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6: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 예전에는 귀한 손님이 오면 가장 좋은 것을 내놓았다. 아이들 학교선생님이라도 가정방문할라치면 며칠 전부터 집안을 정리하며 가장 귀한 것을 내놓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극진히 대접할까? 자녀의 성적, 진급, 사업의 성공을 위한 어떤 도움을 줄 사람 아닐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를 그렇게 극진히 대접해야 할까? 먼저는 주님이다. 다음은 그 주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예전에는 목사님이 가정심방 오는 것을 아주 귀하게, 주님이 오시는 것 같이 여기며 대접했다. 설레는,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때는 세상에서도 인정, 존경받았다. 그러나 지금은 예전과는 다르다. 목사를 우습게 여긴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들까지도 그런 태도로 목사를 대한다.
시대가, 문화가, 사람들의 가치가 매순간 바뀐다. 이 시대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존중해야 하는 시대다. 절대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상식이 없고 무식하고 문화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의 절대기준은 언제나 주님, 성경이다. 성경의 가치는 모든 문화, 시대, 역사의 가치 위에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마지막 보루다. 작은 틈을 방치하면 거대한 댐도 무너진다. 성경의 가치가 너무 진부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가치라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상문화, 소외된 이웃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상을 이해하고 돕고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세상가치가 우리의 영혼과 삶을 오염시키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세상을 이해하고 돕는 것도 신앙의 기본을 잘 지킬 때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기본을 상실하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유럽교회가 그것을 아주 극명하게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문화, 사람, 세상을 아주 귀하게 여기다가 복음, 진리, 주님을 놓치고 말았다.
예수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 예수를 전해준 사람이 어떻게 보였는가?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겨지지 않았는가? 그가 말하는 가치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가치라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신앙연조가 늘어갈수록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그 사람의 말이 예전처럼 그렇게 가치 있게 들리는가 아니면 지금은 좀 귀찮고 진부하게 들리는가?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기본이 잘못되었다. 양보하지, 타협하지, 넘어서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순수함을 잃고 세상의 수많은 유혹, 가치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해야 할 대상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다.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귀한 것을 제사장에게 드렸다. 심지어 제사장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제물의 일부분을 먹기도, 취하기도 했다. 제사장들의 분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소유한 것 중에 가장 귀한 것들이었다. 엘리야 선지자는 사르밧 과부에게 마지막 남은 한줌의 밀가루로 먼저 자신을 위해 빵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명령이었다. 그러나 순종할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신약에 보면 사도 바울을 섬기며 사랑한 많은 사람들이 나온다. 자신의 눈도 빼어주고,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주의 종을 그렇게 대접할까?
“가르침을 받는 자는” 주의 종을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은 말씀이 들리는 사람이다. 말씀이 들려서 자신의 중심에 말씀이 임하는, 그로인해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이다. ‘가르침을 받는’이라는 단어는 ‘들리다’라는 뜻이 있다. 아무리 말씀을 준비해서 전해도 듣지 않는, 들리지 않는, 가르침을 받지 않는 성도는 주의 종을 섬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말씀이 들리고, 삶이 변화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은 성도는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싶어진다. 아니 자신을 위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까지 주의 종을 위해 아낌없이 나눈다. 말씀, 진리보다 귀한 것이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장 귀한 예수를 전해주는 분이기에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나눔이 기쁨이 되기 때문이다. 목사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성도는 그 말씀이 들리는 그런 복된 교회, 서로 섬기며 나누는 그런 복된 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