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를 방치하면 우리의 책임 회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간인 학살은 더 이상 없어져야 할 것입니다. 남한측의 군인 사망자가 45만명 정도였고 민간인으로 희생된 사람이 65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용인 법화산 정상에는 평화의 쉼터라는 곳에 중공군 3개사단 1만2천명을 국군과 그리스 군이 처절하게 막아낸 곳이고 이에 대한 유해발굴작업을 했습니다만
현재의 시민들은 이곳의 기념탑에 관심이 없음을 보고 가슴이 아픔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