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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劉禹錫(772~842)자는 몽득(夢得). 뤄양[洛陽: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뤄양 시] 사람이다. 일찍이 왕숙문(王叔文) 개혁단체에 참가하여 환관(宦官)·번진(藩鎭) 세력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에 실패한 후, 낭주사마(郎州司馬)로 좌천되었다가 후에 연주자사(連州刺史)가 되었다. 이후 배도(裵度)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태자빈객(太子賓客) 겸 검교예부상서(檢校禮部尙書)가 되어 세간에서는 '유빈객'(劉賓客)으로 불렸다. 유종원(柳宗元)과 교분이 매우 두터워서 '유유'(劉柳)라고 병칭되기도 했으며, 항상 백거이(白居易)와 시문(詩文)을 주고받는 등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유백'(劉白)이라고도 병칭되었다. 그의 시는 통속적이면서도 청신하며 〈죽지사 竹枝詞〉가 유명하다. 철학저작인 〈천론 天論〉에서는 천·인(天人)의 구별에 대해 논증했다. 즉 천인감응(天人感應)의 음덕설(陰德說)을 반박하고 '하늘과 인간은 상승(相勝)한다'는 설과 '상용(相用)된다'는 설을 주장하여 하늘이 인간 세상의 길흉화복을 더이상 주재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유신론(有神論)에 대한 근원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분석을 내놓았다. 즉 법제가 잘 행해져서 상벌이 분명하다면 사람들은 천명(天命)에 바라는 것이 없겠지만, 만일 법제가 흐뜨러져 있어서 상벌이 분명하지 않다면 사람들은 오로지 천명에 기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말년에 불교에 대해서도 타협적인 자세를 보였다. 저서로는 〈유빈객집 劉賓客集〉(〈유몽득집 劉夢得集〉이라고도 함)이 있다.
*蜀先主廟: 선주묘는 夔州(기주), 지금의 사천현 봉절현에 있다. 先主는 劉備 *英雄: 삼국지 <촉지전>에 조조가 유비에게 말하기를 “대저 영웅이란 가슴에 원대한 뜻을 품고 배속엔 좋은 계책이 있으며, 우주를 감싸안을 만한 기특과 천지를 삼킬만한 뜻을 지닌 자이다. 지금 천하의 영웅은 유비와 나 조조뿐이다. 라고하여 영웅이라는 단어를 처음 썻다고 한다. *飄然:사람으로 하여금 숙연하여 존경심을 일으키게 할만한 모습 *三足鼎: 위, 촉, 오를 세발달린 솥에 비유한 것. *業復: 한 대의 대업을 다시 회복시킴 *五銖錢: 한 무제 때 발행한 화폐, 王莽(왕망: BC 45~ AD 25. 10. 6 중국. 중국의 단명한 나라인 신(新 : 9~25)의 창시자.시호는 가황제(假皇帝)·섭황제(攝皇帝). 중국역사에서는 '찬탈자'로 알려져 있다.)이 폐지했는데 광무제때 중흥기에 이르러 다시 부흥되었다. 광무제가 오수전을 회복시킨 일을 들어 유비가 한 대의 대업을 부흥시킴을 비유함. *五銖錢은 元狩5년(BC118) 조제한 화폐로 왕망이 신나라를 세웠을 때 어린애들이 부른 노래가사에 “黃牛白腹 五銖當復”(왕망가 공수전이 날뛰고 있으나 오수전이 회복되겠네) *一兩은 24銖 *得相: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유비가 말하기를 “내가 공명을 얻은 것은 고기가 물을 만난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유비가 제갈량을 재상으로 삼은 것 *生兒: 유비의 아들 유선(劉禪) *不象賢: 후주인 유선이 유비만큼 현명하지 못함을 말함. *蜀故技: 촉국의 옛 藝人 *魏宮: 위나라의 궁정. *사마문왕이 유선에게 연회를 배풀어 주어 촉나라 기녀들로 하여금 춤추게 하니 옆에 있던 촉나라 옛 신하들이 비통해 하였으나 유선은 희희락락하였다. 이를 보고 司馬昭謂賈充曰“人之無情” (유선이라는사람은 개념이 없다)라하였다. |
152. 몰번고인(沒蕃故人)-장적(張籍)
前年伐月支(전년벌월지), 지난 해 월지국을 치다가
城下沒全師(성하몰전사). 성 아래에서 전 군사가 전멸당했소
蕃漢斷消息(번한단소식), 번과 중국과는 소식 끊어지고
死生長別離(사생장별리). 죽은 사람과 산 사람 긴 이별 하였다네
無人收廢帳(무인수폐장), 부서진 휘막 거두는 이 아무도 없고
歸馬識殘旗(귀마식잔기). 돌아온 말만이 찢겨진 깃발의 주인 안다네
欲祭疑君在(욕제의군재), 제사를 지내고 싶어도 그대 살아있는 것 같아
天涯哭此時(천애곡차시). 이 시간 하늘 끝 먼 곳에서 통곡하노라
*張籍(768?~830?) 자는 文昌, 蘇州人, 韓愈의 후원으로 貞元 15년(799)에 진사가 되어 太常寺太祝, 秘書郞, 國子博士 등에 제수, 악부시에 뛰어나 王建과 함께 ‘張王樂府‘라 칭하였다. 장적은 두보시를 본받고 싶어 두보가 지은 시집 한권을 불태워 그 재를 마셨다고 하는데 두보의 시를 많이 닮아있고 한다. <塞下曲>,<征婦怨>,<采蓮曲>,<江南曲>이 대표작이다. *吐藩=吐番, 烏斯藏(명나라때 부른 이름) *前年: 현대중국어에서는 재작년을 말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작년이라는 뜻 *月支: 月氏<월지>와 같다. 한무제(BC 3~4년) 월지족이 돈황과 祁連(기연)사이에서 살았는데 흉노의 공격을 받아 塞種故地로 옮긴 大月氏와 기연산으로 옮긴 小月氏로 나누어졌다. *蕃漢: 토번과 중국을 뜻한다. 吐藩은 月支 *이시는 변방에서 전사한 벗을 위하여 지은 시이다. *將信將疑=半信半疑 將(마땅히 ~해야 한다. 곧 ~하려한다, 어찌, 오히려) |
153. 草 一作(賦得高原草送別)-백거이(白居易;772-846)
離離原上草(이리원상초) : 무성한 언덕 위의 풀
一歲一枯榮(일세일고영) : 한 해에 한 번씩 났다가 시든다..
野火燒不盡(야화소부진) : 들불에 타도 없어지지 않고
春風吹又生(춘풍취우생) : 봄바람이 불면 또 자라난다.
遠芳侵古道(원방침고도) : 멀리 뻗혀 있는 들풀은 오래된 길을 덮고
晴翠接荒城(청취접황성) : 밝은 풀빛 거칠은 옛 성터에 어린다.
又送王孫去(우송왕손거) : 또 다시 그대를 전송하여 보내니
萋萋滿別情(처처만별정) : 우거진 풀처럼 이별의 정이 가득하다
*白居易: 아버지가 쉽게 살아라고 지어준 이름. 백거이가 16 또는 18살에 지은 시라고 함. 백거이가 장안에 과거를 보러왔다가 고황(顧況)을 뵙고 이시를 보여었더니 고황이 백거이의 이름을 보고 “장안은 물가가 비싸 살기 쉽지 않을 텐데[米價方貴 居易不易]하고 농담을하다가 시의 첫구절 ‘咸陽原上草 一歲一枯榮 野火燒不盡 春風吹又生‘ 이라는 싯구를 보고 ’이런 언어를 구사할 수있다니 살기 쉽겠구나’라고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칭찬이 퍼져 명성을 크게 떨쳤다. *屈原의 <楚辭>이후 풀은 이별과 관련된 은유로 상징이 되다시피하였다. 소년 백거이는 이 전통을 잘 이어 ‘離離’, ‘萋萋’, ‘遠芳’, ‘晴翠’ 등 풀에 대한 다채로운 표현을 사용하면서 전통을 이었다. *離離: 초목이 무성한 모양 *侵: 풀이 자라 뻗어나는 모습을 표현 *王孫: 원래 뜻은 왕손을 가르키지만 여기서는 떠나는 사람을 가르키는 미칭 *萋萋: 초목이 길게 자라 욱어진 모양. ‘又送王孫去 淒淒滿別情’ 이란 구절은 굴원의 <楚辭>(招隱士) 의 “왕손은 떠나 돌아오지 않는데, 봄풀 돋아나 무성하구나”는 [王孫遊兮不歸 春草生兮萋萋]를 가져와 쓴 것이다. |